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로이드 님, 쓰레기장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말하라.”
“범인을 찾은 것 같다고 합니다.”
“뭐라?”
뜻하지 않은 행운의 소식에 로이드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렇게 찾아다닐 때는 나타나지 않더니.
“로이드 님의 선택이 신의 한수였던 것 같습니다.”
감색 로브의 사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실상은 로이드의 변덕으로 이어진 작은 우연이었다.
그저 버려진 소환자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있었을 뿐.
스치듯 에비오의 능력을 본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고 말았다.
‘왜 진작 떠올리지 못했을까.’
로이드는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며 쓰게 혀를 찼다.
에비오의 능력은 영혼 술사.
녀석은 세 개의 영혼을 소유할 수 있으며, 보유한 영혼을 움직여 죽은 사체에 넣을 수 있었다.
언뜻 보면 빙의 같지만, 살아 있는 사람에겐 불가능했다.
그래서 쓰레기장으로 보냈다.
죽은 사체에 영혼을 넣어 봤자 언데드 세 마리 만드는 것에 불과한 탓이었다.
한데 그날따라 에비오의 능력이 계속 눈에 거슬렸다.
‘영혼을 소유한다…….’
무언가 떠오른 로이드는 그런 에비오를 다시 불러들였다.
잃어버린 실마리를 다시 찾을지도 모르니까.
에비오를 시켜 죽은 카이 형제의 영혼을 찾게 할 생각이었다.
‘마지막 목격자.’
리를 죽인 놈을 아는 건 그 두 녀석뿐인 까닭이었다.
때문에 단서가 끊겼다.
보고하는 걸 귀찮아하던 카이 형제는 덩치 큰 사내라는 정보만 남긴 채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덕분에 리의 능력을 회수할 방법은 사라져 버렸고, 막연하게 빅터의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 간의 연결 고리는 보이지 않았다.
추적 끝에 찾아낸 빅터는 황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사이 몇 번의 회귀가 있었으나 빅터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여 로이드는 빅터와 그 남자를 별개로 취급하고 사실상 추적을 포기했다.
그리고 소환 의식마저도.
로이드는 전면에 나서는 걸 포기하고 사마르를 대신 앞세웠다.
“에르텔을 넘긴 게 뼈아프게 됐습니다.”
씁쓸한 사내의 말에 로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땐 그것이 최선이었었다.
리와 계집을 잃은 이상 의식을 지속하는 건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소환 성공률이 늘 좋은 건 아니니까요.”
그런 로이드의 몸짓을 보며 감색 로브의 사내는 푸념하듯 말을 이었다.
그저 아까운 기회만 사라질 뿐.
회귀의 능력을 가진 리의 존재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든든한 대책이었다.
― 죽여.
그가 죽음으로서 기회가 다시 돌아왔던 까닭이었다.
소환에 성공할 때까지.
계속해서.
그런 리가 사라졌으니 소환 의식에 대한 부담은 크게 증가했다.
빅터의 부하들은 여전히 흑마탑 주위를 맴돌았고, 거기에 황제의 끄나풀까지 모여들었다.
하여 활동이 자유로운 사라센 흑마탑으로 모든 걸 넘겼다.
자신은 그저 최후의 결과만 얻으면 될 테니까.
한데 에비오로 인해서 새로운 실마리가 생겼다.
“지박령이라니… 카이 형제는 죽어서도 요란하군요.”
“…….”
에비오는 세비앙을 떠도는 카이 형제의 영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변수가 되었다.
지박령이 된 레이의 영혼은 세비앙 대장간을 맴돌았고, 사념을 읽어 낸 에비오는 범인의 정체를 파악하게 됐다.
큰 키에 당당한 체격을 가진 남자.
레이의 머릴 박살 냈던 남자는 이 대장간과 관계가 있었다.
에비오를 보내 결과를 얻기까지 고작 3일.
끊어진 단서를 되찾은 것도 모자라 놈이 향하는 곳을 느긋하게 쫓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귀신이 된 레이가 달라붙었다는 거잖습니까?”
죽은 레이의 사념 때문이었다.
이제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면 될 터.
“에비오를 지원해 줘라.”
이제 남은 과제는 사라진 계집, ‘한겨울’에 대한 행방뿐이었다.
* * *
세비앙을 떠난 우리는 목적지인 아케른을 향해 느긋하게 말을 몰았다.
예상되는 일정은 대략 일주일.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그 정도를 바라보며 여정을 이어 갔다.
“멀다 멀어.”
“그래도 대수림 지날 때보단 편하잖아요.”
