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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 99개-135화 (135/203)

135화

아우우우우우우우―

성문 앞에 다가서자 난데없는 늑대 울음소리가 중후하게 울려 퍼졌다.

착각한 게 아니다.

분명히 짐승의 울음이었고, 깊고 무겁게 가슴을 두드렸다.

하울링만으로 크기가 짐작될 정도.

“갑자기 왜 저렇게 울어 대는 거야?”

성문 근처의 병사들은 난색을 표하며 바깥 상황에 주시했다.

이전까진 조용했다는 건가.

갑자기라고 말하는 걸 보니 내가 도착한 직후부터 시작된 모양이었다.

아우우우우우우우―

이렇게 말이다.

달빛을 타고 흐르는 늑대의 울음은 애타는 마음을 전하듯 짙은 여운을 남겼다.

경비병에게 다가간 나는 성문 옆에 붙은 작은 창을 통해 도개교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피식 웃고 말았다.

손바닥만 한 작은 틈으로 보인 바깥세상의 주인공 때문이었다.

익숙한 얼굴을 한두 사람은 부족장과 술.

나는 성문 경비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했다.

이윽고 거대한 도개교가 해자를 가로질러 이어졌고.

“우와악! 다시 닫아!”

“안 돼! 늦었다아아악!

경비병들은 경기를 일으키며 문을 닫으려 했다.

하나 이미 늦었다.

“흐어어억!”

날아오른 은백의 늑대는 이미 눈앞에 내려앉았으니까.

다가온 거대한 늑대는 푸른 안광을 빛내며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게 그 녀석이라니.

깽깽거리며 뺨을 비비던 조그만 워 울프는, 이제 2m에 육박하는 높은 체고에 풍성한 갈기를 가진 신수가 되어 나타났다.

내 모습을 기억하는 걸까.

눈빛을 맞추고 있는 녀석은 무언가를 기다리듯 묵묵히 앉아 있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많이 컸구나, 펜리르.”

그러곤 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얀 얼굴이 느리게 다가왔다.

녀석은 나의 손에 얼굴을 부비며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상황.

“복종의 의미다. 등에 올라타라.”

갈피를 못 잡던 나의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족장.”

“오래간만이군, 형제여.”

그리운 얼굴이었던 부족장은 엎드린 펜리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인사는 나중에 하고 녀석의 마음부터 받아줘야 할 것 같군.”

뒤를 이어 나타난 술까지.

“처음 있는 일이다.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올라타라.”

그렇게 우리의 재회는 잠시 뒤로 미룬 채 나는 펜리르의 곁에 서서 은백의 털을 매만졌다.

보드랍고 폭신한 느낌.

떡 벌어진 어깨로 다가가 등 뒤에 올라탔다.

당당한 펜리르의 몸이 자세를 갖추며 일어섰고.

아우우우우우우―

녀석은 고개를 치켜들며 긴 울음을 뽑아냈다.

* * *

역시 몬스터라는 건가.

아니, 기왕이면 영물이라고 하는 게 좋겠지.

좌우지간 워 울프는 고작 두 달 남짓한 기간에 극적으로 변했다.

이렇게 빨리 자라도 되나 싶을 만큼.

“아버님께서도 워 울프 치고는 너무 크다고 말씀하셨다.”

“그럼 뭐야 워 울프가 아니라는 건가?”

워 울프의 실물을 본 족장마저 펜리르의 존재를 의아하게 봤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체 워 울프의 본래 크기는 말과 비슷하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데 저 녀석은 누가 봐도 말보다 크다.

아직 성체가 아닐 텐데.

어깨 높이만 해도 이미 나와 비슷하고, 머리까지 합치면 한참을 올려다봐야 했다.

“돌연변이 같은 건가.”

“아니, 그보단 언령이라고 말씀하셨다.”

“언령이라면… 말속에 담겨 있다는 힘? 그게 진짜 있는 거였어?”

“워 울프가 영물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쉽게 말하자면 펜리르의 언령이 워 울프 새끼에게 깃들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술이 지어 준 이름으로 인해…….

“여러 가지 우연과 운명이 모여 이룬 기적이라고 하셨지. 그리고 영물이란 자신을 거둔 주인에 따라 더욱 크게 성장하는 법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연유로 펜리르는 워 울프의 한계를 뛰어넘었고, 신수의 모습으로 변해 간다는 얘기였다.

그 증거가 바로 저 풍성한 갈기.

