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콰장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빈약한 창문이 박살 났다.
폭발하듯 터져 나가는 유리창.
잔재한 유리 조각을 비집으며 붉은 눈의 사람들이 악귀처럼 밀려들었다.
그래.
분명히 악귀였다.
인간이라면 저럴 수 없을 테니까.
유리에 베인 팔다리가 시커먼 피를 뿜어 댔고, 길게 찢어진 옆구리에선 검붉은 내장이 쏟아졌다.
갑자기 시작된 긴급한 상황이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건만 별을 붙잡고 있던 나의 몸은 움직임조차 쉽지 않았다.
한데 이 녀석은 왜 아직도 자고 있는 걸까?
이렇게 깊게 잠들 수도 있는 건가?
유리창이 깨지며 고성이 오가는데도 녀석은 여전히 깨어날 조짐이 없었다.
이렇게 망설이다간 둘 다 위험해질 터.
“쯧…….”
뒤를 돌아본 나는 오두막 한가운데를 향해 별을 집어던졌다.
분명히 그랬는데.
빠아악―
바닥을 굴러야 할 별은 달려드는 괴인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놀란 것도 잠시.
“방해하다니…….”
괴인을 날려 버린 별은 미간을 찌푸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잘못들은 건가?
마주친 나의 시선을 슬쩍 흘리며 녀석은 아쉬운 표정으로 대검을 움켜쥐었다.
순간 돋아나는 소름.
“허얼…….”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된 나는 주먹을 부들거리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그게 작전이었다니.
야릇했던 그때가 떠오르며 수치심이 하늘을 찔렀다.
[이반, 28세. 사인, 수치사. 물컹거린 충격에 정신줄 놓고 사망.]
훗날 나의 묘지엔 저런 비문이 적힐지도 모르겠다.
정말 충격적인 느낌이었으니까.
하나 사건의 원흉인 녀석은 아랑곳없이 상황에 집중했다.
“전투 중이다. 정신 차리고 무기나 받아라.”
승자의 여유란 건가.
해머를 던진 별의 얼굴은 전장에 들어선 전사의 표정이었다.
분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무, 무슨 일이냐!”
잠에서 깬 일행들과 함께 벌어진 일부터 수습에 나섰다.
먼저 침입한 괴인은 별에게 제압된 상황, 좁은 창으로 몰린 괴인들은 서로를 잡아당기며 이를 갈고 있었다.
덕분에 상황은 안정을 되찾았고.
“이것들 마을 사람 아니야?”
공격을 멈춘 나는 의문을 제시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인적이 사라진 마을과 갑자기 나타난 괴인들…….
너무 노골적인 상황이라 무시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한 나의 의문은 틀리지 않았으니.
“마을 사람이 맞을 것이다.”
전투에 합류한 부족장은 나의 의문에 답하며 창가로 다가왔다.
“뭐야, 해치우면 안 되는 거네?”
“아니, 죽여야 한다.”
반문하는 나의 말에 부족장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부족장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붉은 눈, 그리고 검게 팽창된 혈관… 이 사람들은 이미 마인으로 변해 버렸다.”
쉽데 말하자면 마기에 오염됐단 얘기다.
“보아하니 이젠 손쓸 방법도 없는 것 같군. 침식이 시작된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부족장의 말마따나, 사람이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흉측한 외모는 차치하더라도 기이한 생명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깨진 유리가 사지를 파고드는데 놈들의 반응은 너무도 태연했다.
아니… 태연한 정도가 아니다.
모가지 절반이 날아간 저 녀석은 창틀 아래에 깔린 채 여전히 버둥거리고 있었다.
상식으로 재단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
“어쩔 수 없다. 이거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마음을 정했다.
사정은 딱하지만 해치울 수밖에.
푸아아악―
해머에 직격당한 놈들은 검은 피를 뿌려 대며 성대하게 터졌다.
움직이질 못하니 그저 말뚝에 불과할 뿐, 빠르게 정리를 마친 나는 현관문을 열어 밖으로 나섰다.
“아무것도 없군. 저게 끝인가?”
뒤를 따르던 부족장이 의구심을 드러내며 주위를 살폈다.
솔직히 이상하다.
널브러진 사체가 무색할 만큼 주변의 상황은 너무도 고요했다.
분명히 무언가 남아 있을 터.
감각을 집중시킨 나의 귓가에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표현하자면 달그락 같은.
“쉿…….”
