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봐도 이 녀석은 늑대였다.
심지어 이곳은 워 울프의 서식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워 울프가 아예 다른 종족이라면 모를까.
이 녀석을 보고 다른 걸 떠올린다면 그것 역시 억지일 것 같다.
괜한 트집이라고 해야 하나.
관찰을 계속하던 나는 녀석의 정체를 워 울프 새끼라고 결론지었다.
“배고팠어?”
경계하던 녀석은 육포 냄새에 항복하고 말았다.
빨리 내놔라 인간!
대충 이런 느낌이려나.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앞발을 들어 허공에 휘적거렸다.
“아니야, 제대로 해야지. 손바닥 위에 올리는 거야. 알겠어?”
간절함이 주는 초월적 의지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지 않는가 보다.
낑낑거리며 들썩이던 녀석은 나의 말을 이해했고, 보란 듯이 앞발을 들어 손바닥에 올려놨다.
“옳지 잘했어, 멍멍아!”
아, 멍멍이는 아닌가?
강아지를 닮은 워 울프 새끼는 꼬리를 흔들며 육포를 씹었다.
“하나 더 줘?”
분위기를 파악한 녀석은 시키지도 않은 앞발을 들어 나의 손 위에 올려놨다.
“허허…….”
이런 영특한 늑대를 봤나.
특별히 두툼한 걸 골라 녀석의 입에 물려주었다.
한데 왜 여기에 들어와 있는 걸까.
그리고 뒷발은 왜 절고 있고.
귀여운 모습에 미뤄 둔 의문이 이제야 슬슬 뇌리에 떠올랐다.
“네 어미는 어디 있니? 어? 너희 엄마 아빠는 어디 있는데.”
알아들을 리 없겠지만, 녀석의 코를 건들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주변을 쓱 둘러보니 이곳이 둥지가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야생동물 특유의 누린내도 없고, 털이나 분비물 같은 생활의 흔적도 전혀 보이질 안았다.
심지어 이곳은 좁다.
말보다 크다는 놈들이 오가기엔 동굴의 규모가 너무 작았다.
결론은 혼자 들어왔다는 건데.
“너 길을 잃어버렸구나? 나랑 너네 식구들 잡으… 아니, 만나러 가자∼”
꼬마 워 울프를 끌어안고 출구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녀석의 반응이 이상했다.
엉덩이를 착 깔고 주저앉더니 낑낑거리며 버티기 시작했다.
“왜 그래? 집에 가자니까?”
끼이잉…….
버둥거리던 녀석은 꼬리를 말며 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명백한 거절의 표현이다.
아니, 두려워한다는 게 더욱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다친 다리도 그렇고, 숨겨진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도망을 쳤다거나 뭐 그런 것 있잖은가.
겁먹은 녀석을 달래며 이어진 통로를 기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한 걸까.
제법 커진 동굴은 기어갈 수 있을 만큼 확장돼 있었다.
이동이 계속될 수록 동굴은 더욱 커졌다.
어느 순간부터 일어설 수 있게 되었고, 그 뒤로는 커다란 공동이 되어 완연한 둥지의 모습을 갖추었다.
“여기였구나.”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풍겨 오는 누린내에 코끝을 문질렀다.
하나 그것도 잠시.
안고 있던 꼬마 워 울프는 격렬하게 꿈틀대며 큰소리로 울어 댔다.
께에엥! 께엥!
격하게 발버둥 치는 녀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녀석은 그 즉시 달려갔다.
상처 입은 뒷발을 절뚝거리며, 녀석은 어딘가를 향해 정신없이 달렸다.
“…….”
느낌상 어미를 찾는 게 분명했다.
이곳은 워 울프의 둥지이고, 보이는 모든 것에는 생활의 흔적이 역력했다.
심지어 한두 마리가 아닌 집단의 흔적.
하지만 이곳에는 그 어떤 성체의 모습도 발견할 수 없었다.
케에에엥― 케엥― 케에엥―
요란하게 울리는 녀석의 소리에 하던 생각을 멈추고 달려갔다.
혹시나 싶어 멈칫했으나, 녀석은 텅 빈 자리에서 구슬피 울고 있었다.
필시 어미를 찾는 외침일 터.
녀석의 곁으로 다가간 나는, 나타날 무언가를 기다리며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케에에엥―
케엥― 케에엥―
케에엥―
아직 어리기만 한 녀석은 하울링조차 제대로 못했다.
그저 때를 쓰듯 칭얼대며 돌아오지 않는 어미를 애타게 불러 댈 뿐이었다.
