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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 99개-134화 (134/203)

134화

[시스템이 체내의 활성 에너지를 감지했습니다.]

[시스템 분석 중…….]

[활성 에너지 마나 확인.]

[비활성 에너지 추가 발견.]

[시스템 분석 중…….]

오래간만에 마주한 긴 문자였다.

이 끝에 마주하게 될 것은 무엇일까.

나를 긴장시키고 있는 것은 비활성 에너지라는 구간이었다.

저것이야 말로 내가 확인하고자했던 궁극의 목표.

‘비활성 에너지라면.’

그레이시가 말했던 투기라는 기운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비슷한 그 무언가라도.

코어가 필요 없을 만큼 거대한 기운이라고 했으니까.

아버지와 비슷한 기운이라면 그 정도는 돼야 맞지 싶다.

나는 분석 중이라는 문자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꽤나 긴 시간이 지나간다 싶던 순간.

[비활성 에너지 투기 확인.]

‘그렇지!’

나는 빈주먹을 내지르며 새로운 문자에 환호했다.

이제야 오러 없는 설움을 벗어나게 될 터.

기대에 부푼 나는 두 눈을 빛내며 결론을 기다렸다.

[활성 에너지 마나와 비활성 에너지의 충돌 가능성 확인.]

[시스템 분석 중…….]

하지만 시스템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마나와 투기의 충돌.

순수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나의 기운은 더 짙고, 거칠고 복잡하다고 했다.

그게 문제가 되는 걸까.

혹시 모를 불안함을 감추며 초조하게 작은 문자를 바라보았다.

[시스템 분석 중…….]

여전히 문자 내용은 똑같았다.

이렇게 길게 이어진 적은 없었는데.

‘설마 둘 다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

최악 중에 최악을 떠올린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떨쳐 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이런 재수 없는 생각을 하다보면 될 일 도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릴없이 눈앞만 바라보고 있던 그때.

[활성 에너지 마나와 비활성 에너지 투기를 융합합니다.]

[시스템을 재설정합니다.]

[시스템 재설정 1%……]

시스템은 제3의 힘이라는 새로운 제안을 꺼내 들었다.

‘융합이라니.’

이러면 망한 건가?

아니지 차라리 잘된 것 아니야?

2∼3초도 안 될 짧은 시간에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하지만 기대가 더 큰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제껏 시스템이 보여 준 결과는 모두 다 나의 성장을 도왔던 까닭이었다.

결론은 지켜볼 수밖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건 그만큼 돌아올 보상도 크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게 믿자고.’

그런 생각이 아니라면 이 초조함을 견디기 쉽지 않을 테니까.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불안감을 치우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무슨 일이 있는 게냐?”

“아니요. 갑가지 생각할 게 좀 있어서…….”

“흐음, 그랬구나. 아무튼 고생했다. 저기 수련장 입구에 두 여인이 와서 기다리더구나.”

“누구… 아! 네, 알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나는 시선을 돌려 클레어가 말한 곳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서 있는 사람은 별과 겨울.

그리고 그 옆에는…….

‘테오?’

쭈뼛거리고 서 있는 작은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차라리 겨울과 나란히 서 있으면 어울렸을 텐데 말이다.

녀석은 본인보다 훨씬 큰 별을 올려다보며 머릴 긁적이고, 고개를 숙여 애먼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한마디로 쑥스러워하고 있다는 건데.

“내 스타일이 아니다.”

가까이 다가서자 매몰찬 별의 음성이 들려왔다.

“크흑…….”

좌절하는 테오의 짧은 탄식.

하나 녀석은 포기하지 않고 질문을 계속했다.

“그럼 어떤 스타일을…….”

“저 정도는 돼야 한다.”

그렇게 이어진 별의 대답에 두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 옆에 깜박거리고 있는 겨울까지 합해서 세 명.

“…….”

나와 눈을 마주한 테오는 고개를 떨구며 수련장을 걸어 나갔다.

그렇게 사라지는가 싶더니만.

“남자는 겉보다 속이 중요한 법입니다!”

뜬금없는 소릴 외치곤 후다닥 모습을 감췄다.

이 생뚱맞고 어색한 광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금까지 상황을 보아하건데.

“고백받은 거냐?”

