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미치겠다.
이 엄청난 타격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묘하게 달라진 이 움직임을.
폭발하는 힘을.
뭐가 크게 변한 것 같진 않은데 드러나는 결과는 극적이었다.
콰아아앙― 쾅!
콰과광! 콰광!
콰지지직!
상승된 15%의 신체 능력은 특별한 방법으로 나를 변화시켰다.
열 걸음을 가야 하는데 아홉 걸음 만에 끝이 났고, 애매하게 부족했던 힘은 이젠 너끈해졌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한 방으로 보내긴 역부족이고, 두 방을 날리기엔 힘이 남아도는 상황.
그런 어정쩡하던 부분이 채워지면서 한 방에 모든 것이 끝나 버리는 것이다.
목숨이 오가는 전투에서 저 한 방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었다.
박빙의 승부가 일방적인 공격이 되는 건 이런 미묘한 차이가 누적되는 것이었다.
콰지직―
바로 이렇게 말이다.
4m에 가까운 놈들의 체고도 성장한 나에겐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1m 높아진 만큼 나도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었고.
쩌어억―
놈들이 강해진 만큼 나의 힘도 강해졌다.
“또 변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군. 확실히 이번엔 더 미친놈 같았다.”
속사정을 모르는 별과 술은 전투에 대한 감상평을 이렇게 남겼다.
거기에 보태 부족장까지.
“인간이 아닐지도… 그는 살아 있는 메투스의 화신이 분명하다.”
나는 미친놈에서 메투스의 화신으로 승격했다.
화신까진 아니라 해도.
‘이 정도면 7성 초입은 넘었겠지?’
카리프와 싸웠던 당시보단 눈에 띠게 증가했다.
당시의 카리프가 7성의 초입이었으니 단순 비교한다면 내가 더 강할 것이다.
성장의 폭이 큰 7성의 특성상 초입과 중반, 그리고 완성에 따른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다 같은 7성이 아니라는 것.
“하여간 대단했다.”
전장을 둘러보던 부족장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 * *
설원 오우거를 정리한 나는 삼인조와 함께 워 울프의 둥지로 돌아왔다.
서리 오크 본거지로 가 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사체가 널브러진 그곳보단 누린내 나는 둥지가 훨씬 나을 거란 판단 때문이었다.
“그 녀석은 벌써 그대만 따르는군.”
새끼 워 울프 얘기다.
부족장의 말처럼 녀석은 나의 곁에 딱 붙어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내가 일어 서면 따라 일어 서고, 앉으면 그제야 엎드렸다.
의지할 곳이 필요했는지, 어미를 잃은 꼬맹이는 나에게 기대기로 마음먹었나 보다.
어차피 데려가려 했으니까 기왕 가는 거 이렇게 순하게 따라주면 여러 사람 편한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어영부영 보모가 될 판이었다.
“이리 와라 꼬마 전사여.”
나름 친밀함을 표현하지만, 돌아온 녀석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머쓱해하는 부족장은 물론이요.
“손!”
다짜고짜 교육을 시키는 별에게도 녀석의 반응은 똑같았다.
아르르르르르르.
그냥 무조건 ‘아르르’였다.
“이리 와.”
끼이잉 끼잉!
하지만 내 목소리만 들으면 녀석은 환장하며 낑낑댔다.
뭐가 그리 좋은 건지.
심지어 없어서 못 먹던 육포도 내가 주는 것만 받아먹었고, 다른 사람이 주는 것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한데 작은 변화가 있었다.
부족장과 별을 무시하던 녀석이 술이 주는 육포에는 슬쩍 관심을 보였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결국 술이 내민 육포를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하나 거기까지였다.
육포를 받아먹은 녀석은 술이 귀여워 하려 하자 어김없이 이빨을 드러냈다.
아르르르르르르…….
밥이나 내놔라 이건가?
술에 대한 꼬맹이의 태도는 집사를 대하는 앙칼진 꼬마 도련님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게 정말 효력이 있는 거야?”
물통을 챙기는 별을 보며 나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냥 물어보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이유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담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설원 오우거의 피를 담아 왔다.
식수까지 버려 가면서 말이다.
“소문일 뿐이지만 혹시 몰라서 챙겼다. 쉽게 찾아오는 기회는 아니니까.”
