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목숨 99개-100화 (100/203)

100화

결론부터 말하겠다.

용병 조합으로 돌아온 나와 별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오도 가도 못 하고 있다.

“우아아아아!”

“세상에!”

“데스 아이가 토벌됐다고?!”

대충 이런 상황이었다.

― 네에엣?! 이것이 데스 아이의 전리품이라구요?!

매입 창구 직원의 한마디에 용병 조합은 삽시간에 시장통으로 변해 버렸다.

왜 안 그렇겠나.

지금 리베의 용병왕이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인데.

쏟아지는 관심과 선망의 시선은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를 지경이었다.

용병들이 사는 세상이란.

그만큼 고착되고 좁은 바닥이었다.

코어와 서클의 성장이 한계에 이르고 나면 그 사람의 등급은 변하지 않는다.

오늘 5서클이었던 마법사가 내일 6서클일 될 일도 없고, 파죽지세로 성장하는 사람이 용병이 될 확률은 개미 오줌만큼도 못 된다.

그러니 이 바닥은 늘 한결 같다.

가끔씩 달라지는 정보는 누군가 죽었다는 비통한 소식들뿐.

기본적으로 이곳은 그놈이 그놈이고, 저놈이 저놈인 빤하고 훤한 그런 세상이었다.

한데 갑자기 1위가 바뀌었다.

긴 시간 군림했던 듀란을 제치고, 수주 금지 딱지가 붙은 의뢰서를 보란 듯이 해결했다.

심지어 단 두 명이서.

그것도 단 하루만에.

“이야! 의뢰 게시판이 허전해졌네. 이제 저 자리는 어떤 의뢰로 채워질까.”

용병들의 다음 관심사는 그것이었다.

천장이 허물어졌으니 그 위의 세상이 궁금한 것이다.

하나 애석하게도 7성급 이상은 없다.

8성급 자체가 대륙에 두 명뿐인데 무슨 의뢰가 성립되겠나.

하여 그 단계에 이르면 조합에서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문제들은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게 되고, 애초에 그 정도 사건이라면 모두를 위해서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가장 좋다.

그러니 지금 나는, 리베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라 해도 무리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됩니까?! 네? 데스 아이가 어떤 놈인 줄 아시냐고요! 무려 상태 이상 마법을 쓰는 놈입니다! 상태 이상을!”

한데 그런 내가 지금 큰소리로 푸념을 내뱉고 있었다.

그것도 의뢰 확인을 위해 모습을 드러낸 조합장을 향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짜여 진 각본.

“엉?”

“왜, 뭐야? 지금 무슨 얘길 하는 건데?”

나는 준비한 각본대로 조합장을 향해 날선 비판을 시작했다.

“조합장님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용병들 목숨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시는 거 아니냐고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과거 도전에서 사망자가 네 명이나 나왔던 의뢰라면 실패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서 재발을 막았어야죠. 안 그런가요? 그게 조합의 역할 아닙니까?”

나는 조합의 문제를 지적하고, 조합장은 나를 통해 용병들의 관행을 꼬집기로 했다.

그래야 집중해서 들을 테니까.

아무리 이기적인 놈이라도 남의 싸움 앞에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의 본성이고, 나와 조합장은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계획은 효과적이었다.

푸념의 수준이 여기까지 오자 조합 내부엔 적막이 감돌았다.

모두의 관심사이자 아픈 손가락.

목숨을 담보로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의뢰 정보의 신뢰성은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제가 상태 이상 마법을 견뎌 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

“앞선 듀란의 팀은 허무하게 6성급 동료를 네 명이나 잃었습니다. 저도 이번에 죽을 뻔했고요. 정보만 정확했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흐음, 물론 그렇긴 하지만 현장 상황이란 건 늘 다르지 않나요. 수없이 토벌된 몬스터가 아니라면 정보 부족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침묵하던 조합장이 반격을 시작했다.

마치 그동안 참아 왔던 속내를 풀어내듯.

“정보를 알려 줘도 흘려듣고 나가고, 익숙하다고 해서 안전 수칙도 안 지키고, 그러다 사고 나면 조합의 탓을 하고… 조합의 문제를 탓하기 전에 규칙을 어겨 온 본인 스스로를 탓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조합장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날카로운 일침을 날렸다.

