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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 99개-41화 (41/203)

41화

“나를 죽이고 가라!”

이름부터가 용맹한 부족장은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그를 필두로 나머지 두 사람도 자리를 박찼고.

“타이탄 스피어!”

“타이탄 슬래쉬!

“타이탄 엑스!”

반투족은 기합을 지르며 투지를 불태웠다.

도대체 타이탄은 왜 찾는 건지 모르겠다만, 하여간 그와 그의 동료들은 용감하게 선봉에 나섰다.

별 보는 걸 좋아하는 여인과 술김에 태어난 녀석까지.

나에게 보여 줬던 무력함은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지 않았다.

‘저게 본 실력인가?’

반투족은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 다수의 오러 유저들을 상대했다.

“이것들 봐라?”

하지만 검 끝에 오러를 모으는 저 녀석은 솔직히 위험해 보였다.

짐작되는 바는 6성 초입.

반투족이 상대하기엔 경지의 수준이 꽤나 높아 보이는 녀석이었다.

“신기해서 구경 좀 해 줬더니 선을 넘네.”

콧등의 상처가 구겨진 녀석은 칼을 뽑아 난입을 시도했다.

확연히 차이 나는 움직임.

질러진 칼을 앞세우며 놈은 부족장을 향해 사납게 달려들었다.

“부족장!”

다급한 여인의 외침에 부족장의 시선이 뒤로 돌았다.

하나 때는 이미 늦었으니.

슈아아악―

짓쳐들어오는 놈의 칼끝이 부족장의 심장으로 날아들었다.

눈을 질끈 감는 부족장.

“그쪽이 아니지.”

나는 해머를 뻗어 녀석의 칼을 가로막았다.

“내가 먼저잖아.”

그러고는 한 걸음을 내딛어 놈의 코앞으로 다가섰다.

그렇게 다가선 나는.

“간다.”

멍하게 바라보는 놈을 향해 무심히 해머를 휘둘렀다.

카앙!

청명한 쇳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고.

“쯧…….”

내지른 나의 해머는 녀석의 칼날에 가로막혀 버렸다.

“아, 놀래라.”

녀석은 상처 난 콧등을 씰룩이며 뻗은 칼을 거둬들였다.

“선수필승이라… 작전은 좋았는데 아쉽군. 상대가 나라서 통하지 않았어.”

이죽거리는 놈의 얼굴에 저열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이걸 어쩌나.

“그러게, 상대가 너라서 다행이야.”

여전히 무사한 해머를 보며 나 역시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선긋기.

6성의 급을 나누는 중요한 일격이었다.

― 6성이 저런 해머를 꿰뚫는다? 말도 안 돼는 거죠. 오러의 날카로움은 7성급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해머를 꿰뚫었던 에스카의 곡도는 충격을 넘어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나의 한계를 깨닫게 된 직접적인 경험.

오러는 신체만 강화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순간을 기점으로 나에겐 괜한 걱정이 자리 잡았다.

혹시나 반복된다면?

6성급 모두가 저런 괴물이라면?

에스카가 특별한 걸 알게 됐지만, 나의 불안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오러가 없으니까.

나로서는 무기를 강화할 방법이 없었고, 따라서 지킬 방법도 전무했다.

가진 건 그저 뛰어난 육체뿐.

무기가 손상되는 순간…….

나의 존재는 고깃덩이로 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견뎌 냈다.’

일그러진 콧잔등의 일격을 덤덤하게 버텨 냈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나.

“아깝네.”

“크크큭, 나 정도 되면 이런 기습은 안 통하지.”

“아니, 해머를 베었으면 네놈이 이겼을 거라고.”

이런 수준의 6성은 해볼 만하다는 얘기가 된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하나.

“진짜로 간다.”

나는 감춰 둔 발톱을 꺼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콰앙!

통렬한 내려치기를 시작으로 무차별 공격이 뒤를 이었다.

“이런 근본 없는 공격 따위!”

일그러진 콧잔등은 황급히 검을 휘둘러 방어에 집중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듯, 상황은 놈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쾅! 쾅! 쾅! 쾅! 쾅!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이 새끼 뭐야!”

놈은 찢어진 눈을 크게 뜨며 황망한 얼굴로 소리쳤다.

외치고 싶은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

‘통한다.’

물러서는 놈을 보며 마음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나의 수련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비록 초입인 상대지만 6성인 녀석에게도 나의 힘과 속도는 충분히 통하고 있었다.

“자, 잠깐만!”

