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어이 똥!”
“…….”
“냄새난다. 저쪽에 서 있어.”
강력한 응징에 녀석은 갈색의 무언가를 지렸다.
물론 여벌의 옷으로 갈아입어 더 이상 자국은 없었지만.
“아쒸, 내 손에도 묻은 거 아니야?”
나는 킁킁거리길 반복하며 두 손바닥을 확인했다.
“냄새 안 나요! 물로 씻고 왔다구요!”
그에 녀석은 핏대를 세우며 자신의 깨끗함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직 기운이 뻗치는구나. 한 번 더 싸러 갈래?”
“누나가 안 보이네… 어디 갔지…….”
녀석은 들어 올린 손바닥을 피해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똥싸개가 잠시 자릴 비운 사이.
“수거된 마력석은 이게 전부에요. 리베로 돌아가시면, 꼭 저희에게 다시 매각해 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다가온 붉은 머리의 여인은 마력석을 넘기며 한번 더 당부했다.
한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번거롭게 뭐 하러 그래요. 그냥 계약서 쓰고 지금 넘겨 드릴게요. 나중에 리베에 가서 돈만 받으면 되잖아요.”
나는 이곳에서 매듭짓길 원했다.
굳이 어렵게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저들과 우리의 이동 속도가 맞는다는 보장도 없고, 우리의 일정 또한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저 남매는 꽤나 다급해 보이지 않는가.
나 또한 시간에 얽매이긴 싫으니 여기서 정리하는 게 속편하다 생각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어차피 되팔기로 한 건데 들고 가면 뭐 합니까. 계약서나 써 주세요.”
돕기로 했으면 티가 나도록 도와야 덕이 쌓이는 법.
“감사합니다. 이 은혜 꼭 잊지 않고 갚도록 하겠습니다.”
붉은 머리의 여인은 계약서를 작성해 나에게 내밀었다.
매수자의 이름은 샤샤.
나는 계약서를 훑어본 뒤 그녀에게 질문했다.
무언가 어색하던 남매의 사정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마력석을 구입하지 그러셨어요? 직접 용병을 끌고 오다니… 이런 건 효율이 나쁘잖아요.”
대장간으로 비유하자면, 칼 하나 만들겠다고 광산에 처박힌 것이다.
광석이야 돈 주고 사는 것이 시간과 노력을 줄일 터.
흔한 재료를 직접 구한다는 건 배보다 배꼽이 큰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물론 그렇지요.”
샤샤라는 이름의 여인은 나의 말에 수긍하며 대답했다.
결론은 알고도 그랬다는 것인데…….
“하지만 구할 수가 없었어요.”
“왜요? 마력석은 거래가 활발하다고 들었는데.”
“아무도 팔지 않았거든요.”
역시나 남매에겐 나름의 사연이 감춰져 있었다.
“일부러요?”
“네. 누군가가 입김을 넣은 것인지 재료 상인들 모두가 등을 돌렸어요.”
결국 담합이란 얘기였다.
“누구긴 뭘 누구야! 조합장 그 빌어먹을 돼지 새끼지!”
덤덤한 샤샤의 말에 동생은 분통을 터뜨렸다.
“페드로! 저기 어른도 계신데 자꾸 말 함부로 할래!”
질책하는 샤샤의 말에 동생 페드로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볼멘 얼굴로 억울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맞잖아. 추천은 조합장 그 인간이 했고, 납품을 계약하자마자 재료 상인들이 등을 돌렸다고! 이게 우연인 것 같아?”
이쯤 되니 대강의 판이 그려졌다.
무엇을 노리고 설계한 덧인지 너무 빤히 보이는 것이다.
“누구에게 납품하는 건데?”
나는 사건의 주체를 물어보았고.
“단체장이요.”
페드로는 생소한 직책을 내놓았다.
“스승님은 아세요?”
뭐하는 작자이기에 업장이 사라진다는 것일까.
나는 빅터를 바라보며 설명을 부탁했다.
“리베는 도시국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상인이 중심이 된 경제특구지.”
“특구요? 나라가 아닌 건가요?”
“도시국가도 나라의 다른 형태다. 다만, 리베의 지도자는 다른 국가와는 결이 다르다.”
빅터는 페드로를 바라보며 다음 설명을 이어 갔다.
“각 분야의 조합장 중에서 도시의 지도자를 선출하는데…….”
“그게 단체장이에요.”
페드로는 빅터의 말을 넘겨받았다.
그러고는 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리베에서 장사하려면 신용이 가장 중요해요. 특히나 조합에서 발주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죠.”
쉽게 말하자면 조합을 통해 국가에 납품하기로 했다는 말이다.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조합에서 제명당하게 돼요.”
