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우리도 갑시다.”
“어디로요?”
“어디긴요. 마침 녀석도 나타났겠다, 뒤를 밟아서 뭐 하나라도 캐내야지요.”
의아해하는 로제에게 나는 노이의 뒤를 쫓자고 말했다.
녀석이 향하는 방향이 후작의 영토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결정적인 단서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카리프가 이곳에 온 이유나 그들의 목적지.
또는 관심을 두는 그 모든 것을 모으다 보면 새로운 정보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술이 먼저 출발하고, 나머진 그 뒤를 따르는 게 좋을 것 같군.”
“술 혼자?”
“모두 함께 움직이면 상대가 눈치챌 확률도 커진다. 술은 미행에 재주가 있으니 먼저 보내는 것이 좋다.”
미덥지 못한 구석이 잔뜩 있지만 한편으론 달라 보이기도 한다.
언뜻 보면 사냥개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추적을 잘해서 붙여 준 별명이 개꼬리였다.”
개였던 거냐? 그것도 꼬리?
보통 이럴 땐 개코라고 하지 않나?
“후후… 추적에 관한 나의 일화는 수도 없이 많지. 한 번은 가출한 별을 찾아 마을 주변을 수색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독버섯을 먹고 기절해 있는 별을 발견했지.”
하여간 술은 자신의 별명이 자랑스러웠나 보다.
다만, 예로 든 일화의 선택이 문제였는데…….
“그만해라.”
낮게 깔리는 별의 음성이 위험한 상황을 예측케 했다.
하지만 술의 무용담은 계속되었고.
“아무거나 주워 먹고 다니더니 입으론 거품을 물고 아래론… 꾸웨에엑!”
탱탱한 술의 엉덩이에 대검 손잡이가 틀어박혔다.
“끄오오오옷…….”
흰자위를 드러내며 부들거리는 술.
“닥치라고 했지.”
그렇게 술은 대검 손잡이에 순결을 잃어버렸다.
뭐라 할 말이 없다.
같은 남자로서 애도를 보낼 뿐.
“크흠… 하여간 추적은 잘한다.”
부족장이 저렇게 말하니 믿고 보내기로 결정했다.
개코인지 개꼬린지 일단 두고 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객점을 나왔고.
“이제 우리도 출발하지.”
앞서간 술을 따라 마을을 빠져나왔다.
* * *
짙푸른 잔디가 무성한 언덕 아래.
흰 터번을 두른 한 쌍의 남녀가 산등성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내려오신다.”
“어디? 아, 보인다. 이제 착지하셨네.”
그들이 향한 시선 끝에는 잔디를 타고 내려오는 빅터 크로제가 있었다.
평지에도 도착한 그를 향해 두 남녀가 잰걸음으로 다가섰다.
“고생하셨습니다, 스승님. 황궁에선 별고 없으셨습니까?”
“수고 많으셨습니다.”
인사를 건네는 베르와 에스카를 보며 빅터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그놈이 안 보이는구나?”
그러고는 자리에 없는 이반을 찾기 시작했다.
“아, 후배님은 카슈타르에 갔습니다.”
“하라는 수련은 안 하고 거기엔 무슨 일로 갔다더냐.”
“그곳 영애와 인연이 있다고 하더군요. 스승님도 아실 거라고 하던데요?”
“내가? 내가 카슈타르의 영애를… 아! 화전민 마을을 말하는 게로구나.”
계속되는 베르의 말에 빅터는 금발 벽안의 여기사를 떠올렸다.
맞다. 그런 인연이 있었다.
한데 이반은 무슨 연유로 그곳을 갔을까.
영애와의 인연 때문에?
고작 그 이유만으로?
그러한 빅터의 의문은 이어진 베르의 말에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사람을 찾는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카슈타르 가문의 도움이 필요한 것 같더군요.”
“흐음… 누구를 찾으러 갔는고.”
“자신을 대장간에 맞긴 사람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그랬다.
고아였던 이반은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대장간에 맡겨졌다고 했다.
“일정에 대해 따로 말한 것은 없더냐.”
“정확하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스승님 오실 때쯤에 맞춰 보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진 소식이 없습니다.”
“알겠다. 일단 가자꾸나.”
상황을 전해들은 빅터는 리베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순간.
“아참, 그 대신 특이한 물건을 하나 보내왔습니다.”
뒤를 따르던 베르는 어제 받았던 소포를 떠올렸다.
그에 빅터는 걸음을 멈췄고, 눈썹을 끌어올리며 이어질 말을 재촉했다.
