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이 연고, 혹시 마취 성분 같은 게 들어 있나요?”
“진통 효과가 있지만, 일시적이지.”
“일시적이라면…….”
“두어 시간쯤 지속될 게다.”
나는 손에 든 연고를 내려놓은 채 잠시 고민에 빠졌다.
둔해진 고통의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
지속된 약기운?
아니면 새로 생긴 충격 내성?
좌우지간 확인이 필요한 시점이기에 나는 약간의 모험을 시도했다.
“저 한번 때려 보실래요?”
“좋지.”
하여 이런 만용을 부렸건만, 빅터는 작정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끄어억!”
나는 죽는 소릴 지르며 팔을 감싸 안았다.
“아니 이렇게 세게 때리면 어떡해요!”
“강해진 것 같구나.”
“뭐가요?”
“이걸 버텨 내니 말이다.”
빅터는 주먹을 휘둘러 쓰러진 고목나무를 가격했다.
힘없이 파여 나가는 나무둥치.
썩었나 싶어 살펴보았지만, 얼마 안 된 싱싱한 놈이었다.
“미쳤나 봐. 이런 주먹으로 사람을 때리다니… 이거 보통은 부러지거나 죽거든요?”
“어쨌든 멀쩡하니 된 것 아니냐.”
광기 충만한 빅터는 태연한 얼굴로 주먹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고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누구의 주먹이 더욱 셌는지 물어보았다.
“골렘보단 내 주먹이 더욱 강하지 않더냐?”
“당연하죠!”
나는 빅터의 손을 들어 주었고.
“그런데 너무 멀쩡하구나. 네놈도 정상은 아닌 게야.”
빅터는 사람을 이상한 놈으로 만들었다.
“좋은 말이죠?”
저렇게 인상을 쓰고 있으니 말하는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
칭찬을 하려면 좀 웃기라도 하든가.
특유의 무뚝뚝한 얼굴로 빅터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고작 벌게진 것이 다인 것이냐.”
“네.”
“뼈가 시큰거리거나 근육을 못 쓰겠다든가…….”
“아니요. 그냥 얼얼하네요.”
“허허… 6성을 담은 주먹이거늘, 그냥 얼얼하다고?”
빅터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표정을 바꾸어 상황을 설명했다.
“충격에 익숙해지면 반응하는 지점이 상승한다. 아프다고 느끼는 순간이 다르단 얘기지. 우리는 그것을 맷집이라고 부른다.”
설명을 이어 가는 빅터의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들떠 있었다.
신나 보였다고 해야 하나.
제자를 바라보는 그의 깊은 눈동자는 놀라움과 호기심, 그리고 적잖은 뿌듯함이 자연스레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빅터의 설명은 나에겐 다른 의미로 적용된다.
[충격 내성으로 인해 대미지가 감소하였습니다.]
나에겐 충격 내성이 있기 때문이다.
맷집과 일맥상통하는 건 맞겠지만, 적용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어쨌든 완성된 것 같구나. 이제 끝내고 와라.”
그렇게 빅터는 해머를 넘겼고, 나는 말없이 해머를 받아들었다.
“…….”
그리웠던 감각.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단단한 감촉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제기랄.’
눈가가 시큰한 것이 질질 짜기 일보 직전이다.
격하게 치밀어오는 이 벅찬 감정이라니.
“뒈졌다고 복창해라, 돌대가리들아.”
복수의 시간이 도래했음에 나는 희열을 느끼며 전의를 불태웠다.
드드드드드득―
나는 거친 발걸음으로 골렘에게 다가갔고, 암석 갈리는 소리와 함께 놈은 형체를 갖추었다.
서서히 올라가는 녀석의 두 팔.
휘둘러오는 주먹을 향해 묵색의 해머가 내리꽂혔다.
콰앙―
강렬한 폭음과 함께 놈의 주먹은 부서져 내렸다.
끝나지 않았다.
광기 가득한 해머의 몸부림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쾅! 쾅! 쾅!
심장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골렘의 상반신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오늘이 5일째인가?”
나는 놈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녀석을 마주한 지도 벌써 5일차.
참으로 오지게도 많이 쳐 맞았다.
그러니까.
“한꺼번에 돌려줄게.”
나는 멀뚱히 서 있는 골렘을 향해 움켜진 해머를 사납게 내질렀다.
* * *
대륙의 유구한 역사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환락과 모험의 도시.
365일 꺼지지 않는 불야성을 일컬어 사람들은 자유도시 리베라 불렀다.
세련된 건축물과 넘쳐 나는 이국의 문물들.
그 화려한 도시에 가려진 본질에 대해 어느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 화려한 꽃길 아래 감춰진 잔뿌리들의 전쟁터.
리베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암중 모략의 도시였다.
