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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 99개-11화 (11/203)

11화

여관 주인은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딘가를 바쁘게 오가던 그는 마침내 빅터에게 다가와 소박한 동전 주머니를 내밀었다.

“숙박비와 식대를 제외한 금액입니다.”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마차와 여러 골칫덩이를 여관 주인이 대신 처분해 준 것이다.

“고작 이틀 쓰고 팔 거면 뭐 하러 샀어요. 돈 아깝게.”

세비앙 영지를 출발할 때만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륙 횡단이라도 하는 건가?’

정말 어마어마했으니까.

대장장이에서 유목민으로 신분 세탁하는 줄 알았다.

상상이나 했겠나.

그 많은 짐을 고작 이틀 쓰고 처분할 거라는 걸.

“본래 적당히 편한 길로 가려했던 게다. 그랬으면 유용하게 써먹었겠지.”

“그런데 왜요?”

“네놈이 불을 지르지 않았느냐.”

쳇, 결정은 본인이 다 하면서 화살은 나에게 돌리다니.

그나저나, 갑자기 무슨 이유로 생각을 바꾸게 된 걸까.

계획이 바뀐 연유는 어제 밤에 있었다.

― 쉽고 편한 길을 갈래, 아니면 지옥을 살짝 맛보고 갈래?

빅터는 뜬금없는 선택지를 내게 던졌다.

굳이 고민할 필요가 있나?

나는 당연히 쉬운 길을 선택했고.

― 좋아, 그러면 지옥 길을 달려보자!

― 왜 반대로 가는 건데요?!

귀가 어떻게 된 영감은 지옥 길로 노선을 결정했다.

‘하여간 정상은 아니야.’

여러모로 광기(狂氣) 충만한 사람이다.

“생각보다 거친 놈이니 그에 걸맞게 방향을 바꾼 게다. 덕분에 애먼 두 다리만 고생하게 생겼구나.”

빅터는 툴툴거리며 작은 가방을 둘러맸다.

나 역시 해머와 작은 가방뿐.

그나마 내용물도 수통과 담요 한 장뿐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쓰지도 않을 칼은 뭐 하러들고 다니는 게냐?”

고블린 로드에게 얻은 전리품이 아직 남아있었다.

“써먹을 데가 있을 것 같아서요.”

나는 빅터의 말에 대답하며 동여맨 대검을 등 뒤로 걸쳤다.

“검술이라도 배울 생각이냐?”

“아니요.”

이어진 빅터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솔직한 생각을 말했다.

그 이유는 바로 숙련도.

검술에 반응하지 않는 나의 특별한 능력 때문이었다.

‘둔기 마스터리 때문인가?’

별 지랄발광을 다 해 봐도 숙련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건 허무한 자괴감뿐.

필시 나의 능력은, 둔기라는 무기에 특화된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이런 덩치 큰 검 따위 기회 있을 때 팔아 버렸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는데……

나는 판매 대신 보관을 선택했다.

이유는 검에 사용된 소재 때문이었다.

‘알 수가 없네.’

어지간한 재료는 다 아는데 이 녀석은 도통 모르겠다.

단일 광석인지, 아니면 합금인 건지… 아무리 살펴봐도 나의 지식으론 가늠 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나라고 모든 재료에 통달한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들고 다니는 물건의 정체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하여 이른 아침부터 마을 대장간을 찾아갔다.

― 글쎄요? 저도 처음 보는 재료인데… 합금인가?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신통치 않았다.

쇳밥 좀 먹은 듯한 그 사람도 나와 다를 바 없던 것이었다.

그래서 챙겨 가기로 결정했다.

‘큰 도시에 가면 누군간 알겠지.’

리베에 도착하면 알아볼 생각이다.

혹시 알아? 알고 보니 엄청 희귀한 재료일지.

돈 모으는 몬스터가 들고 있던 검이다.

고블린 로드 그놈.

어쩌면 돈 냄새 맡는 재주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묘한 확신을 가진 채 검을 들어 등 뒤에 걸쳐 멨다.

“여기 부탁하신 도시락입니다.”

때마침 다가온 여관 점원은 풀잎을 엮어 만든 도시락을 나에게 내밀었다.

“위에 두 개는 양념된 밥이구요, 아래의 두 개는 요리입니다. 그리고 이건 잘라 놓은 빵이니 맛있게 드세요.”

문명의 흔적이 남은 식사는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대수림에 들어서는 순간… 기다리는 건 척박한 야생의 삶일 뿐.

받아든 도시락을 보고 있자니 뜬금없이 비장해졌다.

“다 챙겼으면 이제 가자.”

