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결계석의 용도를 정의하자면 몬스터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데 그 결계석이 동굴 통로를 가로막고 있었다고 생각해 자.
무슨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르겠나.
그 뒤에 엄청난 몬스터 군락이 있어서?
인위적으로 막은 거라면 보통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예상했고, 따라서 언제든 싸울 수 있게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와악! 무슨 마력이 이렇게 강해?!”
경계를 넘어간 우리는 달라진 공기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이 짙은 마력이라니.
마력에 둔감한 나조차도 느낄 만큼 이곳의 공기는 매우 이질적이었다.
“결계석이 마력도 차단해 주나 봐.”
“그런 것 같군.”
“아! 그렇다면 마법 방어구의 재료로 크게 쓰이지 않을까요?!”
무심히 던진 나의 한마디는 신소재 발견까지 이어졌다.
물론 그렇게 됐다면 좋았겠지만.
“마력과 마법은 다른 성질 아닌가요? 마력을 연료 삼아 마법이 발현되는 거니까요.”
“아…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아쉽게도 로제의 기대는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끝났다.
사물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오러와 달리, 마력은 원재료에 가깝기 때문이다.
“일단 들어가 봅시다.”
작은 소란을 정리하며 좁은 통로를 향했다.
여전히 주위는 고요했고, 마력의 농도 또한 달라지지 않았다.
“깊이 들어갈수록 더 짙어질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닌가 보네.”
경사진 길을 걷던 나는 중얼거리듯 속내를 꺼냈다.
마력이 진하다는 건 결국 어딘가에서 계속 나온다는 것.
근원지로 갈수록 짙어지는 건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게요. 안으로 들어온 지 꽤 됐는데 달라진 걸 못 느끼겠어요.”
하지만 이곳은 그 상식이 어긋나고 있었다.
이어진 로제의 말처럼 통로 안의 마력은 균일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마력 분출이 멈춰서 그럴지도 모른다.”
“흠… 그럴 수도 있겠네.”
부족장의 생각에 동의하며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한한 마력이란 건 없을 테니까.
시간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지는 건 자연의 이치이자 섭리다.
“가 보면 알겠지.”
어찌됐건 정답은 이거다.
그 와중에 에르텔이 있다면 더 좋은 거고.
어쨌거나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 이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동하길 반 시간.
“우와…….”
경사진 통로를 내려온 우리는 뻥 뚫린 공간을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기가 동굴이라고?’
성력의 재단은 동굴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다.
말도 안 되는 이 크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 자리에서 반대편까지 족히 300걸음은 돼 보이니 이곳의 넓이는 광활해 보이기까지 했다.
거기에 쭉 뻗은 천장까지.
“이런 게 왜 여기에…….”
고개를 치켜든 나는 압도적인 위용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게 어디 나 혼자만의 상황이었겠나.
“허허…….”
“장관이군.”
“후아…….”
일행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위대한 자연에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야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술은 메아리를 들으며 즐거워했다.
잔뜩 신이 난 술은 중앙을 향해 걸어가며 자신의 이름을 외쳐 댔다.
“내 이름은 술!”
…이름은 술…술…술…술…….
“음핫핫핫핫!”
되돌아오는 메아리에 녀석은 팔짱을 끼며 큰소리로 웃어 젖혔다.
뭐가 저리 해맑은 건지.
근심 없는 저 모습이 신기하다 못해 부럽기까지 했다.
생각해 보면 술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힘들어 하지 않았다.
주변을 탓한 적도 없고.
목적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적도 없다.
모든 상황에 순응하며 해야 할 일을 할 뿐.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엉뚱한 말과 행동은 돌아서며 피식 웃을 수 있는 작은 활력소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가끔은… 엉뚱한 그의 행동이 엄청난 결과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커헉!”
바로 지금이 그런 상황이었다.
“아이고 나 죽네!”
뭐라 말할 틈도 없었다.
무언가를 밟은 술이 바닥에 나뒹굴었고.
“저게 뭐야…….”
