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다음 날 아침.
오전 수련을 마친 나는 숙소를 나와 페드로에게 향했다.
― 가능하면 형님 혼자 와 주세요. 낯선 사람 만나는 것을 굉장히 꺼리시는 분이라.
당부의 말도 지킬 겸, 느긋한 마음으로 홀로 길을 나섰다.
하나 늘 그래 왔듯.
“후배님!”
나의 소소한 평화는 고작 몇 걸음 만에 부서지고 말았다.
“혼자 가면 어떻게 합니까.”
“네? 그게 왜요?”
“치료사라면 제가 가 봐야죠. 후배님 코어 문제도 있으니까요. 스승님께서 찾아보라 하셨는데 결과가 영 신통치 않던 참입니다. 함께 가시죠.”
하여 시작된 우리의 외출.
베르와 나는 약속 장소에 도착해 페드로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길지 않았고.
“어랏! 일찍 오셨네요.”
경쾌한 인사와 함께 페드로는 모습을 드러냈다.
“이쪽은 나와 함께 지내시는 분.”
“아…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페드로입니다.”
“저도 반가워요. 베르에요.”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함께 왔는데.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얘기해 줘. 나 혼자 갈 테니까.”
“흠… 아니에요. 형님이 모시고 오신 분이시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신 거겠죠. 입소문만 조심해주시면 됩니다.”
설명을 들은 페드로는 흔쾌히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면 걱정 마십시오. 입 무거운 거라면 제가 또 일가견이 있으니까요.”
베르의 너스레를 끝으로 우리는 페드로를 따라 구시가지로 이동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미로 같은 길을 헤매던 우리는 좁은 사거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무리 봐도 익숙한 길.
“아까 지나온 길 아니야?”
나는 의심스런 말투로 페드로에게 물었다.
“아니에요. 비슷하게 생겼지만 달라요.”
“다르긴 뭐가 달라 다 똑같은데.”
부정하는 페드로에게 나는 푸념 섞인 핀잔을 날렸다.
아무리 봐도 똑같으니까.
눈앞의 골목과 이 새까만 주택은, 이미 지나온 골목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이 패인 자국을 봐. 이거 앞전 건물에서도 봤던 거잖아.”
나는 어깨 높이에 파인 깊은 자국을 향해 보란 듯이 손가락을 문질렀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증거.
페드로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시커먼 건물이 두 개나 있다는 것이다.
‘검은 주택이라니.’
들어 본 적도 없지만 그럴 수 있다 치자.
세상은 넓으니까.
하지만 똑같은 위치에 있는 이 파쇄 흔적은 어찌 설명할 거냔 얘기다.
“이것 말고도 저 모퉁이 집도 그렇고, 이 옆에도 그렇고 다 똑같잖아. 다른 게 없다고.”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하나하나 따져 물었다.
모두 다 똑같다고.
“맞아요. 그런데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거예요.”
순순히 인정한 페드로는 곁으로 다가와 파쇄 흔적을 만졌다.
“아까 지나온 곳은 이 끝이 아래로 파였었죠. 그런데 이거는 직선이에요.”
그랬었나?
유심히 살펴본 게 아니니 기억날 리 없었다.
하지만 나만 몰랐나 보다.
“리베가 처음 생겼을 때 이곳으로 각국의 수배자들이 숨어들었죠. 이 골목은 그들이 만든 겁니다.”
지켜보던 베르가 나서며 페드로의 말을 거들었다.
“뭐야, 그럼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네. 이곳 전체를 은신처로 만든 거죠.”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이런 결과를 노렸다면 그들은 성공했다.
나는 완벽하게 속았고, 같은 길을 맴돈다며 착각했다.
리베의 감춰진 민낯인 이곳.
“여기 이름이 뭔지 아세요?
“저야 모르죠.”
“이곳 사람들은 여기를 쥐구멍이라고 부릅니다.
이름조차 궁핍한 이곳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였다.
“다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어지는 페드로의 말에 베르와 나는 대화를 멈췄다.
페드로가 사라진 낡은 건물 앞.
남은 두 사람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이런데 치료사가 있었나?”
갈라진 현관을 보던 베르는 코끝을 훔치며 낮게 중얼거렸다.
과연… 이라는 느낌일까.
주변을 탐색하던 베르의 표정은 확신도 불신도 아닌 미묘한 언저리에 걸쳐 있었다.
닫힌 현관이 다시 열렸고.
“형님, 들어오세요.”
우리는 페드로를 따라 좁은 문을 비집고 들어갔다.
* * *
나의 예리한 눈썰미로 보자면 대략 40대 중반…….
아니, 중후반인가?
