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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 99개-19화 (19/203)

19화

머리가 공격을 결정하면 육체는 나의 의지를 실현시킨다.

이 모든 과정엔 단계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슈아아아아아― 쾅!

공격을 결심하는 순간, 이미 나의 해머는 휘둘러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쏘아진 화살.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깜짝이야.’

나는 팔다리가 사라진 줄 알았다.

정말 아무런 무게가 안 느껴졌으니까. 깃털 같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었다.

‘이건 너무 가벼워졌는데.’

수갑과 족쇄가 사라진 몸의 감각은 제어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머리가 몸을 따라가지 못하는 감각이랄까.

예상을 웃도는 움직임에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정신없이 교차하고 있었다.

부아아악!

해머가 호를 그릴 때마다 이젠 주변의 공기마저 휩쓸린다.

그에 따라 바빠지는 단검 녀석의 움직임.

녀석의 여유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쾅! 쾅! 챙! 챙!

헛손질을 유도하던 놈의 회피가 점차 가드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젠 피하기만 해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 녀석의 두 다리는 계속해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로우야… 형은 엄청 실망했다.”

지켜보던 쥐새끼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에 반응하는 단검 녀석.

“하…….”

녀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좌우로 비틀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장난 그만하고 빨리 끝내자.”

툴툴거리는 쥐새끼의 말에 로우라는 녀석은 얼굴을 찡그렸다.

뭔가 자존심이 상한 표정이다.

하나 내 신경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장난 그만하라고?’

형이란 놈이 내뱉은 말이 묘하게 거슬렸다.

마치 시작조차 안 했다는 나른한 분위기…….

“봐주니까 잔뜩 신났네.”

그의 말에 동조하듯, 로우는 짜증 섞인 말투로 낮게 뇌까렸다.

무슨 이유일까.

무심한 녀석의 말투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이것은 본능.

무의식에서 반응하는 경고였다.

‘지금부터인가.’

놈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들고 있던 단검을 역수로 쥐고 전신의 근육을 팽팽하게 당긴다.

마치 쏘아지기 직전의 활시위 같다.

진짜는 이제부터 시작일 터.

슈악!

췡!

스걱!

촤앙!

쾅!

단검과 해머가 맞닿으며 요란한 소릴 울려 댔다.

“오! 좋아! 내 동생 잘한다!”

도망치기 급급하던 로우는 이제 그곳에 없었다.

본색을 드러낸 건 놈도 마찬가지.

전투의 향방은 이제 백중세로 변해 버렸다.

‘아니야.’

불리해졌다.

뒤에 있는 쥐새끼는 아직 움직이지도 않았으니까.

“옆구리를 찔러! 아니, 늦었잖아!”

놈은 재미난 구경거리를 대하듯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긴장감은 당연히 없고, 흘러넘치는 여유는 나들이 나온 행락객과 다를 바 없었다.

‘위험해.’

로우라는 놈의 실력을 봤을 때, 이 이상 계속되면 나의 패배가 확실해진다.

이유야 말해 뭐 하겠나.

경험의 문제다.

이놈이 휘두르는 단검의 궤적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을 이미 넘어섰다.

따라가는 것만으론 파훼할 수 없는 특별한 그 무엇.

‘쯧…….’

이 와중에 형이라는 놈까지 합세한다면 패배는 불 보듯 빤한 일이다.

유일한 희망은 단기전.

아직 방심하고 있을 때 빨리 끝내야 한다.

슛― 슛― 슛―

시간이 지날수록 놈의 공격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가속이라도 붙는 건지,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이며 급소를 노려 왔다.

“왜? 밑천 다 떨어진 거야?”

놈은 비릿하게 웃으며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공격을 받아 내며 최대한 허점을 파 보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젠장…….’

녀석의 예리한 단검에 옆구리가 베여 나갔다.

“와하하! 선제공격은 로우!”

불에 대인 듯 화끈한 통증이 상황의 심각함을 알려 왔다.

이런 식이라면 패배는 기정사실이다.

짓쳐 오는 놈의 찌르기에 올려치기로 받아쳤다

빈틈을 만들기 위한 단 한 번의 찬스.

패링이다.

하지만 로우는 그마저도 흘려 냈고, 나의 해머는 애꿎은 허공을 가르며 맥없이 휘둘러졌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회전하는 관성을 가속해 더 크게 원을 그렸다.

가볍게 피하며 몸을 빼내는 로우.

그대로 놈을 지나치며 묵색의 해머를 치켜들었다.

‘걸렸어.’

새로운 목표를 찾은 해머는 사선을 그으며 매섭게 내리 꼽혔다.

부아아악―

쾅!

굳이 로우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누가됐건 숫자만 줄어들면 그뿐, 먼저 가는 놈이 누구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 세상일이 늘 그렇듯,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다.

