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들어선 동굴의 모양은 예전과 같았다.
사실 벽을 파고 들어가서 동굴이지, 이곳은 창문 없는 실내처럼 반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빼빼한 놈 혼자뿐인가.’
아직까진 인기척이 없었다.
그리 깊은 동굴은 아니니 방심하긴 이르지만, 어쨌거나 지금까진 사람의 모습이 따로 보이지는 않았다.
‘흠.’
기억에 따르면 여기가 마지막 코너다.
이곳을 지나면 연구실 같았던 이상한 공간이 나타날 것이다.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지가 관건인데…….
무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잔인한 결과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조심하는 이유는 로제 때문일 뿐.
조용히 빠져나갈 수 없다면 차라리 다 해치우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
코너에 도착한 나는 벽에 바짝 붙어 안쪽 상황을 살폈다.
목표는 대각선 방향.
일단 시선이 닿는 곳은 아무도 없었다.
하여 좀 더 안쪽으로 시야의 범위를 넓히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최대한 기척을 줄이며 머리를 내밀었다.
상황은 순조로웠다.
…는 개뿔!
“전 못 봤습니다!”
연구실 내부에 있던 남자는 양손을 치켜들며 두 눈을 꼭 감았다.
‘아, 놀래라.’
어째 몰래 숨어든 사람이 더 놀라는 걸까.
스스로도 어이없어 썩은 표정을 지으며 내부를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사람은 이 남자뿐이었다.
“누구신지 얼굴도 못 봤고,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필요하신 게 있으면 들고 가시고, 궁금한 게 있으면 빨리 처물어보고 나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지금 보유한 저의 재화는 90실버뿐이니 더 많은 재화가 필요하면 나가서 다른 놈들을 족치시길 추천드립니다.”
말을 마친 남자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은화를 꺼내 놓았다.
참으로 특이한 놈이다 싶던 순간.
“설마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알고 찾아오신 겁니까, 아니면 쥐뿔도 모르고 왔다가 이 지경이 된 겁니까? 뭐가 됐건 바깥에 사람이 있었을 건데 재주도 좋으시군요. 이곳을 어떻게 들어오셨을까요? 그놈들은 단체로 꽃놀이라도 나간 걸까요? 그게 사실이라면 죄다 마인을… 오우,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시면 목숨이 위험해지실 겁니다. 아무튼 말할 수 없는 것 빼곤 다 말씀드릴 테니 시간 끌지 말고 후딱 진행합시다. 저는 보기보다 바쁜 사람이니까요.”
마치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빼빼 마른 이 남자는 쉴 틈 없이 말을 쏟아 냈다.
내뱉는 말이 무기가 된다면 이 자식은 살인마가 될 지도…….
“여긴 뭐하는 곳이지?”
어쨌건 나는 첫 번째 질문을 건넸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저의 연구실입니다.”
예상했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문제는 무엇을 연구하는 곳인가… 라는 건데.
“그걸 알게 되시면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남자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내가 보기엔 네 목숨이 더 위태로운 것 같은데, 내가 여길 어떻게 들어왔을 것 같아?”
나 역시 협박으로 응수했고.
“오호∼ 입구에 있던 네 명을 다 해치우신 겁니까? 대단하시군요.”
남자는 감탄한 듯 호들갑을 떨며 나의 말에 대답했다.
한데 이걸 어쩌나.
“잔대가리 굴리지 마. 여섯 놈 다 작살내고 들어왔으니까. 일곱 명째가 되고 싶지 않으면 처신 똑바로 하라고.”
“어이쿠…….”
진위를 살피려던 남자의 계획은 허무하게 간파 당했다.
사람을 뭘로 보고 말이야.
“아직 대답 안 했다.”
나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놈의 대답을 요구했다.
“어쩔 수 없군요. 대답하든 안하든 보통 이런 상황에선 무조건 죽게 마련이죠. 하지만 순순히 대답해 줄 경우 살아날 확률이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머리카락 한 올만큼이라도 높은 바……. 이곳이 뭐 하는 곳이냐는 질문에 대해 저는 강화 인간을 연구하는 곳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강화 인간?”
