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그대가 보기엔 이반이 질 것 같다는 것인가.”
“변수가 너무 많으니까요.”
“어떤 변수를 말하는 건가.”
“모든 것이 다? 마법사와 배틀 메이지는 아예 다른 존재입니다. 뛰어난 육체만으로 감당하기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죠.”
똑 부러지는 베르의 대답에 듣고 있던 별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녀 역시 육체의 힘을 숭상하는 반투족인 바.
마나의 영역에 도전하는 이반의 모습은 이제 단순한 호감을 넘어 목표가 된 지 오래였다.
반투족이 꿈꾸는 이상에 가장 가까운 사람.
그저 강하고 훌륭한 짝짓기 대상이라 생각했건만, 지켜본 그의 행보는 모든 것이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단 하루도 그냥 보내는 날이 없다.
어떤 식으로든 발전하고,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그의 앞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믿고 따를 수밖에.
전사를 꿈꾸는 별에게 이반은 이정표이자 선망인 것이었다.
한데 그런 이반이 질 거라고?
“근접전에서 후배님은 거의 무적에 가깝죠.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겁니다.”
“그런데 왜 변수를 운운하는 가. 그만큼 강하다면 의미 없는 것 아닌가.”
설명을 듣던 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그에 베르는 다시 질문을 이었으니.
“마법사 입장에서 후배님 같은 사람을 만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려고 할까요?”
“거리 확보를 하겠지.”
“맞습니다. 거리 확보는 필수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시작과 동시에 후배님의 이동을 제한하거나 방해하면서 뒤로 물러날 겁니다.”
별의 대답에 맞춰 베르는 상황을 연결시켜 갔다.
“아니면 빠지는 척하며 달려드는 후배님을 그대로 공격할 수 있겠지요.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배틀 메이지와의 싸움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마법은 절대로 느리지 않으니까요.”
“흐음…….”
“마법과 무술의 결정적인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이어지는 베르의 물음에 별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막연했기 때문이다.
굳이 결정적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마법과 무술은 모든 것이 다른 까닭이었다.
“마법은 시작 지점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나 베르는 추상적인 말로 둘 사이 차이를 지적했다.
당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별은 미간을 찌푸리며 베르의 말을 기다렸다.
“모든 무예의 움직임은 사람의 몸에서 시작됩니다. 어깨, 팔꿈치, 손,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무기에 전달되죠.”
“그대의 말이 옳다.”
“네, 그래서 다른 겁니다. 마법은 원하는 곳이 시작 지점이 되거든요.”
그제야 별은 베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술자의 손끝이 아니라도 발현되는 마법의 특징.
“이해하셨지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마법이 무서운 겁니다. 배틀 메이지는 그것을 굉장히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고요”
서 있는 모든 공간이 공격 범위가 되니 예측해야 할 경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하여 빅터가 계속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예측과 빠른 행동이 전부라고.
“스승님이 8성이 되시고 무패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초기엔 몇 번 패하셨습니다.”
“그게 배틀 메이지라는 건가.”
“네, 고모님이시죠. 그것도 더블 캐스팅이 가능한 완벽한 배틀 메이지.”
연병장으로 나서는 이반을 보며 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베르의 말이 점차 사실로 다가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테오라는 사람도 더블 캐스팅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승률은…….”
“더욱 낮아지겠지요. 더군다나 후배님은 마법사에게 결정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차분해진 베르의 음성은 어느덧 무겁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 * *
밤늦도록 이어진 수련이 끝난 후 빅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예상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라.
상대가 뭔가 결정하기 전에 먼저 움직이라는 건데.
‘뭘 할지 알아야 대응을 하지.’
내가 예측하지 못하면 상대도 반응할 수 없게 만들라는 거였다.
그러니 끊임없이 움직일 수밖에.
빈틈을 찾아 공격하는 것도 이것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얘기였다.
말로 떠들어봐야 답도 없고…….
결론은 해 봐야 아는 단순한 진리만을 남긴 채 대결의 아침은 밝아 왔다.
