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번쩍―
콰르릉!
쏴아아아아아아아―
무한 반복되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사암 벽돌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시간은 그사이 빠르게 지나 저녁에 접어들었고, 우리는 부서진 가구를 쪼개 불을 피우곤 하릴없이 불구경에 빠져 있었다.
“진짜 불멍이네…….”
“불멍?”
“네. 이렇게 불 피우고 멍하니 구경하는 걸 불멍이라고 해요.”
이렇게 겨울에게 새로운 말도 배우고 말이다.
지금이야 느긋하게 이러고 있지만, 사실 운이 좋았다.
이 집을 발견한 순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으니까.
재수가 없었다면 지붕 없는 건물 어딘가에서 청승맞게 폭우를 맞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비에 맞아 쓰러졌을지도.
“엄청나게 때려 붓는구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에 겨울을 바라보았다.
“멍하니 불을 보면 불멍이라고 했잖아.”
“네.”
“그럼 그렇게 비를 바라보면 비멍이야?”
“네, 맞아요.”
“아… 그렇구나.”
이세계 언어는 생각보다 쉬웠다.
그에 나는 멍하게 바닥을 보는 별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얘는? 이렇게 넋 놓고 있는 건 뭐라고 하는데?”
“그럴 땐 멍 때린다고 해요.”
“멍을 때려?”
“네, 퍽퍽!”
그러고 보니 별은 때리라면 때려잡을 것 같긴 하다.
멍이 어떤 놈이냐!
이러면서…….
좌우지간 호전적인 건 인정할 수밖에.
구멍 뚫린 검은 하늘을 보며 겨울과의 잡담은 계속됐다.
“아저씨 이름은 누가 지어준 거예요?”
“어머니가 지어 주신 이름인데, 나름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더라고.”
“재밌겠다. 더 들려주세요.”
불가에 다가앉은 겨울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다음 얘기를 기다렸다.
“어머니가 어렸을 때 마을에 산적들이 들어왔나 봐. 그때 누군가 나타나서 구해 줬는데, 그 남자 이름이 이반이었대.”
“와… 뭔가 드라마틱한 사연이네요.”
“드라마틱?”
“아, 제가 살던 세상에서 보던 방송… 아, 이렇게 설명하면…….”
뜻 모를 말을 이어 가던 겨울은 얼굴을 찡그리며 동그란 눈을 굴렸다.
비슷한 표현을 찾는 것 같은데.
“연극 아시죠? 그것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겨울이 떠올린 건 연극이라는 단어였다.
“현실에서 쉽게 마주하기 힘든 장면을 목격했을 때 ‘드라마틱하다’라는 표현을 하거든요.”
“황당한 일 같은 거네?”
“그렇기도 하지만, 감동적인 사연이 뒤에 깔려 있을 때 사용해요. 아저씨 사연처럼.”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목숨을 빚진 아이가 자라서 엄마가 되고, 자신의 아이 이름을 은인의 이름으로 지은 거니까.
“그럼 너의 이름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데? 그냥 겨울에 태어나서 겨울인 거야?”
“맞아요. 문제는 겨울에 태어난 강아지 이름이 죄다 겨울이란 게 함정이죠.”
독특한 풍습이다.
개한테 일일이 이름을 지어 주다니.
이 땅엔 이름 없는 인간도 존재하는데 말이다.
“아저씨는 꿈이 뭐였어요?”
“꿈?”
“이루고 싶은 거요. 예를 들자면, 십 년만 기다려라! 건물주가 되어 주마! 이런 거요.”
“글쎄…….”
고고한 아케른의 별 빅터 크로제의 제자이자, 아리안의 자작이며, 자유도시 리베의 용병왕이 된 지금 나의 꿈이라면.
“…정점?”
빅터를 넘어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 가는 것이었다.
대륙 최강의 아버지와 아들.
이 또한 드라마틱한 사연일 테니까.
“아저씨는 그렇게 되실 것 같아요.”
“그래?”
“지금도 강하고, 게다가 아저씨 곁엔 제가 있으니까요.”
녀석은 턱 끝을 치켜들며 나의 말에 대답했다.
빨리 인정하라는 표정이랄까.
저런 모습이 밉지 않은 건 유달리 앳된 외모도 크게 한몫하고 있었다.
저 얼굴에 17살이라니.
이렇게 보면 아직 어린 꼬마 같은데 말이다.
“기대되는 걸.”
우쭐하는 겨울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엄연한 진심.
녀석의 존재감은 나의 머릿속 깊숙이 이미 각인되어 있었다.