“깜짝 놀랐네. 이 새끼 대가리 굴리는 거 봐라?”

나의 해머는 간발의 차이로 쥐새끼의 머리를 빗나갔다.

“아깝다…….”

나의 노림수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건 2:1의 불리한 싸움뿐.

“안 되겠다. 넌 내가 특별히 손 봐 줄게.”

쥐새끼는 본격적인 참전을 알려 왔다.

* * *

차가운 빅터의 눈길이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을 살폈다.

간간히 드러나는 작은 단서들.

찾아온 이곳에 남은 흔적은 분명 누군가의 발자취였다.

‘역시 다녀간 건가.’

찾아온 이들의 목적을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걱정하던 그것일 수도 있고, 단지 우연에 우연이 겹친, 뜻 없는 흔적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나 한 가지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는 건.

‘마력의 기운이 약해.’

이곳에 모인 잔존 마력의 농도가 평범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는 건 걱정하던 의식 행위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빅터가 기억하는 그날의 의식은, 고작 이 정도 흔적을 남길 만큼 가벼운 마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폐부를 찔러 대던 강력한 마력들.

모여든 마력이 어찌나 짙고 강했는지, 이후 잔존 마력이 사라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적당히 옅어지는 기간만 수개월이었으니, 최근 이곳에서 의식이 치러졌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흐음…….’

그렇다고 해도 무언가 이상하다.

딱 집어 말할 순 없지만, 달라진 이곳의 분위기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었다.

사람으로 비교하자면 생기가 없는 얼굴이랄까?

단순히 잔존 마력이 약한 수준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죽어 버린 느낌이었다.

‘개입이 있었는데…….’

지금으로선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직접 맞닥뜨리는 수밖에.

돌아선 빅터는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크흑…….”

세검을 쥔 쥐새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단검을 휘두르던 동생 로우가 속도를 앞세웠다면, 형이라던 이 녀석의 세검은 느긋하면서도 완벽하게 상대의 빈틈을 찔러 들어왔다.

역습에 특화된 노련한 검술.

나의 두 팔과 다리는 이미 누더기가 되어 덜렁거리고 있었다.

“벌써 쓰러지면 안 되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크으윽―

어깨를 뚫은 세검이 강제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묻는 말에 대답은 하나도 안 하고 말이야. 나쁘다니까?”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다.

하나 내겐 너무 먼 간격이 되었고, 피로 물든 나의 머리는 놈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로우야, 이 녀석 팔뚝 좀 끊어 봐. 너무 두꺼워서 형 칼은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아.”

“변태 새끼.”

로우는 툴툴거리며 단검을 고쳐 쥐었다.

미친 것들.

누가 형 동생 아니랄까 봐 척하면 척이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 각자 잘라야 할 부위를 향해 익숙하게 손을 움직였다.

“쥐새끼… 너 이름이 뭐야?”

나는 흥분에 가득 찬 놈을 향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의아해하는 녀석의 표정.

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에게 되물었다.

“내 이름? 곳 뒈질 놈이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외워 두려고.”

“이 새끼 웃긴 놈이네.”

녀석은 동생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좋아. 가는 길에 선물로 알려 주지. 이 몸의 이름은…….”

하나 놈의 대답은 이어지지 못했다.

“끄아아아아악!”

로우의 예리한 단검이 나의 팔꿈치를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아, 놀래라… 무슨 목소리가 이렇게 커. 깜짝 놀랐잖아.”

쥐새끼는 눈썹을 찡그리며 낮게 투덜거렸다.

“어휴, 피 쏟아지는 거 봐. 이러다 금방 죽는 거 아니야?”

솟구치는 붉은 핏줄기에 녀석은 입가를 씰룩거렸다.

재수 없는 새끼.

놈을 노려보던 나의 두 눈은 끔찍한 고통에 감겨들고 있었다.

“끄으으으…….”

심장 뛰는 소리가 머릿속을 헤집고, 귀를 찢는 이명이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사람의 피가 이렇게 많았었나?

쏟아지는 피의 양만큼 나의 의식도 멀어져 가고 있었다.

“크흠, 잘 들어. 내 이름은 카이 레이야. 위대한 나의 이름을 듣고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 그러니 너도…….”

“더럽게 시끄럽네.”

레이의 말을 가로막은 로우는 잘라 낸 나의 팔을 들어 녀석에게 집어던졌다.

“잘랐으니까 나머진 너 혼자 해.”

“와하하, 고마워 동생아!”

레이는 흡족한 얼굴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나의 뒤편으로 다가와 세검을 뽑아 들었다.

“여기가 오금이라는 부위인데, 이곳을 베어 내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크아아아악!”

“앉은뱅이가 되는 거야.”

놈이 휘두른 검이 나의 무릎 뒷면을 갈라냈다.

몸 안에서 유리가 부서진다면 이런 느낌일까.