시리게 푸른 빛기둥이 천장을 향해 솟아올랐다.
빛기둥이 솟은 자리는 공동의 중앙.
정신을 차렸을 땐.
커다란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낸 이후였다.
“비석…인가.”
먼발치로 보이는 모습은 비석 같은 형태였다.
콕 집어 그렇다고 말할 순 없지만, 뭔가를 비교해야 한다면 그게 가장 비슷했다.
“갑자기 무서워졌어…….”
중얼대는 로제의 말을 시작으로 공간의 분위기가 변해 갔다.
경외는 경계로.
감탄은 두려움으로.
“다들 여기서 기다리세요.”
대답을 확인한 나는 중앙에 있는 비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내딛는 걸음마다 수많은 생각이 오가며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사전에 접한 정보라곤 갈림길에 대한 선택지뿐… 우리는 은밀한 장소에 도착한 것이 분명했다.
알고 있다면 분명히 말했을 테니까.
빅터는 이런 정보를 잊을 만큼 허술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나는 예민해진 신경을 억누르며 선홍빛 비석 앞에 마주섰다.
“…….”
모르겠다.
비석이라고 말했지만, 그냥 새워 놓은 평평한 돌이었다.
등장한 이유도 모르겠고.
이것에 무슨 기능이 있는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느껴지는 건 강렬하게 뿜어지는 마력의 기운뿐.
“흐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고민 끝에 나는 보통의 사람들이 하는 가장 평범한 짓을 시도했다.
툭―
쿡 찌르는 그런 것 말이다.
해머를 들어 건드려 봤지만 반응은 없었다.
너무 소심했던 걸까.
해머를 내려놓은 나는 왼손을 들어 비석을 향해 뻗었다.
“조심하세요!”
먼발치에서 들리는 로제의 말에 뻗은 손을 들어 가볍게 화답했다.
얼굴은 태연하게 웃고 있었지만…….
‘아, 놀래라.’
솔직히 깜짝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하필 그 타이밍에 소리를 지르다니.
두근대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매끄러운 비석면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그리고 나는.
“끄아아아아아아!”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다.
* * *
밝다.
밝아도 너무 밝아서 눈이 시큰거리는 느낌이다.
그냥 하얀색이라 그런가?
보이는 모든 것이 백색이니 공간을 느끼는 감각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심지어 나는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누운 것도 아니었다.
둥둥 떠 있다고 해야 하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백색의 늪은 오감을 지우며 나의 몸을 옭아매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속박된 육신을 통해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것은 ‘떠올랐다’가 맞는 것 같다.
마치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듯 흔적만 남은 소리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 인과율의 추가 기울었다.
― 어둠의 권세가 창궐하매 빛이 깃들고, 신의 사명을 이을 자가 세상을 구원하도다.
― 이것은 신들이 맺은 영원한 맹약. 엘라흐의 가호가 이곳에 임하니 모든 것은 처음으로 돌아가리라.
이해할 수 없었다.
뜻하는 내용이야 대충 알겠는데 왜 들리는지 당최 모르겠다.
인과율은 뭐고, 신의 사명은 또 뭐란 말인가.
신들이 맺은 맹약이 뭐길래 나를 붙잡고 이런 소릴 하냔 말이다.
심지어 이 말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여럿이 같은 말을 내뱉는 느낌이랄까?
단체로 주문을 외우듯 웅웅거리며 머릿속을 뒤 흔들었다.
하지만 이런 푸념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지지직―
귓가를 자극하는 거친 소리가 들리며 백색의 늪은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다 이루었다.
― 신의 뜻에 따라 우리는 이곳에 남으리라.
합을 맞추던 음성은 개인의 목소리로 흩어졌다.
비장함마저 감도는 분위기다.
소리로 전달되는 짧은 몇 마디에 말하는 이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들은 결연했고, 또한 숭고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뭔가 엄숙하고 경건함이 가득한데, 정작 나는 겉돌고 있었다.
이 기억은 나의 것이 아니니까.
이런 상황을 목격한 것은 물론이요, 누군가에게 들어본 적도 없었다.