“네. 굳이 마나를 가지고 지랄 발광을 떨지 않아도 승급이 가능하게 해 주는 은혜로운 비법이죠. 자아가 사라져 아무 생각 없는 게 단점이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 알고 싶은 게 있나요? 원하신다면 이대로 밤을 새울 수도 있습니다만.”
이 얘길 믿어야 하나?
너무 화끈하게 떠들어 대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정말 순순히 대답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을 끌기 위해 대충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지만.
이 남자가 보통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게 알 것 같다.
“좋아.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버섯 농장 사람들은 왜 끌고 온 거야? 이 일대에 마인을 만든 거, 다 너희들 짓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하나 그런 남자도 이 부분에선 대답을 회피했다.
“장난해? 마인 얘기를 먼저 꺼낸 건 너야.”
“그런 적 없습니다. 제가 하도 말을 빨리해서 잘못 들으신 것 같군요. 본래 인간의 청력이란 듣는다는 것 외에도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들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 법입니다. 지금 같은 경우엔 아무래도 후자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눈 떠.”
“어림없지요. 저는 당신을 본 적이 없습니다.”
“뭐, 눈감고 죽으면 더 편할 수도 있겠네.”
나는 일부러 바닥을 긁어 남자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어차피 기다리다 보면 다른 놈이 나타나겠지. 한 놈씩 족치다 보면 답은 나올 거고, 안 나오면 안 나오는 대로 놔두면 돼. 이런 기분 나쁜 곳이 없어지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니까.”
그리고 남자의 말투를 흉내 내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정말 후회하실 텐데요.”
“너도 후회하게 될 거야.”
다시 시작된 남자의 경고에 나 역시 같은 말로 대답했다.
아예 듣지 못했다면 모를까.
마인이란 말을 들은 이상, 대답을 듣기 전엔 물러설 수 없었다.
“마지막 기회다. 마인을 만든 건 너냐?”
“…….”
그냥 술술 뱉어 내면 좋았을 것을.
빼빼 마른 남자는 대답 대신 힘든 길을 택했다.
원하는 대로 해 줄 수밖에.
나는 해머를 들어 남자의 발등을 겨냥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렇다고 해 두죠.”
남자는 두 눈을 감은 채 나의 말에 대답했다.
운 좋은 자식.
이 녀석도 카리프처럼 운이 좋았다.
나의 해머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1초만 늦었어도 남자의 발등을 박살 냈을 것이다.
“이유는?”
“마석이 필요해서입니다.”
“마석이 뭔데? 마력석과는 다른 건가?”
“다르죠. 마나가 응축되어 만들어진 것이 마력석이고, 마기가 결정을 이룬 것이 마석입니다. 둘 다 숙주의 몸을 빌려 만들어지지만, 성장 속도는 마석이 좀 더 빠른 편입니다.”
“그걸 위해서 마족의 뼈를 사용했겠네? 마인을 만들어야 하니까.”
“호오… 제법 많이 알고 계시는군요.”
이왕 버린 몸이라는 건가.
열려 버린 남자의 입은 거침없이 사실을 쏟아 냈다.
“보아하니 뒷조사를 하신 것 같은데 더 알려드릴 게 있습니까?”
“있지.”
빈정대듯 답하는 남자의 말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마지막 의문점.
“카리프가 이 일을 꾸민 거냐?”
뻣뻣이 서 있는 남자를 향해 아껴 둔 이름을 비수처럼 꺼내 들었다.
“호… 그 이름도 아시다니 정말 놀랍군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카리프는 저희의 고객일 뿐입니다.”
“고객?”
“네. 저희의 힘을 빌리고 싶어 하시는 거죠. 이 땅의 주인인 마론 후작의 아들도 비슷한 처지라고 해 두겠습니다. 이제 됐습니까? 이 정도면 저의 목숨값으론 충분한 것 같습니다만.”
대답을 마친 남자는 뒤로 돌아섰다. 그러고는 손을 내려 자신의 무릎에 조용히 올려놓았다.
“자, 저는 이제 눈을 뜨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요?”