“끄으으으으…….”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에 나의 팔다리는 주책없이 떨리며 부들거리고 있었다.

“초면에 이렇게 돼서 미안한데, 일단 물어볼 게 있으니 성실하게 답해 줘.”

다시 앞으로 다가온 레이는 표정을 바꾸어 차갑게 물었다.

“…….”

“그 침묵은 긍정으로 해석해도 되겠지? 그럼 첫 번째 질문. 너와 빅터는 무슨 사이야?”

“몸종이다, 쥐새끼야.”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나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어차피 죽을 목숨.

저 주둥이에 한 방 먹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

하지만 돌아온 건 레이의 날카로운 칼날 세례였다.

“크으윽!”

꽉 다문 잇새로 새된 비명을 흘러나왔다.

“음… 좋아. 믿어 주고 싶은데 말이야, 네 말은 앞뒤가 안 맞아. 너와 빅터는 그날 처음 만났잖아. 그런데 왜 같이 다니는 거야?”

“쥐새끼가 어디 사람 흉내를 내고 지랄이야. 꺼져!”

레이의 말에 나는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질렀다.

“나쁜 놈이네. 남의 동료를 개 작살을 내놓고는 오리발을 내미네. 뭐 이런 악당 같은 놈이 다 있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이놈들은 그날의 사건을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대장간에 있던 영감 말이야. 이름이… 그래 데릭! 그 영감 의리가 있더라고, 풍차에 있던 그놈은 결국 네 이름을 불었는데… 그 인간 이름이 뭐였더라. 제키? 그래 제키가 맞을 거야.”

“데릭을 만났어?”

“그럼, 당연히 만났지. 데릭은 너 지켜 주려고 죽을 때까지 의리를 지켰는데. 넌 뭐야? 빅터랑 짝짜꿍이나 하고 말이야.”

잠깐만.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데릭을 죽였다고?

거기에 제키까지?

“너 이 새끼… 지금 뭐라고 떠든 거야?”

“못 들었어?”

레이는 작은 주머니를 꺼내 바닥으로 뒤집었다.

주르륵 쏟아지는 하얀색 알갱이들.

“이거, 데릭 거야. 그 영감의 이빨이지.”

이해 못할 소리와 함께 작은 백색 조각이 적갈색 암반 위로 나뒹굴었다.

“……”

뽑히다 부러진 치아부터 피딱지가 말라붙은 어금니까지.

“깔끔하게 보냈으니 염려하지 마.”

놈은 데릭의 이빨을 뒤적거리며 태연히 개소릴 지껄였다.

“뭐해? 봤으면 소감을 말해야지, 사람 무안하게 빤히 보고만 있냐.”

이런 개소릴 말이다.

그러니 나도 말하고 싶다.

그것이 욕이 됐건 고함이 됐건, 무엇이건 나오는 대로 질러 버리고 싶다.

하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의 시간은 멈춰 버렸고.

뺨을 타고 흐르는 축축한 감각만이 이곳이 현실임을 자각시키고 있었다.

가슴이 저릿하고 아프다.

사고가 정지된 나의 정신은 잘린 팔의 고통조차 지워 버렸다.

“죽…….”

“뭐라고?”

웅얼거리는 나의 말에 레이는 귀를 쫑긋 세우며 다가왔다.

“뭐라는 거야. 자꾸 중얼거리면 더 아프게 한다?”

레이는 세검을 들어 나의 뺨을 긁어 내렸다.

턱을 타고 내리는 뜨거운 핏줄기.

날카로운 칼끝이 나의 경동맥을 눌러왔다.

“죽어…….”

“죽여 달라고?”

놈의 예리한 세검이 나의 목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나는 잘린 팔을 크게 휘둘렀고.

투두두둑―

놈의 면상에 붉은 피를 뿌려 댔다.

손을 들어 핏물을 막아 내는 쥐새끼.

‘죽인다.’

훤히 드러난 놈의 목덜미를 향해 남아 있는 왼손을 뻗었다.

잡아당긴다.

그리고 물어뜯는다.

이 독한 복수의 감정은 오롯이 녀석에게 향해 있다.

분노에 잠식된 새하얀 세상.

“이반!”

느려진 시간을 타고 칼칼한 노년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그래.

익숙한 음성이다.

이 소리의 주인은 빅터가 분명하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올 거면 조금만 더 빨리 와 주지.

이미 다 끝났다.

이젠 멈출 수 없으니까.

나의 이빨은 레이의 목 줄기로 파고들었고.

“이바아아안―!”

잘려 나간 나의 머리는 허공을 빙글 돌아 힘없이 바닥에 쳐 박혔다.

기함을 지르며 오러를 뿜어내는 빅터 크로제.

초점을 잃은 나의 두 눈은 뿌옇게 흐려지며 어둠에 잠겼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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