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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 99개-79화 (79/203)

79화

“어때?”

“맛있다. 별이 만든 독극물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아니, 맛보라는 게 아니라 몸이 달라지는 걸 확인해 보라고.”

주먹을 불끈 쥔 별을 진정시키며, 육포를 질겅대는 술에게 신체의 변화를 물어봤다.

“잘 모르겠어?”

“음… 하나 더 먹어 봐야 알 것 같다.”

하여 녀석은 또 다른 육포를 씹기 시작했다.

“흠…….”

“왜? 뭐가 느껴져?”

“모르겠다. 하나 더…….”

“어디서 개수작이야!”

그래서 이번엔 별이 실험에 나섰다.

매사에 진지한 녀석이니 술과 다른 반응을 기대할 만하다.

두툼한 육포를 꺼낸 별은 날카로운 안광을 빛내며 한입에 꿀떡 삼켜 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모르겠다. 하나 더…….”

믿었던 별마저도 똑같은 소릴 떠들어 댔다.

“너도 저리 가.”

그렇게 별은 주머니를 챙겨 옆으로 돌아앉았다.

이제 남은 사람은 나와 부족장뿐.

우리는 동시에 손을 뻗어 육포를 집어삼켰다.

“아!”

“왜? 무슨 반응이 와?!”

“혀를… 크흡.”

이것들이 뭘 잘못 먹었나.

믿었던 별에 이어 부족장마저 술을 닮아 갔다.

이렇게 된 이상 나의 감각에 기댈 수밖에.

풍미 가득한 육포를 씹으며 이어질 몸의 반응을 예민하게 기다렸다.

하나 달라진 건 없었고.

‘더 먹어야 하나?’

나 역시 녀석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정보가 잘못된 건가 고민해 봤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같은 내용을 보여 주고 있었다.

[냉기 저항 LV1 적용 중.]

“흠…….”

하지만 나의 몸엔 이렇다 할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 환경 때문인가.

조금 더 가혹한 상황이 되면 효과를 체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일단 올라가 보자.”

자리를 털고 일어선 우리는 서리고원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내딛는 발걸음이 늘어나자 주위의 풍경이 달라졌다.

높게 솟은 나무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낮은 덤불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이것도 잠시 뿐, 비탈진 산자락엔 이름 모를 들풀만이 남아 이곳이 수목한계선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이제 슬슬 고원 몬스터들이 나타날 때가 됐다. 이때부터 우리가 추위 때문에 고생했지.”

“맞다. 모피 망토를 걸치자니 덥고, 벗으면 춥고 그랬다.”

부족장과 별은 과거를 회상하며 산비탈을 올라갔다.

그런데 그 말을 듣자하니 뭔가 이상했다.

“지금은 어떤데?”

“뭘 말하는 건가.”

“걸치면 덥고 벗으면 추웠다며. 지금은 어떠냐고.”

그에 삼인조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동자를 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나의 이마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곁을 걷던 부족장은 물론이요, 아웅다웅하던 별과 술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지금 우리는…….

“망토는 아직 꺼내지도 않았어.”

출발 당시의 복장에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추위를 말하지 않았다.

“엉?”

“그러네?”

“허허…….”

도로시가 만들어 준 육포는 이미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체감할 상황이 안 됐을 뿐.

환경이 조성되자 유감없이 효력을 드러냈다.

어느 수준까지 버텨 줄지는 모르겠으나 현시점에선 완벽했다.

추위가 없으니 움직임도 가벼웠다.

그런 우리의 앞에 고원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리 오크다.”

“저놈들 강해?”

“강하다. 오크의 상위급이라고 보면 된다.”

대수림에서 보았던 붉은 오크와 같은 케이스라 할 수 있다.

환경에 맞춰 진화된 돌연변이.

놈들이 나타났다는 건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신호였다.

“내가 선봉에 서겠다.”

핼버드를 앞세운 부족장은 서리 오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마주한 거리는 대략 20보 내외.

상대해 본 이력이 있으니 비교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냉기에 저항한 육체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지난번엔 어땠는데?”

“1대1로는 우리가 조금 부족했다.”

전적을 묻는 나의 말에 별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언제든 참전할 태세를 갖춘 채 녀석은 전방을 주시하며 대검을 그러쥐었다.

그사이 거리는 줄어 부족장과 서리 오크는 서로의 간격에 들어섰다.

탐색전 따윈 없었고.

드르르륵―

나선을 그리는 핼버드가 사납게 작렬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공격을 막아 낸 서리 오크의 검이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쇄도했다.

한 치의 양보 없는 난타전.

