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도마뱀이라고 하지 않았나?”
“흠, 의뢰서에는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었는데…….”
“저게 도마뱀이란 말인가?”
“글쎄… 아무리 봐도 도마뱀은 아닌 것 같네.”
목적지에 도착한 나와 부족장은 먼발치에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토벌 대상인 우파루파는 분명히 도마뱀이라고 했는데, 지금 보이는 놈들은 무슨 드래곤을 보는 것 같았다.
뭐, 실제로 드래곤을 본 적이 없으니 비교 대상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이 녀석들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어쩐지 보상 수준이 높더라니.”
수주 조건으로 6성 이상을 요구했을 땐,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상관없다.
“저걸 꼭 잡아야 하는가?”
“당연하지 한 마리에 1골드잖아.”
놈들의 크기가 얼마나 크건, 수주 조건으로만 보자면 문제될 건 없었다.
6성쯤이야 이미 뛰어넘었으니까.
“흐음… 돈도 좋지만 그냥 가는 게 좋을 것 같군.”
“아니, 돈은 중요해.”
만류하는 부족장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다른 걸 잡아서 벌어도 된다.”
“온 김에 잡자고.”
“저렇게 큰데?”
“상관없어.”
하지만 부족장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
“그렇지 않아.”
“농담이 아니다. 저렇게 불도 뿜는데 결계도 없이 어쩔 생각인가.”
“어쩌긴 뭘 어째, 그냥 때려잡는 거지. 너흰 여기서 기다려.”
만류하는 부족장을 지나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입으로 불을 뿜든, 코로 들이마시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화염 내성으로 인해 발화가 차단되었습니다.]
[화염 내성으로 인해 열기가 차단되었습니다.]
이 정도 불꽃으론 나의 몸을 상하게 할 수 없었다.
수천 도를 오가는 백염에도 살아 나왔는데 이까짓 게 무슨 대수라고.
“가서 감자나 구워.”
화조의 둥지에 비하면 뜨겁다고 말하기도 민망했다.
크오오오옥?
그런 내가 이상했는지 불길 속을 걸어오는 나를 보며, 놈들은 커다란 대가리를 경망스레 까딱거렸다.
나름 상황을 파악하려 애를 쓰는 모양인데… 제아무리 머리를 굴린들 이젠 너무 늦어 버렸다.
“차라리 도망을 가지.”
기회는 이미 물 건너갔으니 남은 건 처절한 응징뿐.
멈칫거리는 놈들의 머리에 잿빛 해머가 사납게 들이쳤다.
콰지직―
두개골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왔고.
키에에에엑!
놈들은 괴성을 지르며 온몸을 비틀었다.
“오… 이걸 버텨 내네.”
생명력 강한 도마뱀의 특징인가?
녀석은 짓눌린 대가리를 치켜들며 두꺼운 꼬리를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며 다가오는 두툼한 육질.
애매한 불꽃보다는 차라리 이게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하나 그러면 뭐 하나.
[충격 내성으로 인해 대미지가 감소하였습니다.]
나에겐 통하지 않는데.
불을 뿜어도 안 되고, 꼬리를 휘둘러도 안 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망한 거지 뭐.’
놈들은 오늘 재앙을 만난 것이다.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는 적.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천적이라고 말한다.
지금 내가 바로 그 천적이 되었으니.
화르르르르르륵―
사방에서 쏘아지는 불꽃을 지나 놈들의 머리에 해머를 꽂아 넣었다.
눈에 보이는 족족 한 방씩.
끼에에에에엑!
꼬리를 날리고 앞발을 휘둘러도 소용없었다.
이미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는 정해졌으니까.
사방으로 날고뛰는 놈들을 쫓아 잿빛 해머를 때려 박았다.
작렬하던 화염도 사라진 지 오래.
기세등등하던 녀석들은 뒷걸음을 치며 하나둘 사라져 갔다.
그렇게 막다른 길에 도달했고, 마지막 남은 우파루파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홀로 남은 녀석이 머리를 낮추며 부들거렸다.
끼이이이이에―
그것은 복종이자 생존 본능.
범접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 두뇌를 가진 모든 생명은 굴복으로 목숨을 구걸한다.
하지만 자비는 없다.
반대의 상황이라면 나의 목숨은 진즉에 사라졌을 테니까.