“그렇게 되면?”
“장사 접어야죠.”
페드로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관계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리베에 연금 상점이 몇 개나 되는데?”
“저희 가계가 폐업하면 이제 두 개 남아요.”
“하나는 조합장일 거고.”
“다른 하나는 그의 형이에요.”
이거야 원.
너무 노골적이라 정색하기도 그렇다.
그야말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이 아닌가.
“하여간 이 마력석이 있으면 해결되는 거지?”
“네, 저희 가공 실력은 알아주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단체의 압박이 얼마나 괴로운지 나 역시 알고 있다.
대장간 시절, 빅터를 통해 어렴풋이 겪어 봤기 때문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좀 더 구해다 줄까? 기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도와줄게.”
사정을 알고 나니 힘이 돼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면 좋겠는데 안 되겠구나.”
하나 빅터는 난색을 표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연스레 나의 시선도 그를 따라 허공으로 향했고.
“와우…….”
낮게 지나는 거대한 새를 보며 나는 나지막이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알바트로스다.”
“알… 뭐요?”
빅터가 말한 알 머시기는 커다란 원을 그리며 일대를 활공했다.
부산스레 움직이는 빅터.
선회 중인 녀석을 바라보며 하늘을 향해 굵은 검기를 쏘아 올렸다.
“짐 챙겨라, 이반.”
그러고는 곧장 이동을 준비했다.
“갑자기 왜요?”
“가면서 설명할 테니 우선 떠날 채비부터 해라.”
서두르는 빅터에 맞춰 나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하다못해 이유라도 알았다면 답답하지나 않을 텐데, 빅터는 계속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지금부터 달려야 하니 각오 단단히 해라.”
“달리다니, 어디를요?”
고분고분 답해 줄 양반이었으면 이 고생을 안 했겠지.
빅터는 이미 달리기 시작했고.
“아 놔… 똥싸개! 나중에 리베에서 보자!”
“네, 형님. 살펴 가십쇼!”
나는 멀어지는 빅터의 뒤를 부랴부랴 쫒기 시작했다.
* * *
괜한 걱정이었을까?
빅터의 뒤를 쫒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 있는 느낌이랄까.
수련의 성과는 훌륭했고, 지금의 나는 인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다.
‘8성도 별거 아니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별거 없었다.
그 증거로 나는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았으니까.
하나 이것은 자만이었다.
“속도 올릴 테니 구속구를 풀러라.”
아직 빅터는 시작조차 안 했던 것이다.
나는 구속구를 풀어 양손에 쥐어 들었다.
“이건 어떻게 할까요. 버려요?”
“아깝게 왜 버려.”
빅터는 오러를 휘감으며 짧게 대답했다.
그러곤 나의 손발을 대신해 수갑과 족쇄를 착용했다.
“지금부터가 진짜다.”
말을 마친 빅터는 바람처럼 멀어져갔다.
나의 구속구를 대신 장착한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험한 산길로 모습을 감췄다.
“같이 가요!”
사라지는 흔적을 따라 나 역시 달려 나갔다.
나의 두 다리는 정신없이 땅을 박찼고, 세상은 가는 선과 점으로 빠르게 변해 갔다.
“와 씨! 이러다 날겠네!”
가속이 붙은 두 다리는 정말로 날듯이 달려 나갔다.
심지어 통제조차 쉽지 않다 느껴질 정도였으니.
“우아악!”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가누며 빅터의 뒤를 하염없이 쫒았다.
그렇게 달려가던 어느 순간.
“해머를 들어라, 이반.”
빅터는 진중한 목소리로 전투를 암시했다.
“갑자기 왜요? 아무것도 없는데.”
정확하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무성한 수풀 때문.
높게 자란 갈대가 모든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온다.”
하나 빅터는 검을 뽑아 들었고.
키아아아악!
갈대밭이 사라지며 거대한 무엇이 사납게 날아들었다.
“우왁!”
나는 멍청한 소리를 지르며 본능적으로 해머를 내밀었다.
카앙―
날카로운 놈의 공격은 해머에 가로막혀 무위로 돌아갔다.
그리고 놈의 머리는.
스걱―
휘둘러진 빅터의 검에 속절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네 실력으론 아직 무리다. 대적할 생각 말고 바짝 따라붙어라.”
빅터는 검을 곧추세우며 너른 들판을 달려 나갔다.
사방에서 모여드는 익숙한 형태들.
뒤를 따르던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내가 아는 그것과 너무 같았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말할 시간에 달려라.”
빅터는 나의 말을 자르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그에 뒤처질세라 나 역시 내딛는 발에 힘을 실었다.
하나 떠오르는 의문은 지워질 생각이 없었다.
