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목숨 99개-20화 (20/203)

20화

“시발… 망했네.”

다짜고짜 욕부터 날려 대는 실눈의 남자.

…그 녀석이다.

나에게 신기한 능력을 넘겨준, 아니, 빼앗긴 뒤 머리가 터져 죽은 흑발의 그 남자.

“그러게, 미안하게 됐네.”

나는 덤덤하게 답하며 파리해진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왼쪽 눈가에 떠 있는 두 자리 숫자는 하나가 줄어든 96.

지금 나는 능력을 얻었던 처음 그날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러니 궁금하던 걸 묻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돌아가는 날짜 기준이 뭐야?”

내 능력의 핵심.

하나 놈에겐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

녀석은 뻐끔거리며 멍청한 표정을 지었고.

“회귀 말이야.”

나는 콕 집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기준이 뭘까.

하고 많은 날 중에 오늘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됐든 기본은 알아야 써먹을 것 아니겠나.

“회귀? 그거 일주일 앞으로 가는 건데… 잠깐만, 어떻게 네가 이걸 알고 있는 거지? 너 누구야? 뭐하는 놈인데 회귀를 알고 있어?”

정답을 알려 준 실눈은 뒤늦게 정색하며 나의 정체를 물었다.

곧 죽을 놈의 호기심 따위 못 받아 줄 것도 없지만…….

“끄아악!”

어차피 돌프라는 녀석은 기다려 줄 생각이 전혀 없다.

그 틈에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일주일 전이라 이거지.’

그러니 계속 이 지점으로 오는 것이다.

처음 두 번도, 그리고 이번에도.

능력을 얻은 지 채 일주일이 안 지났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다.

어쨌거나 궁금증은 이제 풀렸고, 이번엔 다른 걸 해결해야 할 순서다.

“이젠 네 차례네?”

문제의 녀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거대한 묵색의 해머.

나의 머리통을 두 번이나 뭉갠 바로 그 녀석이었다.

“오래간만이야, 돌프.”

나는 살갑게 웃으며 녀석의 해머를 맞잡았다.

터억―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마주한 순간부터 우리의 싸움은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어… 어?”

맞잡은 해머가 한쪽으로 기울며 녀석은 멍한 소리를 내뱉었다.

“이게 최선이야?”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움직였다.

비웃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며칠 새 달라진 놈과 나의 위치가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이 압도적인 힘의 차이라니.

시간은 되돌아왔지만 상승된 나의 능력은 그대로였다.

그러니 결과는 빤한 것 아니겠나.

해머를 빼앗긴 놈의 얼굴은 흙빛으로 물들었다.

“미안.”

나는 가볍게 사과를 건넨 후 해머를 휘둘렀다.

황급히 팔을 뻗어 얼굴을 가려보는 돌프. 부질없는 그의 움직임은 작은 경련과 함께 사라졌다.

“거기 너.”

나의 시선은 다음 목표로 향했다.

자신을 가리키며 멍한 표정을 짓는 남자가 보였다.

“네가 쉐인이냐?”

이름을 묻는 나의 말에 녀석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침을 삼켰다.

“빨리 끝내자.”

나의 요구는 간단했다.

대화는 다섯 마디로 끝이 났고, 해머는 머리 위로 높게 치솟았다.

“크으윽!”

쉐인이라는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라고 만든 게 방패니까.

하지만 말이다.

콰지직―

이번엔 상대가 너무 나빴다.

“끄어어어…….”

내리친 나의 해머는 방패 위를 두들겼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놈에게 전해졌다.

쾅! 쾅! 쾅! 쾅! 쾅!

그는 구겨지듯 바닥에 처박혔다.

그대로 돌아선 나는 풍차의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나오지 말고 여기 계세요.”

멍하니 서 있는 제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 뒤 대문을 열어 마을 한복판으로 걸어 나갔다.

눈높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기준, 혹은 위아래를 구분 짓는 주관적 잣대.

그러한 눈높이의 형성 과정은 오롯이 개인의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즉, 보고 배운 대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심정이 어떻겠는가.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나의 두 눈은, 현 상황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

“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마치 다 큰 어른이 아이를 바라보는 그런 기분이랄까.

