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해머를 잡은 이후로 지금까지 이기지 못한 사람이 두 명이 있다.
하나는 빅터.
또 다른 하나는 카리프.
빅터는 상대가 되지 않았고, 카리프는 싸우다 말았다.
하여 빅터는 승패의 기록에서 제외한다.
빅터가 좋은 스승인 건 맞지만, 나의 수준에 맞춰 조절해 주는 까닭이다.
그러니 남은 것은 카리프.
첫 대결은 나의 죽음으로 끝났고, 두 번째는 끝을 보지 못한 채 강제로 종료됐다.
만약 끝까지 계속됐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래서 카리프도 전력을 가늠해 줄 지표가 되지 못한다.
필요한 것은 완전한 실전.
전투 불능 상태에 이를 수 있는 진짜 대결이어야 나의 수준이 정확하게 파악될 터였다.
눈앞에 있는 듀란같은 녀석.
저 녀석이야 말로 나에게 진정한 벽이 되어 줄 것이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한스의 신호를 기다렸다.
서서히 올라가는 한스의 오른손.
“개시!”
길게 이어지는 한스의 외침에 두 사람의 다리는 서로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콰앙―
휘둘러진 나의 해머와 녀석의 방패가 한 점에서 마주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종류의 단단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
두꺼운 암석을 부수는 것도 아니고, 맹렬하게 맞부딪히는 빅터의 검도 아니었다.
듀란의 방패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었다.
생소하고 이상한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방패와 해머가 맞닿는 순간 뚫었다 싶었지만, 이내 튕겨져 나왔다.
‘쳇…….’
그래서 자꾸만 타이밍이 어긋났다.
콰앙―
지금도 그랬다.
방패를 부셔 버릴 것처럼 치고 들어갔지만, 결국 아무것도 못한 채 되돌릴 시간만 빼앗겼다.
정말 찰나의 틈이지만.
그 짧은 간격으로 인해 나는 파고드는 놈의 공격에 목덜미를 베여야 했다.
달라붙어 있다고 해야 하나.
‘콰앙’한 뒤에 ‘쩍’하고 달라붙는 느낌이 있다.
부딪히는 순간에 바로 튕기면 해머를 되돌리기가 편한데, 이렇게 돼 버리니 번번이 역습을 허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해?”
듀란은 피식 웃으며 검을 휘둘러 왔다.
챙―
무겁지 않았다.
이 정도 검이라면 충분히 받아 낼 만하다.
하지만 이어지는 놈의 공격은.
쿵―
나의 전투 경험이 얼마나 하찮은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음?”
오히려 공격한 본인이 더욱 당황할 정도였으니까.
당황한 듀란의 표정은 왜 이런 공격에 당하느냐 묻는 것 같았다.
‘젠장.’
방패를 무기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나에겐 그게 상식이었다.
세비앙에서 해치운 그 녀석처럼, 방패란 공격을 막는 용도로 쓰인다고만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하나 나의 편협한 생각을 조롱하듯, 듀란의 방패는 보란 듯이 나의 얼굴을 후려쳤다.
“이런 공격을 당하다니, 실망스러운데?”
나도 마찬가지다.
빤히 보면서도 저 방패가 나를 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후…….”
나는 짙은 한숨을 내쉬며 해머를 그러쥐었다.
좋아.
방패가 무기가 된다는 거 인정.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내 공격을 어떻게 때려 박을 것인지 고민해 봤다.
하지만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았다.
녀석의 전투 방식이 너무 노련했던 탓이다
‘휘말리고 있다.’
듀란의 전투 경험은 내가 어찌해 볼 수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방패를 비켜 공격할라치면 아예 회피를 하거나, 궤적에 간섭해 공격 방향을 바꿔 버렸다.
다시 방패의 범위로 들어가게 되면.
콰앙―
또다시 타이밍을 빼앗기며 역공을 허락하게 된다.
“아씨, 뭐야! 완전 허당이잖아?”
“데스 아이 토벌한 거 맞아?”
일방적인 듀란의 페이스에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의 실력이 거품인 것처럼.
모여든 용병들은 의심 어린 눈초리로 나의 싸움을 파헤치고 있었다.
‘쨍알쨍알 시끄럽게…….’
뜻대로 풀리지 않는 싸움에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잡스런 말소리가 머리를 가득 채우고,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는 해머는 본연의 모습을 잃은 채 방어에 급급했다.
