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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 99개-121화 (121/203)

121화

유적을 떠돌던 나와 겨울이는 커다란 바위 앞에 다가섰다.

크기는 커다란 짐마차 정도.

생각보다 큰 바위가 없어 찾는다고 애먹었다.

“준비되셨어요?”

“어, 난 준비됐어.”

다른 구경거리 팽개치고 바위를 찾은 이유는 이거였다.

녀석의 능력.

인첸터가 어떤 클래스인지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후…….”

호흡을 다듬은 나는 해머를 들어 목표를 조준했다.

“전력으로 치셔야 해요.”

조건은 단순했다.

죽도록 세게 치라는 겨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거대한 바위는 반으로 갈라졌다.

예상했던 결과다.

산산조각 나면 보는 맛이 더 좋았겠지만.

“스트렝스.”

겨울은 짧은 주문을 외워 나에게 마법을 걸었다.

스며들 듯 사라지는 붉은빛.

“어?”

직후 나의 눈앞엔 적용된 효과가 떠올랐다.

[스트렝스 적용 중.]

대미지 20% 증가.

지속 시간 60분.

대미지 증가였다.

엄청난 훈련으로 숙련도를 올려야 얻을 수 있는 효과.

“이게 네 마법이야?”

“기초 마법이죠.”

겨울은 입꼬리를 올리며 건방진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기분 나쁘다는 건 아니다.

저 효과가 진짜라면 결과는 극적일 테니까.

카리프와의 싸움에서 이미 체험한 바 있으니, 대미지 20%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계속됐다면.’

그 싸움은 내가 이겼을 것이다.

비등하던 싸움은 한순간 뒤집혔고, 카리프는 속수무책으로 나의 공격에 휘둘렸다.

한데 그것을 가능케 해 준다.

이 녀석의 마법으로.

“다시 쳐 보세요.”

이어진 겨울의 말에 그제야 나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러곤 반쪽 난 바위를 향해 잿빛 해머를 휘둘렀다.

그리고 나는.

“하… 이게 진짜로 되네.”

거미줄처럼 부서진 바위를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가 이러는 이유는 효과 때문이 아니다.

이미 겪어 봤으니 그 위력이 새삼스러울 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놀라고 있는 건.

‘이걸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기초 마법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직 멀었어요.”

“또 있어?”

“기초 마법이니까요.”

으쓱거리며 날아온 마법은 녹색이었다.

적용된 마법의 이름은 헤이스트.

[헤이스트 적용 중.]

공격 및 이동속도 20% 증가.

지속 시간 60분.

효과는 무려 20%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사기 같은 마법이었다.

“이게 기초라고……?”

“고작 두 번째일 뿐이죠.”

고작이라면서 콧대는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올랐다.

하나 이 또한 인정한다.

적보다 빠르다는 것은 절대적인 승리를 뜻하기 때문이다.

“어째, 좀 놀라운 것 같나요?”

놀랍다.

그것도 아주 격하게.

아무리 세다 한들 맞추지 못하면 의미 없고, 맞지 않는다면 패배할 일 또한 없다.

간단한 논리지만 따라올 결과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

겨울이 보여 준 마법들은 격렬한 전투의 향방을 뒤바꿀 비장의 한 수였다.

“기초 마법 세 번째.”

잔뜩 신난 겨울은 또다시 주문을 외워 마법을 시전했다.

[프로텍션 적용 중.]

모든 피격 대미지 20% 감소.

지속 시간 60분.

푸른색 마법의 효과는 충격 내성과 비슷한 대미지 감소였다.

그러나 전혀 다르다.

‘모든이라고?’

저 말대로라면 처맞든, 베이든, 마법에 직격당하든.

쏟아지는 모든 공격에 대미지 감소 효과가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애매모호한 내성이 아닌 수치화된 정확한 감소.

나에게 둔기술 삼신기가 있다면, 겨울에겐 사기 마법 삼종 세트가 있었다.

“가자.”

나는 녀석을 등지고 앉았다.

“뭐예요. 가자면서 왜.”

“업고 다닌다고 했잖아.”

“윽, 싫어요. 오글거리게 어부바라니.”

하지만 정말 업어 주고 싶었다.

