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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 99개-94화 (94/203)

94화

철광산의 위치는 멀지 않았다.

지척까지는 아니지만, 구시가지가 있는 북문으로 나가서 두 시간이 채 안 걸렸으니 최적의 위치라 할 수 있었다.

거리가 가깝다는 건 운송비가 적게 든다는 얘기니까.

수입하기도 힘든 철광석을 이렇게 가까이 두고 얻을 수 있으니, 리베의 대장장이 조합은 축복받았다 말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모양일 뿐.

실상은 건달패거리들이 장악한 채 담합에 앞장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여 지금 응징하러 간다.

돕고 싶은 사람이 이놈들 때문에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난 원래 그런 놈이다.

내 사람 다치는 꼴 못 보고, 욕먹는 거 못 참는다.

세비앙에 있을 때도 영주의 기사들과 종종 부딪치곤 했다.

데릭에게 쓴소리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

물론 평민인 내가 늘 사과하고 끝이 났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늘 대들었다.

한데 대상이 건달패라니.

‘거, 사람 잡기 딱 좋은 날이군.’

화창한 하늘을 보며 나는 기분 좋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멀뚱히 바라보는 놈들을 향해 다짜고짜 주먹을 내질렀다.

“다 뒈졌어.”

죽일 순 없으니까.

이런 놈들에게 해머를 휘둘렀다간 밟혀 죽은 벌레마냥 죄다 터져 버릴 게 빤했기 때문이다.

“뭐, 뭐야, 이 자식은?!”

“보면 모르냐.”

나는 진심을 가득 담아 놈들의 아가리를 날렸다.

“끄어어어억!”

그야말로 맞고 뒈져라 이거다.

“이 양아치 새끼들이 장인 정신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한때 쇳밥 좀 먹었던 사람으로서 놈들의 행패가 매우 거슬렸다.

― 우리가 누군 줄 알아! 앙?!

대장간 생활 10년간 지긋지긋하게 듣던 소리였다.

물론 그때마다 나의 완력은 빛을 발했고.

― 뭐, 뭐야 이 자식은?

그때도 지금처럼 놈들은 나의 정체를 궁금해 했다.

“니들이 장인 정신을 알아? 어?!”

게브네 같은 절정의 장인이 이런 놈들의 행패에 굴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무릎 꿇어 새끼들아!”

나는 제압된 놈들을 향해 보란 듯이 고함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하나, 둘, 셋. 넷…….

세어 보니 모두 합해 여섯 명.

때로 몰려다닐 땐 뭐라도 된 줄 알았겠지만, 어차피 일반인이다.

놈들 손에 무기가 있건 없건, 오러가 없는 이상 나의 상대는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있다고 한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겠지만.

하지만 가끔은.

“이 자식 봐라?”

상황 파악이 늦은 놈들이 하나씩 나타나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놈들은 진부한 대사를 날린다.

“겁도 없이 우리 애들을 건드려?”

이런 하찮은 내용을 담아서 말이다.

나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찮은 놈.”

나처럼 주먹을 날리는 훤칠한 여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끄어어어어…….”

별의 주먹에 인중을 강타당한 놈은 뻣뻣하게 굳은 채 대짜로 쓰러졌다.

“이쪽은 전부 정리됐다.”

“오∼ 수고했어.”

그렇게 우리는 철광산의 입구를 정리했다.

[인간과 결투에서 승리.]

진행도 : 6/50

자, 이제 나머지 44명을 채우기 위해 이동할 차례였다.

하지만 이 광산은 제법 규모가 컸다.

이곳은 고작 입구일 뿐이고, 안쪽으로 인부들이 생활하는 작은 마을과 갱도 입구가 네 군데나 뚫려 있었다.

그러니 이 넓은 곳을 일일이 헤집으려면 얼마나 귀찮겠나.

“일어나 봐.”

나는 기절한 놈에게 다가가 가볍게 흔들어 깨웠다.

하나 녀석은 묵묵부답.

“눈 뜬 거 다 알거든.”

미동도 없는 녀석을 향해 타이르듯 얘기했다.

그러나 인중이 퉁퉁 부은 놈은 끝까지 저항하며 의식이 없는 듯 행동했다.

“완전히 기절했나 보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나는 손가락을 곧게 펴 녀석의 뺨에 십자 모양을 그렸다.

“자는 거 맞지?”

그리곤 표적을 향해 찰진 귀싸대기를 내려쳤다.

쫘악!

경기를 일으키며 움찔하는 인중 녀석.

“잠이 깊게 들었나 보네.”