놈은 뒷걸음을 치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마치 할 말이 있다는 듯, 녀석은 내민 손을 흔들며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얘기 좀 하자고!”

“싫은데.”

녀석의 제안을 거절하며 해머를 치켜들었다.

놈이 하려는 말이 짐작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결국 족보나 팔아 대겠지.

후작가의 사람들이라 했으니 ‘내가 누군지 알아?!’ 이런 개소릴 지껄일 게 빤하다.

“너 인마! 우리가 누군지 알아?!”

봐라.

이 창의력 없는 외침을.

“듣기 싫다고.”

나는 무심히 답하며 해머를 움켜쥐었다.

하나 놈은 기어코 정체를 밝혔다.

“우린 페이소스 후작가의 가신들이다!”

“…….”

“여기서 멈추고 사죄하면 용서해 주마!”

“…….”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고 움직여라!”

객점 종업원의 말처럼 녀석들의 정체는 후작가의 졸개들이었다.

“흠…….”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에 녀석이 다가왔고.

“그래, 살고 싶다면 무릎을 꿇… 커허억!”

주절거리는 놈의 아가리에 분노의 주먹을 때려 넣었다.

“크어억… 너 우리가…….”

“몰라 새꺄.”

후작인지 뭔지 알게 뭔가.

나는 이 나라 사람도 아니고.

“후작님께서 아시면…….”

“안 들린다고 새꺄!”

놈들이 하는 말을 듣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거기 삼남매!”

“말하라 승자여!”

이제 남은 건 처절한 응징의 시간뿐.

“다 죽여 버려!”

나는 반투족 3인을 향해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하… 저분들이 누군 줄 모르셨다는 거네요?”

“당연한 것 아닙니까. 저는 브라함 제국 사람이라고요. 아리안 왕국의 후작을, 그것도 후작의 아들 따까리를 제가 무슨 수로 안답니까?”

현 상황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이곳은 성도의 경비대다.

나는 지금 조사를 받고 있고, 다른 방에 있는 후작가의 개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길길이 날뛰는 중이었다.

“정말요? 자기들이 말했다던데요?”

“못 들었으니 싸웠죠. 이렇게 귀찮아질 게 빤한데.”

“아후…….”

뻔뻔한 나의 거짓말에 마주앉은 남자는 긴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긁적였다.

저러다 쭈그러드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깊고 무겁게 말이다.

별수 없는 것이다.

목격자는 없고, 나는 빅터 크로제의 제자니까.

비록 타국의 귀족이지만, 이름이 가진 무게가 모든 걸 뒤집었다.

각설하고.

“정말 귀족이 아니신가요?”

“네, 아닙니다.”

“허허… 거참…….”

귀족이 아니라고 밝혔음에도 경비대는 예의를 잃지 않았다.

“어떻게 하죠? 빅터의 제자라면 평범한 사람은 아닐 텐데요.”

“그러게… 인물도 훤하니 착용한 장비만 봐도 보통이 아니잖나. 괜히 일만 커지는 게 아닌가 모르겠구먼.”

옷이 날개라더니.

경비대원들은 빅터의 이름과 나의 외모로 신분을 격상시키고 있었다.

하나 이럴 수밖에 없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 이 펜던트가 왜…….

― 로제 아가씨께서 직접 주셨다고요?!

―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소지품 검사 중에 나온 로제의 펜던트가 문제였다.

“아무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렇게 들고 오시는 걸 보는 건 저희도 처음이라.”

경비대의 책임자는 난감한 얼굴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런 표정과 말투로 관계를 물어 왔다.

“실례지만… 저희 아가씨와는 어떤 인연이신지…….”

“생명을 빚졌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쪽 아가씨께서요.”

“네?! 하면 은인의 증표로 받으신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녀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 주었으니까.

물론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한 번이겠지만 말이다.

“아이쿠, 이런 귀한 분을…….”

경비대의 책임자는 호들갑스런 동작으로 예를 표했다.

그것이 로제의 가문에 대한 충심인지 아첨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 마실 것 좀 가져오라니까 왜 이렇게 느려?!”

덕분에 나는 한결 편한 분위기에서 다음 상황을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으니.

“나와 별 보러 갈래.”

“아니, 왜 자꾸 별을 보자는 거예요. 이름을 말하라니까요?”

“멍청한 놈.”

반투족 3인과 담당 경비대원은 핏대를 세우며 처절한 문답을 이어 가고 있었다.

“후… 아가씨는 잠시 빠지시고, 거기 덩치 큰 아저씨.”