“늑대는 이런 갈기가 자라나질 않는다. 워 울프도 마찬가지라고 하시더군.”

부족장은 펜리르의 목덜미를 바라보며 설명을 이었다.

가슴에서 시작해 어깻죽지까지.

두툼하게 이어진 녀석의 갈기는 분명히 예사롭지 않았다.

특이한 건 외형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구운 고기만 처먹지. 신선한 야채샐러드도 꼬박꼬박 바쳐야 하고.”

술은 한이 서린 표정으로 펜리르의 식성을 폭로했다.

역시 신수답다고 해야 하나.

“난 이제 더 이상 못 키우겠다. 이젠 형제가 알아서 키우도록 해라.”

정색하는 술의 표정만 보아도 그간의 고생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그래. 수고 많았다. 멋지게 잘 키웠네.”

하여 나는 진심을 담아 술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나 술의 표정은 여전히 떨떠름했다.

다 부질없다는 느낌이려나.

“밥은 나한테 얻어먹고 충성은 다른 사람에게 바치다니. 괘씸하군. 쯧…….”

툴툴거리던 술은 펜리르를 바라보며 쓰게 혀를 찼다.

서운함의 표현인 것이다.

이런 녀석의 기분을 알기라도 한 건지, 펜리르는 술의 뒤로 다가가 얼굴을 슬쩍 문질렀다.

“흠, 주인을 만나더니 성격이 온순해진 것 같군. 먼저 와서 얼굴을 비비고 가다니.”

그 모습을 보던 부족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했다.

놀란 것은 술도 마찬가지.

시큰둥하던 녀석의 얼굴에 잔잔한 감동이 피어올랐다.

역시 키운 정이라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뒤돌아선 술은 펜리르를 보며 코끝을 훔쳤다.

“그래서 저 녀석을 돌려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 모습을 보던 나는 부족장을 향해 다른 내용을 질문했다.

그저 바람이나 쐬자고 이 먼 곳까지 따라오진 않았을 테니까.

“핑계 김에 나온 거다.”

부족장은 감춰 둔 속내를 꺼내며 푸념하듯 말했다.

“답답했나 보네.”

“먼저 떠난 별이 부럽더군. 아무래도 바깥에서 지낸 시간이 길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젠 어쩌려고?”

“좀 더 놀다 들어갈 생각이다.”

“좋아, 아케른에 온 걸 환영해. 둘 다 연병장에서 기다려.”

자리를 벗어난 나는 침실로 돌아가 녀석들에게 줄 선물을 들고나왔다.

“마셔!”

부족장과 술에게 건넨 건 거력의 비약.

“이게 뭔가?”

“먹으면 강해지는 약.”

설명을 들은 두 녀석은 망설임 없이 꿀꺽 집어삼켰다.

그리고 잠시 후.

“크어어억!”

“우웨에에엑!”

부족장과 술은 둥글게 똬리를 틀며 연병장 바닥을 굴러다녔다.

눈을 하얗게 까뒤집더니 비명을 지르며 까무러치길 반복했다.

엄살이 심한 건가.

아니면 진짜 저렇게 아픈 건가.

녀석들의 반응은 별이 복용했을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해 보였다.

똑같은 비약인데 말이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아… 진통제를 깜빡했네.’

생각해 보니 사전 단계를 빼먹었던 것이다.

별은 진통제를 먹고도 그 난리를 쳤는데, 이 녀석들은 지금 어떤 상태란 걸까.

결론은 죽다가 살아났다는 건데.

“이럴 수가…….”

“다시 태어난 것 같군.”

부작용을 견뎌 낸 녀석들은 창과 도끼를 휘두르며 연병장을 뛰어다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한숨을 짓는 여인이 있었으니.

“너도 저랬는데.”

“웃기지 마라.”

“진짠데.”

“기억 안 난다.”

별은 자신의 과거를 모조리 지운 채 부족장과 술을 보며 얼굴을 구겼다.

“하찮은 놈들.”

끝내 한마딜 내뱉은 별은 잽싸게 귀를 막고 연병장을 벗어났다.

그래, 네가 이겼다.

떠나가는 별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정말 끝내주는군!”

한바탕 난리를 털고 들어온 부족장은 얼굴 가득 생기를 띄우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심지어 무예에 관심 없을 것만 같던 술도 마찬가지.

녀석은 채 가시지 않은 흥분을 담아 손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지켜보던 나의 시선이 곁에 있던 겨울에게 향했다.

또랑또랑한 저 시선은 분명히 희귀한 동물을 볼 때 나오는 눈빛일 터.