무거워지는 조합의 공기.

주변을 훑어본 조합장은 잠시 틈을 두며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우리는 용병입니다.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뛰어들었고, 그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 조합이 개입할 수 있는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얘깁니다.”

“무슨 한계요?”

“개인의 판단과 역량을 제한할 수 있는 선이요. 당신들 모두 전문 용병이고, 본인이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부르게 될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제 말이 틀렸나요?”

조합장의 말이 길어질수록 용병들의 얼굴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제 얼굴에 침 뱉기니까.

지켜야 할 게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안 했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대충 무마시켰다.

상황에 따라 적당히.

분쟁이 생길 때면 조합에게 넘겨 버렸다.

그래 놓곤 결과에 승복하지도 않았다.

“…….”

불편한 공기가 조합을 짓눌렀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피해자였고, 또한 모두가 공범이었다.

“하지만 선례라는 게 있죠.”

나는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용병이 규칙을 어기거나, 조합이 해야 할 일을 안 했을 때. 그로 인해 어떤 사건과 분쟁이 생겼을 때… 원리 원칙 대신 편의를 봐주던 시점부터 이 문제는 쌓여 온 겁니다.”

“…….”

“원래 좋은 습관은 귀찮고 힘드니까요.”

처음부터 그랬을까?

막나가자고 만든 조합은 그 어느 곳도 없을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구분해 낸다.

하여 용병 조합에도 의뢰에 관련된 규칙이 있고, 그 내용을 모르는 용병은 이곳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뢰의 결과에 따라 문제는 끝없이 발생했다.

그 중재의 역할은 늘 조합이었고.

의욕적으로 시작된 조합과 용병의 관계는 긴 시간을 지나오며 관행이란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 원래 이건 그렇게 하는 거라니까?

― 다들 그렇게 하잖아.

편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잘 만들다 보면 이상하게도 불편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원리 원칙과 절차.

이 까다로운 녀석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간소한 방법을 찾게 만든다.

그것이 편법이고, 양지로 나온 편법이 관행이란 이름으로 사용됐다.

“‘저 사람이 이러니까 나도 이래야지’는 우리 같은 철없는 용병들 얘기고요. 그런 멍청이들을 이끌어 달라고 만든 게 조합 아닙니까.”

그런 조합이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면 어떻게 되겠나.

둘 중 하나가 강제력을 지녀야 한다면 당연히 조합이어야 하는 게 옳은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조합은 용병들의 태도를 핑계로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비영리 단체라는 이유로 조금 더 편한 방식을 추구했고요. 저희도 압니다.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

용병들의 관심은 새로운 시점으로 전이되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자신들의 치부를 변호해 주는 새로운 용병왕에게로.

“하지만 그게 모든 걸 이해시킬 순 없죠. 이 사람들을 다루기 힘들다고 느꼈을 때, 그때 사퇴하셨어야 했습니다.”

나는 미리 맞춰놓은 대로 조합장에게 사퇴를 권유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후임자를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사퇴합니까. 그렇다고 조합을 버릴 수도 없잖습니까.”

“누가 인정하지 않는데요?”

“누구긴 누굽니까. 여기 있는 당신들이죠.”

약속된 조합장의 답을 끝으로 나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오른손을 높이 들며 나지막이 얘기했다.

“조합장님의 사퇴에 반대하시는 분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

“다음 후보자가 누가되건 난 괴롭히고 협조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

누가 들겠나.

이런 질문에 손을 들 만한 인성이라면 진즉에 크게 됐을 것이다.

전설적인 건달패나 범죄자 같은 걸로.

개인으로 마주한다면 본색이 드러났겠지만, 대놓고 눈 밖에 나고 싶은 용병은 아무도 없다는 얘기다.

그들은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함께했고, 동료는 아닐지언정 소속감은 존재했다.

더군다나 지금 그들의 눈앞엔 새로운 강자가 그들의 행동을 억제하고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할 사람이 있겠소? 사실 나 같아도 조합장 자리 귀찮아서 안 할 것 같은데.”

“그야 그렇지. 돈 되는 자리도 아니고.”

“하지만 아무나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잖나. 나름 생각이란 것도 해야 할 텐데.”

그 사실을 증명하듯, 모여 있던 용병들은 다음 후보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주고받았다.

