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아저씨가 봤다고요?”
“그래, 내 두 눈으로 보았네. 대장간 일을 처음 배우던 시절이니까. 못해도 40년 전의 기억이지.”
게브네는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에스카의 말에 답했다.
덤덤히 이어지는 중년 남자의 고백.
“아버지는 마지막 남은 귀물이라며 백색의 숯을 사용했었네. 그때의 그 용광로… 무섭게 타오르던 백광의 불꽃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네.”
너무도 진지한 그의 말에 에스카는 반문조차 하지 못했다.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누가 저런 표정으로 거짓말을 지껄이겠는가.
“내 평생 그때의 불꽃을 재현하려 했지만, 매번 실패했네. 도무지 만들 방법이 없었지… 그런데 조부님의 일기를 보고나서야 알았네.”
“설마…….”
“그래, 당시 아버지가 쓰셨던 숯이 바로 백염탄이었던 걸세.”
주름진 그의 눈꼬리가 작게 움찔거렸다.
강렬해지는 게브네의 안광은 그가 품은 확신의 크기를 짐작하게 만들었다.
“좋아요. 그 말을 믿어 보죠.”
짧게 대답한 나는 등 뒤로 걸친 기다란 가죽 꾸러미를 풀어냈다.
그것의 정체는 고블린 대검.
게브네를 돕기 위한 마지막 관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 대검의 재료를 아시겠어요?”
모습을 드러낸 잿빛의 검은 나의 손을 떠나 게브네에게 넘어갔다.
미간을 좁히는 게브네.
그의 대답에 따라 나의 행동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흐음…….”
늘어지는 탄식과 함께 오두막은 정적에 휩싸였다.
기묘하게 흐르는 긴장감이 주위를 가득 채워갈 무렵.
“이건 어디서 구한 건가?”
침묵하던 게브네는 마침내 입을 열며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놀라움과 의심이 교차하는 진득한 눈빛…….
“고블린 로드에게 얻었어요.”
“몬스터에게 얻었다라…….”
이어진 나의 대답에 게브네는 대검을 바로잡았다.
손잡이부터 시작해 검신에 이르기까지, 게브네는 정겨운 눈으로 섬세히 대검을 살폈다.
“감상은 나중에 하시고 결론부터 말씀해 주세요.”
표정을 바꾼 나는 부탁이 아닌 강요로 돌아섰다.
봉사하러 일주일을 달려온 것이 아니니까.
저 입에서 모른다는 말이 나오면, 나는 지체 없이 돌아설 생각이었다.
“성격 급한 친구로군.”
감상을 마친 게브네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손잡이를 두들겨 슴베를 뽑아 버렸다.
갑작스레 벌어진 황당한 상황.
게브네는 슴베를 내밀며 나에게 되물었다.
“여기에 적힌 이 글씨가 보이는가.”
이 서명을 알아보겠냐고.
묵직하게 울리는 게브네의 말에 까닭 모를 전율이 전신을 훑었다.
오소소 퍼지는 서늘한 감각.
“볼룬드… 라고 적혀 있네요.”
나는 쭈뼛거리며 음각된 서명을 읽어 나갔다.
그에 주억거리던 게브네가 움직임을 멈추었고.
“내 아비의 이름일세.”
돌아온 그의 말에,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
“대검의 재료는 레지스트리움. 오러에 저항하는 유일한 금속이라네.”
이어지는 게브네의 말은 벼락처럼 저릿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심장을 뛰게 하는 믿을 수 없는 소식.
거짓말 같은 그의 이야기는 잔잔히 이어지며 나의 정신을 사로잡았다.
“이것을 가공하려면 엄청난 화력이 필요하다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해 주는 연료는…….”
“백염탄!”
“맞네. 여기서 한 시간만 더 가면 구할 수 있다네.”
드디어 손에 쥔 실마리.
발작하듯 일어선 나는 문짝을 열어젖히며 반투족에게 소리쳤다.
“안 뛰어?”
빨리 튀어나오라고.
조급한 나의 두 다리는 둥지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와… 도착도 안 했는데 이 정도라고?”
“그러게요. 정말 엄청난 열기네요.”
둥지에 가까워질수록 치솟는 열기는 세기를 더해 갔다.
이러니 몬스터가 없지.
생명체가 드물 땐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죽어 있는 건 확실한 거죠?”