툴툴거리는 나의 말에 스노우는 긍정을 담아 대답했다.
하기야 살아 있는 미끼가 되어 달리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을 유람하는 중이니까.
그렇다곤 해도 지루한 여정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저 푸른 산과 들을 바라보는 게 내가 누릴 수 있는 여흥의 전부였다.
똑같은 풍경이 하루 종일 이어지니, 내가 앞으로 가고 있는 건지,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이었다.
하나 솔직히 말하자면 불평할 입장이 아니었다.
“함브룩으로 향했으면 지금쯤이면 도착했을 걸요.”
고향에 방문한 대가인 탓이다.
베르의 말마따나 세비앙이 중간 경유지가 되면서 일정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러니 입 닫고 갈 수밖에.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세비앙을 지나야 했다.
“나만 그런가?”
“뭐가요?”
“갑자기 찬바람이 휙 지나가는 것 같은데.”
세비앙을 나선 이후로 가끔씩 이런 냉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장간에서 기분 나쁜 시선을 느낀 이후로 잊을 만하면 한번 씩 이런 감각이 반복되고 있었다.
“저는 모르겠는데요?”
그런 적 없다는 스노우를 지나 별에게 시선을 보냈다.
“땀나는 거 안 보이나.”
하나 녀석의 상황도 스노우와 다를 바 없었다.
뒤돌아 베르와 에스카에게도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아니요’였다.
빅터는 묻지도 않았건만 뼈에 바람이 든 거라고 혀를 찼다.
“갑자기 오싹하면서 소름이 돋는데 이유를 모르겠네…….”
바람 한 점 없는 와중에 한기가 스치니 당하는 입장에선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이유 없이 등줄기가 오싹하나?”
“네.”
“어깨나 목이 무겁다고 느껴지지는 않고?”
“흠… 살짝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역시 치료사라는 건가.
그런 나를 보며 그레이시는 증상을 물어 왔다.
“혹시 이유를 아시나요?”
“귀신이 달라붙으면 그렇다고 하던데…….”
“네?!”
그래 놓고 하는 말이 귀신이었다.
“어릴 때 어른들이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었지. 갑자기 오싹하면 귀신이 지나간 거고, 어깨가 무거워지면 올라탄 거라고.”
“으으으…….”
그에 스노우는 두 팔을 문지르며 정색하고 돌아섰다.
뒤에 있던 에스카도 마찬가지.
덤덤한 척하던 별은 천천히 내 곁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무, 무슨 그런 말을!”
태연한 척하려 했으나 뜨끔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오싹한 건 사실이니까.
‘진짜면 어떻게 하지.’
무서운 게 아니라 어쩔 도리가 없을 테니 난감해지는 거다.
그게 해머로 줘 팬다고 맞아 주겠냔 말이다.
“어억! 후배님 뒤에!”
결국 이런저런 놀림감이 된 채 아담한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서 식사하고 말도 좀 쉬게 하죠.”
베르는 객점 앞에 말을 세우곤 주위를 둘러봤다.
나름 구색은 갖춘 마을.
규모가 크진 않았으나 짜임새 있는 구조와 시설이 눈에 띄는 마을이었다.
“그런데 뭔가 어수선하네요.”
객점으로 향하던 나는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일상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해야 하나.
“맞아요. 입구에서부터 느꼈는데 분위기도 무거워요.”
고삐를 묶는 에스카의 말처럼 들어설 때부터 이미 평범하지 않았다.
나의 감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눈치가 있다면 누구나 알만큼 이 마을의 공기는 확연하게 이상했다.
사람들의 얼굴을 봤을 때 좋은 일은 아닐 터.
“무슨 사고라도 난 건가.”
마을 중앙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걸음을 돌려 객점으로 들어섰다.
실내는 한산했다.
인기척에 나온 주인과 점원이 전부일 뿐.
적당한 자리에 앉은 나는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조촐하네.”
둘러본 소감은 이 정도였다.
객점의 내부는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고, 1층에 자리한 식당은 손님 하나 없이 조용했다.
“어서 오세요.”
착석을 확인한 점원이 주문을 받으러 다가왔다.
“뭐가 제일 맛있나요?”
“거세한 닭으로 만든 흰 스튜와 칠성장어구이가 인기 있구요. 그 외에는 타무르 물소 조림이라고, 고기를 비계에 튀긴 다음 덜 익은 포도즙을 끼얹으며 졸이는 요리입니다.”
“흠…….”
무슨 요리인지 모르는 관계로 주문은 ‘다 주세요’로 결정되었다.