그에 조합장의 눈이 번뜩이기 시작했고.

“흠… 내가 꽤 똑똑하고 성실한 친구를 알고 있는데, 정말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추천할 사람이 있긴 합니다.”

토론 중인 사람들을 향해 누군가를 추천했다.

그 사람의 이름은 한스.

조합장은 구석에 있는 한스를 가리키며 자신의 곁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갑자기 이렇게 돼서 좀 그렇긴 한데… 기왕 말 나온 거 이참에 툭 까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조합장은 다가온 한스를 보며 다음 말을 이어 갔다.

“저 솔직히 이젠 지칩니다. 여러분들을 다룰 자신도 없고, 이젠 모든 게 귀찮습니다. 이러다 큰 사고가 날까 겁나고요. 그래서 이 친구를 추천하려 합니다.”

그에 한스는 쭈뼛거리며 조합장 옆에 섰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단계.

이 상황극의 절정은 한스의 역할로 넘어갔다.

“이 친구가 생각한 계획이라면 여러분들의 남은 삶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조합장은 한스를 앞세우며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안녕하십니까. 소개받은 한스라고 합니다.”

녀석은 나의 눈을 바라보곤 다시 용병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차분하게 숨을 고르며 이어질 말을 준비했다.

― 내일까지 다 외워.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어찌 될지 알지?

살벌한 나의 협박 덕분일까.

한스는 밤새 외워 둔 공약을 앵무새처럼 읊어 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는 각종 분쟁은 물론이요, 사망 및 부상에 대한 위로금을 조합비로 충당하려고 합니다.”

조합의 분위기가 크게 술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한스가 말한 공약의 내용은 너무나도 파격적인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분쟁 배상금과 치료비 등을 조합에서 챙겨 주겠단 얘기였으니, 용병의 입장에선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말이야 누가 못하겠나.

“그렇게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갈 텐데 그걸 어찌 충당하려고 그러쇼? 설마 수수료를 올릴 생각이면 당장 때려치우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에 한스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남자의 질문에 대답했다.

“수수료는 그대로입니다.

이 문제에 대비해 나는 한스에게 세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 만약 수수료를 올리면 리베에서 용병 짓을 할 이유가 없지. 카잔이 훨씬 조건이 좋은데.

― 매입한 전리품 판매는 재료상을 거치지 않고 제조업자들에게 직거래하는 거야. 그러면 우리는 비싸게 팔고 제조업자는 싸게 구입하겠지.

― 매우 귀찮겠지만 이건 네가 직접 해. 건달 짓보단 보람 있는 일이잖아.

한스는 나에게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조합의 자금이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사건 사고의 빈도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를 테니까.

애초에 이 계획은 풍부한 자금이 있어야 가능했다.

“하여 명백한 규칙 위반이 발견될 경우는 벌금을 물릴 생각입니다. 하지만 억울한 상황에 직면했을 땐 조합이 여러분들을 지켜 드릴 것입니다.”

그러니 망나니처럼 하고 싶은 짓만 하지 말고 지킬 건 지키란 얘기다.

말 잘 들으면 보살펴 주고, 사고 치면 응징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하실 분들을 위해 한 가지 대비책을 더 강구했습니다.”

용병 조합과 대장장이 조합 둘 모두를 위한 대비책.

한스는 고급스런 종이를 펼쳐 그 안에 적힌 내용을 사람들에게 보여 줬다.

“미르니 철광산의 운영권을 용병 조합에게 일임한다는 내용입니다.”

그에 조합은 공약을 발표할 때보다 더욱 크게 술렁거렸다.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그리고 이 운영권은 새로운 용병왕이신 이반 님께서 증여해 주셨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이 아직 안 나왔으니까.

“에엥?!”

“저 양반이?!”

술렁이던 사람들의 반응은 이제 탄성과 함성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렇게 조합은 세대교체에 성공했고.

‘…고생하셨습니다.’

조합장과 나는 남몰래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내가 얻은 것은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

리베에 소속된 용병이라면, 이제 그 누구도 나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게브네의 단체장 선거뿐.

‘이참에 한번 해 봐?’

나는 은밀한 막후의 실세를 떠올리며 소란스런 조합을 빠져나왔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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