하여 지금 서 있는 곳은 대결이 진행되는 연병장.
“마법 학회의 전통에 따라 대결을 시작하기 전 간단한 소개를 진행하겠습니다. 저는 대결 당사자의 지인인 덕스 알칸토라고 합니다.”
짝짝짝―
성의 없는 박수소리와 함께 예정에 없던 인사말이 시작됐다.
고작 대련일 뿐인데 뭘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금일 대결에 나서는 테오 바톨로는 리바인의 영주 슈바인 바톨로 자작의 장남이자, 국립 마법학교 수석 졸업에 빛나는 재원이며, 대 브라함 제국의 국경을 지키는 첨병으로서 클레어 크로제 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차세대 대마법사라 소개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게 훌륭한 친우의 모습을 소개 시켜드릴 수 있음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테오를 상대할 불운한 사네에게도 신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짝짝짝!
역시나 영혼 없는 박수소리와 함께 남자의 긴 소개는 끝이 났다.
그러나 절차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으니.
“훗, 겨우 저런 걸 소개라고.”
가소로운 놈의 말에 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겨울을 찾았다.
제대로 된 소개가 무엇인지 녀석이 곧 보여 줄 테니까.
하지만 겨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필이면 이 순간에.
테오라는 놈보다 더 멋진 소개를 전해야 할 녀석이!
‘얘는 대체 어디 간 거야?’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겨울을 찾아 연병장 곳곳을 살폈다.
역시나 없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크흠…….”
조급해진 나는 별을 바라보며 턱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녀석 역시 지긋지긋하게 내 소개를 들어왔던 까닭이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던 별의 모습을 나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간단하게라도 말할 수 있을 터.
자신을 가리키며 갸웃거리는 별을 향해, 나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나서라고 재촉했다.
“쯧…….”
마지못해 앞으로 나서는 별.
소개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녀석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웅장한 놈이다.”
거대하다고.
너무 핵심만 골라서 말하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크흠.”
나는 헛기침을 뱉으며 테오라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작고 왜소한 체격에 곱상한 얼굴. 딱 봐도 귀하게 자란 저 녀석은 누가 봐도 전형적인 귀족의 막내아들이었다.
한데 저런 녀석에게 내가 질지도 모른다는 거다.
마른 수수깡 같은 놈에게 말이다.
어쨌거나 이제 곧 시작될 터.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며 가상의 대련을 시작했다.
놈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시작과 동시에 녀석이 취해 올 행동을 예측하며 내가 해야 할 최선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그렇게 마지막 점검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두 사람 앞으로!”
들려오는 심판관의 외침에 나는 생각을 멈추고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녀석과의 간격은 열 걸음 정도.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며 테오의 시선을 응시했다.
한데 이놈은 어딜 그리 쳐다보는 걸까.
힐끔거리는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예상치 못한 인물이 심드렁하게 서 있었다.
커다란 키에 선명한 이목구비.
말도 안 되는 굴곡을 가진 저 여인의 모습은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분명했다.
‘별?’
다시 고개를 돌린 나는 테오를 바라보며 의뭉스런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수줍어하다니.
왜 하필 별인지 모르겠으나, 녀석은 어울리지 않는 상대를 바라보며 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심지어 대결을 앞둔 상황인데 말이다.
‘나는 안중에도 없다 이건가.’
여러모로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건 그대로 되갚아 줘야 직성이 풀릴 터.
시작 신호만을 기다리며 여유 만만한 놈의 얼굴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마침내 올라가는 심판의 손.
“…….”
마른침을 삼키던 나는 내려가는 손을 보며 화살처럼 튀어 나갔다.
하지만 그대로 달릴 멍청이는 아니니까.
파파박!
날아올 놈의 마법을 피해 대각선으로 몸을 날렸다.
순간 발뒤꿈치에 떨어지는 녹색 마법.
빅터의 예상대로 녀석은 나의 발을 묶기 위해 바인딩이라는 마법을 시전했다.
