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크어억!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몰라, 새꺄.”
“우리는 마론 후작님의…….”
“모른다고!”
뿌아악! 쿠당! 쾅―!
노이의 졸개들은 헝겊 인형처럼 날아다녔다.
회귀 전에도 상대가 안 됐는데 지금이야 말해서 무엇 할까.
능숙해진 나의 공격에 놈들은 제대로 된 방어조차 펼치지 못했다.
아니, 했으나 소용없었다.
나의 해머는 가드 위를 때렸고, 놈들은 피를 토하며 바닥을 기었다.
“네놈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 커헉!”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무사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주인의 이름을 파는 긱스의 턱에 나는 살포시 주먹을 꽂아 넣었다.
녀석들의 정체를 내가 몰라서 이러고 있겠나.
“이반 님, 이 사람들 정말 마론 후작님의 식솔이에요. 이분은 둘째 아들이고요.”
후작가의 쓰레기라는 건 회귀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데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뭐야? 진짜 후작가의 아들이었어? 아니, 그런 분들이 왜 남의 영지에 와서 다짜고짜 칼을 꺼낸 답니까? 강도 새끼들인 줄 알았잖아요.”
나는 오리발을 내밀며 시치밀 뗐다.
명색이 후작의 아들인데 이래도 되나 싶겠지만 상관없다.
“어떻게 가신 주제에 그런 무례를 저지를 수 있죠? 로제 님을 우습게 본 거잖아요. 후작의 가신이면 그래도 되나요?”
우리에겐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감히 영주의 영애 앞에서 칼을 뽑았으니, 이는 명백한 도발이자 카슈타르 가문을 무시한 행위였다.
“좋아. 오늘 일은 내가 키우는 개새끼들 잘못이라고 치지.”
결국 노이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런데 너… 뒷감당할 자신은 있는 거지? 그런 게 아니라면 이 나라에서 못살아.”
그러고는 질문 같은 협박을 태연하게 내뱉었다.
하나 이 또한 내 알바 아니다.
“상관없는데.”
나는 브라함 제국의 사람이니까.
형식적인 예우야 갖춰 주겠다만, 눈치 볼 이유는 없었다.
굽신거릴 이유는 더더욱 없고.
“아케른이라고 아시나? 브라함 제국에 있는 최전선인데. 뭐, 화풀이라도 하실 생각이면 그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저는 그곳 주인의 제자니까요.”
듣고 있던 노이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멈칫하던 손이 테이블로 향했고, 반쯤 마신 잔을 들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거칠게 내려놓는 불투명한 유리잔.
쨍그랑―
산산이 부서진 유리 파편이 노이의 발 앞에 쌓여 갔다.
“외국인이라고… 그래, 인정하지. 빅터의 제자란 것도 인정.”
나지막이 말하는 노이의 눈가에 가느다란 떨림이 전해졌다.
나름 사리 판단은 하는 걸까.
감정을 추스른 노이는 끊어진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면 나도 외국인을 소개시켜 주지.”
그리고 그 순간.
한 가닥 빛줄기가 객점 내부를 갈랐다.
선처럼 그어진 빛이 범위를 넓혀 갔고, 분위기를 바꾼 노이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등 뒤로 전해지는 서늘한 느낌.
오싹한 한기가 스미며 전신의 근육이 팽팽해졌다.
드디어.
‘왔구나.’
언젠가 마주할 거란 막연한 기대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루어졌다.
이로서 노이의 땅에 대한 의문은 한 꺼풀 벗겨졌다.
놈이 사들인 지역에서 무슨 일이 꾸며지고 있고, 역시나 배후는 따로 존재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인사해. 그 외국인이시니까.”
사라센에 있어야 할 카리프가 이곳이 나타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린 나는 카리프와 시선을 마주했다.
묘한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처음 대면했던 그날에도 녀석은 알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며 이렇게 다가왔다.
“조심해라, 이반. 이상한 기운을 품은 놈이다.”
뒤에 있던 부족장이 소곤대며 경고를 전했다.
마력에 둔감한 나도 느끼는데 녀석은 오죽했을까.
긴장한 우리를 지나치며 소란의 주인공은 노이의 곁에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상황을 묻는 카리프의 음성이 낮게 울려 퍼졌다.
“아, 건방진 놈이 있어서요. 정신 차리게 타일러 주셨으면 좋겠는데.”