드나드는 데 있어 제한은 없지만, 그 누구의 신분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그야말로 스파이들의 천국.
대륙 각지에서 모여든 간자들은 이곳에 모여 소리 없는 전쟁을 치렀다.
빅터 크로제의 정보원도 이 치열한 싸움판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이곳.
요란한 대로를 지나 접어든 호젓한 골목길 어딘가에 말이다.
“이상하네. 편지의 내용대로라면 이미 도착하실 때가 지난 거잖아.”
소리가 들려온 곳은 낡은 3층 건물의 테라스였다.
하얀 터번을 머리에 두른 구릿빛 피부의 여인.
같은 장식을 두른 젊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 동참했다.
“그렇지. 사라센으론 안 가셨을 거고, 다른 쪽도 그렇고… 지나갈 곳은 대수림뿐이지.”
“내말이 그 말이야. 그런데 너무 오래 걸리시잖아.”
여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의 말에 대답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수림이 아무리 넓다 한들, 한 달이면 통과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나 이것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대상이 빅터 크로제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냥 지나오실 리는 없고…….”
“당연히 지름길을 이용하시겠지.”
그러니 이런 늦은 이동은 더욱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말이 좋아 지름길이지,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인외(人外)의 코스였다.
단축되는 시간 또한 상상 초월.
해당 루트를 이용하면.
“우리 지난번에 얼마나 걸렸지? 4일 걸렸나?”
“오후에 출발해서 그랬지. 아침에 출발했으면 하루 일찍 통과했어.”
무려 3일로 줄어든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한 달이 걸릴 코스가 3일로 줄어드는 기적을 생각하면 이들이 이렇듯 안절부절하는 이유가 충분히 납득되었다.
하나 이들이 간과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말도 안 돼. 빅터 님 자체가 괴물인데 무슨 일이 생기겠어.”
그것은 바로 빅터의 괴물 같은 존재감이었다.
“하긴 누가 누굴 걱정하겠어.”
마경이 아닌 마계를 지나간다 해도 그는 멀쩡히 웃으며 돌아올 사람이었다.
“흐음…….”
남자는 코끝을 훔치며 생각에 잠겼다.
작은 거실엔 묘한 침묵이 내려앉았고, 생각을 멈춘 남자는 걸음을 옮겨 거실을 가로질렀다.
그가 향한 곳은 좌측에 있는 작은방.
남자는 닫힌 문을 열어 방 안으로 향했다.
“지금 보내려고?”
여인은 남자가 사라진 방문을 향해 뜻 모를 질문을 던졌다.
“어, 오늘은 좀 더 멀리 보내 보자.”
그리고 남자는 대답과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손에 쥐어진 작은 목줄의 끝엔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뒤뚱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괜찮겠어? 어제도 꽤 멀리까지 갔었잖아.”
여인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최근 마력이 늘어서 그런지 할 만하더라고. 아마 문제없을 거야.”
남자는 목줄을 넘기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며, 깊고, 긴 숨을 들이마신 뒤 여인에게 다시 말했다.
“난 준비됐어.”
젊은 남자는 자신의 상태를 알리며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여인은 테라스로 다가가 거대한 새를 내려놓았다.
“좋아 시작하자.”
남자의 짧은 주문이 시작되었고.
꾸르르르르르르―
알바트로스의 잿빛 눈동자는 깊고 푸른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 * *
“이제 끝난 건가요?”
돌무더기로 변한 골렘을 툭툭 건들며 나는 놈의 반응을 이리저리 살폈다.
겉모습은 흔한 돌덩어리.
골렘은 특별할 것 없는 바위가 되어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흠…….”
이유가 뭘까.
어차피 녀석은 흩어졌다 모이길 반복하던 놈이었다. 한데 어디가 달라져 활동을 멈췄을까.
“핵이 드러나서 그렇다.”
두리번거리던 나를 지나쳐 빅터는 무너진 골렘 앞에 섰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조각난 돌무더기를 헤집기 시작했다.
“뭐해요?”
빅터는 갈라진 돌 틈 사이로 반투명한 물체를 주워들었다.
크기는 대략 주먹 정도?
의아해하는 나를 보며 빅터는 간단히 설명했다.
“이것이 핵이다.”
“핵이요?”
“골렘의 심장이라 할 수 있지.”
반투명한 물체의 정체는 무려 녀석의 심장이었다.
“아니, 돌덩이에 그런 게 왜 있어요? 피가 흐르는 것도 아니고…….”
“피 대신 마력이 흐르고 있다.”
맙소사.
심장이 있다는 것도 갸우뚱한데 마력이 흐르고 있단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신기하지만, 따지고 보면 더욱 믿기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
“그걸로 이 덩치를 움직였다고요?”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지.”
하나 대답을 듣고 나니 우문(愚問)도 이런 우문(愚問)이 없었다.