우리는 잡다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식사를 기다렸다.
바실리스크는 다리가 여섯 개인데 어째서 꼬이지 않는 걸까.
이것으로 시작된 잡담은 팔꿈치에 혀가 닫느냐 안 닫느냐로 이어졌다.
온갖 멍청한 표정과 얼굴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그 짓은 끝이 났고, 인간은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싹싹한 점원의 말과 함께 기다리던 음식이 테이블을 채우기 시작했다.
거세한 닭 수프에 오러를 사용할 것 같은 칠성장어.
거기에 뭘 튀겨서 조렸다는 요리까지 나오자 테이블은 가득 차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맛있게 드세요!”
마지막 요리를 서빙한 점원은 크게 인사하며 뒤돌아섰다.
하나 빅터는 가는 점원을 불러 세워 질문했다.
“마을에 분위기가 이상하구나.”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그에 점원은 한숨을 내쉬며 빅터의 말에 대답했다.
“오늘 낮에 사고가 있었거든요.”
“흐음, 사고라면?”
“마을에 고블린이 나타나서 아이를 납치했나 봐요.”
“저런, 그래서 그 아이는 구한 게냐?”
“네.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있어서 납치는 막았는데…….”
문제는 아이를 구한 사람이 고블린에게 당했다는 것이었다.
“쯧쯧…….”
빅터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지만 드물지 않은 일.
산자락을 끼고 있는 마을이라면 생각보다 자주 이런 일을 겪게 된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말끝을 흐리는 점원의 얼굴엔 슬픔이 가득했다.
착하고 성실했던 청년.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이 남자는 늘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도와주던 선량한 남자였다.
“안 됐네요.”
에스카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포크를 내려놨다.
나 역시 입맛이 쓰다.
내 일도 아닌데 뭔가 억울하고 화나는 그런 것 있잖은가.
남을 도운 대가가 죽음이라니.
이런 좋지 못한 결말들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우리는 무거워진 마음을 추스르며 조용히 식사를 마무리했다.
“슬슬 다시 가시죠.”
객점을 나온 우리는 슬픔에 찬 마을을 벗어나 다음 목적지로 말을 몰아 나갔다.
* * *
“뭐라고? 흠, 그렇게 되면 그놈을 놓치게 될 텐데… 아, 그 몸을 얻으면 네가 찾아갈 수 있다는 거야? 그렇지만……. 윽, 알겠어. 죽이는 것보단 죽어 있는 사람이 편하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홀로 떠드는 이 남자는 에비오.
레이의 사념을 뒤쫓던 에비오는 뜻하지 않은 영혼의 요청에 진땀을 흘리며 대답하던 중이었다.
요점은 신선한 시체가 있다는 것.
에비오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선 24시간이 지나지 않은 사체가 반드시 필요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사람을 죽여서 육신을 빼앗는 것이겠지만.
‘그건 좀…….’
기왕이면 준비된 곳에 영혼만 넣어 주는 게 여러모로 편할 터였다.
“윽, 지금 땅에 묻었다고? 알았어, 빨리 갈게.”
보채는 레이의 사념에 에비오는 손에 쥔 고삐를 거칠게 잡아챘다.
서툰 승마 기술에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달린 덕분에 해질 무렵엔 도착할 수 있었다.
“저 뒤쪽이구나.”
에비오는 마을 바깥에 위치한 공동묘지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무덤은 이미 파헤쳐져 소박한 목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꿀꺽…….
에비오는 마른침을 삼키며 관 뚜껑에 손을 뻗었다.
처음 마주하게 될 죽은 사람의 시체.
“후…….”
길게 숨을 내쉰 에비오는 뚜껑을 들어 올려 남자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시체에도 표정이 있는 걸까.
모습을 드러낸 남자의 얼굴은 죽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선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윽, 깜짝이야. 알겠어, 알겠다고. 지금 할게.”
하나 성질 급한 레이의 사념은 감상할 틈조차 기다려 주지 않았다.
에비오는 시체에 손을 올렸고.
슈우우우우우악―
보채던 레이의 사념은 남자의 시체를 향해 흡수되듯 빨려 들어갔다.
‘성공한 건가…….’
에비오는 식은땀을 흘리며 남자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이번이 처음이니 모를 수밖에.
초조한 마음을 달래며 이어질 결과를 기다렸다.
제발 성공하길.
하여 그 감옥 같은 곳을 벗어날 수 있게 되길.
“크크크큭…….”
간절하게 바라던 에비오는 비릿하게 웃는 남자와 떨리는 눈을 마주쳐야 했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