검지를 들어 올린 나는 침묵을 유지한 채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멀지 않다.
소리의 크기는 작지만, 이것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 소음이다.
예민해진 청각은 눈앞의 오두막을 가리켰고.
“거긴 것 같군.”
곁에 있던 부족장은 코끝을 훔치며 내 생각에 동조했다.
그에 덧붙여 한마디 더.
“마기를 느끼지 못한 이유는 저것 때문이었나.”
판자로 막힌 오두막을 보며 부족장은 쓰게 혀를 찼다.
무언가 방해를 받았다는 것인데.
“가 보면 알겠지.”
해머를 거머쥔 나는 건너편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우리는 문제의 오두막에 도착했다.
“어쩐지 낯이 있다 싶더니만.”
서서히 올라온 부족장의 손끝은 너저분하게 덧방된 적갈색 판자를 지목했다.
“저게 왜?”
“신령목이다.”
재질을 말하는 걸까.
갸우뚱하는 나를 향해 부족장은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사악한 것을 정화한다는 신성한 나무다. 우리 반투족의 제단도 저것으로 만들었지.”
이어진 그의 말에 따르면 부정한 기운에 영험한 효과를 보인다고 했다.
요점은 마기를 차단한다는 것.
덕지덕지 기워 댄 현관과 창문은 그에 대한 적절한 예시였다.
“저렇게 돼 있으니 마기를 못 느낀 것이다. 감춰져 있어 몰랐던 게지.”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는 법이니까.
집고 넘어갈 부분이야 많겠지만, 우선은 토벌이 먼저였다.
나는 해머를 치켜들었고.
부아아악―
그대로 휘둘러 봉인된 문짝을 날려 버렸다.
때를 같이해 들이치는 반투족 삼인방.
내부로 진입한 반투족은 대형을 갖추며 소탕을 시작했다.
참으로 신기한 녀석들이다.
평소엔 그렇게 엉뚱한데 전투만 시작하면 눈빛이 반짝인다.
이른바 전투 종족의 특징이라는 건데.
“간격 유지!”
부족장을 필두로 한 반투족 3인은 한 몸처럼 움직이며 마인을 상대했다.
크아아아악!
단칼에 날아가는 마인의 목덜미.
진지해진 술의 쌍도끼는 날카로운 호를 그으며 다음 목표를 찾아갔다.
굳이 나설 이유도 없었다.
반투족의 실력은 확실했고, 오두막 내부의 적은 빠르게 정리됐다.
“소탕 완료.”
짧게 이어진 별의 보고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내부의 마인은 모두 합해 일곱이었다.
노인과 중년이 포함된 조합으로 이렇다 할 특이점은 달리 보이지 않았다.
구성 자체는 평범했는데…….
“일부러 가둬 둔 건가?”
발견된 상황만큼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이건 감금이니까.
“아마도 변이 초기에 격리시켰겠지. 누군지 몰라도 서둘러 대처를 잘 취한 것 같다.”
의구심 가득한 나의 질문에 부족장은 확신으로 대답했다.
“하… 젠장.”
내가 원하던 대답은 그런 끔찍한 것이 아니었다.
이유야 말해 무엇 하겠나.
“구린내가 진동하네.”
이 마을의 비극은 자연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다들 이해하지 못한 걸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뒤에 있던 로제는 나의 말에 반문하며 천천히 다가왔다.
비단 그녀만의 궁금함은 아닐 터.
“작위적이란 얘기예요.”
나는 누군가의 개입을 의심하며 진중하게 대답했다.
이유라면 두 가지.
첫 번째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마기의 경로였다.
“이 마을에 와서 용맥 탐지봉이 반응했었나?”
“아니… 반응하지 않았다.”
하면 어디서 마기가 흘러들었을까.
별의 말대로라면 오염된 용맥은 용의 선상에서 제외된다.
용맥뿐만이 아니라 마기도 마찬가지.
오두막 안이야 신령목 탓이라지만, 외부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마기의 기운은 없었으니까.
하면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나.
“인위적인 마기의 침투가 있었다는 거지. 사람들은 변이 전에 가둬 둔 거고.”
악의로 가득 찬 누군가로 인해 마을 전체가 묘지로 변한 것이다.
그것에 대한 증거야 앞으로 찾아보면 될 일.
오두막을 나온 나는 덧방된 현관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
* * *
“하… 이게 원흉이었네.”