분위기를 바꾼 남자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화의 끝을 요청했다.
더 이상 협조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지의 표현.
“후회할 각오가 되신 것 같으니 알려 드리죠. 저의 이름은 사마르… 볼일이 생기시거들랑 사라센 흑마탑으로 오시면 됩니다. 물론 그럴 만한 용기가 있다면요.”
남자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노골적인 도발을 했다.
마치 넌 앞으로 뒈졌어… 라는 분위긴데.
“딱 셋까지 세고 돌아보겠습니다. 그 이후로는 되돌릴 수 없을 테니 알아서 하시죠.”
남자는 압박하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결국 세 번의 기회는 그렇게 사라졌다.
무슨 배짱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남자의 얼굴은 천천히 움직이며 나를 향해 돌고 있었다.
감히 어딜.
빠악―
날아간 나의 주먹에 남자는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정보의 신뢰성에 대해 수많은 갈등이 오갔지만, 뾰족한 해법은 없었다.
기절한 남자는 물론이요, 연구실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특이점은 없었다.
남자의 돈은 정말 90실버가 전부였고, 버섯 농장과 연관시킬 만한 단서는 안타깝게도 찾을 수 없었다.
애초에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없으니까.
생김새와 옷가지는 물론이고, 피해자를 특정할 만한 단서가 나에겐 없었다.
‘너무 서둘렀나.’
뒤늦은 아쉬움이 몰려왔지만, 그 또한 의미 없는 후회였다.
어차피 이곳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유일한 단서는 이 남자와 작은 결정 하나뿐.
손가락만 한 이것이 남자가 말한 마석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결정을 해야 했다.
시간은 제한적이고,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남아 있는 고민은 이 남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대로 놔두고 가도 되는 걸까?
사건의 중추인 것 같은데?
이 남자의 업무인 강화 인간으로 인해 일련의 사건이 이어졌다.
강화 인간을 만들기 위해 마석이 필요했고, 마석의 출처는 마인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이 시작됐다.
먹이사슬의 말단인 마인을 만들기 위해 변두리 마을 주민들이 봉변을 당했다.
이 모든 얘기가 지어낸 것들이라고?
그 모든 걸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엔 왠지 신경이 쓰였다.
왜 그런 것 있잖은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믿고 싶어지는 그런 거.
“흠…….”
고민하던 나는 결심했다.
이 남자를 납치하기로.
어차피 당장은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까.
그저 남자의 증언만 있을 뿐.
누가 함께 들어준 것도 아니니 나중에 부인하면 그 또한 의미 없음이다.
그러니 연관된 무언가를 찾을 때까지 이 남자를 붙잡아 둬야 한다.
뒷일이야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했다는 증거만 없으면 되는 거다.
하여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가 결박을 시작했다.
손을 꽁꽁 묶고, 입에 재갈을 물렸다.
한데 뭔가 이상했다.
반응이 없다고 해야 하나.
“어이.”
결박을 당한 남자는 미동도 없이 엎어져 있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고개를 바닥에 처박은 채 기분 나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물론 기절한 상태니 그럴 수도 있다.
그러려니 했는데.
“안 일어나?”
이 남자의 반응은 심각할 정도로 둔했다.
일부러 반응하지 않거나, 아예 할 수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손가락을 뻗었다.
그리고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봐야 했다.
“죽었어?”
이 남자는 숨을 쉬지 않았다.
코끝에 들이민 손가락에선 그 어떤 숨결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작 주먹 한 방이었는데.
맥박을 확인하고 심장에 귀를 대 봐도 이 남자의 생명 반응은 느껴지지 않았다.
죽었다.
확실하게 사망했다.
“하…….”
예기치 않았던 갑작스런 상황에 나는 깊은 탄식을 뱉으며 얼굴을 구겼다.
뭔가 중요한 손잡이를 잡은 것 같았는데.
문이 열리기도 전에 손잡이는 부러져 버리고 말았다.
밀려오는 당혹감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순간.
“나가자. 시간이 없다.”
병사들을 따돌리고 온 별이 다급한 표정으로 철수를 재촉했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