그렇게 한동안 공방을 주고받던 부족장의 핼버드가 이내 서리 오크의 왼팔을 잘라 냈다.

“움직임이 좋네. 냉기 저항 효과를 보는 건가?”

“냉기 저항? 그게 뭔 소린가?”

“도로시가 준 육포 말이야. 냉기를 이기는 데 도움을 줄 거라고 했잖아.”

“아, 그거라면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부족장의 실력 자체가 상승했다.”

상황을 가늠하는 나의 말에 별은 또 다른 의견을 추가했다.

“우리가 그대를 따르는 이유가 이것이다. 강한 사람을 좇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성장하기 때문이지.”

“흠… 일리 있는 말이야.”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줄여서 동기부여랄까.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있어 이보다 좋은 자극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숫자가 늘어나네. 우리도 슬슬 나가 보자고.”

먼발치로 보이는 서리 오크의 그림자에 나와 별, 그리고 술은 전장을 향해 달려 나갔다.

* * *

크워어억!

처절한 단말마를 끝으로 전투는 종료됐다.

소감을 말하자면 싱거웠다.

오크의 변종이라면 이젠 한입 거리도 못 되니까.

놈들은 날뛰는 나를 잡기 위해 몰려들었고, 텅 빈 녀석들의 배후는 삼인조의 공격에 무참히 무너졌다.

촤아악―

마지막을 장식한 별이 대검을 휘둘러 혈흔을 털어 냈다.

“후후… 완벽한 복수군.”

“시시했다.”

전장을 둘러보는 술의 말에 부족장은 덤덤히 대답하며 무기를 거둬들였다.

“앞으로 한 시간을 더 올라가면 서리 오크의 본거지가 나온다. 거길 지나가야 고원에 도착할 수 있는데, 우리는 매번 그곳에서 실패했다.”

“다른 길은 없고?”

“고원으로 오르는 길 자체가 놈들의 본거지다. 그 외에 다른 길은 빙벽을 타고 오르는 방법뿐이지.”

부족장의 시선을 따라 먼 곳으로 눈을 돌렸다.

가파른 능선 위로 보이는 단애 절벽.

그 빙벽 사이로 드러난 길이 서리 오크의 본거지였다.

“병력이 얼마나 되는데?”

“모르겠다. 우리가 가본 곳은 고작 입구 근처였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역시 가 봐야 아는 일이었다.

“규모를 모르는 본거지라…….”

상관없다.

얼마나 뭉쳐 있건 놈들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사냥꾼이고.

“재미있겠네.”

놈들은 둥지에 갇힌 사냥감일 뿐이다.

먹잇감을 두려워하는 포식자는 없는 법.

나는 코끝을 훔치며 가파른 능선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능선 위에 도착한 우리는 본거지 근처에 자리를 잡고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여기는 확실히 공기가 다르네. 준비를 했는데도 이 정도면 예전엔 고생 좀 했겠어.”

“그때는 몸이 얼어붙어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

기억을 떠올린 부족장은 고개를 저으며 가방을 열었다.

그것이 신호가 된 듯, 곁에 있던 별과 술도 가방을 뒤적여 장비를 꺼내 놓았다.

급격히 내려간 온도에 맞춰 우리는 방한 장비로 교체했다.

뭔가 거창하게 들리는 것 같지만, 보온 내피를 껴입고 모피 망토를 두른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했다.

거기에 냉기 저항이 함께 하니 우리의 움직임은 여전히 편안했다.

“역시 맛있군.”

준비를 마친 우리는 육포를 씹으며 본거지로 향했다.

일단 맛있어서 기분 좋았고, 춥지 않아 더욱 좋았다.

“완전 가재 잡고 도랑치는 거군.”

“뭐라고?”

“무식한 세속인 같으니… 두루두루 좋을 때 쓰는 말이다. 그 작은 머리에 잘 새겨 넣어라.”

“뭐라는 거야. 가재를 잡았는데 도랑은 뭐 하러 쳐?!”

“훗, 말이 안 통하는군.”

괴상한 소릴 떠들어 댄 술은 턱 끝을 치켜들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흘려들으려 했다.

“그대의 아버지가 전해 준 삶의 지혜가 담긴 얘기다. 족장님을 통해 우리 모두가 배웠지.”

하지만 이어진 부족장의 말은 나의 관심을 되돌렸다.

아버지 얘기가 나왔으니까.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이게 맞는 말이다.”

부족장은 나에게 정확한 내용을 알려 주었다.

그에 술 녀석에게 한마디 해 주려던 찰나.

“흠… 저기서 내려오는군.”

나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던 술은 실눈을 뜨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또 뭘 보고 저러는 건지…….