나는 해머를 뒤집어 뾰족한 피켈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곤 마지막 남은 놈의 정수리에 피켈을 내려찍었다.
끼에에에엑!
날카로운 괴성을 끝으로 화염도마뱀 토벌은 싱겁게 막을 내렸다.
이제 남은 건 달콤한 보상의 시간뿐.
널브러진 놈들 사이를 누비며 화염 결정을 모으기 시작했다.
“1골드… 2골드… 3골드…….”
역시 늘어나는 재산을 보는 건 늘 행복하고 즐겁다.
배고픈 귀족이 될 바엔 배부른 용병이 백번 낫지.
두꺼운 가죽을 벗겨 가슴 언저리를 갈라냈다.
“오∼ 4골드!”
붉은 육질 사이로 보이는 주먹만 한 결정에 나는 콧노래를 흥얼대며 손을 뻗었다.
그렇게 결정을 뽑아내는 그 순간.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답해 줄 수 있겠나?”
갈무리를 돕던 부족장이 곁으로 다가와 질문을 던졌다.
내용은 이미 예상되는 바.
“결계도 없는 인간의 몸으로 어찌 그런 화염을 견딜 수 있는 건가?”
여러 생각을 해 봤지만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 번 불에 타 죽고 살아나면 되는데…….
라고 말해 주면 믿을라나.
“내 몸엔 서리 여왕의 피가 흐르고 있지.”
농담처럼 둘러대며 갈무리를 이어 갔다.
뭐라고 설명한들 믿지 않을 테니까.
“그랬군… 어쩐지…….”
하지만 녀석은 이 말을 믿는 것 같았다.
잔뜩 진지해진 얼굴로 대대로 내려오는 부족의 전설을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얘기했던 워 울프를 기억하고 있는가?”
“화염 계곡에 갈 때?”
“맞다. 그때 꺼낸 얘기다.”
물론 기억하고 있다.
진정한 전사에게만 등을 허락한다는 환상의 야수 이야기.
하지만 아무도 본 적 없는 기묘한 이야기였다.
“그 워 울프가 사는 곳이 서리고원이고, 그 땅의 주인이 서리 여왕이다. 그러니 그대는 워 울프의 주인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현실처럼 포장되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선택받은 적자인 듯, 부족장은 확신에 찬 얼굴로 나를 보며 끄덕였다.
“뭐야, 그게 진짜 있다고?”
“있다.”
“너는 본 적 없다며. 별도 그렇고 술도 못 봤다는데, 있는지 없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부모님과 나의 세대만 없는 것이지, 그 이전엔 워 울프의 주인이 있었다.”
부족장은 굳은 얼굴로 나의 말에 대답했다.
그대로 서서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별과 술을 바라보곤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족장인 아버님도 한탄하셨다. 자신이 부덕해서 영웅의 대가 끊겼다고… 하여 아들인 내가 부족의 염원을 안고 마을을 나온 것이었다.”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솔깃하면서도 여전히 믿기 힘든 그런 거 있잖은가.
말하는 사람이 베르였다면, 그냥 믿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여 저 말을 믿어야 할지를 고민하던 그때.
“부족장의 말이 맞다.”
결정을 챙기며 다가오던 별이 신중히 입을 열었다.
“그대와 만나던 그날이 우리가 출정한 지 100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별의 얘기는 과거로 거슬러 갔다.
그들은 서리고원으로 원정을 나갔으나 매번 실패했다.
워 울프는커녕 추위를 감당하기도 힘들었고, 고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돌아서야 했다.
“서리고원의 몬스터는 강했다. 원정에 참여한 모든 전사가 분투했지만, 우리는 고원에 도달할 수 없었다.”
원정대의 사기는 바닥을 쳤다.
호기롭게 출발한 그들은 부족장을 탓하며 두 파벌로 나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출정을 준비하던 그들과 한 남자의 결투가 있었고, 부족장인 ‘나를 죽이고 가라’는 형편없이 패배하고 말았다.
팽팽했던 두 파벌의 대립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재도전까지 실패하자, 사람들은 반기를 들었던 ‘셋 셀 동안 눈깔아’에게 모두 넘어가 버렸다.
“아… 그러면 진짜 나 때문에…….”
“그건 아니다. 그대는 강했을 뿐, 모든 문제는 내가 약해서 생긴 일이다.”