그에 별은 덤덤한 얼굴로 나의 질문에 대답했다.
몬스터의 혈액이라…….
사실 챙겨 올 물건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런 게 있다는 것도 나는 몰랐으니까.
하지만 부족장과 별은 쓰러진 놈들을 보며 기대를 드러냈다.
― 예로부터 오우거의 피는 귀한 영약이라고 했다. 전사에게 넘치는 힘을 준다고 하지.
하여 우리는 흡혈귀처럼 놈들의 피를 옮겨 담았다.
무려 힘을 준다고 하잖나.
나야 말할 것도 없고, 삼인조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더 많이 긁어모았다.
많이 모으긴 했는데…….
“이걸 그냥 마시는 건 아니겠지?”
“미쳤나? 그대로 마셨다간 위가 타 버려 죽게 될 것이다.”
복용 방법을 묻는 나의 말에 부족장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또 다른 설명을 보태 정확한 음용법을 설명했다.
“정제를 거쳐서 시약으로 만들어야 한다.”
“시약으로 만든다고?”
하지만 이어진 부족장의 설명은 나의 머리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힘을 준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구미가 당기는 건 확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시약을 만들 수 있다면 불티나게 팔리는 게 상식일 것이다.
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왜 연금 상점에선 안 파는 건데?”
그런 비약은커녕 이런 게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알았다면 진즉에 사들였을 터.
“마나에 취약해서 그렇다. 마법사나 오러 사용자가 복용하면 효과가 없다고 하더군. 피에 함유된 고유의 성분이 파괴된다고 들었다.”
계속된 설명을 듣고서야 상점에 없는 이유를 깨달았다.
마력이건 오러건, 그 기원은 마나가 아닌가.
당연히 마법사나 오러 유저는 복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면 판매처가 일반인으로 줄어들게 되는데.
문제는 재료의 희소성이다.
토벌 자체가 힘든 오우거니 재료의 가격은 비쌀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약은 더더욱 비쌀 것이다.
그 비싼 시약을 일반인이 뭐에 쓰려고 구입하겠나.
얼마나 강해질 줄 알고.
큰돈을 지출해서라도 구입하려는 사람들은 하급 용병과 일반 기사 정도일 것이다.
오러 유저를 따라잡겠다는 열정의 소유자들 말이다.
하지만 매물은 없었다.
그런 욕구를 가진 구매층은 분명히 있을 텐데 말이다.
“부작용이 있어 그렇다. 시약으로 만들어도 복용자에게 큰 고통을 준다고 하더군. 스스로 견뎌 낼 능력이 없으면 오히려 독이 될 뿐이다.”
결국은 못 써먹는다는 얘기였다.
저렇게 조건이 까다로우니 만들어 놓은들 재고만 안고 가는 꼴이 되는 것이다.
‘대장간에서도 그랬었지.’
데릭도 쓸데없는 곳에 꽂혀서 엉뚱한 물건을 만들기도 했었다.
창고에 처박히고 마는 쓸모없는 물건들을…….
어쨌거나.
채취한 설원 오우거의 피는 리베에 있는 페드로에게 모두 맡길 생각이다.
나와 반투족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니까.
소소한 기대감을 뒤로하고 요란했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 * *
“밧세바 양, 사라센에 입국하시는 이유는 뭡니까?”
“글쎄요. 먹고 살길이 막막해서? 사라센의 무희들이 벌이가 좋다면서요. 슬쩍 발이나 담가 볼까 하는 거랍니다.”
베일을 두른 여인의 말에 입국 심사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예상했으니까.
밝은 갈색 머리에 육감적인 몸매.
거기에 짙은 화장과 진한 향수까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풍기는 분위기가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정말 무희를 찾는 곳이 많은가요?”
“흠… 잘은 모르겠지만 무희들이 많이 오는 건 사실이오. 오늘만 해도 벌써 네 명이니 헛소문은 아닌 것 같소.”
입국 심사관은 여인의 몸을 힐끔거리며 통행 허가증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고는 묻지도 않은 말을 꺼내며 완성된 허가증을 내밀었다.
“다들 바빌리안으로 간다니 그쪽으로 가 보시구려.”