오러가 없는 일반인들은 이제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그가 어떤 무술을 배웠건, 얼마나 좋은 무기를 들었건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마주하던 사람이 빅터였다.

8성의 오러 마스터이자, 현 시대를 대표하는 강자.

마을을 들쑤시는 저런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이였다.

“어랍쇼? 이놈은 뭐야?”

봐라.

말투부터가 허접한 게 죽여 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다.

긴장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너희들, 하던 짓 그만 두고 당장 이리 모여라. 빨리 끝내자.”

나는 손끝을 까딱이며 오가던 놈들을 불러 세웠다.

“누구야?”

“어떤 놈이야?”

험악한 푸념 소리와 함께 마을 곳곳을 들쑤시던 놈들이 하나둘 얼굴 내밀었다.

모여든 숫자는 여덟 남짓.

폭력과 살인을 자행하던 놈들은 새로운 목표를 찾아 몰려들었다.

“다들 모였지?”

나는 놈들의 숫자를 헤아리며 해머를 움켜잡았다.

“그럼 시작한다.”

드디어 시작되는 단죄의 일격.

부아아악―

콰직!

최단거리의 붉은 머리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콰직! 빠악! 빠가각!

그 뒤에 서 있던 놈과 그 옆에 있던 놈들까지도.

여덟 명이던 놈들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어 이제 하나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사, 살려 줘!”

“뭐라고?”

그야말로 개소리였다.

웃으며 사람을 죽이던 놈이 할 말은 아니잖나.

콰지직―

그러니 그냥 가라.

어차피 죽을 목숨, 남들 갈 때 함께 가는 게 좋을 거야.

지금 못가면 저 칼에 죽을 테니까.

‘이제야 오셨군.’

마을 어귀를 넘어온 빅터는 말없이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쾅!

적갈색 마호가니 책상이 요란한 소릴 내며 덜컥거렸다.

소란의 주인공은 금발의 중년 남자.

원인을 알 수 없는 로이드의 행동에 투박한 암회색 석조 건물 내부는 일순 침묵에 빠져들었다.

“무, 무슨 일이신지…….”

감색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용기를 내어 연유를 물었다.

“돌아왔다.”

“예?”

“다시 돌아왔다고! 능력이 사라진 게 아니었단 말이다!”

장년의 남자는 눈을 번뜩이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속에 깃든 건 탐욕과 욕망.

금발의 장년인은 그 어느 때보다 흥분한 상태였다.

‘이건 리가 한 짓이 아니야.’

이미 죽었으니까.

며칠 전의 사건으로 리는 완전히 사망했다.

당연히 더 이상의 회귀는 없었고, 그가 가진 특별한 능력은 그렇게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날이다.’

사건이 터진 그날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우연의 일치?

혹은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

아니다.

이것이 뜻하는 건 분명했다.

‘…능력이 전이됐다?’

리의 능력이 다른 누군가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어쩐지 앞뒤가 계속 안 맞더라니.’

잃어버린 퍼즐의 마지막 조각은 바로 이것이었다.

드디어 사건의 실마리가 풀려 가고 있었다.

능력이 전이된 리는 일반인으로 전락했고, 돌프는 그런 리를 죽음으로 끌고 갔다.

당연히 회귀는 없을 수밖에.

그도 아니라면 새로운 능력자가 나타났다는 것인데…….

‘그건 아닐 테지.’

새로운 능력자는 있을 수 없다.

자신이 모르는 능력자는 존재 하지 않았다.

‘나를 통하지 않은 능력자는 없으니까.’

모든 이능력자들은 그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었다.

그러니 결론은 하나다.

‘돌프와 쉐인을 죽인 놈이 능력자다.’

그놈이야 말로 리의 이능을 전수받은, 혹은 강탈해 간 범인일 테다.

그리고 녀석은 지금 세비앙 영지에 있었다.

“카이 형제에게 연락해라!”

무슨 방법을 써서든, 그놈을 잡아야 한다.

반드시.

살아 있는 그대로.

* * *

“이반! 어디 다녀오는 거야? 엘리스는 하루 종일 이반을 기다렸어.”

“나두! 우리 모두 여기서 계속 멍 때리고 있었다구.”

“맞아! 골렘이 되는 줄 알았어.”

멍 때려?

골렘?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어휘력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 녀석들이다.