꼼지락대다 사라진 저 녀석이 한 짓은 ‘나와 만나 주세요!’가 분명해 보였다.

“하찮은 놈이다.”

그에 별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왜 하필 별에게…….

남자도 강한 남자만 좋아하고 마법은 딱 질색하는 녀석인데.

별에게 있어 테오는 완벽한 역방향 그 자체였다.

도저히 마주칠 수 없는 평행선 같은 존재.

물론 별의 모습이 워낙 눈에 띄다 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애초부터 테오의 도전은 보상이 없는 무모한 짓이었다.

“별 언니를 쳐다보는 사람들이야 저 사람 말고도 많죠.”

“실없는 소리하지 마라.”

“왜요. 남자들이 언니 지나갈 때마다 얼마나 힐끔거리는데요. 안 꾸며서 그렇지, 사실은 엄청난 미인이라니까요?”

겨울은 별의 외모를 칭찬하며 자신을 비하하기 시작했다.

“하… 나도 언니 같은 몸매로 살고 싶다.”

“크흠… 전사에게 미모란 부질없는 것이다.”

“그런 게 어딨어요. 아무리 겉보다 속이 중요하다지만, 외모라는 거 무시할 게 못 되거든요. 방금 테오라는 남자가 고백을 한 것도, 언니가 거절한 이유도 결국은 외모였잖아요.”

한 사람은 부러워하고, 다른 한 사람은 무관심한 척하고.

하지만 외모 칭찬이 싫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언니와 이반 아저씨 모두 강한데 외모까지 좋잖아요. 뭔가 되게 특별한 사람처럼 보인다구요.”

결국 별은 큼큼거리며 대답을 아꼈다.

그런데…….

왜 별은 언니고 나는 아저씨인 거지?

“야, 나랑 별이랑 나이 차이 안 나는데 왜 나만 아저씨냐.”

“헐… 남자는 10살 이상 차이나면 아저씨죠.”

“왜?”

“그냥요. 오빠는 진짜 오빠 같은 사람에게만 부르는 거라구요. 아저씨는 위험해서 안 돼요.”

“내가 위험해?”

“그런 게 있어요. 아저씨는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야 내적 친밀감이 건전하게 유지된다고요.”

내적 친밀감과 아저씨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대화는 계속되었다.

오기 같은 거다.

“여자는?”

“언니구요.”

“왜?”

“생존 본능? 여자를 아줌마라고 부른다는 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겠다는 말이니까요.”

“그럼 나이 먹은 여자는? 진짜 아줌마는 어쩌고?”

나만 아저씨일 순 없다는 억울함이다.

“하… 당연히 언니, 누님이죠. 아니면 이름을 부르든가.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상대방을 배려하는 센스인 거고, 그걸로 이득 보는 사람은 결국 아저씨 자신일 테니까요.”

“흠…….”

“해 보면 알게 될 거예요. 제 말이 무슨 뜻인지.”

하지만 겨울은 어려운 숙제만 남긴 채 대화의 주제를 바꾸었다.

“수련은 어땠어요?”

“좋아, 머지않아 변화가 생길 것 같네.”

“다행이네요.”

또 말려든 것이다.

가끔 느끼지만 나이답지 않은 겨울의 화법은 사람을 홀리는 묘한 재주가 있었다.

듣다 보면 어느새 녀석의 흐름에 끌려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저게 진짜 능력일지도.’

조잘대는 겨울의 말을 들으며 어느새 우린 식당에 도착했다.

* * *

“황제에게 서신이 도착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텅 빈 식당에 빅터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남아 있는 사람은 부관을 비롯한 최측근 몇 명뿐.

“뭐라고 하던가요.”

“입궁이다.”

간단하게 전해진 편지의 내용에 자리한 사람들은 말없이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저런 황제의 반응은 어차피 예상했던 바. 이제 남은 과제는 우리의 정당성을 알리고 같은 자리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이제 곧 시작될 테니까.

한쪽은 재앙을 불러오고, 다른 한쪽에선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형세였다.

“어느 편을 먼저 손대실 생각이십니까?”

“사안의 무게만을 따진다면 로이드라는 놈을 잡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시간적인 측면을 놓고 봤을 땐 사라센의 강화 인간이 더욱 긴급한 사항이겠지.”