‘헛발질 한 번은 크지.’
맨땅에 직격하는 마법을 보며 나는 진행 방향을 틀어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사이 거리는 대폭 줄어 고작 세 걸음 정도, 속도를 올린 나는 해머를 당겨 휘두를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왜.
‘웃어?’
녀석의 입가엔 서늘한 미소가 떠오르는 걸까.
놈을 향한 의심은 확인할 틈도 없이 실체화되어 나타났다.
퍼엉―
갑작스레 화염이 폭발하며 검은 연기가 시선을 가로막았다.
연막이라고 해야 하나.
반응할 틈도 없이 퍼진 검붉은 화염은 도저히 손쓸 방법이 없었다.
날아온 것이 아닌 탓이다.
그냥 눈앞에서 터져 버렸으니 사전 동작을 읽어 내거나 예측할 상황이 아니었다.
대련이 아닌 실전이었다면 필경 큰 위험에 빠졌을 터.
‘젠장.’
상대의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이라 했건만, 놈은 나보다 먼 곳을 내다보며 촘촘하게 마법을 운용했다.
촤르르륵!
화염을 빠져나가는 순간 얼음 화살이 날아와 꽂혔고.
파앙!
되돌아 나오자 이번엔 돌풍에 휘말렸다.
완벽하게 컨트롤당하고 있는 상황.
퍼엉!
퍼엉!
퍼엉!
놈의 마법을 피하려 할수록 점점 더 녀석의 손아귀에 깊이 감싸이고 있었다.
더 깊은 함정으로 몰리는 기분.
제자가 이 정도라면 도대체 클레어의 수준은 얼마나 높다는 말일까.
나의 패배를 예상했던 베르의 말은 실없는 걱정이 아니었다.
테오는 나의 앞을 번번이 가로막았고, 자신의 예측이 틀리는 순간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두 가지 마법이 동시에 시전된다고 해야 하나.
어떤 것이 나오는 즉시, 다른 무언가가 연이어 발현됐다.
상황이 이쯤 되니 녀석을 따라잡을 방법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지고 노네…….’
녀석은 나를 두고 적당히 놀고 있는 중이었다.
한데 뾰족한 수가 없었다.
놈이 예상하지 못할 방법을 떠올려야 이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을 텐데, 내가 가진 장점은 녀석의 마법에 전부 막혀 있었다.
‘너무 생각이 많은 건가.’
어쩌면 방향 자체를 완전히 잘못 잡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경험과 기술도 없으면서 쓸데없이 머리를 굴리는 것 말이다.
화르륵― 퍼엉!
고민이 많아지는 와중에도 뚫는 자와 가로막는 자의 추격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마치 듀란과 대결했던 그날 같은 기분이랄까.
다양한 경험과 기술을 가지고 있던 듀란에게 나는 어이가 없을 만큼 허무하게 농락 당했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를 뛰어넘었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힘과 속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려서.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녀석이 어떻게 예상하고 대처하든 그 이상의 능력으로 뚫어 버리면 그만일 터였다.
화르륵!
측면으로 달리던 나는 방향을 꺾어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차피 큰 효과 없는 화염이 아니던가.
이후 상황을 고민할 것 없이 최대로 속력을 높여 놈을 향해 들이닥쳤다.
마법이 시전된다면 터지기 전에.
놈이 물러난다면 멈추기 전에.
더 빠르게 달려 따라붙는 것만이 놈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나는 녀석에게 다가갔고.
“딱 걸렸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해머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에어로 봄.”
테오의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눈앞의 공기가 폭발했다.
그에 헝겊 인형처럼 허공을 나르는 것도 잠시.
“아이스 월.”
바닥에 널브러진 나는 새하얀 얼음벽 사이로 순식간에 갇히고 말았다.
동시에 투명한 물마저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으니.
“염병…….”
나는 자리를 벗어나지도 못한 채 얼음 조각처럼 변해 갔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