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 특별한 환경에 마력이 더해지면 드물게 변해 마굴이 됩니다.
…라는 말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저 적당한 상식의 수준이랄까.
알게 모르게 마굴은 계속 생겨나고, 관리되지 못한 마굴은 죽음의 땅이 되어 크기를 넓혀 간다.
때론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내부는 점차 거대해지며, 서식하는 몬스터도 변화를 거듭한다.
그것이 던전이고,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그렇게 변한 마굴이다.
하지만 이곳엔 또 다른 뭔가가 있다.
독특한 이 냄새가 의심의 증거…….
“마기가 지독하군.”
던전 가득한 악취를 맡으며 부족장은 내내 얼굴을 찌푸렸다.
“마기가 뭐야?”
“검은 마력이다. 이 비릿하고 쾌쾌한 냄새가 전형적인 마기의 냄새지.”
설명을 마친 부족장은 손을 휘적거리며 코를 감싸 쥐었다.
확연하게 느껴지는 거북한 표정.
“내가 이상한 건가? 왜 이렇게 역한지 모르겠군.”
“그 말이 맞다. 이곳의 마기는 탁하고 기괴하다.”
부족장의 말을 거들며 술김에가 앞으로 나섰다.
뭐야, 다른 녀석인가?
익숙지 않은 녀석의 진지함이 역설적으로 크게 다가왔다.
그저 쿰쿰한 동굴 냄새라 생각했건만, 반투족의 감각에선 다르게 느껴지나 보다.
“우리가 마나를 싫어하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다.”
녀석은 아리송한 말로 대화의 운을 띄웠다.
냄새 때문이라는 건가.
이어지는 그들의 속사정은 별 보러 갈래를 통해 드러났다.
“반투족은 선천적으로 마나에 과민 반응한다. 하여 사용은커녕 냄새를 맡는 것조차 괴롭지.”
별 보러 갈래는 코끝을 찡그리며 감춰진 사정을 설명했다.
어쩐지 유난스럽더라니.
마나에 대한 녀석들의 관념은 거부가 아닌 어쩔 수 없음이었다.
생각해 보면 꽤나 억울할 터.
“잠깐, 이거 몬스터 소리 아니야? 저 모퉁이에서 들리는 것 같은데?”
“여기가 아니라 좀 더 멀리에 있다.”
마나에 대한 녀석들의 과민함은 엉뚱한 대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엥,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안다. 우리의 감각을 무시하지 마라.”
부족장은 확신에 찬 얼굴로 나의 의문을 일축했다.
무작정 무시하기도 힘든 상황.
속는 샘 치고 다가간 나는 해머를 치켜들어 조심스레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나는…….
“쫄보였군.”
“웅장해도 소용없군.”
두 녀석의 핀잔을 받으면서 뻘쭘하게 해머를 내려야 했다.
보이는 것은 그저 침침한 어둠뿐.
‘진짜 없네.’
나는 텅 빈 모퉁이를 바라보며 탁월한 녀석들의 감각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이야.
“누구 감각이 가장 예민한데?”
“당연히 나다.”
부족장은 가슴을 활짝 펴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써먹어야지.
“앞장서.”
“…어딜?”
“저 앞에 가서 감지하라고. 네가 제일 예민하다며.”
“그런 건 뒤에서도…….”
“뒤는 우리에게 맡겨라!”
술김에 태어난 녀석은 주먹을 불끈 쥐며 부족장을 떠밀었다.
* * *
“우아아아아아아아!”
자지러지는 소리와 함께 부족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아하니 이번에도 실패다.
최고라던 감각은 어따 팔아 잡쉈는지, 가는 곳마다 마물에게 걸려 도망쳐 나오기 일쑤였다.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
달려오던 부족장은 죽을힘을 다해 소리쳤다.
“해, 해, 해걸 병쉰이다아!”
해골 병신이라고…….
병신인지는 모르겠고, 백골이라는 건 알겠다.
하고 싶었던 말은 해골 병사일 터.
“머리 숙여!”
다가오는 부족장을 향해 손에 쥔 해머를 크게 휘둘렀다.
결과는 시원한 한 방!
산산조각이 난 백골들은 폭죽처럼 비산하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하나 이건 시작일 뿐.
“보오오온 크래셔!”
감춰 왔던 필살기가 오래간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뭣도 모르던 그 시절부터, 이미 나는 오늘을 예견했던 것이다.
― 기술의 이름이 무엇이냐?
― 머리를 부수는 일격! 본 크래셔가 어떨까 싶습니다!
― 오, 그것 참 지랄 같구나. 밥이나 먹자…….
당시엔 무시당했으나 지금의 모습을 보라.
나의 선택은 맞았고, 빅터는 틀렸다.
“본 크래셔!”
해골과 같은 언데드에겐 그야 말로 천적.