“저는 요리 잘하는 웹툰 작가가 꿈이었어요. 잘 먹고 잘사는 거죠.”
역시 모르는 말이 나왔지만,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저런 즐거운 표정으로 이상한 말을 하진 않을 테니까.
“여기로 소환되고 나서 제일 신기했던 게 뭔지 아세요?”
겨울이의 수다는 끝없이 이어졌다.
“세상에… 우리가 말이 통한다는 거였어요. 심지어 소환된 지구인끼리도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거든요. 그런데 대화가 되더라구요.”
“아, 그래?”
사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식조차 못하고 있었다.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겨울과 대화에서 이상하다는 느낌은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영어 공부 괜히 했어!”
그것이 뭔지 모르겠지만, 억울한 감정은 절절히 느껴졌다.
겨울이는 작대기를 휘두르며, 땅바닥에 화풀이를 해 댔다.
“너 말고도 소환된 사람이 더 있었다고 했잖아.”
“네, 더 있었죠.”
“소환된 다른 사람들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
대화의 주제는 보다 넓은 범위로 이어졌다.
강화 인간이야 그저 소모품일 뿐.
“아… 워낙 다양해서.”
빅터가 찾으러 간 그들이야 말로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열쇠였다.
나와 같은 시스템 사용자들.
그들의 능력과 존재 여부는 대륙에 커다란 불균형을 초래할지도 몰랐다.
아니,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더욱 크게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빅터가 떠난 것이니까.
“특이한 능력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은 ‘리’라는 남자였어요.”
겨울은 또 다른 소환자이자 능력자에 대해 차분히 설명을 이어 갔다.
그 첫 번째로 꺼낸 사람의 이야기는.
“죽으면 일주일 뒤로 회귀하는 능력자였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저와 함께 도망치다 헤어지게 됐거든요.”
“혹시 검은 머리에 실눈?”
이미 내가 아는 남자의 얘기였다.
“어? 아저씨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요?”
알고 있을 수밖에.
나에게 94번의 기회가 남은 이유는 그 남자의 능력이 나에게 넘어온 탓이었다.
나는 덤덤히 설명을 이어 갔고.
“아… 그게 그렇게…….”
이어진 나의 얘기에 겨울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잘 아는 사람이었어?”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함께 도망치던 사람이 죽었다니까 맘이 아프네요.”
나는 말없이 앉아 녀석의 말을 기다렸다.
어쭙잖은 위로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을 테니까.
잠시 침묵을 지키던 겨울은 감정을 추슬러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저씨도 조심하셔야겠어요.”
“어떤 걸?”
“리의 능력을 이어받았으니까요. 로이드가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그런 겨울의 꺼낸 말은 다름 아닌 경고였다.
“아마 추적해 올 게 분명해요. 저에게 했던 것처럼.”
그제야 나는 추격자가 있었단 사실을 기억해 냈다.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카이 형제.
생각해 보니 당연한 문제였다.
한 번 보냈는데 두 번 세 번 보내는 건 일도 아닐 터.
“추격자라…….”
쏟아지는 비를 보며 나는 카이 형제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 * *
슈탈렌 인근 농장.
근거지에 도착한 빅터는 대기하고 있던 정보원과 함께 지도를 살피며 상황을 보고받았다.
“이곳까지 포함해 총 네 곳이 황제의 첩자가 활동하는 곳입니다.”
“수고했다. 내부 진입조가 출발하면 나머지 인원들은 놈들을 자극해 흑마탑으로 시선을 유도해라.”
“네, 알겠습니다.”
지시를 마친 빅터는 부관 켄드릭과 함께 농장을 나왔다.
이제 암묵적인 맹약이 깨지게 될 터.
이 밤을 기점으로 빅터는 마탑과 황제에게 그들의 치부를 드러낼 것이다.
두 인간이 감춰 둔 곳에서 무엇이 자라나고 있었는지.
벼려진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발 디딜 수 없던 금단의 영역은 빅터의 손에 의해 철저히 파헤쳐질 터였다.
“사람들이 그곳에 있을까요?”
“가 봐야 알겠지.”
의문을 품는 켄드릭의 말에 빅터는 덤덤히 대답했다.
상관없는 까닭이었다.
소환자들이 따로 관리되는 건 이미 확인됐으니까.
지금 빅터의 목표는 로이드의 정체와 정보를 토해 낼 놈들을 확보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사실을 황제에게 고해 바칠 끄나풀까지.