겨울이가 보여 준 능력이면 나의 단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한 단계 차이를 아는 이상 녀석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지 설명해 봐야 입만 아플 뿐.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마법을 걸 수 있어?”

“여섯 명까진 가능해요.”

동료들이 함께 강해진다는 게 겨울의 진정한 능력이었다.

“우리 친하게 지내자.”

“하는 거 봐서요.”

“좋아, 업어 주지.”

“싫어요오오어아아악!”

겨울을 들쳐 업은 나는 날듯이 질주하며 유적지를 가로질렀다.

* * *

밤사이 사라센 국경을 넘은 사람은 이반 일행뿐만이 아니었다.

레이와 에비오.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의 발걸음도 국경을 넘어 수드라로 향했다.

“근데 정말 뭐가 보이긴 해?”

“당연하지. 이 길로 셋이서 지나갔다고.”

의심스러워하는 에비오에게 레이는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그냥 닥치고 따라오면 될 것을.

저 쓰잘머리 없는 인간은 궁금한 게 너무도 많았다.

“그럼 그 희미한 형체가 얼마나 남아 있는데?”

“일주일 정도. 그런데 너 계속 그렇게 물어보다간 혀가 뽑힐지도 모른다?”

“…….”

“농담이야. 새끼 쫄기는.”

레이는 샐쭉해진 에비오를 달래며 반투명한 형상을 쫓아 느긋하게 걸었다.

놈이 어디로 사라질 것도 아니니까.

어차피 거리가 짧아서 적당히 걸어도 결국은 마주치게 된다.

“저기엔 왜 기어들어 갔데.”

이렇게 말이다.

레이는 길 끝에 지어진 건물을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일단 아무데나 들어가야 하지 않겠어? 이러고 있다간 들킨다고.”

주위를 둘러보던 레이는 가장 가까운 건물로 향했다.

하필 골라도 왜 이런 델 고른 건지.

레이와 에비오가 들어간 건물은 지붕조차 없는 완벽한 폐허였다.

“아, 몰라. 그냥 있자.”

레이는 툴툴거리며 벽에 기대앉았다.

그건 에비오의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이 걸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끄으……”

에비오는 앓는 소릴 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접히는 무릎이 삐거덕거리며 차례로 분리되는 기분이었다.

“저놈들은 뭐 하러 여기까지 왔을까.”

널브러진 에비오는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브라함을 놔두고 이곳까지 왔을 땐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

한데 어디까지 쫓아야 할지 에비오로서는 결정하기 힘들었다.

“저놈들과 싸울 거냐?”

결국 마주앉은 레이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녀석이 있어야 추적도 가능하니까.

“아니, 몸이 이상해서 지금은 안 돼. 아직 적응도 안 됐어.”

“그럼 어쩔 건데?”

“어쩌긴 뭘 어째. 기다리면서 준비해야지. 저 새끼 위험한 놈이라 생각 없이 덤볐다간 큰일 난다고. 훅 간다니까?”

그렇게 작전 아닌 작전을 떠들어 댄 레이는 아예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자려고?”

“할 거 없잖아. 한숨 쉬고 나서 슬슬 움직여 보자고.”

“그러면 나 좀 도와주고 자.”

“뭘 도와줘. 자꾸 귀찮게 하면 진짜 죽인다.”

미간을 찌푸리는 레이의 말에 에비오는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저 녀석보다 더 무서운 게 로이드니까.

감옥 같은 그곳으로 끌려갈 바엔 차라리 죽는 게…….

‘그건 아니지.’

잡생각을 떨친 에비오는 레이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로이드 님께 보낼 보고서 만들어야 해. 그러니까 너 귀신으로 달라붙었을 때 보고 들은 것 좀 알려 줘.”

“하… 귀찮게 진짜.”

드러누운 로이드는 다시 일어나 벽에 등을 기댔다.

잠시 생각을 더듬더니.

“음, 일단 저 떡대 큰 새끼는 이반이고, 백발 노인네가 빅터라는 놈이야. 내 동생을 죽인 인간이지. 그리고 별이라는 계집이랑 스노우라는 꼬마가 있었던 것 같은데.”

“스노우?”

