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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 99개-48화 (48/203)

48화

“왜요? 사고라도 난 건가요?”

용병만 돌아왔다는 말에 나는 원정 실패를 떠올렸다.

가장 흔한 이유일 테니까.

“그걸 알아보려 가는 중이에요. 의뢰인을 두고 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대답하는 에스카의 얼굴은 한눈에 봐도 어두웠다.

걱정과 염려가 가득한 눈동자.

각별한 게브네와의 인연은 그녀의 표정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흠, 그렇군요.”

결론은 만나 봐야 알 수 있는 일.

하나는 성공과 전리품이란 명예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패와 죽음이라는 아픔이다.

간단하고 명료한 결과.

하지만 경우의 수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계약이 파기됐을 경우는요?”

“어느 한쪽이 잘못했을 경우 그렇게 되기도 해요. 하지만 어지간해선 일어나지 않는 일이죠.”

모종의 일들로 인해 상황이 뒤틀렸을 수도 있다.

분위기로 봤을 때 성공은 아닌 것 같고…….

‘사고 아니면 분쟁인가.’

둘 중에 하나라면 의견 충돌이길 바랐다.

나에게도 게브네는 중요했기 때문이다.

― 이런 건 처음 보는데…….

틈나는 대로 알아봤지만, 리베에 있는 대장간에선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모두가 모르겠다는 말들 뿐.

고블린 대검의 정체는 어디에서도 밝혀낼 수 없었다.

심지어 어느 대장장이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으니.

― 구시가지에 가면 게브네라는 장인이 있수. 그 양반이라면 알겠지… 게브네가 모르면 누구도 알 수 없을 거요. 그 사람이 최고니까.

결국 나의 의문을 풀어 줄 사람은 게브네가 유일했다.

그러니 나에게도 중요할 수밖에.

“별일 아니겠죠.”

“네, 그랬으면 좋겠네요.”

불길한 생각을 지우며 우리는 용병 조합으로 향했다.

머지않아 도착한 조합.

안으로 들어선 우리는, 대기실을 살피며 용병들을 찾았다.

하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잠깐 기다려 보죠.”

주위를 둘러본 에스카는 대기실 한편으로 다가가 적당한 곳에 걸터앉았다.

“이곳에 있는 게 맞아요? 이미 다들 나간 것 같은데요.”

곁으로 다가간 나는 텅 빈 대기실을 보며 에스카에게 물었다.

사람이라고 해 봐야 우리뿐이니 기다림 자체가 의미 없어 보였다.

하지만 에스카는 확신에 찬 말투로 나에게 대답했다.

“경위서를 작성하는 중일 거예요.”

그들은 아직 이곳에 있다고.

에스카는 확신에 대한 근거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의뢰자와 동행한 원정의 경우, 종료를 선언하는 건 의뢰인뿐입니다. 하지만 용병만 돌아왔으니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죠.”

“흠…….”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면 큰 징계를 받게 될 거예요. 용병 업계는 신뢰가 생명이니까요.”

그녀의 말을 증명하듯, 한 무리의 남자들이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때맞춰 일어서는 에스카.

흩어지는 용병을 지나 한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어라? 에스카 님, 조합엔 어쩐 일입니까?”

마주한 용병은 에스카를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물어볼 말이 있어서 왔어요. 바쁘신가요?”

“아니요. 어차피 할 일도 없었는데 잘됐네요. 물어보세요.”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대화는 30분가량 이어졌다.

주된 내용은 사건의 경위로, 이들의 원정은 용병들의 반대로 인해 중도에 해산되고 말았다.

“왜 그렇게 된 거죠?”

“현장 상황 때문입니다. 사전에 들었던 것보다 너무 위험했거든요.”

원정대의 목적지는 화조의 둥지.

마주한 용병 남자는 얼굴을 찌푸리며 당시를 회고했다.

“사전에 들은 거랑 달랐다고요?”

듣고 있던 에스카는 이유를 되물었다.

그에 용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으니.

“네… 화조는 없을 거라 했습니다. 그래서 가기로 한 거죠.”

남자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면의 사정을 얘기했다.

“화조가 없다고요?”

“네, 죽었을 거라고 했어요. 둥지에 가서 물건만 챙기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요?”

“갔죠. 갔는데… 죽기는커녕 더욱 바쁘게 날아다니더군요. 심지어 위치를 들키는 바람에 쫓기기까지 했습니다.”

설명을 이어 가던 남자는 도리질을 하며 정색했다.

붉게 달아오른 격앙된 얼굴.

위험하던 당시의 사정이 그의 표정에서 묻어나고 있었다.

“게브네는 뭐라고 하던가요?”

“날짜가 어긋난 것 같다며 기다려 달라고 하더군요. 이제 곳 죽을 거라는데… 누가 그 말을 믿겠습니까.”

“…그래서 철수하신 건가요?”

“네. 화조가 목격된 순간 계약은 끝난 겁니다. 우리가 합의한 내용엔 그 정도의 위험부담은 없었으니까요.”

거듭되는 에스카의 질문에, 남자는 단호한 어조로 자신들의 정당함을 주장했다.