페드로의 소개를 받은 남자는 까칠한 표정을 지으며 이유를 물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데었는지 말이다.
“하면 화조의 불길에서 살아남았다, 이 말인가?”
“정확하게는 화조가 질러 놓은 불에 덴 거죠.”
별걸 다 묻는다 싶었지만 사실대로 알려 줬다.
한데 왜 자꾸 캐묻는 걸까.
했던 얘길 또 하고, 다시 묻고, 답하길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끝내 말하지 못한 한 가지 비밀 때문이었다.
감춰 둔 비밀의 정체는 화염 내성.
‘어떻게 말하겠냐고.’
설명할 수 없으니 말하길 포기한 것이다.
덕분에 남자의 호기심은 계속되었고.
“그 온도에 노출됐는데 이 정도 상처만 남았다…….”
의심 어린 눈초리는 더욱 짙게 변해 갔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운이 좋았나 보죠.”
나의 대답은 끝까지 모르쇠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효과가 있었다.
“선행 치료가 좋았나 보군.”
질문을 포기한 남자는 희멀건 손을 들어 치료를 시작했다.
“얼굴을 돌려 보게.”
치료사의 말에 따라 고개를 돌렸다.
번쩍!
한차례 섬광이 지나고 난 뒤, 남자는 손을 털며 이렇게 말했다.
“다됐네.”
끝났으니 가라고.
싱겁게 끝난 치료 결과에 허무함마저 밀려왔다.
“벌써요?”
차라리 질문 시간이 더 길었다.
이렇게 쉽게 치료할 것을 왜 그리도 집요했던 걸까?
“팔다리가 잘린 것도 아닌데 시간 끌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남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뭔가 홀대받는 기분이라 섭섭한 마음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남자는 눈빛을 바꾸며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보다… 자네 몸속에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뜬금없는 남자의 말에 베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고장 난 코어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조심스런 베르의 질문에 남자는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문제는 그 생각이 정확하다는 것.
‘오러를 돌린 것도 아닌데…….’
남자는 손도 대지 않고 내 몸의 이상을 찾아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가슴속 어딘가를 울리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희망이랄까.
“고칠 수 있나요?”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며 나는 결론을 물어보았다.
내 모든 고민의 시작과 끝은 바로 이것이니까.
코어가 치료된다면…….
나의 삶은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번데기에서 나비… 뭐, 그런 거 있잖은가.
아무튼 중요한 기로에 선 나는 남자의 대답을 목 놓아 기다렸다.
“고칠 수 있냐고?”
드디어 시작되는 남자의 대답.
“아니, 고치고 자시고 할 게 없네.”
“그게 무슨…….”
“너무 일찍 망가져서 치료한다고 해도 못 써먹는다네.”
돌아온 대답은 불가였다.
그냥 고장 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용이 불가한 코어였다.
“보니까 채 자라지도 않은 홀인 것 같은데. 거기에다 마나를 쑤셔 넣었으니 코어로 변하면서 터져 버린 게지.”
치솟던 기대와 흥분은 싸늘한 송곳이 되어 심장을 찔러 왔다.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것을.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코어에 대해 별다른 생각조차 없던 상태였다.
일단은 치료가 가능한 사람을 찾아야 했고.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았으며.
그것을 대신할 무기를 손에 얻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 없이 찾아온 이곳에서 나는 뜬금없는 절망을 맞이하고 말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누가 이런 못된 짓을… 쯧.”
졸지에 나는 몹쓸 짓을 당한 불쌍한 놈이 돼 버리고 말았다.
“결론은 못 고친단 얘기네요?”
“아니, 의미 없다는 걸세. 고친다고 한들 자네에게 특별함을 주진 못할 테니까.”
같은 말이었다.
어떻게 돌려 얘기한들 중요한 부분은 똑같은 것이다.
나는 평생 오러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
덤덤히 날아든 남자의 말은 암울한 미래를 전하며 무심히 흩어졌다.
“후…….”
절로 나오는 깊은 한숨.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에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벌어진 손가락이 머리칼을 파고들었다.
작은 방안은 침묵에 잠겨 들었고, 머리카락 쓸리는 소리만이 서걱대며 귓가를 자극했다.
“뭐가 그리 심각한 가? 코어가 필요 없다는 건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침묵을 깬 치료사는 표정을 바꾸며 내게 반문했다.
뭘 알고 저러는 걸까.
갑작스런 남자의 말에 전신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무슨 얘길 하시는 거죠?”
“오러보다 더 큰 기운이 몸을 가득 채우고 있잖은가.”
“그게 무슨…….”
