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목숨 99개-37화 (37/203)

37화

다음 날 아침.

밤늦도록 이어진 수련은 오전부터 다시 재개되었다.

관건은 인색해진 성공 메시지와의 싸움.

[수련에 성공하였습니다.]

[수련에 성공하였습니다.]

이 몇 마디를 듣기 위해 나는 집중에 집중을 거듭했다.

“후…….”

이 모습을 빅터가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칭찬?

또는 면박?

아마도 후자가 될 것 같지만, 뭐가 됐건 상관없다.

그는 늘 새로운 걸 깨닫게 해 주니까.

빅터와 함께한 시간은 내게 많은 것들을 알게 해 주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이것.

인간의 적응력은 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휘두르기 숙련도 1,413/10,000]

막막하던 수련은 조금씩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밤은 다시 찾아왔고.

“후배님, 그러다 쓰러지겠습니다.”

베르의 너스레와 함께 수련의 둘째 날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세 번째 날.

태양이 머리 위로 떠올랐다.

그렇게 한낮을 넘어 붉은 노을이 내려앉을 쯤.

“오늘은 여기까지.”

저항하던 새로운 수련 방식은 나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했었나.

멀어 보이던 숙련도는 어느새 1,800을 넘어선 상태였다.

“어제하곤 많이 다른데요?”

지켜보던 베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네가 보기엔 어때, 에스카? 느낌이 틀리지 않아?”

“날카로워졌네.”

에스카는 차분한 말투로 나의 수련을 평가했다.

조용히 끄덕이며 돌아서던 순간.

“거기 누구야?”

미묘한 인기척을 느낀 나는 담장 너머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

하나 돌아온 반응은 고요한 침묵뿐.

“반투족인 것 같아요.”

어딘가를 응시하던 에스카는 덤덤한 얼굴로 정체를 알려 왔다.

“그 사람들이 왜요?”

“승자에 대한 집착이죠. 복수나 추종 같은… 뭐랄까, 반투족 특유의 강박관념이에요.”

“집착이라니…….”

나는 소름을 느끼며 안전 가옥으로 들어섰다.

깊어지는 3일째 밤.

“쉬세요.”

길었던 하루는 짙은 어둠에 물들어 갔다.

그리고 꿈속의 나는.

“오, 오지 말라고!”

출렁이는 뭔가를 피해 밤새도록 꿈길 속을 헤매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사일 째 이어지는 수련은 퀭한 눈으로 시작되었다.

“어머…….”

그 차분하던 에스카조차 입을 틀어막았으니 말 다한 것 아니겠나.

“무슨 일이에요?”

초췌한 나의 몰골에 에스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에스카와 꿈속의 반투족 여인은…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수련은 다시금 시작되었고.

[내려치기 숙련도 1,997/10,000]

목표했던 2,000이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어떻게 될까?

지난번처럼 대미지가 상승하는 걸까?

차오르는 기대만큼 해머의 움직임도 가속을 더해 갔다.

[수련에 성공했습니다.]

그와 함께 휘두르기가 2,000에 도달했다.

이어지는 또 다른 성공 메시지.

[올려치기 숙련도 2,000/10,000]

삼신기 중 두 개가 목표를 달성했다.

이제 남은 건 내려치기 하나뿐.

부아아아악―

해머는 공기를 찢으며 사납게 허공을 갈랐다.

멈추지 않은 해머가 바닥에 내리꽂혔고.

콰아아앙!

요란한 굉음과 함께 뒤뜰 한편이 폭발했다.

[기본 수련 3종이 2단계를 돌파하며, 둔기 마스터리 레벨이 3으로 상승합니다.]

[신체 능력이 10% 상승합니다.]

그리고 나의 몸은 또 한 번 격변을 맞이했다.

자세를 바로한 나는.

“그만 훔쳐보고 나와라.”

나직한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했다.

“크흐흠.”

헛기침 소리와 함께 세 명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나 정체는 반투족.

부족장이란 남자를 필두로 나를 괴롭히던 꿈속의 여인, 그리고 언쟁을 나눴던 이름 모를 녀석이 나타났다.

“뭐야?”

“크흐음… 내 이름은…….”

“왜 왔냐고.”