“…….”
분명 무슨 사건이 있었다.
성체는 물론이요, 새끼 하나 없는 이 둥지는 뭔가 비정상이다.
나는 기다림을 포기하고 둥지 바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다.
‘싸움의 흔적이다.’
우연히 발견한 전투의 흔적은 둥지의 입구로 향할수록 더욱 진해졌다.
치열했다.
바닥엔 붉은 핏자국이 얼어붙어 있었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살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흠…….”
특히나 이 핏자국의 모양은 흘린 것이 아닌 질질 끌려간 모습이었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침입자를 죽여 내다 버렸던가.
침입자에게 죽어 끌려 나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예감은… 이 조그만 녀석을 더욱 불쌍하게 만들 것 같다.
‘상대는 괴력의 소유자.’
둥지의 벽에 생긴 흔적은 상대의 완력을 짐작케 했다.
얼어 버린 피딱지와 엉겨 붙은 털가죽… 심지어 그것들은 부서진 벽에 파묻혀 짓이겨진 상태였다.
‘어떤 놈들이지?’
정보가 부족하니 고민한들 방법이 없었다.
말만 한 워 울프를 이 정도로 다룬다면 보통 체격은 아닐 것이다.
대게 몬스터란 그런 법이니까.
체격과 힘이 비례하는 것은 특별할 것 없는 상식이었다.
‘하면 최소 3m 이상…….’
직립보행이라면 분명히 그 정도일 테고, 그 이상이 나타나도 놀랍진 않을 것 같다.
놈들의 남겨 둔 흔적은 그만큼 강렬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하나.
‘저 산봉우리가 정면이었나.’
추락 장소로 되돌아가 삼인조를 만나야 했다.
이건 생존의 문제였다.
녀석들끼리 버티기엔 이곳의 몬스터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녀석들과 조우한다면…….
나는 불길한 상상을 지우며 가야 할 방향을 가늠했다.
끼이잉…….
풀죽은 녀석을 안고 설원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 * *
도대체 어디까지 들어간 걸까.
분명히 함몰된 지점을 파내려 갔는데, 이반의 흔적은커녕 더 이상 파헤치기도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제 어떻게 한단 말인가?!”
얼음 층이 사라진 구덩이에선 암석 지반 모습을 드러냈다.
수색이 중단된 건 당연했다.
세 사람의 힘으론 저 두꺼운 암반을 뚫을 방법이 없었다.
행여 그것이 가능해도 저 암석을 부셔서 뭘 어쩌겠나.
이반이 빠진 건 얼음 구덩이였지 저런 암반을 뚫고 내려간 것이 아니었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인정할 수 없어 매달리고 있지만, 세 사람 모두 이반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시간은 너무 많이 지나 버렸고, 기적을 바라기엔 눈앞의 현실이 가혹했다.
“…….”
흐려지는 눈을 감으며 부족장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자책이었다.
내가 이곳에 오자고 해서.
되찾을 능력도 안 되는 주제에 잃어버린 자리를 넘봐서.
그 욕심이 지나쳐 희대의 영웅을 죽게 만들었다.
이 죄를 어찌 씻을 수 있을까.
해일처럼 밀려오는 후회와 자괴는 굵은 눈물이 되어 흘러 내렸다.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올라 회한은 더욱 깊어졌다.
그 얼마나 놀라웠던가.
같은 인간의 몸으로 이반은 다른 세상의 존재처럼 막강한 무력을 뿜어 댔다.
넘을 수 없을 거란 오러의 벽도… 그 남자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보란 듯이 넘어 버렸다.
그런 남자를.
내가…….
부족장은 머리칼을 움켜쥔 채 바닥을 향해 이마를 내리찍었다.
“일어나라.”
망연자실한 부족장의 눈에 다가온 두 다리가 보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죽은 사람 대하듯 처울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파내려 가라.”
목소리의 주인은 별이었다.
붉게 충혈된 그녀의 눈은 서슬파란 안광을 쏘아 대며 부족장을 노려보았다.
“나 때문이다.”
“닥쳐라.”
“내가 욕심을 부려서…….”
“닥치라고 했다.”
사납게 대답한 별은 널브러진 핼버드를 들어 부족장 앞에 내리꽂았다.
“들어라. 네가 정말 후회한다면 그 창이 사라질 때까지 저 암반을 파내라.”
돌아선 별은 대검을 치켜들었다.
그러곤 어금니를 빠득 씹으며 단단한 암반을 내리찍었다.
부족한 자신의 힘을 원망하며.
