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화염도마뱀 우파루파를 토벌한 우리는 시작의 마을을 향해 순조로운 행보를 이어 갔다.
가방엔 개당 1골드짜리 화염 결정이 스무 개가 넘게 있었고, 덤으로 챙긴 알주머니가 술의 등짐에 고이 보관돼 있었다.
“그런데 이 알주머니 말이야. 정말 먹을 수 있는 걸까?”
나는 불룩한 술의 배낭을 보며 께름칙하게 중얼거렸다.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챙기긴 했는데…….
“알이라고 하기엔 너무 징그럽게 생겼잖아. 무슨 알이 저렇게 울퉁불퉁하냐고.”
오돌토돌한 껍질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색깔도 벌건 게, 수상한 뭔가가 노른자를 대신할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의 알이었다.
“식재료에 일가견 있는 저의 생각으론 충분히 식용 가능해요. 특히나 이런 알 종류는 깨 보면 다들 비슷하거든요. 껍데기는 상관없어요.”
의문을 가득 찬 나의 말에 도로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기야 몬스터의 부산물로 만든 음식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접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몬스터 식재료 중엔 고급으로 쳐주는 것들이 많아요.”
저렇게까지 말하니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특히나 처음 먹어 봤던 붉은 오크의 고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월등한 풍미를 선사했었다.
‘이 근처엔 없는 건가?’
나타나기만 하면 그날 저녁은 파티인데 말이다.
그냥 구워 먹어도 맛있었는데 요리를 하면 어떻게 변하겠나.
지금 도로시가 메고 있는 가방 안에는 각종 양념과 부재료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 짐승의 먹이와 인간의 음식은 조리한다는 점에서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리란, 양념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죠.
하여 도로시는 개인 짐을 최소화하고 그 자리에 양념을 채웠다.
아직까진 딱히 쓰임새가 없었지만.
“아아앗! 저거! 저것 좀 잡아 주세요, 이반닙!”
도로시는 혀까지 깨물어 가며 급하게 사냥을 요청했다.
“자이언트 랜드 크렙이에요! 없어서 못 먹는 녀석이니까 꼭 잡아 주세요!”
드디어 양념 통이 개봉되는 건가.
숨넘어가는 도로시의 말에 나는 덩달아 조급하게 목표를 찾아 나섰다.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 보면, 보통 식재료가 아닌 듯싶다.
“거기, 그 앞에 나무 둥치요!”
도로시가 가리킨 곳은 높게 솟은 풀들이 뒤엉켜 자라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부러진 나무가 풀숲을 가르며 길게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 나무둥치 옆으로 거대한 게 한 마리가 움쩍거리고 있었다.
자이언트라더니…….
집게발 하나의 크기만 해도 내 머리통에 세 배가 넘는다.
“그런데 뭘… 들고 있는 거야?”
하늘로 향한 놈의 집게엔 이름 모를 열매가 야무지게 집혀 있었다.
“코코뱅 열매에요! 그게 녀석들의 주식이라서 육즙이 달달하고 상쾌한 향이 난다고요!”
“열매라고? 저게?”
백번 양보해 저것을 열매라고 치자, 그 겉면을 휘감고 있는 갈색 섬유질을 껍질이라고 치고.
그러면 그 아래로 드러난 저 구멍 일곱 개는 뭐라고 설명할 건데?
“저게 어딜 봐서 열매야?! 사람 머리통이구만!”
커다란 집게발이 움켜진 열매에는 눈, 코, 입, 귀라고 부르는 신체 기관이 동일하게 붙어 있었다.
“그럴리가요오어억…….”
나의 말을 부정하던 도로시는 튀어나온 눈을 마주하며 선 채로 기절해 쓰러졌다.
곁에 있던 별이 재빠르게 몸을 붙잡았고.
콰직!
나는 해머를 휘둘러 거대한 게의 갑각을 박살 냈다.
콰직!
콰콱― 콰드득! 콰곽!
꿈틀대는 관절을 죄다 박살 낸 뒤, 나뒹구는 머리로 다가가 유심히 살폈다.
“뭐지… 이건 잘린 흔적이 아닌데?”
확실히 이상했다.
이건 잘린 것도 아니고, 물어뜯긴 것도 아니었다.