“마족의 뼈를 보냈더군요.”
“마족의 뼈?”
“네. 숙소에 보관돼 있으니 스승님께서 확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흠… 알겠다.”
빅터를 포함한 세 사람은 드넓은 평원을 지나 리베로 향했다.
* * *
“이게 정말 표시라고?”
“그렇다. 이 길로 술이 지나간 것이다.”
“뭘 보고 확신하는 건데?”
“여기 나무가 부러져 있잖은가.”
“아까는 바위가 뒤집혔다며.”
“거긴 그랬지만 여긴 이런 거다.”
이게 뭔 개소리야!
그냥 아무거나 붙잡으면 다 흔적이냐?
아까는 바위, 그 앞에선 구덩이, 또 그 앞에선 자갈 한 개였다.
“정해진 건 없다. 그저 주위의 상황과 맞지 않는 현상을 찾는 것뿐이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부족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결국 계속 믿고 따르라는 건데.
“흠…….”
그러기로 했지만 선발대가 술인 것이 불안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니까.
“제정신 아닐 때가 많지만, 할 땐 하는 놈이니 걱정할 것 없다.”
그렇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이제 와 불신한들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뭐, 일단 가 보자고.”
우리는 부족장의 뒤를 따라 이동을 계속했다.
땅에 심은 나뭇가지를 지나니 작은 돌무더기가 나왔고, 돌무더기를 지나니 젖은 흙과 난잡한 발자국이 나왔다.
‘제법인데?’
상황에 따른 녀석의 표식은 묘하게 눈에 띠었다.
처음엔 잘 모르겠더니만, 이제는 한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흔적을 따라가던 우리는 덤불 사이에 숨은 익숙한 뒤태를 발견했다.
탱탱하고 단단해 보이는 화난 엉덩이… 순결을 빼앗긴 뒷모습의 주인은 먼저 출발한 술이었다.
“쉿…….”
덤불 너머를 살피던 술은 손가락을 세워 입에 댔다.
그러고는 전방을 주시한 채 지켜본 상황을 설명했다.
“조금 전에 새로운 남자가 나타났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수풀 너머로 보이는 건 노이의 일행이었다.
“우연히 만난 거야?”
“아니다. 아까 싸웠던 패거리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술의 설명을 들으며 눈앞의 상황에 집중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거리가 너무 머네.”
그러니 대화 내용은 고사하고, 얼굴 생김새조차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역시 세속인들은 시야가 탁하군. 타락한 것들을 보고 사니 눈이 병드는 것이다.”
“뭐래. 그럼 너는 저게 보인다고?”
“당연한 것 아닌가. 이 정도 거리라면 얼굴 생김새쯤은 문제도 아니다.”
이게 좀 띄워줬더니 또 헛소리를…….
눈코입도 안 보이는데 무슨 생김새를 구분한단 말인가.
“저 얼굴 넓적한 놈은 노이라는 녀석이고, 그 옆에 있는 녀석은 콧잔등에 흉터가 보인다.”
하지만 술은 흐릿한 형체를 보며 생김새를 읊어 댔다.
저 말을 믿어야 되나?
실제로 보이는 건지 외워 둔 인상착의를 떠드는 건지 당최 구분이 되질 않는다.
넙죽 믿어 주기엔 그간의 행실이 영 미덥지 않아서다.
이 뿌리 깊은 불신의 벽이라니.
어쨌거나 녀석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갔다.
“새로 합류한 저놈은 오른쪽 귓불이 잘려 나간 것 같군. 뜯어 먹었나? 하여간 귀 모양이 이상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놈은…….”
“잠깐만요.”
하나 녀석의 설명은 갑자기 끼어든 로제로 인해 중단되고 말았다.
“귓불이 잘렸다고 했나요?”
“그렇다.”
“오른쪽 귓불이?”
“맞다. 이빨 자국처럼 둥그렇게 잘려 나갔다.”
인상착의를 듣던 로제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 갔다.
불현듯 떠오르는 제3의 인물.
“혹시…….”
“맞아요. 순찰대장이에요.”
로제의 입에서 나온 사람은 이 사건의 열쇠를 쥔 변절자였다.
“흠, 그렇다면 지금 덮쳐야 하겠군.”
“우측은 내가 맡겠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부족장과 별이었다.
그 생각도 나쁜 건 아니지만.
“아니, 지금 섣부르게 나섰다간 증거를 잃을 수도 있어. 아닌 말로 꼬리 자르기라도 한다면…….”
증거이자 증인인 순찰대장이 잘못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보기 좋게 무시당했다.
