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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 99개-29화 (29/203)

29화

“그러니까, 반값에 해결해 주겠다고 해서 계약했는데 이 사달이 난 거네?”

“네…….”

“너는 저 마력석이 꼭 필요하고.”

“네, 없으면 큰일 나요.”

나는 시선을 돌려 용병들을 바라보았다.

의기소침한 5성 검사와 4성의 방패검사, 그리고 등급 모를 세 명의 검사와 마법사가 용병대의 전부였다.

“뭐 이런 경우가.”

듣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하고 목구멍이 메여 온다.

고구마 한 바구니를 꿀떡 삼킨 기분이랄까.

세상 물정 모르는 남매와 용병의 이야기는 듣는 내내 귀를 의심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니들 사기꾼이구나?”

그게 아니면 날강도라고.

“쿨럭!”

“무, 무슨 그런 말씀을!”

“그렇잖아. 용병 계약이란 게 원래 이래? 능력에 맞춰서 수주하는 것 아니냐고.”

펄쩍 뛰는 용병들을 향해 나는 험한 눈초리로 말했다.

코 묻은 돈을 빼앗아도 유분수지.

“저희가 골렘 사냥꾼을 찾고 있었는데 저렴하게 도와주겠다며 저 사람들이 접근해 왔어요!”

“아, 저 그건…….”

“경험 많은 헌터라면서요! 너 오늘 봉 잡은 거야! 이랬잖아요!”

카랑카랑한 남동생의 외침에 마법사는 머쓱하게 목을 긁었다.

“부모님이 남겨 주신 돈을 탈탈 털어서 줬는데… 그런데 저런 사기꾼일 줄은 저도 몰랐다고요!”

용병들은 남매의 전 재산을 가지고 대담하게 사기를 친 것이다.

“너도 잘한 거 없어.”

눈물을 글썽이는 남동생에게 나는 눈을 흘기며 핀잔을 줬다.

“아무리 어려도 그렇지, 무슨 용병 계약을 말만 듣고 덥석 하냐? 게다가 선불을 줬다고? 제정신이냐?”

애초에 사기를 당하려 안달 난 놈이잖은가.

철이 없어도 너무 없어 화가 날 지경이었다.

“5성 검사가 있는데 당연히 의심 안 했죠! 저런 맹물인지 누가 알았겠어요!”

“허허… 맹물은 아닌데…….”

앙칼진 남동생의 말에 방패검사는 소심히 중얼거렸다.

씁쓸히 일그러지는 표정에 억울함이 한가득이다.

하여 나는 말을 건넸다.

“이 녀석 말이 다 맞아요?”

할 말 있으면 해 보라고.

“후…….”

사실 확인을 묻는 나의 말에 곁에 있던 남자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맹물이라 불리던 5성 초입의 검사.

“사기도 아니고, 속인 것도 아닙니다.”

그는 입술을 곱씹으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용병 회관 접수원이 제 여동생이거든요.”

“가족인가요?”

“사촌 동생이죠. 한데 그 녀석이 말하길, 용병이 필요한데 사정이 딱한 지인이 있다. 그러니 오빠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저 친구를 만난 겁니다.”

“그런데 왜 거짓말을 하신 겁니까?”

“무슨 거짓말을 해요?”

“골렘이요. 잡을 수 없으면서 왜 잡아 봤다고 거짓말을 했나요?”

“잡아 봤으니 잡아 봤다 했지요. 거짓말한 건 아닙니다.”

질문에 답하는 남자의 태도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것이 연기라면 용병이 아니라 사기꾼을 해야 할 터.

“그런데 왜 그렇게 무력해요? 싸우는 모습을 보니 아예 경험이 없는 것 같던데?”

억울한 듯 말하는 남자에게 나는 또 다른 의문을 제시했다.

골렘을 상대하던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수준 이하였으니까.

기억 속에 남은 이들의 전투는 그저 놀라고,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하던 난잡함뿐이었다.

“싸워 보긴 했는데…….”

“그런데요?”

“그게 진흙 골렘이라서……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날 줄은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

“…….”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게 어떤 놈인지 알아야 화를 내건 고갤 끄덕이건 할 것 아닌가.

“4성일 때 사냥했으니 당연히 쉽게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실하기는 해도 이제 5성이 되었으니까요.”

