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페드로가 언급한 문제의 재료는 귀신버섯이라는 약재였다.
성장 조건이 워낙 까다로운 탓에 자연산은 거의 유통되지 않는 상태라고 한다.
하여 사람의 손에 재배된 것이 대부분인데, 그 버섯 농장에서 사건이 생긴 것이다.
“사람들이 왜 미쳐?”
“그러게요. 이유도 없이 일꾼들이 전부 이상해졌데요.”
결국 버섯 농장의 운영은 중지됐다고 한다.
한두 명도 아니고, 일꾼 전부가 그렇게 됐다니 어쩔 도리가 없었을 터.
“쩝… 언제 다시 유통될지 기약도 없는 거네.”
아쉬운 마음에 쓰게 혀를 차며 별을 바라보았다.
뭔가 좋은 예감이 들었었는데.
이대로 기회를 날리기엔 아쉬움이 너무 컸다.
“그럭저럭 유통이 되던 재료라고 했으니 다른 나라에도 있을 거잖아. 아직 한 달 정도 시간이 남았으니 후딱 다녀오면 되겠네.”
뭉그적대봐야 흐르는 건 시간뿐.
말나온 김에 바로 출발을 준비했다.
“근데 아리안에는 없을 거예요. 이 농장에서 생각되는 귀신버섯이 아리안과 리베에 공급되는 거니까요.”
“엥?”
이렇게 되면 카잔까지 가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바꿔 말하자면 반투족 흉내를 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팬티 바람은 안 되지.”
“네? 그게 무슨…….”
어리둥절하는 페드로를 보며 나는 또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 농장에 가 보면 아직 재배 중인 게 남아 있지 않을까?
맞잖은가.
가을 추수하듯 싹 걷어 내는 게 아니라면 분명히 남은 게 있을 것이다.
아직 덜 자랐거나 수확 시기를 놓친 그런 것들.
“물론 그렇겠죠. 그런데 남아 있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치료 때문에 다들 이송됐고, 농장은 완전 폐쇄됐다고 들었어요.”
“흐음…….”
그 와중에 들어가면 무단 침입이다.
즉, 도둑질을 하게 되는 것인데…….
“몰라. 일단 가 보면 알겠지.”
나는 또다시 무적의 답을 내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 쓰는 놈이 고민 많이 하면 탈 나는 법이니까.
어차피 카슈타르와 가까운 곳이니 산자락 마을에 두고 온 말도 겸사겸사 챙겨 오면 좋을 것이다.
“얼마나 필요하지?”
“많이는 필요 없어요. 대충 손바닥만 한 녀석으로 열 개 정도만 채취하시면 될 것 같아요.”
“좋아, 다녀와서 보자고.”
수량을 확인한 나는 가방과 해머를 챙겨 농장으로 향했다.
* * *
“날씨 좋군.”
“그러네. 요즘 들어 부쩍 구름이 커진 것 같아.”
버섯 농장으로 향하는 나와 별은 산책하듯 가볍게 길을 걸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다 필요한 짐도 없고, 담아 올 재료라 봐야 고작 버섯 10개다.
현장 상황이야 도착해 봐야 알겠지만, 설마 버섯 10개가 없을까.
긍정에 긍정을 더한 우리의 여정은 순조롭게 계속되어 낮은 산자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산자락에는 목책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숲이 있었다.
“저건가 보다.”
하루가 넘는 일정 끝에 우리는 문제의 농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뭔가 기대를 하고 온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아무도 없는 것 같네.”
“그렇군.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거리를 두고 바라본 버섯 농장은 버려진 폐가처럼 을씨년스러웠다.
꽤 오랫동안 방치된 느낌이려나.
폐쇄된 기간에 비해 농장의 상태는 훨씬 더 심각해 보였다.
“이 정도면 사람 손 안 탄 지 제법된 것 같은데?”
“동의한다. 최소 한 달 이상 방치된 게 분명하다.”
사람들이 이상해졌다더니, 정말 일은 안 하고 지켜보기만 했나 보다.
어쨌거나 찾아온 목적은 이뤄야 할 터.
똑똑―
닫힌 농장의 문으로 다가가 혹시 모를 인기척을 기다렸다.
“역시 없는 것 같지?”