“코어가 멀쩡해도 어차피 성장하지 못한단 말일세. 오히려 걸리적거리겠지. 차라리 일찍 박살 난 게 다행이 아닌가 싶네만.”
“…….”
“뭘 그렇게 보나. 자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정곡을 찌르는 그의 말에 나는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발가벗겨진 기분이라 해야 하나.
저렇게 훤히 들여다보니 오히려 무서운 느낌마저 드는 상황이었다.
‘이 남자 뭐지?’
일종의 경계심이었다.
지금 나의 몸은 생각보다 복잡한 상태니까.
오러가 필요 없단 걸 알았으니 깊이 파고들 이유가 없었다.
감춰야 할 게 있는 나는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흠… 내키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되네.”
그에 남자는 순순히 문답을 종료했다.
“흉터 치료해 주신 건 어떻게 사례하면 될까요.”
“됐네. 페드로의 부탁이니 치료비는 받음 셈 치겠네. 대신… 오늘 일은 함구해 주게.”
치료비를 묻는 나의 말에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다른 조건을 제시했다.
“그야 뭐…….”
어려울 것 없는 일이다.
달리 말 옮길 사람도 없으니까.
알겠다고 답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걸어갔다.
“자네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나?”
남자는 기억도 없는 부모의 존재를 물으며 가는 걸음을 붙잡았다.
이 상황에 그것이 왜 궁금한지 모르겠지만.
“저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서.”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남자는 잠시 뜸을 들였고.
“자네 몸에서 느껴지는 그 기운… 내게 설명해 줄 말이 없는가?”
미련이 남았는지, 남자는 같은 내용을 다시 질문했다.
“글쎄요.”
나는 대답을 아끼며 현관문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문밖을 나서는 순간.
“분명히 뭐가 있을 텐데, 내가 자네 같은 몸을 본 적이 있는 것 같거든…….”
멈칫했던 나는 애써 무시하며 남자의 집을 빠져나왔다.
* * *
“저러니 못 찾았지.”
골목을 걷던 베르는 뒤를 돌아보며 연신 투덜거렸다.
적당한 핑계랄까.
자신의 정보력 부족을 애꿎은 치료사에게 돌리는 중이었다.
“이름도 없고, 사는 곳도 일정치 않고, 치료사인데 치료는 아는 사람만 해 주고…….”
“그 아는 사람 앞에 ‘특별히’를 붙이셔야 해요. 저 아저씨를 아는 사람이 정말 극소수거든요.”
구시렁대는 베르에게 페드로가 설명을 보탰다.
한데 그 희귀한 인연을 어떻게 얻은 걸까.
“아버지가 젊었을 때 쫓기던 아저씨를 숨겨 드렸데요. 그게 인연이 돼서 지금까지 저희 가족들을 쭉 돌봐 주셨죠.”
드러난 과거는 역시나 은인 관계였다.
그러니 특별할 수밖에.
“그나저나 정말 의외네요.”
대화의 주제는 포기해 버린 나의 코어로 바뀌었다.
“오러보다 더 강한 기운이라니… 어쩐지 말이 안 된다 했습니다. 맨몸인데 강해도 너무 강했거든요.”
“제가 그랬나요.”
“당연히 그랬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왜 대답을 안 하셨어요?”
“무슨 말이요.”
“우리 나오기 직전에요. 다른 기운이라고 했었나? 아무튼 뭘 설명해 달라고 했었잖아요.”
나도 모르겠다.
그저 본능적으로 감췄다고 해야 하나.
치료사가 본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찝찝했던 나는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름 뜨끔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회귀라든가.
숙련도 등등…….
따지고 보면 정상이 아닌 것 천지였다.
궁금한 부분이야 많지만 어쩌겠는가.
말하는 나도.
듣는 사람도.
모두가 이해하기 힘든 곤란한 얘기였다.
이렇게 확 드러내도 되는 얘기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말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후배님은 확실히 있을 것 같단 말이죠.”
“뭐가요.”
“그 기운이란 거요. 분명히 엄청난 뭔가가 나타날 것 같아요. 그러니 날 잡아서 제대로 진단받아 보세요.”
“됐어요.”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엄청난 뭔가는 이미 있으니까.
“왜요? 그러지 말고 받아 봐요. 진짜 특별한 게 있다니까요.”
“저도 알아요.”
나는 적당한 뻔뻔함을 섞어 베르의 말에 대답했다.
“뭘 알아요?”
“제가 특별하다는 거요.”
“와… 그걸 자기 입으로 말하네.”
아무렴 어떤가.
남은 목숨만 94개에 각종 숙련도까지 있는데.
치료사의 말대로 이미 나는 특별한 몸이었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