“그런 하찮은 일은 네놈이 알아서 해라.”
부탁하는 노이의 말을 카리프는 차갑게 거절했다.
명료하게 드러나는 상하 관계.
주고받은 짧은 대화로 노이의 역할은 대강 짐작되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이게 귀공과 무관한 일이 아니거든요.”
아랑곳없는 노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오히려 흥미로운 표정이랄까.
“아케른이 어딘지 아시죠? 저 녀석, 그곳 주인의 제자라고 하던데…….”
카리프의 반응을 예상한 듯 노이는 히죽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는 밉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뒷말을 이어 갔다.
“이래도 하찮은 일인가요?”
녀석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무심하던 카리프의 눈에 살기가 맴돌았고, 그 살기는 혀끝을 통해 나의 귓가로 향했다.
“너의 스승이 빅터 크로제더냐.”
저릿하게 파고드는 카리프의 음성이 각인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손쓸 틈조차 없었다.
압도적인 강함이 실린 놈의 일격은, 나의 해머와 머리를 반으로 갈라냈다.
나의 한계를 마주하게 했던 남자.
지금 내가 대답하면 녀석은 그날의 일을 반복하려 할 것이다.
자신만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 1,000명에 홀로 대적한 검의 달인, 고고한 아케른의 별이자 헤모니아의 야수 카르간을 쓰러뜨린 빅터 크로제가 나의 스승이다.”
다시 죽더라도 내 선택은 이것이다.
저놈을 넘지 못하면 나의 미래는 없으니까.
“재미있군.”
카리프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나의 손은 해머를 바로잡았고, 녀석의 손은 허리춤으로 향했다.
“빅터도 곧 따라 보내 주마.”
카리프는 회귀전과 같은 소릴 나에게 전했다.
이제 시작이다.
이 일격을 견디면 나의 미래는 새로운 지평을 맞이하게 된다.
느리게 오르는 카리프의 검을 따라 나의 해머도 준비를 마쳤다.
남은 것은 격돌의 순간뿐.
내려 긋는 놈의 사선에 나는 해머를 올려쳤다.
두 사람의 무기가 허공에서 마주했고.
쩌엉―
둔중한 소릴 내며 움직임을 멈췄다.
긴장된 나의 두 눈은 강화된 해머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큭큭큭…….”
멀쩡한 해머를 보며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약점은 사라졌으니까.
“제법이군.”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카리프는 짧은 소감을 전해 왔다.
“아니, 아직 멀었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녀석의 말을 부정했다.
벌써부터 칭찬하면 안 되지.
진짜는 아직 시작조차 안 했는데.
“제대로 붙어 보자고.”
내뱉은 나의 말과 함께 녀석의 오러가 분위기를 바꿨다.
농밀함을 넘어선 이질적인 기운.
카리프와 나는 서로의 사선을 향해 각자의 병기를 휘둘렀다.
콰앙―
맞닿은 무기에서 맹렬한 충격이 퍼졌다.
이것이 7성 초입의 힘.
하지만 해머는 여전히 무사했고.
[올려치기 숙련도 2,998/10,000]
마지막 삼신기는 3,000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부아아악― 쾅!
콰콰쾅!
쾅! 콰쾅!
지천으로 뻗어 나가는 오러의 파동에 객점 내부는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아가씨!”
“도련님!”
각자의 주인을 챙기며 도로시와 긱스는 뒤로 물러섰다.
그사이 올라간 숙련도는 2,999.
몰아치는 카리프의 파상 공세를 사력을 다해 틀어막고 있었다.
쾅! 콰가각! 콰쾅!
솔직히 말해 버겁다.
무시할 수 없는 격의 차이는 시시각각 조여들며 나의 목숨을 노려 왔다.
하지만.
‘하나만 더!’
마지막 남은 숙련도 1을 위해 올려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딱 한 번만.
내 머리를 베었던 그대로 그어준다면…….
낮게 파고드는 검을 막아 내며 나의 두 발은 조금씩 뒤로 밀렸다.
그렇게 밀려나는 것도 잠시.
어느새 나는 두꺼운 테이블을 등진 채 놈의 공격을 마주해야 했다.
‘제기랄.’
물러서던 나의 다리에 무언가가 걸려 들었다.
이런 틈을 놓칠 리 없을 터.