“그렇다.”
반응 없는 문고리를 붙잡아 슬그머니 밀었다.
그냥 확인 차원이었다.
어차피 열릴 걸 기대한 건 아니었으니까.
끼이이익…….
하지만 농장의 현관문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열려 버렸다.
이쯤 되니 정말 수상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사정이 있어 운영을 중단했다지만, 이런 건 좀 이상하지 않나?
보통은 문을 잠가 둘 텐데 말이다.
폐쇄됐다는 버섯 농장은 사실상 버려진 것 같은 느낌으로 방치돼 있었다.
이래서야 무단 침입이란 말이 울고 갈 판.
안으로 들어선 우리는 집무실을 나와 지척에 있는 재배지로 걸음을 옮겼다.
“와… 잡초 올라온 거 봐라.”
재배지로 이어지는 길은 이름 모를 들풀로 가득했다.
잡초는 무릎까지 자라 있었고, 도착한 재배지 사정은 더욱 심각했다.
야생 상태라고 해야 하나.
“채취를 아예 안 했네.”
재배지에는 채취되지 않은 귀신버섯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물론 관리되지 않아 죽은 놈들이 절반이지만.
“일단 열 개 먼저 챙기고.”
개중에 멀쩡한 버섯을 골라 차곡차곡 가방에 옮겨 담았다.
이걸로 목표는 달성되었다.
본래 버섯 대금을 두고 갈까 생각도 했었지만, 의미 있는 행동이 될 것 같진 않다.
이곳은 말 그대로 버려진 곳이니까.
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재배지를 둘러보았다.
‘분명 어디서 봤는데.’
경험한 적 있는 비슷한 느낌에 머릿속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불투명한 기억이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교차되는 기억들을 헤집으며 일치하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지우고.
또 지워 낸다.
그렇게 범위가 좁혀지며 특정한 접점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마침내 선명해진 기억.
“옹달샘 마을…….”
“그 마을과 똑같은 상황이군.”
나와 별은 똑같은 장소를 떠올리며 서로를 향해 얘기했다.
그리고 우리는 버려진 농장 건물로 다가가 숙소의 문을 열어젖혔다.
쾌쾌한 냄새가 코끝을 타고 기분 나쁘게 전해졌다.
두말할 것도 없었다.
방으로 들어선 별은 망설임 없이 다가가 침대를 뒤집어엎었다.
“하… 이럴 줄 알았네.”
뒤집힌 침대에서 발견한 것은 일전에 발견했던 마족의 뼈였다.
옆방으로 들어간 나는 그곳의 침대도 뒤집어엎었다.
“쯧…….”
그뿐만이 아니었다.
옆방도.
또 그 옆방도.
버섯 농장의 모든 숙소엔 마족의 뼈가 숨겨져 있었고, 식수를 보관하는 물통에도 교묘하게 감춰 두고 있었다.
“가자.”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 버섯 농장의 인부들은 미친 게 아니라 마인이 된 것이었다.
‘이곳까지 뻗었다는 건 카슈타르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당사자를 찾아야 한다.
아직 대화를 나눌 지성이 남아 있다면 작은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농장을 나온 우리는 관할 지역의 촌장을 찾아가 일꾼들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치료 때문에 이송됐다고 했으니 이곳에 오면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나 돌아온 촌장의 대답은 실망스러웠고. 나의 머리를 더욱 심란하게 만들었다.
“어디로 갔는지 저희도 모릅니다.”
사라진 것이다.
치료를 위해 이동했다는 농장의 인부들은 정체불명의 사람들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데려갔다는 사실도 저희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연락이 온 건가요?”
“아니요.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이 우연히 발견해서 알게 된 겁니다.”
이어진 촌장의 말은 나에게 한 가지 결론을 떠올리게 했다.
바로 계획적인 납치.
이들은 누군가에 의해 마인이 되었고, 비밀리에 어디론가 끌려간 것이다.
“그분을 만나 볼 수 있을까요?”
“바로 뒤에 있네요.”
촌장은 문 너머를 바라보며 덩치 큰 남자를 가리켰다.
“피터입니다.”
소개로 마주한 사람은 피터라는 약초꾼이었다.
그날도 약초를 캐러 산으로 올라갔고, 돌아오는 길에 버섯 농장을 지나게 됐다고 한다.