쫘악!

나는 같은 자리에 대고 한 번 더 귀싸대기를 날렸다.

녀석의 뺨은 새빨갛게 부풀어 올랐고.

“크아암… 잘잤…….”

그제야 녀석은 하품을 하며 부스스 눈을 떴다.

하지만 늦었다.

“이런, 아직도 눈을 못 뜨는군.”

나는 동그래진 녀석의 눈을 감기며 또다시 귀싸대기를 내리쳤다.

쫘악!

“저 눈 떴…….”

쫘악!

“아니 눈 떴다고…….”

쫘악!

“크어어어억!”

쫘악!

“살려주십쇼, 형님!”

잔머리엔 매가 약.

벌떡 일어난 녀석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왜? 좀 더 자지 않고?”

“완전 푹 잤습니다! 여기 침까지 질질 흘렸잖습니까!”

놈은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아 내며 초롱초롱 눈빛을 반짝였다.

“잘잔 거 맞아?”

“네! 꿀잠이었습니다!”

녀석은 큰 소리로 답하며 고개를 처박았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요점만 간단히 답해라. 알겠지?”

“말씀만 하십쇼, 형님!”

녀석은 빠릿빠릿하게 대답하며 두 손을 무릎 위로 올렸다.

“너희 두목 이름.”

“브루스입니다!”

“어디에 있어.”

“마을 안쪽 가장 큰 집에 있습니다!”

“누구랑 있는데.”

“함께 사는 여인 세 명과 경호원 열 명이 있습니다!”

“다른 놈들은.”

“마을 입구 초소에 열 명, 갱도에 있는 초소마다 여덟 명씩 있습니다!”

“일어서.”

“넵!”

“이놈들 다 묶어.”

“맡겨 주십쇼!”

인중이 부은 녀석은 재빠르게 움직이며 기절한 놈들을 결박했다.

심지어 입구 초소 한쪽에 예쁘게 모아 놓고는.

“모시겠습니다!”

활기찬 외침과 함께 다음 초소로 이동했다.

인중의 안내는 신속했다.

인적 없고 빠른 길을 골라 녀석은 성큼성큼 앞으로 나갔다.

“저쪽입니다!”

굽이진 산자락을 돌자 갱도의 입구가 보였다.

그리고 그곳엔 새로운 목적지인 초소가 덩그러니 모습을 드러냈다.

“계속 가.”

멈춰 선 녀석을 떠밀곤 자리를 지키며 기다렸다.

의심이랄까.

녀석이 배신한다면 이쯤일거라고 생각했다.

놈들의 영역으로 깊게 들어오기도 했고 초소 사이의 간격은 줄어든 탓이었다.

뭐로 보나 녀석이 배신할 확률은 100%.

하지만 인중 녀석은 그런 나의 기대를 무참히 외면했다.

“이봐, 두목이 빨리 모이래! 늦는 초소 각오하라니까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초소로 다가간 녀석은 대뜸 큰소리로 외쳤다.

웃기는 건, 그 순간 초소 안의 놈들이 허겁지겁 달려나왔다는 거다.

익숙한 상황이라는 거겠지.

튀어나온 놈들은 앞뒤 안 가리고 마을 쪽으로 향했다.

하나 산자락 모퉁이에서 기다리는 건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나의 주먹이었다.

빠아악―

달려오던 놈은 수평으로 떠올라 그대로 떨어졌다.

그 한 방에 거품을 물고 기절했고, 줄줄이 뒤를 따르던 놈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됐다.

운 좋게 나의 주먹을 피해 간 놈도 있었지만.

“하찮은 놈.”

그곳엔 믿음직스런 별이 불꽃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이렇게 상황은 간단하게 종료.

인중 녀석은 신이라도 마주한 듯 눈을 빛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다음 장소로 모시겠습니다!”

인중 녀석의 활약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두 번째 초소에서도 그랬고, 세 번째 초소에서도 녀석의 재치는 빛을 발했다.

초소에 없는 놈들이 어디 있을지, 하나하나 예측해 가며 빠짐없이 소탕을 도왔다.

“왜 이렇게 열심히 도와? 그래도 한솥밥 먹던 사인데 너무 신나 있는 거 아니냐?”

“한솥밥을 먹긴 했는데, 좋아서 먹은 건 아닙니다.”

“그럼 왜 여기 있는데?”

“이런 짓을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기사가 되겠다며 집 떠났는데 오러에 재능은 없고, 먹고 살 길은 막막하고, 어딜 가도 푸대접이고… 뭐 그런 놈들이 떠돌다 보면 이렇게 모여드는 거 아니겠습니까.”