다른 골렘이 있었다니.

아종이 있는지 없는지 들어본 적도 없고, 누가 더 센지는 관심조차 없었다.

아니, 그냥 다 몰랐다.

애초에 골렘을 본 것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란 말이다.

“크흠.”

나는 헛기침을 하며 빅터를 바라보았다.

이럴 때 나서 줘야 이름값을 할 건데, 구석에 죽치고 앉아서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원망이 전해진 걸까.

“시시비비를 가리자니 양쪽 다 사연이 있구나.”

지켜보던 빅터가 드디어 앞으로 나섰다.

“진흙 골렘이라면 4성도 충분하지. 5성이라면 말할 것도 없을 테고… 암석 골렘에게 덤빈 것 자체는 잘못된 선택이 아니다.”

가까이 다가온 빅터는 남자의 말을 두둔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잘못된 건 자네의 수련이네.”

빅터는 덤덤한 얼굴로 남자의 잘못을 지적했다.

“암석 골렘을 잡으려면 고달픈 훈련이 필요하지. 하나 자네의 몸은 충격에 너무 약하네.”

“제가요?”

“그래, 유리잔 수준이라 할 수 있지.”

쉽게 말하자면 맷집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충격 내성일 테고.

“결과는 이렇게 됐지만, 사기라고 할 순 없겠구나.”

어쨌거나 빅터는 용병의 편을 들어주었다.

“본래 용병 계약에 있어 선금은 회수가 불가한 것, 성공 여부는 상관없으니 저들의 잘못은 아니다.”

대치하던 양측의 표정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눈치를 보던 용병들은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여인의 남동생은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저들은 실력을 부풀렸다고요!”

하나 빅터는 고개를 저었으니.

“그렇다고 해도 선금은 돌려받을 수 없다.”

“잘못한 것은 저 사람들이잖아요!”

“상성과 경험이 부족했을 뿐, 저들의 수준 또한 거짓은 아니다. 굳이 잘못을 논하자면 네 녀석이 바보인 게지.”

“크으윽…….”

요지부동한 빅터의 태도에 여인의 동생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세상 천지에 용병 대금을 선불로 주는 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나 모든 일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는 법.

“저희 잘못도 없진 않습니다.”

지켜보던 5성 검사가 앞으로 나섰다.

“하도 급해 보이길래 농담 삼아 말했는데, 진짜로 선불을 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은 빤한 얘기 아니겠나.

본래 마음 급한 놈이 실수하는 법이다.

시세보다 저렴한 금액에 동생 녀석은 혹했을 것이고 선 결제란 조건을 덜컥 받아들인 것이다.

“마침 돈도 필요했고… 그냥 모른 척 받았네요.”

그러니 어쩌겠는가.

얄밉기는 해도 용병을 탓할 순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남매의 입장은 달랐다.

“망했어…….”

남동생 녀석은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영혼마저 사라진 멍한 얼굴.

상황을 지켜보던 녀석의 누나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혹시 두 분, 어디로 돌아가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곤 이후의 목적지를 물어보며 눈치를 살폈다.

“리베로 갈 거예요.”

“아… 잘됐네요.”

간단히 답한 나의 말에 여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잘됐다는 걸까.

“부탁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한숨을 돌린 여인은 나와 빅터를 향해 부탁을 가장한 제안을 했다.

“전리품으로 나온 마력석… 저희에게 다시 팔아 주세요. 매장은 리베에 있습니다.”

“누나!”

“부탁드리겠습니다. 최대한 시세에 맞게 매입해 드릴 테니 꼭 저희에게 팔아 주세요.”

“우리가 어디서 돈을 구해!”

지켜보던 남동생은 발작하듯 소릴 질렀다.

이 사달의 원흉이 본인인 만큼, 녀석의 초초함은 극에 달한 듯했다.

얼굴은 붉게 상기되었고, 움찔거리던 입술은 갈라진 소리를 뱉어 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만류하는 누나의 손을 뿌리치며 녀석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마력석이 없으면 중요한 계약이 파기돼요.”

숨겨진 사연이라는 건가.

녀석의 첫마디는 생각보다 무거운 내용으로 시작되었다.

“그렇게 돼 버리면 저희 가게가… 아버지가 물려주신 저희 매장이…….”