꼴사나웠다.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던 공격 방식은 동급의 강자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것이 몬스터와 사람이 다른 근본적인 이유였다.
인간은 적의 약점을 후벼 파니까.
본능에 충실한 몬스터의 공격은 인간에 의해 철저히 공략당해 왔다.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틈을 노려도 공략할 수 없는 몬스터가 있다.
이유 같은 건 없다.
상대가 너무 강하면 계획은 의미를 잃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도 그냥 무식하게 가면 된다.
지금보다 강하게.
보다 빠르게.
한 방이 필요하면 그 한 방에 집중하면 될 터.
그 다음은…….
‘가 보면 알겠지.’
무적의 답을 내놓은 나는 해머를 들어 최대로 비틀었다.
후속타 같은 건 없다.
반격을 위한 빠른 회수도 필요 없다.
오로지 이 한 방.
그 하나에 모든 걸 담아 가속을 시작했다.
크게 내딛는 디딤 발.
이어지는 골반과 상체의 회전.
초심으로 돌아간 나는.
채찍처럼 끌려오는 해머의 무게를 느끼며 고점에 오른 묵직한 놈을 듀란의 방패에 때려 박았다.
콰아앙―
한층 요란해진 소리가 고막을 찌르며 머릿속을 관통했다.
듀란의 얼굴이 작게 움질거렸고.
“한 번 더.”
반격할 기회를 놓친 놈의 방패에 또다시 해머가 들이쳤다.
반격 따윈 생각조차 않은 원초적인 공격.
듀란의 노련함에 맞설 나의 무기는 본능에 충실한 순수한 파괴였다.
콰아앙―
기분 나쁘게 달라붙던 녀석의 방패가 익숙한 감각으로 변해 갔다.
힘으로 밀어붙이던 그 시절의 감각.
남아 있는 근력을 쥐어짜 휘어진 몸을 긴장시켰다.
비틀린 육체가 비명을 지른다.
하나 파괴력에 집착한 나의 광기는 한계를 맞이한 몸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더 강하게.
더 빠르게.
이제껏 넘보지 못한 저 너머의 세계로 나의 모든 걸 내던졌다.
이제 마지막 순간.
광기에 잠식된 나의 육체는 응축된 힘을 폭발시켜 그러쥔 해머를 휘둘렀다.
근육을 찢어 버릴 듯.
저항하는 모든 걸 잡아당겨 놈의 방패에 해머를 꽂았다.
콰아아아아아앙―
소리는 더욱 커져 심장을 두드렸고.
“크으윽―”
듀란은 우그러진 방패와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의 해머는…….
쓰러진 녀석의 머리를 정확하게 노리고 있었다.
벌통 같던 북문 앞에 정적이 찾아왔다.
차마 깰 수 없는 두려운 적막.
“…내가 졌다.”
얼음장 같았던 북문의 침묵은 듀란의 한마디에 뜨거운 함성으로 돌변했다.
우와아아아아아―
의심에 물든 사람들의 눈빛이 놀라움과 동경으로 변해 갔다.
“듀란 님의 패배 선언에 따라 대결의 승자는 이반 님이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더 이상의 이견은 없었다.
모두가 나의 승리를 인정했고, 그들은 다음 세대의 용병왕에게 환호했다.
“엄청난 파괴력이군.”
자리에서 일어난 듀란은 투덜거리듯 소감을 전했다.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어 대고는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축하한다. 오늘부터 네가 용병왕이다.”
듀란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패배를 인정했다.
그 순간, 나의 눈앞에는.
[한계를 넘어선 사용자의 의지에 시스템이 반응합니다.]
[현 상황에 대한 데이터 수집.]
[데이터 분석 중…….]
[분석 완료.]
[시스템 보정을 시작합니다.]
[시스템 보정 10%…….]
익숙한 문자들이 바쁘게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당연한 느낌이랄까.
[보정 완료.]
[업적 시스템을 개방합니다.]
[업적 : 한계를 넘어서는 자.]
[보상 : 초월.]
[초월 : 육체가 한계에 다다를 때 새로운 힘을 준다.]
[대미지 10% 증가.]
[지속 시간 : 1분.]
나는 숨겨 둔 마지막 한 수를 보상으로 넘겨받았다.
* * *
대결이 끝난 북문 앞.
이반의 승리에 돈을 건 사람들은 푸짐한 배당금에 환호성을 질러 댔다.
