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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 99개-96화 (96/203)

96화

주저앉은 브루스는 망연자실하게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제 모든 걸 잃게 생겼으니까.

운영하던 철광산은 물론이요, 휘하에 몰려든 부하들도 흩어질 것이다.

그게 건달의 법칙이다.

불법으로 취득한 부당한 이권은 이해관계의 당사자를 제외하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

따라서 하소연할 곳도 없고, 두 번의 기회를 바랄 수도 없다.

싸움에 진 개는 죽거나, 버려지는 것뿐.

원망할 대상을 찾을 거라면, 투견판으로 뛰어든 스스로를 책망해야 한다.

“운영권 어디 있어.”

“침대 옆 금고에 있다.”

“열쇠.”

체념한 브루스는 말없이 열쇠를 꺼내 놓았고, 나는 받아든 열쇠를 들고 금고로 향했다.

덜컹―

잠금이 풀린 금고를 열어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자식, 완전 꿀 빨고 있었나 보네.’

금고 안에는 수북한 금화들과 각종 보석이 즐비하게 쌓여 있었다.

하나 지금 찾는 건 이런 것들이 아니니까.

좁은 금고를 뒤적거리던 나는 한참을 헤맨 끝에 구석에 끼어 있던 운영권을 찾아낼 수 있었다.

왜 이렇게 꼭꼭 숨겼냐고 한마디 할까 마음먹던 그 순간.

“여보!”

“한스!”

왠지 납득할 수 없는 애절한 남녀의 외침이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여보라니?

뜬금없는 남자의 외침에 고개를 돌려 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그래.

두 사람 다 누군지 알겠다.

울먹이고 있는 남자는 나와 함께 있던 인중 녀석이었고, 흐느끼는 저 여인은 이방에 있던 세 명의 여인 중 하나였다.

한데 여보라고?

“인중.”

“네.”

“너 이름이 한스야?”

“네. 그게 제 이름입니다.”

“그분은…….”

“저의 아내입니다.”

“…….”

정리가 필요할 것 같은 녀석의 말에 잠시 질문을 멈췄다.

뭔가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뭘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

인중… 아니, 한스라는 녀석의 부인이 왜 브루스의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틋한 이 모습은 나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뭐야 이게.’

나의 짧은 식견으론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한스의 얘기는 그 모든 걸 이해시켰다.

녀석이 왜 그렇게 나를 도왔는지, 그리고 지금 왜 저렇게 애틋한 건지.

“도박 빚 때문에 아내를 뺏겼다고?”

어처구니없는 한스의 얘기는 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이렇게 들으면 녀석이 엄청나게 한심하고, 무책임하며, 쓰레기 같은 놈처럼 느껴지겠지만.

“제가 멍청했죠…….”

실제로 시골 마을이나 변경에선 한스와 같은 사기 도박의 피해자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뭐 그런 것 있잖은가.

재미 삼아 기웃거렸다가 된통 엮이는 거.

처음엔 돈을 잃어 주며 들뜨게 만들어 놓고, 절정의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그러면 열의 열은 그 절정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당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이 운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세비앙에 있을 때 겪어 봐서 안다.

푸줏간을 하던 찰스 아저씨는 모든 걸 다 잃고도 행운만 탓했다.

자신은 실력이 있는데, 한방만 걸리면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한스를 두둔하는 건 아니지만, 사기 도박에 한번 걸리면 자력 탈출은 쉽지 않다.

어쨌거나.

그렇게 아내를 빼앗긴 한스는 복수의 기회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하나 평범한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차라리 가까이서 기회를 노리기로 했죠.”

피눈물을 머금고 놈들 패거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패거리에 받아 주디? 어떤 상황인지 빤히 아는데?”

“신경 안 쓰더라고요. 오히려 말 잘 들으면 아내 만나게 해 주겠다며 회유하고, 그렇지 않으면 괴롭히겠다고 했으니까요.”

그만큼 우습게 보였단 얘기였다.

제깟 놈이 뭔 짓을 하든 상관없다는 것이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고 있던 것이었다.

“이 자식 진짜 나쁜 놈이네.”