이미 실컷 싸워 놓곤 뭘 그런 걸 물어봤을까.
하여간 빅터는 나에게 핵을 넘겼다. 또한 녀석의 다른 이름도 알려 주었는데.
“보통은 마력석이라고 부른다.”
가성비가 월등한 이것의 명칭은 마력석이었다.
“수요가 많아 거래가 잘되지. 아주 짭짤한 녀석이다.”
이름이 곧 설명이니, 더 이상의 질문은 필요 없게 되었다.
“그렇군요.”
나는 눈빛을 밝히며 손에 쥔 마력석을 살폈다.
희멀건 한 타원형 물질, 대충 보면 커다란 알처럼 생겼다.
“한데 그건 못쓰게 됐구나.”
“왜요?”
“부서져서 마력이 사라졌지.”
“흐음…….”
쓸모없어진 물건을 보며 나는 쓰게 입맛을 다셨다.
묘하게 가시지 않는 잔잔한 여운.
‘짭짤하다고 했나?’
그러니 미련을 버릴 수 없는 건 당연했다.
돈 많아서 손해 봤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도 없고, 있다고 한들 믿지도 않으니까.
말해 봐야 입만 아픈 세상의 진리인 것이다.
하여 본능에 충실하기로 했다.
“골렘은 이놈 하나뿐인가요?”
“여기는 서식지의 초입이고, 안으로 들어가면 더욱 많이 있다.”
“그럼 거기로 가죠.”
돈 냄새가 진동하니까.
오늘 하루 탐욕의 늪에 빠져 진탕 놀아 볼 생각이다.
“안 그래도 그럴까 싶었다.”
빅터는 나의 제안에 호응했고, 나는 짐을 챙겨 떠날 차비를 마쳤다.
“앞장서시죠.”
그렇게 걸어 도착한 인근의 장소.
“와… 여긴 채석장처럼 생겼네요.”
언젠가 본 적 있는 채석장을 떠올리며, 나는 얕은 감탄을 내뱉었다.
너른 평지 중앙에 파인 이질적인 채석의 흔적.
이전 장소의 형태가 뜯겨진 암반 같았다면, 이곳은 지면이 통째로 파헤쳐진 느낌이었다.
“어… 저기?”
하나 장소에 대한 소감은 잠시 미뤄야 할 듯했다.
“선객이 있는 것 같구나.”
분투 중인 낯선 무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위치는 분지로 내려가는 길목 어귀였는데.
대여섯의 남자들과 다수의 골렘이 힘겨운 싸움을 펼치고 있었다.
“일단 가 보자꾸나.”
달리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저들을 지나쳐야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고, 저 길 말고는 달리 갈만한 곳도 보이지 않았다.
앞선 빅터를 따라 나는 묵묵히 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그 순간.
“잠깐만요!”
앳된 얼굴의 소년이 쭈뼛거리며 길을 막아섰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 지금 중요한 작업을 하고 있어서요.”
10대 후반쯤 되었을까?
소년과 청년의 중간쯤인 녀석은 불안한 표정으로 분지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뭐야 이 애매한 놈은.’
나는 마뜩치 않은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왜 기다려야 하지?”
그리곤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현 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아, 저 그게… 지금은 설명하기가 좀 복잡해서…….”
하지만 녀석은 대답하지 못했고.
“일단 지켜보자꾸나.”
빅터는 녀석의 편을 들어주기로 했다.
“아니 왜요? 우린 그냥 지나가는 거잖아요. 사유지도 아닌데 어딜 가라마라 한답니까.”
나는 대놓고 항의하듯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길목이긴 하지만 지금 끼어들면 복잡해질 것 같구나.”
빅터는 전투 현장을 바라보며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종의 매너다. 자칫하다간 전리품 소유권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지.”
하여 일단 기다렸다.
스승이 저리 말하니 제자인 나는 수긍할 따름이다.
“뭐가 이리 복잡하냐.”
그 대신 나는 툴툴거리며 저들의 사냥을 지켜보았다.
때로는 눈살을 찌푸렸고.
쓰게 혀를 차기도 했다.
뭔가 미덥지 않고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불편한 마음에 인내가 바닥을 치며, 두 다리가 움찔거렸다.
‘그냥 내가 나설까?’
여차하면 튀어나갈 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한 여인이 다가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가온 붉은 머리의 여인은 정중하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 뒤에 있는 저 녀석도 붉은 머리였던 것 같은데.
“제 동생이 실례를 범했네요. 악의는 없었으니 용서 부탁드립니다. 다만, 사정이 있어 그러니 조금만 지켜봐 주시면 안 될까요?”
저리 공손하게 말해 오니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그렇다.
하지만 넙죽 알겠다 말하기도 그러한 것이.
“다 죽게 생겼는데요?”
나는 전투 중인 사람들을 가리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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