겨울은 지금 신기한 생명체를 보듯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참에 사기 마법 3종 세트를 보여 줄까 고민했으나, 이내 포기하고 고갤 저었다.

지금 그것마저 보여 줬다간 저놈들은 밤새 잠 한숨 안 잘 게 빤한 탓이다.

그 대신 나는 술에게 다른 질문을 건넸다.

지금도 내 뒤에서 폴짝거리고 있는 저것들.

“이거 멧돼지 맞지?”

“아, 붉은 멧돼지 새끼다.”

“키워 먹으려고?”

“무슨 소린가. 키워서 탈 거다.”

“탄다고? 다그닥다그닥?”

술은 묶어 놓은 새끼 돼지들에게 다가가 쪼그리고 앉았다.

올망졸망한 녀석들이 모두 다해서 네 마리.

꽥꽥거리는 새끼 돼지를 살피며 술은 이런 선택을 한 이유를 설명했다.

“펜리르의 옆에선 말이 나란히 달릴 수가 없다.”

“왜?”

“멀리서 보기만 해도 겁먹고 날뛰는데 어찌 달리겠나.”

생각해 보면 너무나 상식적인 문제였다.

“아… 그래서 저 녀석들을 데려왔다는 거야?”

포식자의 곁에 초식동물이 함께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이치다.

“탈 수는 있고?”

“모르겠다. 일단 붉은 멧돼지는 겁이 없는 놈들이니 도망은 안 치겠지. 하지만 타고 다니는 건…….”

탑승 가능 여부를 묻는 나의 말에 술은 말끝을 흐리며 자신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동 수단의 대명사가 말인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속도와 체력은 기본이요, 인간에 의해 길들여질 수 있는가가 큰 관건이니까.

모든 몬스터를 다 탈 수 있다면 이동 수단의 기준은 진즉에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새끼 때부터 키우면 가능할지도 몰라서 데려왔다.”

“흠…….”

“안 되면 잡아먹는 거고.”

그러니 술의 계획이 성공할지는 미지수였다.

펜리르는 특별한 경우였고.

“아무튼 성장도 빠르니 조금만 지켜볼 생각이다.”

대답을 마친 술은 새끼 멧돼지를 골똘히 바라보았다.

한데 이 녀석들은 얼마나 크게 자라는 걸까.

“펜리르보단 작을 거다. 하지만 덩치는 더 크겠지. 성체가 되면 어금니가 어마어마하게 자란다.”

은빛 늑대와 네 마리의 멧돼지라…….

뭔가 예상되지 않는 그림이긴 하지만 기대가 되기도 한다.

함께 다니면 박력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고생했다. 오늘은 이만 푹 쉬고 내일 다시 얘기하자.”

재회의 첫날은 작은 소란과 함께 지나갔다.

* * *

다음 날 아침.

내성 입구엔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이유는 황궁으로 출발하는 사람들과 배웅을 나온 사람 때문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위용을 뿜어내는 펜리르를 보러 나온 것이지만.

‘덜 자랐는데 이 정도면 나중엔 어떻게 된다는 거야.’

크기는 둘째 치고, 풍기는 위압감과 신수로서의 위력이 기대되었다.

뭐, 그건 나중 얘기고.

“일단 이반공은 저희가 출발한 뒤에 나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당부를 전하는 켄드릭의 말처럼, 이 녀석의 존재감은 지금도 심하게 튀고 있었다.

근처는 물론이요, 일대의 말들이 불안해하며 견디질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밖에.

겨울을 태운 채 남아 있던 나는 모든 일행들이 빠져나갈 때까지 연병장을 어슬렁거려야 했다.

“느낌이 어때?”

“폭신하니 좋네요. 시야도 높아서 시원한 맛도 있고요.”

탑승 소감을 묻는 나의 말에 겨울은 신기해하며 대답했다.

그렇게 연병장을 몇 바퀴 더 돌았다.

마침내 우리가 나갈 차례가 되었고, 우아하게 걸음을 땐 녀석은 느긋하게 걸어 성문 앞으로 다가갔다.

“와…….”

“분위기 장난 아니네.”

성문 앞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펜리르의 모습에 감탄을 표현했다.

드디어 실제로 달려 보게 되는 펜리르의 등.

성문을 넘어 도개교에 발을 내딛는 순간.

“와 씨…….”

날듯이 뛰어오른 녀석은 엄청난 속도로 앞서간 사람들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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