나는 묵묵히 듣고 있는 브루스를 보며 짜증스레 말했다.

“앞전에 벅스 패거리에게 이기고 나서 어떻게 처리했어.”

“죽였다.”

“루드겐 마이어가 그걸 원했어?”

“당연한 것 아닌가. 싸움에 패한 두목은 원래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야 뒤탈도 없고.”

브루스는 초점 없는 눈으로 힘없이 대답했다.

녀석의 이 침울함은 단지 가진 걸 잃는다는 수준이 아니었나 보다.

그 이상의 것.

녀석은 나를 루드겐 마이어가 보낸 자객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가 그랬듯 똑같은 방법으로.

뭐… 비정하긴 하지만 후환을 남겨 둘 필요는 없으니까.

“일어나라.”

“…….”

체념한 브루스는 저항 없이 일어섰다.

그저 조용히 눈을 감고, 이어질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까 나에게 사용한 마법 있지. 그거 다시 해 봐.”

녀석에게 마법을 사용할 기회를 주었다.

“…….”

브루스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해야 하나?

그러다 진짜로 마법이 시전돼 버리면?

대충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냥 해. 죽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망설이는 녀석에게 나는 단호하게 선택을 강요했다.

그렇게 브루스는 선택했고.

“파이어 버스트.”

낮은 음성으로 마법을 시전했다.

그렇게 발밑이 달아오르던 순간.

“크어어어어어억!”

나는 녀석의 아랫배에 강렬한 주먹을 때려 넣었다.

브루스는 바닥을 구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내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끄으으으으으으…….”

이것은 분명 끔찍한 고통일 것이다.

나도 저렇게 쓰러졌다고 했으니까.

서클이 박살 난 브루스는 다섯 살의 나처럼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물고 있었다.

“이대로 죽는 겁니까?”

“죽었으면 좋겠어?”

“아, 그건…….”

말끝을 흐리는 한스의 곁에 겁먹은 아내가 바짝 다가왔다.

“포션이 있으니 죽지는 않을 거야. 대신 평생 마법은 사용할 수 없겠지.”

금고에 다가간 나는 한쪽에 놓인 포션을 꺼내 브루스의 입에 흘려 넣었다.

이 다음은 신의 영역.

어느 정도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마법을 못 쓰게 되는 겁니까?”

“두 번 다신 못 쓰지.”

한스의 질문에 대답하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브루스를 지켜보았다.

나는 시전 중인 서클에 충격을 주었고, 방출에 실패한 마력은 서클 안에서 터져 버렸다.

마법사들의 치명적인 약점.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잖아.”

호흡을 찾아가는 브루스를 보며 뒤에 있던 두 여인에게 질문했다.

함께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남을 것인지.

여인들은 돌아가길 원했고, 우리는 철광산을 나와 리베로 향했다.

* * *

“이게 뭔가?”

“철광산의 운영권이요.”

“허허…….”

게브네는 침음을 흘리며 운영권을 펼쳐 보았다.

내용은 별것 없었다.

미르니 철광산의 소유자를 대신해 운영권자가 채광 및 유통을 담당한다.

뭐,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거기에 몇 가지 추가 사항으로 안전장치를 걸어 놓았고, 그 안전장치가 이번엔 놈의 목을 조르게 될 예정이다.

“여기 보시면 소유자 항목에 ‘볼트 디벨로’라고 돼 있잖아요. 그 옆에 투자자라는 항목에 루드겐 마이어라는 이름이 있고요.”

“그렇구나.”

“쭉 내려가서 특약 사항을 살펴보면 ‘소유자는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고 운영권자는 수익의 60%를 투자에게 지불하게 돼 있어요. 나머지 40% 가지고 건달패거리와 소유자가 나누는 것이죠. 이게 왜 이렇게 복잡하게 돼 있는지 아시겠어요?”

이유는 외국인의 투자는 허락하지만, 재산의 소유를 금지하는 리베의 정책 때문이었다.

하여 본래의 소유주인 루드겐 마이어는 투자자로 돼 있고, 볼트 디벨로라는 사람이 소유주로 등록돼 있는 것이다.

그 볼트 디벨로의 정체가 바로 연금 조합장.