“가끔씩 지나갈 때마다 떠들다 오곤 했죠. 다들 한 집 건너 알던 사이니까요.”
한데 그들은 뭔가 이상했다고 한다.
“저를 못 알아보더라고요. 말도 똑바로 못하고, 얼굴색도 영 나빠서 무슨 일인가 물어봤죠.”
“그랬더니요?”
“책임자쯤 되는 사람이 나타나서는 전염병이 때문에 시설로 데려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마차에서 괴성이 들리는 겁니다.”
피터는 표정까지 재현하며 생생하게 설명했다.
거기에 손짓과 몸짓을 더해서.
“크아아아아아! 이러는 거예요. 아니 무슨 전염병이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제가 봤을 땐 다 미친 것 같았거든요. 제가 미친 사람들을 몇 번 봐서 잘 알아요.”
그러고는 자신이 생각한 수상한 점을 열 올리며 얘기했다.
“그 사람들 기억하시나요?”
“생김새야 뭐 다들 비슷비슷해서… 갑옷도 다 제각각이고 그렇더라고요.”
피터의 설명은 거기까지였다.
인부를 실은 마차는 어디론가 향했고, 그는 이곳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인부들이 간곳이 시설이 아니라는 것은 다시 한번 증명됐다.
영지에서 나왔다면 모두가 같은 갑옷을 입었을 테니까.
타바드까지 착용했다면 소속된 이곳 마들레앙의 휘장도 선명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마을을 나온 우리는 산자락 마을로 향했다.
이제 카슈타르까진 반나절 정도의 거리가 남아 있다.
말을 되찾은 뒤 카슈타르에 상황을 전하고, 그길로 다시 리베로 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이상한 지점에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 * *
“여기가 왜 이렇게 막혀 있지?”
마지막으로 이곳을 지났을 땐 이렇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카리프와 싸웠던 날.
그때만 해도 노이의 사유지는 모두 개방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미친놈인가?”
소유한 토지 전체를 목책으로 틀어막았다.
도대체 이건 무슨 심보일까.
여기가 무슨 왕도라고 착각하는 건가?
게다가 이 땅은 쓸데없이 넓어서 돌아가려면 한참 걸린다.
하필 여기서 걸리다니.
딱 이 지역만 넘어가면 산자락 마을인데.
참으로 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 쓸모없는 놈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 기억나는가?”
“어디?”
“술이 추적했던 동굴 말이다.”
치미는 짜증이 정수리를 통과할 무렵, 별은 눈썹에 힘을 주며 예전 기억을 끄집어냈다.
“기억나지.”
“난 거기가 수상하다.”
별의 말마따나 그곳엔 어울리지 않는 도구들이 잔뜩 있었다.
마치 연금 상점을 연상시킨다고 해야 하나.
각종 유리병에 희한한 도구들.
거기에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잡기들이 인위적인 동굴 벽을 채우며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곳을 살펴보면 뭔가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맞아, 거기 좀 이상했어.”
나는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별의 말에 공감했다.
당시의 우리는 제논 백작에게 이 상황을 알려줬고, 백작은 꾸준히 관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막아 놨다면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이곳은 카슈타르 영지가 아니니까.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마들레앙과 카슈타르 사이에 있는 쓸모없던 공유지였다.
즉, 왕국 소유의 땅이었다는 것인데.
매입 과정이야 어찌됐건 요점은 바로 이거다.
이 땅에 대한 권리는 오로지 노이에게 있다는 것.
녀석의 허락이 없는 이상, 제논 백작이 들어와 살필 방법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니.
할 수 없다고 하는 게 좋겠다.
괜스레 무리했다간 외교적 마찰만 벌어질 게 빤하니까.
그러니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국왕이라는 존재뿐.
다만, 그에 대한 합당한 명분은 반듯이 갖춰야 할 것이다.
“흠…….”
목책을 바라보던 나는 잠깐의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나는 그 자식이 싫고.
또한 그 못지않게 싫은 놈이 저 안에 있을지도 모르며.
잘못 돼도 리베로 튀면 그만인 외국인이다.
그러니 이까짓 목책 따위.
“넘어가자.”
사뿐히 타 넘기로 결정했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