덩달아 고갤 돌린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술에게 물어보았다.

“너 지금 본거지를 보고 하는 말이야?”

“그렇다.”

“저게 보인다고?”

“당연하지. 그대는 당연한 말을 계속 물어보는 나쁜 습관이 있는 것 같다.”

의문의 1패를 당한 나는 눈을 비비며 다시 한번 본거지를 살폈다.

보일 리가 없지.

높게 솟은 건 빙벽이고, 그 사이 뻥 뚫린 건 계곡이었다.

눈가에 힘을 주고 찡그려도 결과는 마찬가지. 내 시력으로 확인 가능한 건 고작 그 정도의 간단한 정보였다.

한데 내려오는 걸 봤다니.

“독수리냐고.”

이 전에 카리프 일행을 쫓을 때도 느꼈지만 정말 대단한 시력이었다.

“뭐가 내려오는데?”

“서리 오크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보이는 게 있어야 타박이라도 할 게 아닌가.

어딘가에서 내려오는 서리 오크는 일단 마음속에 묻어 놓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서리 오크 본거지를 향해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가늠조차 할 수 없던 모습이 선명히 보일 때 쯤.

“혹시 우리가 알아야 할 작전이 따로 있는가.”

앞서 걷던 부족장이 걸음을 돌려 다가왔다.

“어, 있어.”

“있다면 알려 줘라.”

“죽지 않고, 다치지 않는 게 작전이야. 그러니 한눈팔지 말고 잘 따라와.”

계획을 묻는 부족장의 말에 나는 특별할 것 없는 얘기로 작전을 대신했다.

그거면 족하니까.

굳이 뭔가가 필요하다면 다 때려 부수는 게 작전이었다.

“가자.”

짧은 말을 남기고 나는 본거지 입구를 향해 달려 나갔다.

마치 시위를 떠난 활처럼.

날듯이 질주하며 놈들의 앞마당에 도착했다.

크르르륵?

놈들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고.

콰아아아앙!

엉성한 본거지 입구는 폭발하듯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성장 시스템 가동]

서리 오크 토벌

진행도 : 0/100

보상 : 근력 1% 증가.

흩날리는 파편 사이로 새로운 문자가 떠올랐다.

분명히 새로웠는데…….

“뭐야, 토벌 의뢰서?”

보는 순간 떠오른 건 용병 조합 게시판의 다양한 의뢰서였다.

낯설지만 익숙한 느낌.

내용을 봐도 그렇고, 보상을 보니 더욱 비슷했다.

아니, 의뢰서가 맞는 것 같다.

크와아악―

콰직!

[서리 오크 토벌]

진행도 : 1/100

토벌은 이미 시작됐으니까.

달려드는 놈을 처리하니 눈앞의 숫자는 모양을 달리했다.

“그렇단 말이지…….”

뭘 자꾸 준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잖은가.

크롸와아아아악―

쏟아져 나오는 서리 오크를 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성장 시스템인지 뭔지.

단물 쪽 빠질 때까지 아낌없이 이용해 줄 생각이다.

게다가 나의 밥줄이 되어줬던 삼신기까지!

[휘두르기 숙련도 3,956/10,000]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토벌 숫자와 숙련도는 내가 움직여야 할 이유를 명료하게 보여 주었다.

그러니 더욱 날뛸 수밖에.

나는 더 빨리 움직이며, 더욱 강하게 휘둘렀다.

크라라라락―

앞다퉈 덤비던 놈들이 육편이 되어 얼어붙었다.

그 위에 다른 덩어리가 쌓이고.

콰직!

또 다른 덩어리가 널브러졌다.

멈추지 않는다.

표현할 수 없는 성장의 쾌감은 무아지경의 세계로 나를 이끌어 갔다.

그리고 그 세계는.

― 우리가 그대를 따르는 이유가 이것이다.

누군가의 목적이 되어 의지를 고양시킨다.

건조한 겨울 산에 산불이 번져가듯…….

누군가는 핼버드를 휘두르며 사선을 누비고.

또 다른 누군가는 대검을 그어 적들을 도륙한다.

평소의 모습이 어떠했든.

전사가 된 그의 도끼는 전장을 지배하며 사납게 울어 댔다.

나는 녀석들에게.

녀석들은 나에게.

우리는 한 몸처럼 움직이며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지워 냈다.

드디어 마주한 마지막 녀석.

크아아아!

콰직!

[서리 오크 토벌]

진행도 : 100/100

보상 : 근력 1% 증가.

널브러진 녀석을 끝으로 서리 오크의 본거지는 세상에서 지워졌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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