감정이 북받친 녀석은 말끝을 흐렸고, 결국은 눈물을 훔치며 뒷말을 이어 갔다.

“조합장의 손에 넘어가게 돼요.”

예견된 비극적 결말을 말이다.

“그래서 기다려 달라고 부탁드린 거였어요. 기사님이 싸움에 참여하시면 전리품 배분에 문제가 생기니까요. 그렇게 되면 저희 가게는…….”

녀석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채 여물지 않은 좁은 어깨를 간헐적으로 떨고 있을 뿐.

지켜보던 나는 녀석을 향해 덤덤히 물어보았다.

“그래서 사람들을 죽게 놔둔 거야?”

“…….”

“묻잖아. 너희 가게만 살릴 수 있으면 저 사람들은 죽어도 상관없는 거냐고.”

“그건 아니지만…….”

대답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마른세수를 했다.

이런 모습에 약한 나는 전생에 천사였을까?

훌쩍거리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한편이 짠해졌다.

“죽어도 되는 목숨이 흔하겠냐? 돈에 고용된 용병이지만 저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고.”

“…….”

“네놈이 마음대로 다룰 그런 하찮은 목숨이 아니란 말이지.”

“죄송해요…….”

녀석은 잘못을 시인하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심성은 나쁘지 않다.

사과할 줄 모르는 뻔뻔한 인간들에 비하면 이 꼬맹인 아직 순수한 영혼이다.

“좋아 내가 도와줄게. 대신 혼나고 시작하자.”

얼떨떨한 녀석을 향해 나는 손가락을 빙글 돌렸다.

“뒤 돌아.”

“네?”

“뒤 돌아서 엉덩이 내밀라고.”

“엉덩이는 왜…….”

그렇게 손바닥을 편 나는, 녀석의 둔부를 예리하게 조준했다.

그리고 내리쳤다.

“꾸웨엑!”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고.

“뭐, 뭐야 이건?!”

부들거리는 녀석의 엉덩이는 짙은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 *

기사를 꿈꾸는 훈련생에게 교관은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기사 수련은 6년차부터가 진짜라고.

대기의 마나를 느끼는데 1년.

마나를 흡수하는데 또 1년.

흡수한 마나로 코어로 만드는데 3년이 걸리고, 마나를 정제해 오러로 치환하는 데 다시 1년이 걸린다.

그렇게 6년에 이르는 장대한 여정을 지나고 나면.

― 이제야 밥값 좀 하겠구나.

칭찬인지 뭔지 모를 요상한 말을 듣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오러가 없다고 하셨습니까?”

“네, 없어요.”

그런 시간을 겪어 보질 못했다.

무수히 반복되는 새털은 같은 날들과 그 안에서 쌓여 가는 수련이란 과정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몸은 강하다.

“어째서 그렇게 강한 거죠?”

심지어 그 곁에 서 있는 다른 남자.

“여기 윌리 님보다도 강하시잖습니까.”

5성 초입의 검사보다도 강했다.

“아, 그건 충격에 대한 내성 때문에…….”

설명을 이어 가던 나는 하던 말을 멈추었다.

의미 없다고 해야 하나.

설명한다고 한들 납득시킬 수 없는 얘기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맨몸으로 골렘의 주먹을 막는 게…….”

가능할 리 없잖은가.

저들이 상식으론 불가능한 것이다.

오러도 없이, 그것도 방어구를 사용하지 않은 맨몸으로.

뭐라고 대답한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많이 두들겨 맞으면 돼요.”

결국 해 줄 말이라곤 이런 농담 같은 말뿐이었다.

“허허…….”

두 명의 검사는 서로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알겠고 또 이해하지만.

‘난 사실을 말했으니까.’

이제 믿고 안 믿고는 저들의 선택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마디 거들었다.

“추천은 안 합니다.”

몸 사리라고…….

사람의 목숨은 하나뿐이니까.

나처럼 여분을 쌓아 두고 사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계속 가 보죠.”

말을 마친 나는 울퉁불퉁한 분지를 바라보았다.

그에 용병들은 사방으로 달려 나갔고.

“우와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다시 돌아왔다.

만선이었다.

돌아온 남자들의 뒤엔, 새카맣게 모여든 골렘들이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또다시 시작된 광란의 시간.

“가즈아아아아아!”

해머를 고쳐 쥔 나는 이빨을 드러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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