처맞는 순간 가루가 되니 언데드고 뭐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무서울 거 없다.
콰직!
달그락대는 해골들을 쳐부수며 여유롭게 주변을 정리해 갔다.
드디어 남은 마지막 한 녀석.
“이건 네가 잡아 봐.”
비실거리는 해골을 붙잡아 부족장에게 돌려 세웠다.
나름의 처방이랄까.
“나는 귀신이 제일 싫다!”
알고 보니 부족장은 언데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어릴 때 겪은 끔찍한 기억이라나.
“귀신은 뭔 귀신이야. 그냥 뼈다귀라고.”
나는 경악하는 부족장을 향해 붙잡은 해골을 떠밀었다.
그에 부족장은 비명을 질러 댔고.
“끄아아아아아!”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커다란 창대를 휘둘렀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콰가가가가각!
폭발하듯 부서지는 백골의 파편들을.
“뭐야! 잘만 때려잡네!”
“…어라?”
“좋아! 가서 또 물어 와!”
갸우뚱하던 부족장은 어기적거리며 앞장서 걸어갔다.
얼마 후 그는 다시 돌아왔고.
“우아아아아아아!”
나는 달려드는 백골을 향해 잿빛의 해머를 때려 박았다.
그렇게 도망치고 때려 부수길 수차례.
“크하하하하! 별것 아니군!”
잔뜩 신난 부족장은 핼버드를 앞세워 던전을 휘저었다.
인간의 기억이란 이토록 하찮은 것…….
“타이탄 스피어!”
심각했다는 트라우마 따위, 개나 줘 버린 지 오래였다.
“타이탄 슬래쉬!”
“타이탄 엑스!”
선두에 선 부족장은 다른 반투족을 이끌며 던전을 초토화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남은 장소에 도달했다.
“여기가 끝인가?”
막다른 방에 도착한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아니다. 저 끝에 다른 통로가 있잖은가.”
하지만 부족장은 고개를 저으며 반대편을 가리켰다.
“흐음?”
나는 두 눈을 찡그리며 녀석이 가리킨 방향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찾아냈다.
교묘히 감춰져 있던 길쭉한 틈을.
그늘진 암벽이라 생각한 그것은 벽이 아닌 통로였다.
“어쩐지 쉽게 끝난다 했지…….”
구시렁거린 나는 통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역시 던전은 던전이다.
간단하다는 마굴과 달리, 끝없는 통로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금방 끝나겠지?”
“그건 가 봐야 안다. 저 너머가 끝일 수도 있고, 며칠을 더 가야 할 수도 있다.”
끝을 묻는 나의 질문에 부족장은 애매한 대답을 했다.
그러니 반문할 수밖에.
“며칠씩 걸린다고?”
“그 이상도 있다고 들었다.”
돌아온 대답은 처음보다 더욱 길어졌다.
결론은 가 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인데…….
준비된 식량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남은 건 고작해야 2일치 뿐.
“뼈다귀만 나오니 잡아먹을 것도 없네.”
챙겨 온 식량이 떨어지면 우리 일정도 멈추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저 너머가 끝이길 바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우린 통로에 도착했고.
“뭐야 이건?”
나는 통로 가득한 해골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저, 저, 저주받은 해골!”
공포에 질린 부족장의 외침이 등 뒤로 들려왔다.
저주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눈앞에 있는 해골들은 새까맣게 물든 검은 해골이었다.
“이건 안 된다! 저주받은 마기가 몸을 침식할 것이 분명하다!”
“이리도 사악할 수가!”
해골을 본 반투족은 경악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뭐래는 거야.”
또다시 시작된 마기 타령을 무시하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저 색깔만 바뀐 해골이 뭐 그리 무섭다고.
“돌아와라, 이반! 그렇게 달려들었다간 영혼을 빼앗긴…….”
콰아앙―
부족장의 외침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검은 해골인지 뭔지.
영혼까지 탈탈 털리며 바스라지고 있었다.
“…오히려 뺏는 것 같은데.”
중얼대는 반투족을 뒤로하고, 나는 광풍을 일으키며 통로를 달려 나갔다.
* * *
소탕을 시작한 지도 벌써 이틀째.
마지막 방에 도착한 우리는 상황을 정리하며 의견을 나눴다.
“이상하지 않아?”
“그러고 보니 형제의 말이 맞는 것 같군.”
“네가 봐도 그렇지?”
“그래, 확실히 그래 보인다.”
주제는 한 종류뿐인 몬스터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도대체 왜 해골들만 있는 걸까.
백골을 때려 부수면 흑골이 이 나오고, 그걸 때려 부수면 더 큰 해골이 나왔다.
어쩌다 가끔.
아니, 정확히 여섯 번은 살점이 남은 녀석이 나타나기도 했었다.