나는 찾아온 목적부터 물었다.

녀석의 이름이야 기억하고 있으니까.

원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미 머릿속에 남아 버렸다.

“일단 내 소개를…….”

“그거잖아, 나를 죽여 달라는 거.”

“이런 무례한 것, 나는 위대한 반투족의 족장인 울부짖는 창…….”

“용건.”

시끄러운 녀석의 말을 자르며 찾아온 이유를 다시 물었다.

도전이라면 받아 주고, 귀찮게 하면 쫓아낼 생각이었다.

“…….”

녀석은 말없이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1초… 2초… 3초.

“할 말 없으면 가라.”

나는 그대로 돌아서 안전 가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순간.

“도전이다!”

녀석은 등 뒤에 대고 기다렸던 말을 내뱉었다.

나는 지체 없이 돌아섰고.

“덤벼.”

손바닥을 내밀어 그를 향해 까딱거렸다.

“지난번엔 방심해서 당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말을 마친 부족장은 표정을 바꾸며 거대한 창을 뽑아 들었다.

창날의 크기만 어림잡아 1m 가량.

핼버드라 부르는 녀석의 무기는 도끼와 창이 혼합된 거대한 미늘창이었다.

“각오하라!”

곧게 들어 내리찍는 녀석의 창을 향해, 묵색의 해머는 거침없이 날아갔다.

그렇게 마주한 어느 한 지점.

쩌어엉!

요란한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의 무기는 격돌했다.

그리고 녀석은.

“크어어억?”

튕겨 나가는 핼버드를 보며 두 눈을 부릅떴다.

“제대로 안 할래?”

이걸론 부족하다.

이런 식이라면 상승된 10%의 능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없었다.

“닥쳐라!”

자세를 바로 한 부족장은 기함을 외치며 핼버드를 휘둘렀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이럴 수가…….”

5성급은 된다던 녀석의 핼버드는 뒷마당 한구석에 초라히 뒹굴었다.

“거기 별 머시기, 당신도 덤빌 건가?”

“감히!”

역시나 여인은 망설이지 않았다.

부족의 특징인 걸까.

대검을 뽑아 든 여인은 기세 좋게 휘두르며 앞으로 달려 나왔다.

챙―

해머와 부딪친 여인의 검은 큰 호를 그리며 담벼락에 처박혔다.

“아직 안 끝났다!”

반투족 여인은 맨손으로 달려들었다.

그 끈기와 투지는 칭찬하지만.

“아아악!”

여인은 1초도 못 견디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며칠 전 맞잡았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

10%의 차이는 상황에 따라 그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는 듯했다.

짝짝짝짝―

경쾌한 박수 소리와 함께 나긋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에스카.

“육체만으로 이런 수준이 가능하다니… 정말 경이롭네요.”

곁에 서 있는 베르와 함께 그녀는 진심 어린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

나를 바라보는 에스카의 눈은 기묘할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먹이를 발견한 맹수의 눈빛이랄까.

“어때요. 저는 준비돼 있는데.”

에스카는 곡도를 뽑아 칼끝을 흔들었다.

역시 그녀의 정체는 발톱을 숨긴 야수.

처음 본 순간부터 이렇게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좋아요.”

반투족으로 시작된 대결의 흐름은 이제 나와 에스카의 대련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오러를 휘감았고.

‘6성이다.’

선연한 오러의 기운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갈게요.”

순간 사라지는 에스카.

점멸하듯 지워진 그녀는 어느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3번 안에 끝내 드리죠.”

짧은 말을 내뱉은 에스카는 독특한 칼을 내밀며 빛살처럼 쇄도했다.

그리고 나의 해머는.

카앙―

들이치는 그녀의 곡도를 정면으로 가로막았다.

이것이 6성의 오러.

짧은 그녀의 곡도에 나의 해머가 출렁거렸다.

‘아직 아니야.’

6성과 대적한 적은 없지만, 빅터를 통해 이미 경험해 봤다.

에스카의 힘은 이 정도가 아닐 터.

스아아아아―

곡도를 둘러싼 짙은 오러가 예리한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두 번째.”

그와 동시에 에스카의 모습이 다시 흐려졌다.

승부는 이제부터.