놈은 흐트러진 나를 향해 마지막 선을 내리그었다.
벼락같이 다가오는 절체절명의 순간.
나는 남겨진 모든 근력을 쥐어짜 손에 든 해머를 쳐올렸다.
쩌엉―
솟아오른 해머가 놈의 검을 틀어막았고.
[올려치기 숙련도 3,000/10,000]
“잡았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올려친 해머를 거둬들였다.
[기본 수련 3종이 3단계를 돌파하며 둔기 마스터리 레벨이 4로 상승합니다.]
[둔기의 대미지가 20% 증가합니다.]
[누적 대미지 합계 40%.]
익숙한 모습에 투영되는 새로운 내용들.
정신없이 올라가는 문자 사이로 카리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뭘 보고 서 있어. 2차전 시작해야지.”
마주한 놈을 보며 나는 잔망스레 손을 까딱였다.
자신 있었으니까.
온몸에 날뛰는 사나운 기운은 녀석을 향해 거칠게 포효했다.
그렇게 2차전은 나의 선공으로 시작되었고.
“흐음…….”
침묵으로 일관하던 카리프의 입에서 옅은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어지는 휘두르기와 연계된 내려치기.
“크윽…….”
짙은 오러에 쌓인 카리프의 검이 짓쳐들어오는 충격에 이리저리 휘둘렸다.
콰각! 쾅! 콰가각!
상황은 역전돼 나의 흐름이 되어 갔다.
물 들어올 때 노 젖는다고, 기세를 잡은 나는 맹공을 이어 갔다.
“갑자기 왜 저래?”
“폭주하는 건가?”
지켜보던 술과 부족장은 상황을 살피며 의아해했다.
가해지는 충격이 달라졌으니 보는 그들도 느꼈던 것이다.
무언가 변했다는 것을.
“파괴력이 아예 다르군.”
대미지 20% 추가는 눈을 의심케 할 만큼 강력한 잔상을 남기고 있었다.
누적된 총합이 무려 40%.
같은 동작이지만, 그 내용은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7성 별거 없네.”
나는 물러선 카리프를 향해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몸의 움직임은 비슷하다.
다른 것은 오직 오러 하나뿐… 하지만 나의 해머는 여전히 굳건했고, 기이한 문자의 도움도 받고 있는 상태다.
녀석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없다면, 나의 복수는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만하세요.”
벌어진 카리프와 나의 사이로 지켜보던 로제가 걸어 들어왔다.
“이 이상 무례한 행동을 계속한다면 마론 후작님께 정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제3의 전개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특히나 노이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으니.
“혼담이 들어갔다고 기세등등하신데… 이런 소식을 듣고도 아버님께서 가만히 계실까요?”
“크흠.”
“영주의 딸 앞에서 그의 손님에게 칼을 겨누다니. 후작 가문쯤 되면 법도라는 것도 잊고 사나 보네요.”
가시 돋친 로제의 말에 노이는 얼굴을 구기며 쓰게 혀를 찼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무례함이었다.
회귀 전과 다르게 명분이 없었고, 결투라는 장치가 없으니 선을 넘은 행동이었다.
“뭐, 같은 외국인끼리 싸운 거니 그냥 넘어갑시다. 다친 애들도 우리 애들뿐이니까.”
한발 물러선 노이는 두 손을 들어 항복을 선언했다.
그 모습을 보던 로제가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냥 보내도 되겠냐는 질문인 것 같은데.
“…….”
나는 말없이 끄덕이며 로제의 뜻에 동의했다.
애초에 나서지 않았다면 모를까.
영지의 귀족이 나선 이상, 물러서는 게 현명한 판단이다.
“하여간 오늘은 실례 많았어. 예비 신부는 분위기 좋은 데서 다시 보기로 하고… 너, 네놈은 이름이 뭐냐?”
“이반.”
“이반이라… 그래, 다음에 또 보자고.”
이름을 확인한 노이는 자리를 털고 객점을 나섰다.
이어서 긱스와 졸개가 뒤를 따랐고, 나지막 남은 카리프가 지나가던 걸음을 멈춰 세웠다.
“기억하고 있겠다.”
“그래야 할 거야. 다음에 만나면 죽일 생각이니까.”
서로를 오시하던 차가운 눈은 피로 얼룩진 재회를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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