“그랬구나. 나는 성 앞마을에 배달 다녀왔지.”

하여간 이렇게 다시 보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저 반달 같은 눈웃음을 짓는 엘리스나, 엉뚱한 소릴 지껄이는 바란과 안드레.

언제 봐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작은 천사 같은 녀석들이다.

“이반, 안아 줘!”

“이반, 업어 줘!”

나는 꼬맹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대장간에 도착했다.

“이반, 우리랑 놀러 가면 안 돼?”

“그건 좀 어렵겠는데. 아직 일할게 많거든.”

“아, 그렇구나. 돈 벌어야 되는구나. 알겠어. 내가 양보할게.”

“맞아! 돈 못 벌면 사람이 아니거든!”

“왜에?”

“우리 엄마가 아빠한테 맨날 그렇게 말해. 인간아, 언제 사람 될래!”

“우와!”

그랬다.

바란의 아빠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제법 흥미진진한 가정사였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이놈들! 여기서 놀면 안 된다고 했지!”

“우와아 늙은 오크다!”

데릭의 등장과 함께 몰려든 아이들은 어디론가 우르르 사라졌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은 회귀 전과 똑같았고, 지켜보는 나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다녀왔으면 일이나 하지 뭐하고 섰어?”

아이들을 쫓아낸 데릭은 퉁명스레 나를 맞이했다.

여전히 한결같은 잔정 없는 모습.

‘데릭…….’

내가 알던 그 노인네였다.

보아하니 치아도 붙어 있고, 사지 멀쩡히 잘 움직이고 있다.

괜스레 가슴이 먹먹해졌다.

“뭐해? 어여 들어가, 이 녀석아.”

시큰둥한 데릭의 표정에 까닭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놈이 미쳤나?”

데릭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눈물을 훔치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래 살아야 해요.”

나는 정색하는 데릭을 끌어안고 등을 다독였다.

쿰쿰하게 올라오는 땀내와 쇠 냄새…….

23년간 이어진 친근한 향기다.

고아인 나를 묵묵히 키워 준 할아버지 같은 남자.

나에게 있어 데릭의 존재는 혈연을 넘어선 또 다른 가족이었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테니 네 앞가림이나 해, 이 녀석아.”

나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데릭은 대장간으로 들어섰다.

그 나름의 서툰 애정표현이었다.

그걸 알기에 그저 씩 웃으며 멋쩍어하는 그를 따라 대장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익숙한 용광로 앞에 선 나는, 달아오른 열기를 쬐며 팽팽해진 얼굴을 매만졌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아직 소식이 없었다.

빅터와 마주친 이후 무심히 성으로 되돌아왔다.

핑계가 되어 줄 해머는 당연히 이전과 같은 곳에 버려두었으니, 이제 남은 일은 빅터와 재회하는 것뿐이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면…….

‘괜히 나선 건가?’

지난번과는 다르게 마을 안의 괴한을 모조리 정리했다.

덕분에 풍차 마을의 사망자는 크게 줄었지만, 어쨌건 빅터의 과거는 그로 인해 변했다.

‘만나고 올 걸 그랬나…….’

물끄러미 바라보던 빅터를 모르는 척 무시하며 돌아섰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거기서 마주쳤다 한들 달리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짜고짜 스승님이라 할 수도 없고, 다시 봐서 반갑다 말할 수도 없었다.

모든 건 이후로 결정될 그의 선택에 따를 뿐, 내가 미리 나서 이러쿵저러쿵 할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안 오면 어쩌지?’

무조건 올 거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전제였다.

마주한 상황이 달라졌으니 결과가 달라진들 이상할 바 없는 것이다.

이미 성도를 지나쳤을 수도 있고, 볼일만 보고 사라질 예정일지도 모른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따라나서서 매달려야 하는 건가? 무작정 제자로 받아달라고?

‘그럼 데릭에게 진 빚은?’

생각해 보니 산 넘어 산에 강 건너 다시 호수다.

이렇게 된 이상, 그 괴팍한 영감이 오길 간절히 비는 수밖에.

하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끼이이익―

그 바람은 이루어졌으니까.

“실례합니다.”

열린 문틈으로 칼칼한 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흘러들어 왔고.

“어서 오세요.”

나는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빅터를 맞이했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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