“어, 작은 여자애였지. 그리고 또 누구더라… 벨? 베… 아, 모르겠다. 다른 계집이랑 남자 하나가 더 있었는데… 에이 씨, 몰라! 그 상황에 다른 놈들이 눈에 들어왔겠냐?”

하기야 사념일 당시 레이의 생각은 온통 이반이라는 녀석에게만 가 있었다.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외우고 있다는 게 기적일지도.

“난 이제 잔다. 한 번만 더 깨우면 진짜 입을 찢어 버릴 테니까 어떻게 될지 궁금하면 깨워.”

눈을 감을 레이를 보며 에비오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순간 들려오는 레이의 낮은 음성.

“그 손가락도 잘라 줄까?”

“…….”

에비오는 조용히 돌아앉아 로이드에게 보낼 보고서를 작성했다.

* * *

“별일 없었지?”

“아무 일도 없었다.”

이때만 해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줄 알았다.

미리 당부해 놨어야 했는데.

들떠 있던 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입단속.

“스트랭스!”

“헤이스트!”

“프로텍션!”

고삐 풀린 사기 마법 삼종 세트는 졸음에 겨운 별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어디 그걸로 끝났을까.

“크윽… 이 넘치는 힘!”

녀석은 거력의 비약을 마셨을 때보다 더욱 흥분해 날뛰기 시작했다.

그대로 대검을 들어 올리더니.

“대련이다, 이반!”

다짜고짜 휘두르며 미친 사람처럼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데…….

그 모습이 놀라워 나도 모르게 어울려 버리고 말았다.

이제야 뭔가 시작된 것 같은 기분.

챙! 챙! 챙! 챙!

5성 중반을 지나던 별의 수준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6성을 내다볼 지경이었다.

‘마법 한 번인데.’

달라진 별의 공세는 꽤나 신경을 써야 할 만큼 매섭고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방심했다간 크게 얻어맞을 터.

진지하게 대련에 임하자 시간은 훌쩍 지나 오후로 넘어가고 있었다.

“족장은 네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암만 봐도 반투족 최강은 별의 차지일 것 같다.

원래 감각이 좋은 녀석의 검술은 겨울의 마법이 더해지자 완전하게 개화해 버렸다.

나를 바라보던 시선들이 이랬을까.

놀랄 만큼 빠르고 강해진 별의 모습은 오러가 없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같은 오러 미사용자인데도 이런 느낌인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겠나.

검과 해머를 집어던진 나와 별은 체술로 범위를 확장시켰다.

본래 체술에 능했던 별은 더욱 살벌해졌다.

뛰어난 격투 감각에 마법이 더해지니 6성급으로 착각될 만큼 강렬한 여전사로 거듭나 있었다.

이참에 대검을 버리고 격투가로 나서도 좋을 정도.

“저기 누가 오고 있어요!”

다급하게 외치는 겨울의 목소리에 우리의 대련은 그제야 끝이 났다.

“후우…….”

호흡을 가라앉히는 별의 얼굴에 생기가 가득했다.

싸울수록 혈색이 밝아지다니.

“고맙다, 이반.”

“갑자기?”

“그날 너를 따라 나온 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인 것 같다.”

여전히 상기된 별의 얼굴은 이제껏 보았던 녀석의 얼굴이 아니었다.

“뭐야, 웃을 줄 아네?”

보는 내가 다 시원해지는 느낌.

목각 인형 같았던 별의 얼굴엔 청량한 미소가 가득했다.

“언니 멋있어요!”

“크흠.”

칭찬에 약한 별은 초롱초롱한 겨울의 눈을 피해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여자한테 멋있다는 게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맞아. 멋있었어, 별.”

“시, 시끄럽다!”

솔직하지 못한 녀석은 얼굴을 붉히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에 나와 겨울은 눈을 맞추며 피식 웃었고.

“무장을 갖춘 남자 여섯 명.”

애써 외면하던 별은 다가오는 작은 점을 보며 분위기를 바꿔 말했다.

“드디어 만나 보는 건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뿐.

별의 곁으로 다가선 나는 격자창 너머로 가까워져 오는 여섯 남자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거리는 줄어 이제 100m 남짓.

더 가까이 다가와 절반으로 줄었을 때.

“왔다.”

나는 놈들의 몸에서 탁해진 오러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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