진입을 앞둔 우리는 마지막 점검으로 화조의 생사를 확인했다.
살아 있으면 답도 없으니까.
이 열기에 놈까지 나선다면 우리는 식당에 걸린 통구이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둥지가 불타기 시작한 건 일주일 전이었다네. 어제 새벽에 울음을 멈췄으니 놈의 생명은 이미 끝났다고 봐야 할 걸세.”
하면 남은 기한은 3일.
불꽃이 잦아드는 그 기간에 백염탄을 챙겨 나오면 되는 것이다.
“좋아요. 그럼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그 빙속성 결계를 쓰는 건가요?”
화조의 유무를 확인한 나는 다음 단계에 대해 질문했다.
신뢰의 유무 따위.
여기까지 온 이상 시간 낭비일 뿐이다. 결정했다면 빠르게 다음 스텝으로.
“그렇다네.”
질문에 답한 게브네는 가방을 열어 작은 목함 두 개를 꺼내 들었다.
“왼쪽 상자에 있는 것이 빙결의 정수, 오른쪽 상자에 있는 것이 얼음 요정의 심장이라네.”
굳이 지정하지 않아도 어느 쪽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김새 자체가 이름이랄까.
세공된 보석처럼 생긴 저것은 누가 봐도 정수였고, 대놓고 하트 모양인 이것은 누가 봐도 심장이었다.
“그런데 아저씨, 이거 빙결의 정수가 맞아요?”
“맞겠지. 연금 조합장에게 부탁해서 특별히 구해 온 것이니까.”
“흐음…….”
바라보는 건 같은 물건인데, 두 사람의 표정은 판이하게 달랐다.
게브네는 대수롭지 않았고, 에스카는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한데 왜 그러는 겐가?”
“제가 기억하는 것과 모양이 조금 달라서요.”
에스카는 빙결의 정수를 손에 쥐고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어딘가 마뜩잖은 표정.
“이거보단 조금 더 각진 느낌이었는데…….”
“모양이 달라?”
“얘는 모서리 부분이 살짝 부드럽잖아요. 예전에 마정석 만드는 걸 본 적 있는데, 그때 본 건 선이 확실했거든요.”
예상치 못한 에스카의 말에 일행의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침음하며 생각에 잠기는 게브네.
“빙결의 정수인 건 맞는 거 같은데, 채취 시기가 조금 일렀던 모양이네요.”
에스카는 자신의 내린 결론을 모두에게 전달했다.
뭔가 애매해진 상황이랄까.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닌 이상한 경우의 수가 나와 버렸다.
“그러면 결계를 만들 수 없게 되는 겐가?”
“재료의 성숙도 차이니 결계는 만들어질 거예요. 어쨌거나 조합은 맞으니까요.”
“다행이네요.”
대답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나.
긍정적인 에스카의 대답에 나는 얼굴을 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백염탄에 대한 나의 집념은 게브네를 월등히 뛰어넘고 있었다.
― 오러에 저항한다고요?
― 그렇다네. 오러로 잘라 낼 수 없는 유일한 금속이라 할 수 있지.
― 상대가 오러 마스터라면… 그래도 안 잘리나요?
― 오러 마스터 할아비가 와도 절단은 불가능하네.
그러니 지금 내 기분이 어떻겠나.
게브네의 말이 단호해질수록 내 혈관의 피는 뜨겁게 끓기 시작했다.
‘딱 기다려라…….’
받은 만큼 돌려줄 테니까.
머릿속 가득한 놈을 지우며 나는 화조의 둥지로 차가운 시선을 돌렸다.
* * *
“사용법은 간단하네. 나눠 준 재료를 한 손에 쥐고 동시에 부수면 되지.”
알기 쉬운 설명과 함께 내손엔 결계의 재료가 들려 있었다.
무엇을 망설이겠나.
콰직―
나는 주먹을 움켜쥐며 결계를 발동시켰다.
결계의 재료들이 파삭거리며 부서졌고.
스스스스스스슷―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짙푸른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런 원리였군.’
신체를 따라 형성된 투명한 결계는 혹한의 냉기로 외부의 열기를 밀어냈다.
극과 극을 달리는 선명한 대치.
“뭘 보고 서 있어. 살고 싶으면 결계를 펼쳐.”
나는 헐떡이는 반투족을 보며 뾰족하게 말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영 시원치 않았으니.