농장을 나온 빅터는 흑마탑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 * *
내부 진입조와 외부 대기조는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유인을 맡은 대기조는 요란하게 말을 몰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수색을 맡은 진입조는 거세게 말을 달려 흑마탑 입구에 도착했다.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신중했을 뿐.
콰앙―!
빅터는 거대한 문짝을 박살 내며 흑마탑에 들어섰다.
“남김없이 잡아들여라.”
서늘한 빅터의 말에 진입조는 그림자처럼 흩어졌다.
차출된 인원은 속도전에 특화된 암습 전문가들이었으니, 선두에 선 에스카를 따라 흑마탑 곳곳으로 사라졌다.
복도를 따라 유유히 걷는 사람은 빅터와 켄드릭.
“웬 놈들이냐!”
“커헉!
간간히 튀어나오는 마법사들을 제압하며 사나운 기세로 걸음을 내딛었다.
절대적 우위에 있는 상성.
준비되지 않은 마법사의 근거리는 무방비상태와 다를 바 없었다.
“다크 홀… 크으윽! 비겁하게 기습을!”
캐스팅이라는 절차가 그들의 숨통을 옭죄는 탓이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잠깐의 틈이란 곧 죽음을 의미하는 바.
“탑주의 방은 어디냐.”
후위가 아닌 곳에 위치한 마법사의 존재는 포식자 앞에 놓인 가련한 짐승에 불과했다.
“최, 최상층이오.”
목표의 위치를 확인한 빅터는 묵묵히 상층으로 향했다.
배척된 탓일까.
아니면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
유사 이래 침입이 없던 이곳은 스스로를 보호할 기본조차 갖추지 않았다.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비록 흑마법이라 한들, 금단의 영역이란 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과 무방비한 장소.
작심하고 들어온 빅터의 수족들은 잠든 닭을 솎아 내듯 손쉽게 내부를 정리해 나갔다.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상층으로 향하던 켄드릭은 제압되는 마법사들을 보며 허탈한 듯 말했다.
거대한 성벽을 부수던 마법사는 어디로 간 걸까.
밀려드는 대군을 쓸어내던, 번쩍이는 순간 수십 수백이 사라지던 공포의 마법사는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물며 이곳은 흑마법의 성지.
보조 마법이 주류인 이들에게 이러한 난전은 눈앞에 현현한 지옥과 다름없었다.
“크으윽…….”
무릎을 꿇는 마법사를 보며 빅터는 눈썹을 끌어올렸다.
그에 금발의 남자 또한 굵은 핏대를 세웠으니.
“이것이 뭐하는 짓이란 말이오! 여기가 어딘지 몰라서 이러는 것이오?!”
흐트러진 금발의 남자는 고함을 지르며 매섭게 눈을 흘겼다.
소리치는 남자를 보며 빅터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가 들어와 있는 곳은 흑마탑의 최상층.
고급스런 가구가 놓인 이 방은 흑마탑주가 있어야 할 장소였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이 남자의 정체는 소녀가 말했던 로이드가 분명할 터.
“탑주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그런 남자에게 빅터는 로이드의 행방을 물어보았다.
“내가 탑주인데 어딜 안내하라는 거요! 허튼 소리하지 말고 썩 물러가시오!”
완강한 금발 남자의 태도에 빅터는 자세를 낮추었다.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추고는.
“로이드는 어디 있느냐.”
냉기 가득한 눈으로 남자의 시선을 마주했다.
순간 흔들리는 푸른 눈동자.
꿀꺽…….
마른 침을 삼킨 남자는 미간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로이드요.”
빅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내밀어 남자의 손가락을 움켜잡았을 뿐.
“다시 묻겠다. 로이드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내가 로이드… 으아아아악!”
원하는 답이 아님을 확인한 빅터는 움켜쥔 손을 가차 없이 비틀었다.
계속되는 빅터의 질문.
“로이드는 어디 있느냐.”
“크윽, 못 들었는가! 내가 로이… 크아아아아악!”
하나 이번에도 남자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손가락이 다 부러지면 그 다음은 발가락, 그리고 나면 손목과 발목을 부러뜨릴 게다.”
“끄으으으으으으…….”
손가락이 꺾인 남자는 고통에 떨며 침음을 흘렸다.
하나 꺾인 것이 어디 손가락뿐이겠나.
“다시 묻겠다. 로이드는 어디 있느냐.”
질문과 함께 움직인 빅터의 손에 금발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얼굴이 덜덜거리기 시작했고.
“로이드 님은…….”
퍼억!
입을 열던 남자의 머리는 수박이 터지듯 요란하게 사라져 버렸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