루드겐 마이어는 대리 소유주인 볼트의 권한을 특약으로 제한시켜 버렸다.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한 안전장치인 것이다.

그렇게 대리 소유자를 내세우고 푼돈에 만족할 건달패거리를 운영권자로 들여앉혔다.

그리고 그 건달패는 리베의 권력층인 볼트가 알력 행사로 조정한다.

나쁘지 않다.

서로가 서로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고, 다른 짓 못하도록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다.

그런데 이것에는 커다란 맹점이 있다.

“흠, 나는 잘 모르겠네만.”

계속되는 나의 설명에 게브네는 애먼 귓불을 잡아당겼다.

그에 나는 특약 항목을 가리키며 핵심을 끄집어냈다.

“보시면 소유자와 투자자 모두가 운영에 관여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안전장치는 여기서부터 덫으로 변한다.

소유권자가 운영이 금지당한 상태에서 운영은 모두 운영권 소지자에게 일임되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애초에 운영에 참여할 자리가 없었으니 현 상태에선 그 누구도 철광산을 운영에 개입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오직 나 한 사람뿐.

“지들끼리 합을 맞추고 있을 때야 좋았겠죠. 한데 이제 와서는 저를 내치지도 못해요.”

두 사람 다 그럴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재산을 지키기 위한 편법이 이제와 제 발등을 찍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서로 믿고 맡겼으면 이런 허점이 없었겠죠.”

원래 나쁜 놈들이 나쁜 놈을 알아보는 것 아니겠나.

처음부터 대리 명의자에게 맡기고 수익 분배와 매매 불가 항목만 설정했어도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루드겐 마이어는 말 잘 듣는 개가 필요했지만, 그러기에 연금 조합장은 욕심이 너무 큰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철광산이란 거대한 이권 사업이니 공권력도 필요했을 테니까.

위험한 파트너를 맞이한 루드겐 마이어는 그렇게 스스로 함정을 파고들어 갔다.

키우던 개를 바꿔 가며…….

“하기야 누가 감히 자네 같은 생각을 했겠나. 리베의 권력층이 소유자인데.”

이제와 또 다른 개를 키울 생각이라면 빅터급은 돼야 할 것이다.

나는 이미 주인을 물어 버렸고, 쉽게 자릴 내줄 생각은 없으니까.

“누가 알아요? 운영권자 바뀌고 나서 수익이 더 올라갈지.”

그러니 그냥 찌그러져서 내가 주는 수익 분배나 얌전히 받아먹으면 되는 것이다.

“허허,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군.”

“계산이 빠른 놈들이면 어찌해야 할지 알겠죠. 어느 길이 쉽고 편할지.”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유통의 독점을 막는 것뿐.

놈에 대한 과거의 은원은 뒤로 미뤄 둔 상태이다.

당장 어쩔 방법도 없고.

하지만 나를 건드린다면, 그때는 철저히 파고들어 되갚아 줄 생각이다.

광산의 비리를 넘어 어머니의 죽음까지.

그 와중에 놈의 이름이 나온다면…….

‘죽는 거지.’

브라함과 전쟁을 해서라도 놈의 목숨은 거둬 갈 것이다.

“한데 용병 조합은 어찌할 생각인가. 조합장 후보를 물색하는 것도 힘들겠지만, 용병들의 지지도 필요할 텐데.”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용병들이야 말로 힘으로 다스리기 가장 좋은 사람들이라고.”

“흐음…….”

게브네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을 대신했다.

어째 살짝 못 믿는 눈치랄까.

“용병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방법이 있으니까. 그리고 착실한 조합장 후보도 이미 물색했으니 등 돌린 조합원들이나 다시 챙기세요.”

철광산 운영권을 챙긴 나는 대장간을 나와 용병 조합으로 향했다.

시간 끌 일도 아니고.

10년째 후임을 못 찾은 조합장에게 새로운 인재를 소개해 줄 생각이었다.

싹싹하고 정리 정돈 잘하는 사람.

거기에 집념도 있고, 오기도 있는 사람.

“가자 한스.”

여전히 부운 인중을 만지며 한스와 그의 아내는 나의 뒤를 따라나섰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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