콰직―
터질 것 같은 분노를 담아 얼어붙은 대지를 두들겼다.
이 원통함이 풀릴 때까지.
별은 피맺힌 손을 움켜쥐며 더욱 세게 대검을 휘둘렀다.
그런 별의 귓가로 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만해라, 별.”
술이었다.
침묵하던 그가 내뱉은 첫말은 멈추라는 말이었다.
“…….”
들려오는 술의 말을 무시하며 별의 칼질은 계속됐다.
“지금 땅을 파고 있을 때가 아니다.”
“…….”
“내 말 들어라 별.”
“…….”
“살아 있어야 땅을 파든 이반을 기다리든 할 것 아닌가.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면 그 멍청한 짓부터 당장 그만둬라.”
“무슨 시답지 않은 말장난인가!”
참다못한 별은 고함을 질러 대며 술을 향해 대검을 뻗었다.
하지만 술은 먼 곳을 바라보았고.
“뭔가 다가오고 있다.”
긴장된 목소리로 다가올 위험을 경고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부족장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비록 술만큼은 아니지만, 그 역시 좋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저게 뭐란 말인가.”
그런 그의 눈에 낯선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는 대략 여섯 정도.
멀리 떨어진 거리를 감안해도 놈들의 체격은 가늠되지 않았다.
그냥 크다는 느낌일까.
적당히 줄을 맞춘 녀석들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말 많던 술조차 입을 다물었다.
그저 마른침이나 삼키고 있을 뿐, 긴장한 술의 눈은 정체모를 생명체를 보며 파르르 떨리길 반복했다.
결국 술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도망가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쓸데없이 선명한 술의 시야엔 저들이 품은 살의가 저릿하게 느껴졌다.
“크기는 3m 정도… 밧줄에 묶은 짐승의 시체를 여러 마리 끌고 있다.”
“3m라 했는가?”
“그래. 가운데 저놈은 더욱 큰 것 같다. 그런데 저거… 질질 끌려오는 모습이 영락없는 늑대 머리다…….”
그 순간, 세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워 울프.
6성은 돼야 상대할 수 있다는 진정한 전사의 탈것.
그런 워 울프를 사냥한 저놈들은 얼마나 강하다는 걸까.
“아무래도 설원 오우거인 것 같다. 일단 피하자. 이대로 있다간 개죽음 당한다.”
상황을 전하는 술의 목소리에 다급함마저 느껴졌다.
녀석이 저런 적이 있었던가.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녀석이 바로 술이었다.
한데 그런 녀석이 겁에 질려 당황하고 있다니.
이것은 위험함을 넘어 절망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이미 늦었어.”
하지만 별은 체념한 듯 힘없이 대답했다.
마치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그렇게 별은 하늘을 향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장난칠 상황 아니다. 지금 진지하게 하는 말이니…….”
“뒤를 봐라.”
말을 멈춘 술은 별이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멈춰 버렸다.
뭐라고 할 말도 없었고, 하려고 한들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때 뭐라고 하더라.
“시발 망했네…….”
세속인들은 이럴 때마다 이런 말을 내뱉곤 했었다.
이제껏 뜻을 몰랐지만, 이젠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느낌이 오니까.
별이 가리킨 곳에서도 똑같은 생명체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좌우는 벼랑이고, 앞뒤는 엄청난 몬스터다.
쉽게 말해 도망칠 곳 하나 없는 암담한 상황이란 얘기였다.
그사이 거리는 줄어들어 이젠 확실히 알아볼 만큼 가까워졌다.
전신이 회색 털로 뒤덮인 거대한 괴물들.
소문으로만 듣던 설원 오우거 여섯 마리의 행동에 이상한 낌새가 나타났다.
초초하게 지켜보던 술은 눈을 가늘게 뜨며 정면을 주시했다.
분명히 무슨 일이 생겼다.
다가오던 무리는 걸음을 멈춰 세웠고, 뒤에 오던 놈의 다리가 힘없이 꺾여 버렸다.
그리고 술은 목격했다.
“…….”
익숙한 방식으로 폭발하는 회색 괴물의 머리통을.
전신에 돋는 소름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해야 할 일을 찾아냈다.
살기 위한 가장 적절한 행동.
“짐 챙겨라.”
눈앞에 있는 놈들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어디로 가려는 건가. 사방이 다 막혔는데.”
뜬금없는 술의 말에 별은 정색하며 대답했다.
하나 술은 히죽거리며 웃기 시작했고.
“가자 이반에게!”
괴물이 있는 정면을 향해 미친놈처럼 달려가기 시작했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