“어머 친절하셔라… 거기가 요즘 주목받는 곳이군요.”
“새로운 군대가 생겨서 유곽이 많이 들어서는 것 같더군요. 어린 처자까지 무희랍시고 모여드는 곳이니 한번 찾아가 보쇼.”
계속되는 남자의 말에 밧세바는 미소로 화답했다.
붉고 도톰한 입술을 오므리며.
“친절하신 심사관님께 헤도네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요염한 손 키스를 보내고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
밧세바는 베일을 끌어당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를 먼저 찾아볼까나…….”
멈춰 선 여인은 입술을 깨물며 고민에 빠졌다.
가라고 하니 오긴 했는데.
뾰족한 단서가 없으니 다음 행선지가 막막한 상태였다.
“흐음…….”
생각에 잠긴 여인은 입국 심사관의 말을 떠올렸다.
대부분이 쓸모없는 얘기였지만 한 가지 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어린 처자까지 모여든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이어지는 ‘무희랍시고’였다.
말인즉 어린 친구가 무희라고 우겼다는 것인데.
크루시아 대륙의 그 어떤 나라에서도 16세 이하의 소녀를 무희로 고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둘 중에 하나다.
하나는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동안인 것이다.
유달리 어려 보이는 얼굴과 작은 체구.
밧세바가 찾는 여인과 비슷한 조건이라 할 수 있었다.
‘흐응… 거기로 간 거니?’
생각을 굳힌 밧세바는 바빌리안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여기서 바빌리안까진 대략 여섯 시간 거리.
인적이 드믄 골목으로 향한 갈색머리의 밧세바는 흑발의 여인이 되어 국경도시를 빠져나왔다.
그녀의 본명은 살로메.
일곱 개의 얼굴을 가진 그녀는 로이드의 명을 받은 추적자였다.
눈에 띠는 무력은 없으나.
감쪽같은 그녀의 변신은 외모부터 목소리까지 모든 걸 바꿀 수 있었다.
심지어 골격까지.
170cm에 육박했던 밧세바는 165cm의 살로메로 모습을 바꾸었다.
그을린 갈색 피부는 백옥 같은 하얀 피부로…….
모든 국가를 자유롭게 오가는 살로메는 정보원으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 어떤 활동의 제약도 없이, 흩어진 정보를 모아 로이드에게 전달해 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그저 사람을 찾는 일이 추가되었을 뿐.
“얌전히 있으면 좋겠는데.”
마차에 오른 살로메는 창밖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 * *
둥지를 나온 우리는 서리 오크 본거지가 아닌 반대편으로 향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고.
“와 씨… 이거 전부 얼음 요정 아니야?”
구경삼아 들려 본 반대편에 노다지 밭이 열렸기 때문이다.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얼음 요정의 심장은 분명히 판매되고 있는데, 정작 원산지에선 놈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고작 한 마리였나.
추락 전에 본 것이 전부였으니 원산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한데 바글바글한 이 녀석들은 다 뭐란 말인가.
“근데 저거… 저쪽이 내려가는 길 맞지?”
심지어 이쪽으론 완만하게 이어진 경사로가 보기 좋게 자리하고 있었다.
“…….”
“너희 원정도 원래 이쪽으로 왔어야 하는 거 아냐?”
부족장은 말이 없었다.
그저 주먹을 꾹 쥐고 부들거리고 있을 뿐.
분노에 가득 찬 그의 시선은 먼 산을 바라보는 술에게로 천천히 향하고 있었다.
“흠… 사냥하기 좋은 날이군.”
부족장의 시선을 무시하며 술은 슬금슬금 앞으로 걸어갔다.
딱 보니 느낌이 온다.
녀석이 뭔가 사고를 쳤겠지.
“서리 오크 본거지 위가 서리고원이라 했는가?”
“마, 맞잖은가?! 서리 오크 위에 서리고원! 난 정확하게 정보를 구입해 왔다!”
“서리 오크의 정보가 아니라?”
“그, 그것은…….”
“대충 비슷하니까 덥석 물어 온 게 아니고?”
“크흠… 기억나지 않는다.”
술의 대답은 무적의 모르쇠였고.
“같이 죽자.”
부족장의 핼버드는 태양빛에 반짝이며 허공을 갈랐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