“내키지 않는군.”
“마법이라는 것 자체가 불안한 것이지.”
부족장과 별 보러 갈래는 시큰둥한 반응으로 머뭇거렸다.
부족의 사상이 그랬으니까.
본래부터 그들은 마법과 오러를 터부시해 왔었다.
하나 사람 마음이 어디 다 똑같던가.
“그거 안 쓰면 어떻게 되는 건가?”
“불에 타 죽지.”
“아무거나 하나만 주게. 지금 당장. 빨리…….”
술김에 태어난 녀석은 삶에 대한 집착을 보이며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쏟아지는 따가운 눈총 따위 알게 뭔가.
녀석은 오롯이 자신의 안위를 살피며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했다.
그렇게 우리는 준비를 마쳤고.
“잊지 말게. 결계가 유지되는 시간은 한 시간이네.”
유효 시간을 알린 게브네는 둥지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제정신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
두려움을 막아 주는 건 결계의 역할이 아니었다.
“완전무결한 결계는 없어요. 상황에 따라 변수가 많으니 조심해서 움직이도록 해요.”
앞으로 나선 에스카는 당부의 말을 남기며 둥지로 향했다.
미친 듯이 일렁이는 아지랑이의 향연. 일그러지는 공간을 지나 우리는 둥지 앞에 다다랐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적색으로 달아오른 너른 둥지 위로 끔찍한 백열 지옥이 춤을 추듯 펼쳐졌다.
“미쳤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바라보고 있자니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그렇다고 계속 이러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
“뭘 찾으면 되는데요?”
나는 정신을 다잡으며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섰다.
“불타는 둥지에서 하얗게 변한 것을 추려 내면 된다네.”
둥지를 구성하던 나무들은 흰색과 붉은색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이 지옥 불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버겁거늘, 여기서 또 무언갈 구분해야 했다.
“너희들도 들었지? 정신 차리고 후딱 챙겨서 나가자.”
어딘가 불안한 삼인조를 보며 나는 수차례 설명을 반복했다.
이제는 직접 부딪칠 차례.
둥지를 살피던 나는 흰색의 숯덩일 찾아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치이이이이익―
맞닿은 결계에서 짙은 수증기가 무섭게 피어올랐다.
그대로 녹을 것 같은 불안한 모습이다.
‘이거 위험한데.’
나는 손에 쥔 숯을 내려놓고 시선을 돌렸다.
다른 사람들은?
나 혼자만의 문제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어엇?”
역시나 결과는 비슷한 상황.
“방금 팔뚝에서 고기 굽는 소리가 났는데?”
반투족은 물론이요, 곁에 있던 에스카의 반응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결계의 내구도가 약하네요. 시간을 지체해선 안 되겠어요.”
에스카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이것은 필시 불길한 신호.
들고 나르는 것 자체가 심각한 위험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이거 얼마나 필요한 거죠?”
물론 많을수록 좋겠지만, 지금 상황은 호락하지 않다.
필요한 물량만 빠르게 확보하는 것이 안전을 도모하는 최선일 터.
“대검을 녹이는 데만 한 포대 이상이 필요하니, 대략 세 포대면 되지 않을까 싶네.”
그 정도라면 가능할 듯하다.
한 사람당 두 번씩 오가면 얼추 들어맞을 테니까.
결심을 굳힌 나는 이글거리는 숯덩일 들고 조심스레 걸음을 돌렸다.
백광의 화염과 피어오르는 수증기의 조합.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등짝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흘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만 가져가면 나는 완전무결한 해머를 손에 쥐게 된다.
그러니 꼭 해야만 했다.
“가즈아!”
불안함 따위 기합으로 날리며 나는 서둘러 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이때 멈췄어야 했다.
과도한 의욕은 이성을 마비시켰고, 그것은 명백한 위험이 되어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 뜨거워. 더 이상은 안 돼.’
두 번째 숯을 집어 들자 조화를 이루던 결계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이익! 반투족은 고통에 굴하지 않는다!”
“크흐윽! 질 것 같으냐!”
그에 반투족은 소리를 지르며 열기에 저항했다.
두말할 것 없는 결계의 훼손이었다.
여기서 멈춰야 했다.
결단이 늦어지면 대가는 더욱 잔인해질 것이다.
“그만 하고 갑시다. 더는 안 되겠어요.”