생각에 잠긴 에스카.

침묵하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게브네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아직 거기에 있을 겁니다.”

“화염 계곡에요? 혼자서?”

“네. 자기는 남겠다고 하더군요. 계곡 입구에 있는 오두막에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대화에 응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함께 돌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 양반 고집이 너무 세서 어쩔 수가 없었네요.”

고마움을 전하는 에스카에게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작별을 고한 남자는 문을 열고 조합을 나섰다.

다시 조용해진 대기실.

에스카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의견을 물어 왔다.

“함께 가실래요?”

게브네를 도우러 가자고.

갑작스런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로제에게 갈 것인가.

아니면 게브네를 도울 것인가.

전자를 택한다면 아이작의 행방을 다시 추적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건 출생에 얽힌 비화일 테고, 잃게 되는 건 나의 목숨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게브네를 택한다면?

새로운 길이 열리거나 애먼 시간만 날릴 수도 있다.

도박과도 같은 극단의 선택.

그러나 이 선택은 승부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 아니 이 대검은!

이런 말을 하거나.

― 내 이름은 게브네. 나에게 강화 따윈 식은 죽 먹기지.

이렇게만 된다면!

치명적인 약점은 그것으로 극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질문했다.

“페이소스 후작가를 감시할 수 있습니까?”

그놈의 꼬리를 잡을 수 있는지.

두 가지 문제만 해결된다면, 나는 게브네를 구하는 일에 모든 걸 쏟아부을 생각이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

“카리프의 개입을 말하는 건가요?”

“정확하게는 후작가와 연결된 자를 찾는 겁니다.”

반문하는 에스카에게 나는 조금 더 광범위한 대답을 요구했다.

그자가 카리프라는 건 그저 추측일 뿐이니까.

“좋아요. 그 일은 베르에게 부탁해 보죠.”

하여 다음 목적지는 화염 계곡으로 결정되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하나.

현장에 도착하면 모든 답이 밝혀질 것이다.

* * *

대륙 중앙에 위치한 대수림은 가로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배율로 따지자면 두 배 이상.

좁은 남북에 비해, 동서 구간은 훨씬 더 길고 험난했다.

그중에 서쪽.

서남과 서북을 아우르는 광활한 지역은 사라센 제국과 국경을 맞대며 천해의 방벽을 형성하고 있었다.

인간은 물론이요.

몬스터조차 허용치 않는 이 척박한 땅은, 인세와 마계를 구분 지으며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 왔다.

그 많은 전설 중 하나가 이곳에서 탄생했으니.

화염과 열기로 가득 찬 이곳을 일컬어 사람들은 화염 계곡이라고 불렸다.

위치는 대륙의 서북 지역.

쉬지 않고 말을 달린 우리들은, 일주일이란 시간을 투자한 후에야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 벌써부터 덥네.”

고작 계곡 입구에 도착했을 뿐인데 주위는 온통 열기로 가득했다.

일렁이는 아지랑이에 따라 정신마저 흔들릴 지경.

“이제 다 왔네요. 저 앞에 보이는 오두막이 화염 계곡 쉼터에요.”

우리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오두막으로 향했다.

한데 말은?

타고 온 말은 어디에 놔두고 걸어가는 것일까.

“빨리 와 이눔 시키야! 말이 사람보다 느리면 어쩌자는 거야!”

계곡 근처부터 시작된 지열로 인해 타고 온 말들은 진즉에 녹초가 되었다.

그러니 내려서 끌고 갈 수밖에.

계곡 아래에 두고 왔다간 반나절도 못 지나 먹잇감이 될 것이다.

“역시 말하고 나는 안 맞아.”

말 대신 마차를 끌었을 때 이미 악연은 시작된 것이었다.

하루를 달렸다고 죽지를 않나.

이번에 덥다고 헐떡거려 이렇게 모시고 간다.

“이래서 우리가 말을 싫어하지. 세속인처럼 나약하거든. 진정한 전사는 워 울프를 탄다.”

뒤를 따르던 부족장이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그에 호응하는 별 보러 갈래.

“맞다. 전사의 탈것은 그 자체로도 용맹한 법이지.”

“그게 뭔데?”

나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어 호기심을 드러냈다.

“진정한 전사만이 길들일 수 있다는 환상의 야수다. 하지만 난 본 적이 없지. 부족장은 봤나? 나만 못 본 건가?”

술김에 태어난 놈은 내 질문에 대한 답과 새로운 질문을 동시에 해결했다.

“크흠… 믿음이 부족한 자에겐 보이지 않는 법이다…….”

말끝을 흐리며 대답하는 부족장.

녀석의 꼬라지를 보니 진실은 대강 밝혀진 것 같다.

“결론은 본적 없네. 그치?”

“크흐흠…….”

“어릴 적부터 들었던 옛날 얘기 같은 거고.”

“가슴이 답답하군…….”

부족장과 별 보러 갈래는 나의 시선을 피하며 애먼 고삐를 만지작거렸다.

“쯧쯧… 귀 기울인 내가 죄인이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오두막 입구에 도착했다.