책을 통해 읽어본 적도 없고, 나 홀로 상상해 본 적도 없다.
그냥 이상한 얘기.
나와 아무런 접점이 없는 괴상한 얘기에 불과했다.
지지지직―
상황은 또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어둡던 공간은 더욱 어두워져 짙은 어둠에 잠식됐다.
아무것도 없었다.
거칠게 울리던 소리가 다시 들리며 예민해진 나의 신경을 묘하게 자극했다.
비유하자면 바람 빠지는 소리랄까.
지지직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는 귓가를 넘어 공간 전체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상 징후는 그뿐이 아니었다.
잔잔하던 가슴이 두근대더니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그러려니 했는데 심상치 않다.
두근대던 심장 소리는 툭툭거리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쿵쾅대며 요란하게 울려 댔다.
쿵쾅대는 심장을 따라 호흡도 가빠졌다.
마치 전력 질주라도 하듯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폭주하고 있었다.
삐―
왼쪽 귀에서 시작된 이명이 뒤통수를 타고 한 바퀴를 돌아왔다.
다시 반대로.
이제는 양쪽 귀에서 사이좋게 들리고 있었다.
반갑지 않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으니까.
머리를 짓누르던 두통은 강도를 높여 갔고, 이제 구토마저 일으키려 발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속박된 육체는 토악질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고통에 겨운 몸이 부들거렸고.
[시스템 활성 상태 분석 중.]
못 보던 문자열이 떠올라 눈앞에서 깜박거렸다.
시스템이라니?
생전 처음 보는 단어에 죽을 것 같던 두통마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낯선 글자에 갸우뚱하던 것도 잠시.
[시스템 활성 상태 50%.]
[시스템 분석 중…….]
[클래스 : 파괴자.]
[상태 : 손상.]
[최소 기능 유지 중.]
[경고, 이중 시스템 발생.]
[시스템 분석 중…….]
뜻 모를 문자열들이 폭발하며 분주하게 눈앞을 오르내렸다.
그 와중에 경고까지 떴으니, 지켜보는 내 입장은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게다가 손상이라고 하지 않았나.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좋은 말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자가 복구를 위한 시스템 흡수 이력 발견.]
[클래스 : 회귀.]
[상태 정상.]
[복구 가능 여부 분석.]
[복구 가능성 확인 완료.]
[시스템 복구를 시작합니다.]
[시스템 복구 10%…….]
정체 모를 시스템의 복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30을 넘던 숫자는 어느새 50을 넘어섰고, 70을 지나 90을 넘기더니 이제는 마지막 한 단계를 남겨 두고 있었다.
꿀꺽…….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 거기에 감출 수 없는 약간의 기대까지.
[시스템 복구 100%.]
100이란 숫자를 본 나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이어지는 결과를 지켜보았다.
[시스템 ‘파괴자’와 ‘회귀’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시켰습니다.]
[시스템 활성 상태 100%.]
[클래스 : 레버넌트.]
[시스템 복구를 종료합니다.]
시스템 복구는 레버넌트라는 말을 끝으로 종료를 알려 왔다.
말 그대로 끝이었다.
나의 세상은 뒤집히며 소용돌이처럼 빨려 들어갔고, 휘말려 가던 몸뚱어리는 한순간 제자릴 찾아 부드럽게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끄어어어어어!”
발작하듯 경기를 일으키며 감은 두 눈을 크게 떴다.
“흐아아아, 이반 님!”
“오! 이반이 일어났다!”
“정신이 드는가?”
로제의 울음을 시작으로 여러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이때만 해도 꿈인가 싶었다.
쓰러졌던 자리에서 그대로 깨어났으니까.
하나 꿈은 아니었나 보다.
“…….”
꿈이라면 저런 게 보일 리 없기 때문이다.
나는 눈을 비비며 허공을 바라보았고.
[시스템 사용자 이반.]
[클래스 : 레버넌트.]
복구된 시스템이라는 녀석은 나의 이름을 들먹이며 직업까지 지정해 줬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