“흠… 그대의 말처럼 잘린 흔적이 아니군. 필시 잡아 뜯은 게 분명하다.”
다가온 부족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나의 말에 동의했다.
“왜 이런 짓을 하지? 이런 습성을 가진 몬스터가 있나?”
몬스터에게 죽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인간과 몬스터가 서로의 목숨을 탐하니, 둘 중에 약한 개체가 죽는 건 이상할 것 없는 세상의 섭리다.
그런데 이건 다르다.
이 흔적은 평범한 전투의 상흔이 아니었다.
유린당했다고 해야 하나?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없는 이상, 이런 식으로 인간을 죽인다는 건 쉽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게다가 이 정도의 적대감을 표현한다니.
그동안 내가 배운 몬스터의 특성과는 여러모로 맞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환장하게 강하고 어마무시한 놈이 곤충 머리 뽑듯 인간을 사냥한 게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니었다.
“이 일대에서 제일 센 녀석이 화염도마뱀 아니었나?”
“맞아요. 용병 조합에서 본 내용도 그랬지만, 애초에 이쪽 방향은 강한 몬스터가 없는 길이에요.”
여기가 가장 쉬운 루트였으니까.
로제가 함께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난이도 높은 지역은 아직 멀리 있었고, 화염도마뱀의 서식지조차 이젠 멀어진 상태였다.
그러니 이 일대의 평균은 박살 난 자이언트 랜드 크렙 정도.
말하자면 이곳은 수준 낮은 몬스터가 모인 완충지대라 할 수 있었다.
“찝찝하네.”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며 우리는 이동을 시작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라. 일반인일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우리 일행에도 일반인이 있으니 술의 얘기가 틀린 건 아니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용병 일행이 있었을 텐데…….
끊임없이 이어지던 나의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명확한 이유를 마주했다.
“칼자국 맞지?”
“그런 것 같다.”
“아주 예리하군. 게다가 엄청난 힘으로 단칼에 베어 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산산조각을 낸 거지?”
“변태 새끼로군.”
나와 삼인조는 조각난 사체를 앞에 두고 각자의 생각을 드러냈다.
물론 로제와 도로시는 사이 좋게 기절한 상태.
토막 난 시신을 보곤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역시 머리는 없네.”
“그렇군. 목 언저리의 상처는 잡아 뜯긴 흔적이 분명하다.”
“이 사람도 그렇고, 저기에 있는 사람도 그렇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쪽에 있는 시체는 팔다리가 다 사라졌다.”
눈앞에 보이는 시체만 십여 구에, 상태는 죄다 참혹했다.
그러니 기절할 수밖에.
몬스터의 사체와 인간의 시체는 풍기는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후…….”
현장을 둘러본 나는 긴 한숨으로 감정을 추슬렀다.
사건의 범인은 인간.
“어떤 미친 새끼가 나타나서 찔러 죽이고, 베어 죽이고, 하다하다 뽑아 죽이고 사라진 거네.”
다른 의견이 필요할까?
심하게 깔끔한 절단면이 인간의 실력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제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범인은 몇 명이고, 사건 발생 시간은 언제쯤이었을까.
“칼질 수준이 일정해.”
“맞다. 모든 칼자국이 동일한 수준이다.”
“죽은 지 2∼3일 정도 된 것 같지?”
“시신의 상태를 보면 그 정도 지난 것 같다.”
부족장을 비롯한 술과 별은 나의 말에 동의하며 조용히 고갤 끄덕였다.
하나 이어진 마지막 질문엔 그렇지 못했다.
“아직도 근처에 있을까?”
“흠…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다. 여기서 뭘 하고 있겠나. 또 다른 사람을 찾아 어디든 이동했을 것이다.”
이렇게 부족장과 별은 각자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둘 다 그럴듯해 편들기도 쉽지 않은 상황.
침묵하던 술이 주위를 살피며 부산스레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갔고.
“이쪽으로 갔네.”
녀석은 곧게 뻗은 오솔길을 가리키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 * *
솔직히 말하자면 좀 당황스럽다. 필요 이상으로 엮이고 있다 해야 하나.
“이 길 맞아? 잘 생각해 보라고. 우리 모른다고 막 가고 그러는 거 아니지?”