‘저놈들이 왜 여기에……’
뜬금없는 괴물의 등장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아니, 질문이 잘못된 건가?
서식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저 크기가 이상한 거였다.
연녹색으로 뒤덮인 긴 팔다리와 삼각형의 대가리를 보면, 누구라도 저것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을 터.
“이놈들 사마귀 맞죠?”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그 곤충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특이점이 있다면 우라지게 컸다. 곤충인 주제에 인간인 나보다 훨씬 거대했다.
“맞다.”
빅터는 짧게 답하며 놈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이반!”
그러곤 내 이름을 크게 외쳤다.
“네!”
“멈추면 죽는다!”
“미친!”
빅터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속도를 더욱 높였다.
“아니, 왜 이렇게 위험한 데로 온 거예요?”
“왜는 이놈아. 급하니까 온 거 아니냐.”
빅터는 날아오는 놈에게 검기를 날렸다.
거대한 사마귀를 반으로 쪼개며 빅터는 크게 소리쳤다.
“이놈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아느냐?”
“오늘 처음 봤는데 어떻게 알아요!”
“사람의 머리다.”
그러고는 너른 들판을 날듯이 달려 나갔다.
* * *
“완전 비겁했거든요!”
“무슨 소리냐 그게.”
“혼자서 도망친 거잖아요.”
“헛소리 마라.”
“그런데 그렇게 빨리 달렸다고요?”
방금 전까지 빅터는 엄청난 속도로 들판을 가로질렀다.
그것도 나만 혼자 덩그러니 남겨 둔 채.
빛의 속도로…….
이미 괴물이라 생각했건만, 빅터의 여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덕분에 나와 빅터의 사이엔 적잖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곳으로 낫처럼 생긴 놈들의 앞발이 쉴 틈 없이 나의 목을 노려왔다.
“진짜 죽을 뻔했다고요!”
나는 살 떨리던 순간을 떠올리며 빅터에게 따졌다.
하나 그가 어디 보통의 인간이던가.
“내가 몰아서 달렸기에 그 정도로 끝난 게다.”
그럴 듯한 말로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했다.
내 눈엔 분명히 도망치는 걸로 보였는데 말이다.
“네놈이 느린 탓이다.”
“아, 예…….”
역시나 잘못은 나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너는 그대로 달려가라!”
들판을 빠져나온 빅터는 홀로 남길 자처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유려한 참격.
서걱.
간결한 소리와 함께 푸른 섬광이 대지를 가로 질렀다.
그것은 날렵했고, 또한 사나웠으며, 거짓말처럼 아름다웠다.
“…….”
날카롭게 뻗어 나가는 빛나는 대검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공간을 가르며, 걸리는 모든 것들을 도륙해 나갔다.
콰가가각―
대지가 폭발했다.
잔존한 모든 생명이 빛을 잃었고, 압도적인 그의 무력은 찰나의 시간조차 남김없이 집어삼켰다.
푸른 악마가 휩쓸고 간 너른 대지 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럴 거면 오는 길에 죽이지 그랬어요.”
도대체 나는 뭐한다고 그렇게 아등바등 달렸나 싶었다.
하지만 빅터는.
“이래야 뒤처리가 쉽지 않느냐. 잔말 말고 주워라.”
나에게 전리품 수거를 지시했다.
하여 열심히 돌아다니며 부러진 앞발을 주워 담았다.
“아니, 그거 말고.”
“그럼 뭘 주워요?”
“그 커다란 걸 어째 다 들고 다닐래. 그건 놔두고 이빨을 뽑아라.”
사실 줍는 내내 이상하다 생각했다.
무거운 게 문제가 아니라 더 이상 담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팔보다 긴 저것을 어찌 다 챙기겠는가.
‘진즉 그렇게 말하지.’
들고 있던 앞발을 내던지고 놈들의 이빨을 뽑아 가방 가득 주워 담았다.
“다됐으면 가자.”
빅터는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갔다.
“같이 가요.”
나는 마지막 이빨을 담은 뒤 종종걸음으로 따라나섰다.
하나 빅터의 걸음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고.
“같이 가… 아 씨! 왜 또 뛰는 건데요!”
그렇게 우린 길이 아닌 길을 종횡무진 달려 나갔다.
“아니 왜 자꾸 이런 데로 가요?!”
“지름길이다.”
“그러니까 아까부터 왜 이러냐고요.”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구나.”
“누가요?”
“저 녀석이.”
빅터가 가리킨 하늘엔 커다란 새가 유유히 선회하고 있었다.
알 머시기.
골렘 서식지에서 봤던 그 새가 분명했다.
“저놈의 주인이 나를 찾고 있는 게다.”
시선을 돌린 빅터는 없는 길을 찾아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