미안해하는 나의 말에 부족장은 덤덤히 대답했다.
사실 정서가 달라서 그렇지, 성격은 올곧은 놈이 아니던가.
자신의 부족함을 말하는데 일말의 주저함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녀석은.
“족장이 되지 못하는 건 아깝지 않으나, 눈깔아가 족장이 되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감췄던 사정을 드러냈다.
“그놈은 부족을 해체하려 한다.”
“해체한다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통과 정신을 버리려는 것이다.”
부족장은 상기된 얼굴로 놈의 정체성을 설파했다.
“놈은 부족의 유물과 비기를 팔아 황금을 취하길 원하고, 부족의 형제자매를 전장에 보내 부를 축적하길 바란다.”
쉽게 말해 돈 되는 건 내다 팔고, 부족 사람들을 전투 용병으로 내보내겠다는 말이다.
나와 함께한 삼인조와는 확연하게 다른 성향.
“그런 놈이면 족장 승계를 안 하면 그만이잖아.”
“불가능하다. 족장 승계는 가장 강한 남자에게 이어진다.”
나를 죽이고 가라가 퇴출된 이상, 녀석을 제지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얘기였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닌가.
전통을 깨려는 녀석을 부족의 전통으로 지켜주고 있었다.
“방법은 없는 거야?”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다른 길을 묻는 나의 말에 부족장은 조심스레 답했다.
있으면 찾아가야지.
“뭐 어떻게 하면 되는데?”
진중해진 녀석을 향해 나는 방법을 되물었다.
해법이 있다면 당연히 도울 생각이니까.
하지만 부족장은.
“그대가 족장이 되는 것이다.”
나에게 종족 변경을 권유했다.
“…뭐래는 거야.”
너무 황당해서 대꾸조차 제대로 못했다.
이게 뭔 개똥같은 소린지…….
내가 변장 좀 했다고 혈통까지 바뀌는 건 아니잖나.
“나 대신 눈깔아에게 도전하면 되는 것이다.”
헛소릴 지껄이던 녀석은, 조금 더 현실적인 얘기로 돌아왔다.
“나는 외부인인데?”
하여 나에게 도전할 자격이 있는 건지 진지하게 물었다.
“상관없다. 오러를 쓰지 않은 대결에서 지면 부족장의 자리에서 물러서야 한다.”
그에 대한 부족장의 답은 이렇듯 명쾌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나의 아버지도 이런 사건 뒤에 족장을 위임받으셨지.”
게다가 구체적인 전례까지.
녀석을 대신해 도전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얘기였다.
“흠…….”
결투야 당연히 이길 자신 있다.
오러가 없는 세상에서 나의 몸은 무적이니까.
눈을 깔든 뜨든, 어떤 놈이 나와도 무조건 내가 이긴다.
문제는 그 이후의 일이다.
족장이란 자리는 당연히 혈족 승계가 원칙일 터.
“내가 이겨도 난 반투족 혈통이 아니잖아. 그런데 어떻게 족장이 되냐고.”
눈깔아를 쳐 낸다고 해도, 여전히 족장 자리는 공석으로 남는다.
나는 외부인이고, 그 사실은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부족장은 더욱 눈을 빛내며 말했다.
“워 울프만 길들이면 조건은 완성된다. 진정한 전사로 인정받은 것이니 자격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그걸로 족장이 된다고?”
“그렇다. 하지만 혈통을 문제 삼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당연하지.”
“그때 이렇게 말하면 된다.”
“뭐라고?”
“나는 족장을 이 사람에게 양도하겠다.”
부족장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뜻밖의 치밀함에 감탄하던 그 순간.
“미련 곰탱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여우였군…….”
버릇이 도진 로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뭐가요?”
“방금 곰탱이라고 하지 않았나.”
“무슨 소릴 하시는 거죠? 저는 그냥 속으로 생각… 아니! 여우라고… 뭐래?! 아무튼 저는 그냥 서 있었거든요!”
그거 있잖은가.
속으로 하는 생각이 바깥으로 막 튀어나오는 거.
하여간 로제는 반문하는 부족장을 향해 자신의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내가 분명히 들었다!”
“아니거든요!”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의 대립은 점점 거세졌고.
“아가씨… 한숨 자고 올까요?”
조용히 다가온 도로시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로제의 팔을 붙잡았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