마음을 정한 나는 큰소리로 작업 중지를 외쳤다.
하지만 사람들의 움직임은 여전히 바빴다.
“이것만 가지고 나갈게요.”
짧게 대답한 에스카는 숯덩일 들고 둥지를 벗어났다.
순간 일렁이는 결계.
“어어?”
짙푸른 에스카의 결계가 주황빛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당장 튀어나와요!”
위험을 감지한 나는 목젖이 튀어나오도록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에 반투족 3인이 고개를 돌렸다.
녀석들 역시 두 손 가득 백염탄을 들고 있었다.
“그걸 왜 들고 있어?! 버리고 뛰어와! 빨리!”
뭉그적거릴 틈이 없었다.
녀석들의 결계도 이미 주황빛으로 변했고, 타오르는 둥지의 백염은 이상하리만큼 강렬했다.
‘결계가 못 견딘다.’
이유야 어찌됐건 결계의 상태는 최악.
“서둘러!”
다그치는 나의 말에 일행들은 백염탄을 내던졌다.
이제 안전한 장소로 벗어나기만 하면 될 터.
하지만 둥지의 주인은 순순히 보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결국 우려하던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으니.
“아저씨이이이이!”
결계가 부서진 게브네의 몸이 백염에 휩싸이며 무너져 내렸다.
그야말로 찰나에 벌어진 황망한 상황.
달려간 에스카는 쓰러진 게브네를 붙잡아 다급하게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부질없는 일.
“이미 늦었어요! 그냥 놔두고 와요!”
나는 가망 없는 생명이 아닌 확실한 생명을 선택했다.
죽은 사람 살리자고 산사람을 죽일 순 없잖은가.
누군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불행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간다.
그리고 그런 상황들은…….
인간의 도리를 시험하게 만든다.
“너희들은 왜 가는데?! 그냥 오라고!”
“곤경에 빠진 동료를 어찌 두고 가란 말인가!”
지금처럼 말이다.
둥지를 벗어나던 반투족 3인은 갑자기 방향을 바꿔 게브네를 향했다.
우직하고 올곧은 마음.
의리를 중시하는 반투족의 성향이 하필 이 순간에 보란 듯이 튀어나와 버렸다.
“야 이 멍청한 놈들아아아아!”
나는 기함을 내지르며 답답함을 토해 냈다.
저거야 말로 자살행위다.
푸르던 결계는 이미 색을 잃었으니, 당장 깨진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냥 오라니까!”
참다못한 나는 녀석들 향해 달려갔다.
말로 해선 안 되니 힘으로 끌고 올 수밖에.
하지만 나는…….
조금 더 서둘렀어야 했다.
파지지직―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일어났고.
“에스카아아아아!”
위태롭던 그녀의 결계는 유리잔처럼 부서져 나갔다.
확장되는 그녀의 동공.
나는 움켜쥐듯 지면을 박차며 에스카에게 향했다.
제발 닿을 수 있기를…….
휘감기는 백염을 보며 달리던 발에 더욱 힘을 실었다.
하나 지옥문은 열려 버렸고.
“어어어? 부족장 결계가 이상한데에에에에엑!”
결계가 깨진 부족장의 몸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몸부림치는 부족장과 멍하게 바라보는 두 남녀.
“놔두고 뛰어!”
도착한 나는 에스카의 몸을 잡아 둥지 입구로 집어던졌다.
그대로 돌아서 부족장을 잡았고, 비척거리는 녀석을 안아 사력을 다해 집어던졌다.
빠지직―
순간 들려오는 섬뜩한 파열음.
갈라지는 결계를 보며 나는 미친놈처럼 고함을 질렀다.
“시바아아아아아아알!”
차마 표현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
휘감겨 오는 백염의 불꽃은 두 눈을 삼키며 시야를 뺏어갔다.
본능적으로 내딛던 두 다리가 힘을 잃었다.
화상의 고통은 인지를 넘어섰으며, 나의 호흡은 타오르는 화마를 맥없이 들이마실 뿐이었다.
몰려드는 어둠…….
마지막 남은 한 점의 빛이 애처롭게 사라져 갔다.
또다시 시작되는 다섯 번째 죽음.
[화염 내성이 발현되었습니다.]
새롭게 떠오른 문자와 함께 나의 의식은 마지막을 고했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