카아앙!

그녀의 짧은 곡도는 믿을 수 없는 힘으로 나의 해머를 쳐올렸다.

드디어 드러나는 진짜 6성의 힘.

“크윽.”

나는 전신의 근육을 쥐어짜 튀어 오른 해머를 끌어당겼다.

하나 벌어진 공간은 찰나의 틈을 허용했으니.

‘젠장.’

에스카는 차가운 공기를 뿜어내며 나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버거울 만큼 빠른 움직임.

‘이렇게 진다고?’

처음 맞닥뜨리는 위기 앞에 신경은 칼날처럼 곤두섰다.

거리를 잡은 에스카의 칼끝이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고.

슈아악!

나는 느려지는 시간을 느끼며 에스카의 곡도를 좇기 시작했다.

때를 맞춰 들리는 서늘한 에스카의 목소리.

“세 번째.”

에스카는 마지막 공격을 위해 상체를 비틀었다.

체크 메이트.

좌측으로 들어오던 유려한 선은 솟구치듯 방향을 바꾸며 나의 턱밑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부아아악!

나는 근육을 뽑아내는 심정으로 움켜쥔 해머를 내리쳤다.

마주한 에스카의 눈이 흔들렸고.

‘잡았어!’

나는 회심의 일격을 내지르며 위험했던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데 왜…….

“아깝네요.”

이 여자는 웃고 있는 걸까.

낮게 중얼거린 에스카는 시선을 돌려 나의 해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뭐야 이게…….”

곡도에 찔린 해머를 보며 놀란 두 눈을 크게 키웠다.

이런 게 가능한 것일까?

에스카가 뻗은 곡도는 거짓말 같은 모습으로 해머 한가운데 박혀 있었다.

이 강철 해머를.

그것도 단단하기로 소문난 묵철로 만든 해머를.

‘뚫었다고?’

마치 과일에 칼을 꼽듯 가볍게 찔러 넣은 것이었다.

“이걸로 끝.”

에스카는 감춰진 다른 곡도를 꺼내 나의 목젖을 가볍게 건드렸다.

뭐라 변명할 수 없는 완벽한 패배.

지금 나는…….

그녀에게 목숨 하나를 빚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깊게 박힌 칼을 뽑아내며 에스카는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같은 6성이라도 저는 예리함에 특화돼 있거든요. 덕분에 해머를 멈출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쉽지 않았을 것 같네요.”

그녀의 속사정이야 어찌됐건 위로가 되는 말은 아니었다.

대결의 실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이미 겪어 봤기 때문이다.

“실망하기엔 아직 이른 것 같네요.”

심각해진 나를 향해 베르가 다가왔다.

그러고는 현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에스카는 평범한 6성이 아닙니다. 이미 완성돼 있죠. 또한 오러의 절삭력은 6성 이상입니다.

“6성 이상이요?”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6성이 저런 해머를 꿰뚫는다? 말도 안 돼는 거죠. 오러의 날카로움은 7성급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어쩐지 느낌이 다르다 싶었다.

빅터를 통해 경험한 6성보다 에스카의 오러가 훨씬 더 농밀했기 때문이다.

코끝을 훔친 베르는 계속해 설명을 이어 갔다.

“게다가 에스카는 암살에 특화된 친구입니다. 엄청나게 빠르고 치명적이죠.”

이 또한 인정한다.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빨랐으니까.

공방이 계속되었다면 저 속도에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베르는 다른 관점으로 해석했다.

“후배님은 그런 에스카와 비슷하게 움직였습니다. 살짝 느리긴 했지만, 그런 건 흠이 아니죠. 대단한 겁니다.”

내가 약한 게 아니라 에스카가 강하다는 것.

바꿔 말하자면.

“맞아요. 반응속도가 빨라서 사실 놀랐네요. 움직임만큼은 어지간한 6성에 밀리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에스카에게 인정받을 만큼 나의 성장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솔직히 저는 후배님이 더 괴물 같습니다. 오러도 없이 완성형 6성을 상대하다니…….”

베르의 말에 에스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보탰다.

“나가시죠. 오늘은 오래간만에 외식이나 합시다.”

베르는 나의 어깨를 두들기며 뒤뜰을 벗어났다.