“나를 말하는 건가?”

“맞아요. 그러니 그만 실랑이하고 후딱후딱 끝냅시다.”

“좋소.”

대화의 상대는 부족장으로 넘어갔다.

질문의 내용은 마찬가지.

“나를 죽이고 가라.”

부족장은 덤덤한 얼굴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하지만 경비대원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 갔고.

“안 죽인다고 몇 번을 말해! 당신을 왜 죽여? 이름이 뭐냐고 묻는데 뭘 자꾸 죽이래!”

“그날 밤 술만 안 마셨어도…….”

“넌 그냥 자라고!”

술김에 태어난 녀석까지 합세하며 조사실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쯧쯧…….”

혀를 차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누구 하난 뒷목잡고 쓰러질 상황.

터벅터벅 다가간 나는 경비대원에게 말했다.

“그게 이름이에요.”

지금 나오는 헛소리 전부가 녀석들의 이름이라고.

“뭐라고요?”

경비대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반문했다.

“에이, 설마… 무슨 사람 이름을 저렇게 만들어요.”

유경험자인 나는 이해한다.

저 이름을 듣고 멀쩡하면 그 또한 이상한 것이니까.

“그 설마가 사실입니다.”

나 역시 처음엔 저러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나와 별 보러 갈래…….”

“어림없는 소리!”

“나를 죽이고 가라…….”

“좋다, 결투다.”

“그날 밤 술만 안 마셨어도…….”

“후후… 우리 부모님은 맨날 싸우지.”

경비대원과 반투족 3인은 같은 말을 두고 다른 소릴 지껄였다.

“이게 다 이름이라고요?”

“네, 이름 맞습니다. 반투족 전통이라고 하더군요.”

“허허…….”

재차 이어진 나의 설명에 경비대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상황은 정리되어 기다리길 십여 분.

“나가시죠. 내성에서 모시러 나왔습니다.”

나와 반투족 3인은 경비대를 따라 집무실 밖으로 향했다.

몇 발자국 걸었을까.

“아까 그놈을 데려오라니까? 지금 우리 후작님을 무시해?”

“무시하긴 뭘 무시합니까. 그분은 따로 조사 중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때마침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귀에 익은 목소리.

문 너머로 들리는 고성의 주인은 분명히 그 자식이었다.

“그놈 맞죠? 코에 칼자국 있는 놈.”

“아, 긱스 말씀하시는군요. 맞습니다. 아주 몹쓸 놈이죠. 후작의 아들을 모시는 주제에 자기가 후작인줄 아는 놈입니다.”

역시는 역시인가.

싸가지 없는 건 둘째 치고, 허세가 도를 넘었다.

얼마나 후작을 팔아 대는지 이곳에 있는 내내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후작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입니까?”

저런 쓰레기를 키우는 놈은 어떤 인간인지 말이다.

“마론 후작이야 궁내부 장관이시니까요. 정치 서열 3위니 위세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들은요?”

요점은 여기부터다.

긱스가 모시는 사람은 후작의 아들이니까.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천하의 개 쌍놈이죠.”

쓰레기 밑에 더 썩은 쓰레기가 있던 것이다.

“한 달에 두어 번씩 나타나서 행패를 부리는데, 저희도 골치 아파 죽겠습니다.”

“그렇군요. 한데 후작의 아들이면 그래도 되는 겁니까? 저는 이해가 안 돼서요.”

맞잖은가.

제 아비가 후작이라 한들, 이곳은 백작의 성도다.

흠 잡히지 않도록 예를 갖추는 건 상식 아니겠나.

“말도 안 돼는 일이죠. 후작님께서 직접 오시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경비대의 말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분명 사연이 있을 터.

“하면 왜 그런답니까?”

나는 감춰진 속사정을 은근슬쩍 물어보았다.

그에 경비대원은 술술 하소연을 시작했으니.

“로제 아가씨 때문이죠. 제논 백작님께서 혼담을 넣으신 모양입니다.”

이야기의 전개는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혼담이라니.

그렇다면 더욱 조심해야 할 것 아닌가.

저 말대로라면 천하의 개 쌍놈이 과장은 아닌 듯했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하여간 그것 때문에 요즘 시끌시끌합니다. 로제 아가씨도 부쩍 힘들어 하시고…….”

경비대원은 어두운 낯빛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렇게 우리는 초소를 나왔고.

“아이고, 아가씨 걱정에 제가 쓸데없는 말을 주절거렸네요. 잊어 주십쇼.”

경비대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소탈하게 웃어 보였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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