경계의 차원으로 시작한 추적이 이제는 주요 루트로 변해 가고 있었다.
“헛소리하지 마라! 추적하면 나! 이 몸이 실수할 일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래서 문제다.
이어지는 놈의 행적이 우리에겐 영 좋지 못한 곳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쪽으로 계속 가면 시작의 마을이라고.”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정체불명의 미친놈은 시작의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물론 방향이 같다고 해서 목적지가 일치한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똑바로 가는 거 맞는 거지?”
“당연하다.”
불안한 마음은 점점 현실이 되어 다가오고 있었다.
마주할까 두려워서?
아니다.
싸움이 두려운 게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이 신경 쓰이는 것이다.
그런 미친놈이 마구잡이로 날뛰면 어떻게 되겠나.
보호 수단이 없는 로제와 도로시는 무방비 상태와 다름없게 된다.
그게 걱정되는 것이다.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니까.
쓸데없이 잘 맞는 예감을 탓하며, 불길한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그런 노력이 통한 것일까.
“오… 여기서 갈라지는군.”
좁은 두 갈래 길을 마주한 술은 오른쪽으로 뻗은 길을 보며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미친 살인마가 택한 길은 사라센과 리베로 향하는 길.
“확실한 거지?”
“확실하다. 그러니 이제 쫄 필요 없다.”
순간 버럭 할 뻔했지만, 일단 한 귀로 흘렸다.
부담스러운 상황을 피했으니, 남은 여정에 집중하는 게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다.
“범상치 않은 놈이라 신경 쓰였는데, 다행이군.”
부족장은 살인마가 사라진 사라센 방향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녀석도 느낀 것이다.
상대가 보통 놈이 아니라는 것을.
“마주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대가 있으니 패하지는 않았겠지만, 분명히 인명 피해가 있었을 것이다.”
부족장은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저 망아지 같은 술 녀석하곤 생각의 깊이가 아예 다른 것이다.
“맞아, 내 생각도 그래.”
부족장 말에 답한 나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잡아 다음 행동을 지시했다.
“서두르자. 여기서부터 험해지니까 해지기 전에 도착하는 게 좋을 거야.”
대수림의 밤은 지옥이다.
활동하는 몬스터의 흉포함은 두 배로 강해지고, 인간이 감각은 철저하게 제한된다.
하여 시간을 계산하는 것은 필수.
몬스터의 수준을 고려한 적절한 철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행동 지침이었다.
― 그렇게 꼼지락거리다간 큰일 날 텐데?
빅터와 함께했던 대수림의 기억은 홀로 된 나에게 훌륭한 생존 지침서가 되었다.
‘뭐 하고 있으려나.’
괴팍한 백발노인이 문득 떠올랐다.
말은 투박하게 해도, 놀리는 맛이 있던 영감인데.
“내가 선두로 달리면서 정리를 할게. 술이 내 뒤를 따라 일행을 끌고 와 주고, 부족장과 별은 로제 님과 도로시를 부탁한다.”
각자의 역할을 지정한 나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빠르게 달려 나갔다.
지금부터 나의 역할은 미끼이자 해결사.
사마귀 서식지를 통과하던 빅터의 모습을 이번엔 내가 재현하는 것이다.
그러니 뒷일은 동료에게 맞기고.
콰가가가각―
눈앞에 몰려든 몬스터를 향해 잿빛 해머를 휘둘렀다.
[내려치기 숙련도 3,422/10,000]
[휘두르기 숙련도 3,460/10,000]
[올려치기 숙련도 3,401/10,000]
쌓여 가는 몬스터의 사체만큼, 눈앞의 숫자들은 모양을 바꾸며 바쁘게 떠올랐다.
나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달콤한 보상.
헤치고 지나온 시간과 역경만큼, 눈앞을 가리는 메시지로 나의 노력에 응답해 주었다.
중독이다.
벗어날 수 없는 이 엄청난 성취감과 고양감은,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도전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어쩌겠나.
“크하하하하하! 덤벼 새꺄아아!”
오늘도 이렇게 달려 나갈 수밖에.
폭풍 같은 광기가 잦아들었을 무렵엔 익숙한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의 흔적이 고이 잠든 곳.
그곳을 우리는…….
시작의 마을이라 부르고 있었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