“저것들 지금 뭐하는 거지?”
놈들의 허리춤에서 검이 뽑힌 것이다.
그에 순찰대장은 무릎을 꿇었고.
“어, 어어어어어어어어어?!”
두 손 모아 비는 그의 목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런 시발!”
“안 돼요!”
자리를 박차던 나의 몸짓은 로제의 만류에 부딪쳤다.
“왜요? 지금 잡아야 오리발을 못 내밀 거 아닙니까?”
“아니에요. 지금 잡는다고 쳐도 죽인 이유만 둘러대면 그만이잖아요. 그렇게 되면 명분을 잃게 돼요.”
“명분이야 순찰대장을 죽였다는 것 자체가 명분이잖아요.”
“탈영병이니까요. 무단 이탈을 한 순간 공공의 적이 되는 거예요.”
뭐가 이렇게 복잡한 건지.
눈앞에 범인이 있건만, 잡아야 할 이유보다 잡지 못할 이유가 더욱 많았다.
“아시잖아요. 귀족의 싸움은 명분이 절반이에요. 더군다나 상대는 후작가… 명분에서 지고 들어가면 회복이 어려워집니다.”
이야기가 이렇게 돼 버리면 내 입장에선 어쩔 도리가 없다.
객점에서 노이가 물러선 이유 역시 명분의 문제였고, 내 역할은 그저 조력자일 뿐이다.
이후의 책임은 카슈타르 백작가에 고스란히 전가될 터.
돕겠다고 나선 걸음이 피해를 준다면 안 하느니만 못했다.
“후… 일단 지켜보죠.”
감정을 추스르곤 놈들의 행보를 지켜보았다.
죽은 순찰대장의 머리가 숲속으로 날아갔고,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덤불에 파묻혔다.
“이동한다.”
노이의 일행은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남 방향인데, 대수림을 가로막은 만년설산이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쪽으로 가 봐야 산자락인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게 몰려가는 걸까요?”
궁금한 걸로 따지면 나 역시 만만치 않다.
사실 노이 때문이라기 보단, 곁에 있는 카리프 때문이다.
대하는 태도를 보면 무시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다니고 있었다.
필시 모종의 손익 관계가 있을 게 분명하다.
자고로 대가 없는 친절과 인내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니까.
뒤를 쫓던 우리는 활엽수림이 펼쳐진 산자락에 도착했다.
놈들은 이미 넝쿨에 가려진 동굴로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따라 들어갈까?”
“아니, 여기서 기다리자.”
그냥 예감이 그랬다.
겉으로 드러난 동굴의 입구도 작았고, 주변 산자락 자체가 아직은 낮았기 때문이다.
그다지 깊지 않은 동굴일 테니 따라 들어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기다리길 30여분.
동굴을 나온 노이 일행은 왔던 길을 되돌아 산자락을 빠져나갔다.
“혼자 따라붙을 수 있겠어?”
“후후… 개꼬리의 전설을 우습게 보지 마라. 이런 미행 따위 일도 아니다.”
“좋아. 그러면 네가 저놈들을 쫓아. 금방 따라갈게.”
하여 술은 노이의 뒤를 밟았고, 우리는 동굴을 목표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예상이 맞았다.
동굴이라기엔 다소 짧은 이곳은, 안으로 들어오자 넓은 공간이 확보되어 있었다.
“파낸 건가?”
가공의 흔적이 보이는 동굴 내부는 적당히 다듬어져 활동하기 수월했다.
하지만 시선을 잡아끄는 건 따로 있었으니.
“저게 다 뭐야?”
정체를 알 수 없는 투명한 병과 유리잔이 벽면 가득한 선반과 책상 위에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뭐라 말하기도 어색한 생경한 모습… 굳이 비슷한 무언가를 말하자면 연금 상점일까.
페드로의 가계 안쪽에도 저런 병과 유리잔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그 외에 잡다한 도구들도 보였지만, 어차피 모르는 물건이다.
용도 파악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이니 이곳의 정체는 더욱 수상하기만 했다.
“고문하는 곳인가?”
“글쎄요. 연구실 같은 게 아닐까요?”
“연구를 굳이 왜 이런 데서…….”
나름 머리를 맞대 봐도 뾰족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더 있어 봐야 시간 낭비일 뿐.
대략적인 상황은 파악했으니 노이의 행적을 쫓기로 했다.
그렇게 우린 술이 남긴 흔적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고.
“너 여기서 뭐해?”
갈림길에 도착한 나는 멍하니 서 있는 술을 발견했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