선후를 묻는 켄드릭의 말에 빅터는 사라센을 선택했다.

“이반이 구해 온 보고서로 추측해 보면 사라센이 보유한 강화 인간은 최하 50명…….”

하지만 이것은 바빌리안으로 한정했을 때의 가정일 뿐.

“사라센에 있는 흑마탑 네 군데에서 모두 강화 인간을 만들고 있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빅터는 굳은 얼굴로 최악을 가정했다.

그리고 중론은 이어진 두 번째 말에 더 큰 무게를 두었다.

심지어 아리안에서도 연구가 진행됐었으니까.

비록 지금은 사라졌다곤 하나, 타국의 동굴에서도 진행됐던 연구를 자국 내 흑마탑에서 방관할 이유가 없을 터였다.

따라서 사건의 근원지를 바빌리안 하나로 상정하는 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었다.

“사라센을 어찌하실지 결정하신 겁니까?”

슈탈렌에서 돌아온 직후, 빅터는 아직까지 확실한 노선을 결정하지 않았었다.

선공에 대한 운은 이미 오래전에 띄웠지만, 그것을 정책으로 삼는 과정은 아직까지 논의된 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먼저 친다.”

빅터는 선공을 최우선 전략으로 결정했다.

“놈들의 공격이 한 점에 집중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부순다.”

기본 전술은 각개격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빅터는 강화 인간의 분산을 목표로 했다.

“황제가 허락할까요? 접경 지역에서의 마찰을 극도로 꺼리고 있잖습니까. 스벤 공이 국지전을 감춘 이유도 그것 때문일 겁니다.”

문제는 황제였다.

결국 그의 허락이 떨어져야 군대가 넘을 수 있을 테니까.

나 혼자 국경을 넘던 것과는 사정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스벤을 먼저 만날 생각이다.”

“스벤 공을요?”

“그래, 어차피 놈이 움직이지 않으면 이 계획은 성공할 수 없다.”

빅터는 켄드릭의 걱정에 대해 새로운 대안을 내놓았다.

브라함 군부의 또 다른 한축.

스벤 자우어를 끌어들여 황제를 압박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황제로 하여금 로이드를 쫓게 만든다.”

동시에 두 가지 악재에 대항하기로 한 것이었다.

“흠, 황제의 머리가 복잡해지겠군요. 그러다 입을 꽉 다무는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숨지 못하도록 붙잡아 흔들어야지.”

켄드릭과 빅터의 말은 이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넘어갔다.

황제의 성격을 말하는 것 같은데, 내가 알 턱이 없잖은가.

“일단 카렌을 먼저 들리시겠다는 거죠?”

“그래.”

나는 빅터에게 첫 번째 일정을 확답받았다.

그곳이라면 꼭 가 봐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까.

‘루드겐 마이어.’

나의 어머니를 죽였을지 모를 놈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녀석과 나는 만나야 할 일이 따로 있기도 했고.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표정을 바꾼 나를 보며 빅터는 말없이 고갤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를 끝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영주님! 지금 도개교 너머에 이상한 놈들이 찾아와서 제자 분을 찾고 있습니다!”

초소 경비대로 보이는 병사가 허겁지겁 달려 들어왔다.

“이반을 찾아?”

그에 빅터는 의아한 얼굴로 병사에게 반문했다.

의문스러운 건 나 또한 마찬가지.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난데없는 방문자 소식에 나의 머리는 바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날 찾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신분을 확인하고 들여보내면 될 일 아니더냐?”

빅터는 병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하나 병사는 이마를 긁적이며 우물쭈물했다.

답답해하던 빅터가 재차 입을 열려던 찰나.

“그게… 엄청나게 큰 늑대를 타고 왔는데… 너무 위험해 보여서 문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병사는 쭈뼛거리며 바깥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늑대라고 했나요?”

불현 듯 떠오른 생각에 병사에게 되물었다.

“네.”

대답을 들은 나는 고개를 돌려 별을 바라보았다.

별의 생각 또한 나와 같았던 걸까.

“혹시 멍청하게 생긴 녀석이 함께 있지 않던가?”

“생긴 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름을 물어보니 자꾸 헛소리만 해 대서…….”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

저건 분명히 그 녀석들이니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나와 별은 성문을 향해 달려 나갔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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