“왜요? 그냥 옹달샘이잖아요?”
옹달샘인 건 맞다.
고즈넉한 숲속에 자리 작고 예쁜 옹달샘이다.
물빛도 투명하고 다 좋은데… 마기가 녹아 있다는 게 문제였다.
“어머… 그러면 이 물을 마시고 마기에 중독됐다는 건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마을 주변에 있는 수원지는 이곳이 유일했으니까.
로제의 말대로 이곳의 물을 길러다 마시며 조금씩 오염됐을 것이다.
“흠, 대강 결론이 난 것 같네. 이제 정리해 볼 테니 잘 들어 봐.”
웅성거리는 일행을 향해 나는 지금까지의 정황을 하나씩 풀어냈다.
“일단 마을에 생존자는 없어. 그렇지?”
“그렇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두가 마인으로 변해 있었다.
남녀노소랄 것도 없었다.
신령목을 덧댄 오두막은 마인들로 가득했고, 우리는 그것들을 남김없이 정리했다.
“그러고 나서 마을 주변을 탐색했지.”
“맞다. 해 뜰 때까지 찾았다.”
술 녀석의 말처럼 우리는 아침나절까지 마을 주변을 살폈다.
그렇게 찾아 헤매다 발견한 이곳.
“부족장은 이 샘물에서 마기가 진동한다고 했어.”
이어진 나의 말에 부족장은 조용히 끄덕거렸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왜 하필 이 샘물에서만 마기가 느껴졌을까.
“이걸 봐.”
나는 손가락만 한 뼈를 들어 부족장에게 넘겼다.
생긴 건 그저 평범한 뼛조각.
“허허… 이런 사악한 물건을 봤나.”
하지만 부족장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뼛조각을 집어던졌다.
“난 이런 걸 며칠 전에도 봤어.”
“저런 흉측한 걸 어디서 봤단 말인가.”
“헤미르 영지와 이어진 던전 마지막 방에서.”
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덤덤하게 사실을 말했다.
“술이 수상하다고 말했던 그 벽 있잖아. 그 안에 커다란 뼈가 있었어.”
“그 벽 안에? 그런데 왜 말하지 않았나?”
“어차피 주변에 해골 천지였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지나간 거지. 그런데 말이야…….”
나는 바닥에 떨어진 뼈를 주워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 뼈에도 이것처럼 검은 진액이 흘렀던 것 같아.”
그러고는 옅게 배어 나오는 검은 액체를 부족장에게 보여 주었다.
그에 부족장은 흠칫거리며 물러섰다.
“마기를 만들어 내는 뼈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두려운 기색마저 드러내며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마기가 어떤 느낌인지 아직 모르겠으니까.
그러나 이것 하나는 알고 있다.
아무리 흉측한 마물이라고 한들 죽고 나면 마기는 흩어지는 법.
마기가 진동한다던 헤미르 던전에서도 박살 난 해골들은 마기를 뿜어내지 않았다.
“설마, 마족의 뼈란 말인가…….”
결국 부족장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훨씬 더 근원적인 부분으로 다가섰다.
종의 기원이랄까.
모든 마물의 주인이자 창조주인 마족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인과는 그럴 듯했다.
헤미르의 던전과 이곳의 샘물.
그사이 지나친 마굴은 차치하더라도 이 둘의 관계에는 수상한 냄새로 가득했다.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일련의 사건을 집어 보면 이것은 노골적인 행동이었다.
수상한 의도가 명백하게 있었고, 정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그런데 왜 영지에선 이 사실을 몰랐을까요?”
고민에 빠진 나를 향해 로제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마굴이나 던전 소탕은 오러급 기사가 필요하니 미룰 수밖에 없었지만, 영지 순찰은 다르거든요. 일반 기사들이 정기적으로 순회를 하는데 왜 이걸 몰랐을까요?”
로제의 의문은 지극히 합당했다.
영지 순찰을 했다면 당연히 알았을 것이고, 그 사실은 영주에게 전해졌어야 한다.
하지만 이 논리엔 한 가지 전제가 따른다.
그 사실을 전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순찰대는 몇 명이죠?”
“4인 1조에요.”
“그러면 답은 나왔네요. 순찰대는 이 마을에서 죽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마지막 오두막에서 해치운 마인들… 그 네 사람이 갑옷을 입고 있었거든요.”
덤덤히 전하는 나의 비보에 로제의 두 손은 입가로 올라갔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