“너도 그렇다는 거야?”

“뭐… 비슷합니다.”

인중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걸음을 이어 갔다.

“여기 네 번째 초소에는 검 좀 쓰는 놈들이 있습니다. 속 썩이는 광부들을 죄다 이쪽으로 모아 놔서 초소 놈들도 실력이 제법 됩니다. 조심하십쇼.”

주의를 당부한 인중은 초소로 다가가 놈들을 불러냈다.

결과는 비슷한 상황.

허겁지겁 달려나온 놈들은 불나방처럼 차례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엉? 뭐야 이놈… 쿠억!”

녀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나의 주먹이 놈의 턱주가리를 돌려 버렸으니까.

하나 인중의 경고처럼 이곳의 놈들은 확실히 움직임이 달랐다.

뭐, 대단한 건 아니었고.

“이 새끼가 배신을?”

최소한 사리 분별할 정도의 여유는 갖추고 있는 정도였다.

“와… 예사로운 분들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에 인중은 혀를 내두르며 기절한 놈들을 결박했다.

작업은 신속하게 마무리됐고, 역시나 이 녀석들도 가지런하게 줄 맞춰 뉘어졌다.

그냥 성격인 듯싶었다.

정리 정돈 좋아하고, 뭐 하나 하면 깔끔하게 마무리돼야 기분 편해지는 그런 거 있잖은가.

아무튼 인중은 마을 초소를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이어 갔다.

“그런데 이 정도 실력이 전부야? 이 실력으로 광산을 지키긴 힘들었을 것 같은데. 너희가 소유한 것 맞아?”

인중의 말처럼 건달패란 게 여기저기서 실패한 녀석들이 모여든 건 맞다.

따라서 실력의 순도가 낮은 건 당연하고, 그런 녀석들이 어깨에 힘줄 수 있는 영역이란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게 현실이다.

기껏해야 시골 마을 술집이나 주름잡는 게 전부일 터.

그런 녀석들이 철광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전제였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물론입니다. 원래 벅스라는 패거리가 운영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저희가 뺏은 거죠.”

건달패의 논리 자체가 힘으로 빼앗고, 힘에 빼앗기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법을 어기는 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인 만큼 그들의 피해 역시 법은 보호해 주지 않는다.

당연히 그들의 재산은 늘 다른 패거리의 표적이 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선 합당한 무력이 요구된다.

그러니 이토록 약한 건달들이 철광산 같은 걸 소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저처럼 약한 놈들이었지만, 마을 초소부터는 정말 달라질 겁니다. 벅스 패거리와 싸웠던 사람들은 마을 초소와 경호원들이거든요.”

“그래?”

“네. 특히 경호원들은 모두 오러 유저들입니다. 엄청나게 강하죠. 어지간한 기사단에도 밀리지 않을 겁니다.”

오호라…….

이렇게 된다면 녀석들의 행보가 이해된다.

그 정도 실력은 돼야 이 바닥에서 살아남아 자신들의 것을 지켜 낼 수 있을 터.

“아참, 아까 소유했냐고 물어보셨는데 저희는 운영권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소유는 다른 귀족이 하고 있죠.”

“흠, 그렇단 말이지.”

“네. 원래 운영권을 가지고 있던 벅스가 말을 잘 안 들었는지. 광산의 소유주가 브루스에게 공격하라고 시키더군요. 우리가 벅스를 이겨서 새로운 운영권자가 된 겁니다.”

녀석들은 건달패다운 완벽한 기생을 이어 가고 있었다.

한데 놈들의 숙주는 누구란 것일까.

방금 녀석이 귀족이라고 말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리베는 귀족 사회가 아니다.

각 조합의 조합장과 그들의 대표인 단체장이 지도층의 전부일 뿐.

“소유자가 누군지 알아?”

귀족이 관여했다면 상황은 자연스레 다음 단계로 이어진다.

그 단계의 정체는 불법으로 취득한 철광산의 소유권.

“루드겐 마이언? 얼? 일전에 두목과 간부들이 하는 얘길 얼핏 들었는데 정확하진 않습니다.”

상관없다.

그놈의 정확한 이름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이게 이렇게 이어지나…….”

아무래도 연금 조합장은 줄을 잘못 잡은 것 같았다.

하필이면 루드겐 마이어라니.

“이러면 진심으로 가야지.”

놀러 오듯 찾아왔는데 제대로 한판 붙게 생겼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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