“그건 뭐라고 했지? 구울? 굴?”
“구울이다.”
썩은 살덩이를 매달고 다리를 질질 끌던 녀석.
고작 여섯 번 마주쳤지만, 혐오스럽기론 이놈이 압도적이었다.
“어쨌건 전부 다 시체였잖아. 구울도 해골되기 직전이었고.”
“맞다. 이곳에 출몰한 몬스터들은 모조리 언데드였다.”
확답을 받은 나는 공동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원리를 안다면 해답은 하나뿐.
“이곳은 무덤이었거나 전쟁터였을 거야. 아니면 큰 사고가 있었겠지.”
마굴이란 본래 그렇게 생겨나니까.
시체뿐인 곳에 마력이 들어가 이런 마물이 생겼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 다 잡은 건가?”
“그런 것 같다. 방금 그놈이 마지막이었다.”
몬스터 정리가 끝났으니 한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터.
이제 남은 일은 들어온 길을 따라 되돌아가는 것뿐이었다.
휴식을 마친 우리는 자리를 털고 입구로 향했다.
한 녀석만 빼고 말이다.
“잠깐! 여기서 마기가 진동한다. 내 말을 믿어라!”
벽에 코를 댄 술김에는 계속해서 냄새를 맡고 있었다.
킁킁대는 모습이 가관이지만 무시하기도 그랬다.
마력에 예민한 건 사실이니까.
되돌아온 나는 녀석의 곁으로 다가가 암벽을 매만졌다.
“이 벽이 수상하다 이거지?”
“그래, 이 너머에 분명히 뭔가 있다.”
그렇다면야…….
“부숴 보면 알겠지.”
해머를 들어 올린 나는 평평한 면을 뒤로 돌렸다.
드디어 사용되는 뾰족한 반대편.
‘하필 땅 파는데 쓰다니.’
사용처가 아쉽지만 그건 일단 접어 두기로 했다.
효과는 확실할 테니까.
호흡을 들이마신 나는 해머를 들어 크게 휘둘렀다.
가벼워진 무게 덕에 속도는 더욱 가속되었고.
콰가가가각―
들이박힌 날카로운 피크에 암벽은 커다란 균열을 만들었다.
“어라? 이거 안쪽이 빈 것 같은데?”
해머를 뽑아낸 나는 반대로 돌려 다시 휘둘렀다.
힘없이 무너지는 적갈색의 암벽.
쌓여 있는 돌무더길 치우자 좁은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그냥 틈인가?”
통로라고 하기엔 그 높이와 폭이 너무도 좁아보였다.
그래도 확인은 필요할 터.
좁은 틈새에 얼굴을 넣고 손을 내밀어 마력 등을 밝혔다.
“여기 뭐가 좀 이상한데? 바닥에 물 같은 것도 있고… 저건 뭐야, 뼈다귀인가? 아무튼 점점 좁아져서 못 들어갈 것 같아.”
먼 곳을 살펴본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되돌아 나왔다.
도대체 뭐가 있다는 건지.
마기는 모르겠고, 질척이는 바닥과 쾌쾌한 냄새가 전부였다.
아, 그리고 커다란 뼈다귀가 하나 더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데 뭘 믿으라는 거야. 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냄새 잘 맡게 뻥 뚫어줘?”
좁은 틈을 나온 나는 구시렁거리며 술김에를 타박했다.
하지만 녀석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오염된 용맥…….”
곁에 있던 부족장은 말끝을 흐리며 동공을 키웠다.
지켜보던 별 보러 갈래까지.
“참으로 사악한 기운이군.”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런데…….
“뭔데? 왜 그러는데?”
녀석들의 대화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허허… 이 정도라니.”
“대수림 접경이니 그럴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말만 떠들어 대니 뭐라 반응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건지.
머리를 맞댄 녀석들은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며 심각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아니… 무슨 일이냐고. 말해 줘야 나도 알 거 아냐.”
팔짱을 낀 녀석들은 뜻 모를 얘길 떠들어대며 주억거리기 바빴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애가 타는지 모르겠지만.
“더 넓게 퍼졌겠지?”
“그럴 거라고 본다.”
계속되는 녀석들의 대화에 나의 인내심은 들끓기 시작했다.
“뭐가 퍼졌는데? 어? 뭐가 퍼진 거냐고?”
나는 다시 상황을 물어보았고.
“큰일이군.”
또다시 나의 말은 무시당했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 기회.
“야…….”
“어이…….”
“이런 씹…….”
나는 해머를 바로잡아 삼신기 2번 자세를 취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휘두르기.
“왜 그러나 형제여?!”
“늦었어.”
“말로 해라! 갑자기 왜 이러는 건가?!”
“늦었다고.”
마물이 사라진 던전에선 또 다른 비명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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