한 걸음 먼저 도착한 에스카는 지체 없이 문을 열어 오두막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그 순간.

“게브네 아저씨!

다급한 에스카의 외침이 문틈을 가르며 쏟아져 나왔다.

* * *

“정신이 드세요?”

곁을 지키던 에스카는 물병을 들어 게브네에게 건넸다.

단숨에 들이키는 게브네.

헐떡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호흡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잠깐의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고.

“에스카가 아니냐?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게야?”

게브네는 귀신이라도 본 듯 눈동자를 키웠다.

하나 궁금한 것이 어디 그 혼자뿐이었겠나.

“아저씨야 말로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에스카는 날선 목소리로 책망하듯 반문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구나.”

게브네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보아하니 계속된 열기에 의식을 잃었던 모양이다.

입고 있는 옷은 흠뻑 젖어 있었고, 헝클어진 머리에선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화조의 둥지는 무슨 일로 오신 건데요?”

에스카는 쉴 틈을 주지 않고 질문을 이어 갔다.

마치 취조를 하는 느낌이랄까.

“혼자 남아서 뭐 하시는 거냐고요. 너무 위험하잖아요.”

그녀는 걱정과 분노의 경계를 위태롭게 오가고 있었다.

게브네는 말없이 가방을 끌어당겼고.

툭―

낡은 양장본을 꺼내 에스카에게 내밀었다.

세월을 머금은 얼룩진 속지.

“이건 나의 조부께서 작성하신 일기장이라네.”

건네준 책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일기장이었다.

“이걸 왜…….”

“읽어 보면 알게 될 걸세. 내가 왜 이곳을 찾아왔는지.”

책을 건네받은 에스카는 차분하게 일기를 읽어 나갔다.

주목할 내용은 화조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

“이 말을 다 믿으시는 거예요?”

일기를 덮은 에스카는 굵고 짧게 질문을 던졌다.

제정신이냐고…….

곁에서 읽던 나의 생각도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이건 좀 황당한데.’

곧이곧대로 믿기엔 우리가 아는 화조와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아니, 생소한 얘기랄까.

세간에 알려진 화조의 정보는 화염을 다루는 괴조, 거기에 흉폭하고 사납다는 정도였다.

다행스러운 건 서식지인 화염 계곡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

덕분에 이 몬스터에 대한 정보나 피해 사례는 딱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하나 일기장의 내용은 우리의 상식을 완벽하게 배신했다.

일단 시작은 수명부터.

화조의 수명은 100년이고, 때가 되면 자살을 한다.

심지어 방법은 분신이었으니.

‘집을 불태운다고?’

녀석은 자신의 둥지에 불을 질러 스스로를 불사른다고 했다.

기간은 무려 10일.

화염을 다루는 몬스터가 불에 타서 죽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제부터다.

둥지의 불꽃이 사라지면, 화조는 다시 부활해 새로운 100년을 살아간다.

쉽게 말해 불사조라는 건데.

이 글이 사실이라면 화조야 말로 진정한 괴물이었다.

“이게 화조의 생태란 얘기예요?”

“그렇다네.”

의구심 가득한 에스카를 향해 게브네는 점잖이 대답했다.

덧붙여 이어지는 진짜 이야기.

“계속 읽어 보게. 중요한 건 녀석의 부활이 아니니까.”

핵심은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에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숯.

재로 변한 둥지에서 백색의 숯이 나온다고 했다.

그것을 가리켜 백염탄이라 했는데, 이 숯의 화력은 일반 연료에 비해 몇 배나 높았다고 한다.

‘이거라면 탐낼 만하네.’

게브네의 목표가 이것이었다면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쇠를 다룬다는 건 불과의 싸움이니까.

대장장이라면 누구나 원하고 바래왔을 물건이었다.

문제는 그것을 구하는 방법이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요?”

지켜보던 나는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느 부분이 그렇다는 겐가?”

“전체가 다요. 열기가 식어야 숯을 얻을 수 있는데, 그 시점에는 화조가 부활하잖아요.”

바꿔 말하면 얻을 틈이 없다는 얘기였다.

“화력도 일반 숯의 몇 배고.”

“그렇지.”

“그러니 말이 안 되죠. 수천 도의 불구덩이를 직접 헤집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세요?”

한마디로 말장난이다.

그것이 실존한다고 한들 찾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조부께선 방법을 찾으셨지.”

게브네는 일기장을 뒤로 넘겨 특정 페이지를 펼쳤다.

적혀 있는 글씨는 빙속성 결계.

“만년설산에서 가져온 빙결의 정수와 서리고원에 사는 얼음 요정의 심장을 합치면 작지만 강력한 빙속성 결계를 만들 수 있다…….”

소리 내어 읽던 에스카는 말끝을 흐리며 책을 덮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이야기였다.

“사실이란 증거는요? 일기를 적으신 조부님 말고는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책을 덮은 에스카는 의뭉스런 얼굴로 반문했다.

심지어 반투족 삼인조차 끄덕거렸으니, 그만큼 게브네의 말은 신뢰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내가 직접 목격했네.”

여전히 게브네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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