그러다 잠시.

걸음을 멈춘 베르는 고개를 돌려 반투족 3인을 바라보았다.

“저분들은 어쩌죠?”

어쩌긴 뭘 어쩌겠나.

볼일 봤으면 집에 보내야지.

“안 가냐?”

“크흠…….”

핼버드를 챙긴 부족장은 마른기침을 하며 우리 앞을 지나쳤다.

그렇게 건물을 벗어나는가 싶더니.

“이 치욕은 반드시 갚아 주마!”

복수를 다짐한 부족장은 전속력으로 모습을 감췄다.

다음 날.

외출에서 돌아온 에스카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 왔다.

“이반님, 오는 길에 가죽 공방에 들렸는데 오늘 저녁에 찾으러 오래요.”

기다리던 갑옷이 예정보다 빨리 완성된 것이다.

“잘됐네요.”

나는 앞당겨진 일정에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뭐든 예정보다 빨리 나오면 공짜라도 얻은 기분인 것이다.

어쨌거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끝내주네.”

공방에 도착한 우리는 입을 모아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은빛이 감도는 경갑의 자태에 모두가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폼 나는 걸로는 세 손가락에 들 거라더니.’

빅터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어떻게 가죽이 이런 색상과 질감을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놀라움을 애써 감추고 가죽 공방의 여자 주인과 함께 착장(着裝)을 시작했다.

먼저 흉갑.

상체를 따라 흐르는 날렵한 라인은 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를 묘하게 부각시켰다.

거기에 턱밑까지 솟아오른 목 보호대가 멋을 더하고, 삼중으로 어깨를 감싸는 견갑은 독특한 문양이 추가돼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감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관절 부위에 다른 가죽을 덧댄 바지는 예상보다 뛰어난 움직임을 보장했다.

반면 드러나는 넓은 부위는 단단하게 감싸 주었으니.

“역시 두들리 언니는 최고네.”

에스카는 착장된 나의 경갑을 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 역시 소감은 대만족.

장갑과 부츠를 끝으로 착장은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자기야, 어때? 마음에 들어? 여기저기 움직여봐. 불편한 곳 있으면 말하구.”

“…….”

나는 대답 대신 몸을 움직이며 경갑을 살폈다.

딱히 말할 만한 부분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완벽해요.”

경갑의 착용감은 나의 비루한 상상력을 까마득히 초월했다.

무거워서 못 쓴다고?

인간의 기준으로 만든 급 낮은 한계일 뿐, 나에겐 부드러운 촉감을 가진 적당한 녀석에 불과했다.

“제작비는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결과에 만족한 나는 지불해야 할 금액을 물어봤다.

“제작비만 받는 거니까 2골드만 줘. 잘생겨서 깎아 준 거고, 에스카의 후배라서 더 깎아 준 거야.”

“그거면 되나요?”

감이 오지 않던 나는 공임에 대해 반문했다.

“원래라면 당연히 안 되지∼ 정가대로 하면 더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백 허그를 해 주면 좀 더 깎아 줄 수 있지.”

“얼마나요?”

“글쎄? 하는 것 봐서?”

나는 지체 없이 여주인의 뒤로 돌아갔다.

조금 더 깎아 준다는데 망설일 게 뭐 있겠나. 고작 백 허그 한 번에 할인이라면 그까짓 거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

“멋지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아흣…….”

몸을 맡긴 여주인은 야릇한 소릴 내며 반응하고 말았다.

나란 남자.

이렇게 치명적이다.

하는 것 봐서라 했으니, 어쩌면 공짜로 가져가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알 수 없는 어색함에 고개를 갸웃거려야했다.

어딘가 불편한 느낌.

내가 기억하는 여인의 몸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이거 뭐지?’

엄습해 오는 불안감에 전신을 타고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막연한 공포는 현실이 되어 나타났으니.

“와… 두들리 형님, 너무 행복해하는 것 아닙니까?”

지켜보던 베르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나는 반응조차 할 수 없었고.

“야, 이 개시키야… 주둥이 조심하랬지?”

정체를 드러낸 여인, 아니, 남자는 굵은 목소리로 육두문자를 날려 댔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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