그 무리 중에 익숙한 얼굴이 끼어 있었으니.
“이야, 이거 쏠쏠하네. 나 1골드 걸어서 2골드 받았다.”
베르는 배당금을 받아들곤 히죽거리며 에스카에게 다가갔다.
“너는 얼마 걸었어?”
“난 5골드. 그래서 10골드 받았지.”
“허… 스승님은요? 스승님도 거셨나요?”
“난 10골드 걸어서 20골드 받았다.”
“커헉!”
“저 녀석 싸움 좀 자주 시켜야겠구나.”
빅터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리베로 향했다.
한편 그 시각 북문 앞에서는.
“아니, 자기가 자기 대결에 돈 거는 사람이 어딨소?!”
“내가 내 싸움에 걸겠다는 데 뭐가 문제예요.”
배당금을 주고받아야 할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니, 암만 그래도 그렇지 20골드나 걸면 어쩌자는 거요!”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왜요? 그게 잘못된 거면 애초에 받질 말든가.”
도박을 주선한 중계인은 똥 씹은 얼굴로 금고를 열었고.
“돈 벌기 쉽네.”
이반은 40골드를 챙겨 북문을 넘어갔다.
* * *
대결을 마무리한 나는 게브네를 찾아갔다.
그곳엔 뜻을 같이한 상인들이 모여 한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용병들 모두가 불매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스는 들뜬 얼굴로 결과를 알렸다.
“오, 수고했네!”
“제가 뭐 한 게 있습니까. 다 이반 님이 하신 거죠.”
소식을 접한 상인들은 이미 선거에 승리한 듯 자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양측의 지지도가 50:50으로 팽팽한 상황이라 무구점과 시약점의 선택은 사실상 선거를 결정짓는 마지막 열쇠라 할 수 있었다.
한데 용병들이 불매에 동참했으니 그들의 입장에선 당장 밥줄 끊어지게 생긴 것이다.
“자, 이제 마지막 고비네요. 저쪽도 마음 급해질 테니 이제부터 더욱 독하게 나올 겁니다.”
한스는 들떠 있는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마지막 일전을 설명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내가 알던 한스가 맞나 싶다.
철광산에서 봤던 모습은 기억조차 안 날 정도로, 녀석은 조합장이라는 직책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낙관적인 상황이 이어지는 건 맞지만, 재료상들은 여전히 담합 중입니다. 또한 우리의 피해도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죠.”
결론은 버티자는 말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상대의 분열을 기다리며 항복하는 사람에게 충분한 대우를 해 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용병들의 불매가 중요했다.
불매에 항복한 상인에게 다시 전폭적인 지지를 이어 주는 것.
손가락을 빨며 지켜보는 입장에선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 될 것이다.
“이제 굳히기만 남았네요.”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 게브네에게 나는 넌지시 심경을 물어봤다.
“참 멀게만 느껴졌는데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네.”
“그게 어디 저 혼자 한다고 될 일인가요. 다들 피해를 감수하고 잘 견뎌 주셔서 이룬 성과죠.”
게브네는 물끄러미 상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이다.
자신을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은 대가로 생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었으니까.
부조리한 관행과 담합에 맞선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힘내세요.”
“그래야지. 도와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꼭 이길 생각이네.”
게브네는 각오를 다지듯 주름진 눈을 빛냈다.
“아저씨 당선되는 걸 보고 가면 좋을 텐데. 아쉽게 됐네요.”
“그게 무슨 말인가?”
“당분간 브라함에 가 있을 것 같아요.”
“허허…….”
“당선되시면 소식 전해 주세요. 나중에 모른 척하지 마시고요.”
“하하하, 그럴 리가 있나. 나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자네에게 감사할 걸세.”
농담 같은 나의 진담에 게브네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이만 가 볼게요.”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내 역할은 끝났으니 이젠 행운을 빌어줄 뿐.
모두와 인사를 나누고 대장간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나의 걸음은 몇 발자국 못 가 멈춰야 했다.
“잠깐만요.”
한스였다.
“뭐 하러 나왔어.”
뒤를 따라 나온 한스를 보며 나는 타박하듯 말했다.
그러나 녀석은 난감한 표정으로 다른 얘길 전했다.
“루드겐 마이어에게 연락이 왔어요.”
“루드겐이?”
철광산의 실소유주가 드디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네, 조만간에 찾아오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오지 말라고 해.”
어차피 내가 갈 테니까.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