가방을 가로질러 맨 나는 빅터를 따라 여관을 빠져나왔다.

* * *

두 손이 자유롭다.

이 평범한 사실에 감사한 적 있나?

마차를 벗어나 걷는 걸음은 새털처럼 가볍고 편안했다.

“고작 이틀인데 신기하네요.”

“그게 사람의 몸이다. 너는 그 만큼 성장한 거고.”

어째 가학적인 측면이 물씬 풍기는 말이었지만, 빅터의 이론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인간의 몸은 괴롭힐수록 강해지고 나는 이미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검술도 마찬가질 터.

흔들리는 해머를 바라보다 이내 빅터에게 시선을 돌렸다.

“스승님.”

“말해라.”

“둔기와 검은 수련법이 다른가요?”

나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두 종류의 차이를 물었다.

단순한 해머 사용법이 아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검술처럼 화려한 연계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달랑 하나는 쫌.’

내려치기 하나는 아니란 얘기다.

그 하나가 전지전능이라면 모를까.

‘고블린도 좌우 베기를 하는데.’

인간인 내가 못질만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이다.

“무기의 활용도는 다르지만, 기본 개념은 같다고 볼 수 있지.”

걸음을 멈춘 빅터는 허공에 대고 팔을 그어 내렸다.

“휘두른다는 개념과 벤다는 개념은, 크게는 같고 작게는 다르다. 무슨 차이인지 알겠느냐?”

글쎄요.

그게 궁금해서 질문을 했습니다만.

나는 두 눈을 껌뻑이며 빅터의 다음 얘길 기다렸다.

“해머는 휘둘러 부시고, 검은 휘둘러 베는 것이다.”

“…….”

“목적이 다르기에 도달하는 방법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나 말도 안 되는 네놈의 신체 능력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빅터의 눈이 이채롭게 빛났고,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해머를 검처럼 다룰 수 있다면 그야 말로 무적이 아니겠느냐.”

이거 쥐약이다.

이렇게 침이 꼴깍 넘어가는 떡밥을 던져서 사람을 낚는다.

걸려들면 무슨 짓을 시킬까.

하나 팔랑거리는 나의 두 귀는 어느새 쫑긋해져 있었다.

“검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쇳덩이보단 약할 터. 막으려 애써도 막을 수 없으니 실로 패도적인 무예라 할 수 있겠구나.”

“가르쳐 주십쇼, 스승님!”

결국 빅터의 말에 홀딱 넘어간 나는 바닥에 닿도록 고개를 숙였다.

그리하여 마주한 이곳.

빅터의 지도하에 검술의 기초를 배우기 시작했다.

“둔기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다. 검의 횡 베기와 올려 베기, 이것을 둔기에 적용하면 휘두르기와 올려치기가 되겠지.”

“그게 어떻게 하는 거죠?

“어떻게 라니? 설마 너, 아무것도 몰라서 내려치기만 하는 게냐?”

“당연하죠. 자꾸 잊으시는데 저 대장장이 조수였거든요?”

맞잖은가.

내가 엄청난 힘과 체력,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순발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내 전공은 대장장이다.

그것도 기공이 아닌 준기공 잡부.

그러니 검술을 알고 있는 게 수상한 일인 것이다.

“자, 잘 보거라. 이렇게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것이 횡 베기. 여기서 각도를 올린 다음 내려 그으면 사선 베기가 되고,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올리면 올려 베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군요.”

눈으로 보기엔 만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막상 시도해 보면.

“뭐하냐?”

정체불명의 몸짓이 난무했다.

“그게 아니지. 다리가 틀렸잖느냐.”

“어디가 틀려요?!”

“이놈아 눈알은 옹이구멍이야? 그거랑 이거랑 어떻게 같아!”

상체의 동작도 어색한데 발동작이 추가되니 더욱 복잡해졌다.

해머를 휘두르기 위한 기본적인 발의 움직임.

즉, 보법을 수행하면서 내려치기와 횡 베기를 병행하는 중이었다.

한 걸음에 한 번씩.

이동속도는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숙련도는 착실하게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기술은 내려치기뿐.

‘설마 이거 하나라고?’

아무리 휘둘러도 새로운 글자는 떠오를 기미가 없어 보였다.

[내려치기 숙련도 246/10,000]

보이는 건 오직 이것뿐이니 내려치기 수련은 탄탄대로였다.

가끔씩 ‘완벽한’이라는 수식어도 따라붙어 주었고, 덕분에 숫자는 가파르게 올라갔다.

하나 만족되지 않았다.

“자세가 그게 뭐냐?”

문제는 횡 베기다.

빅터의 가르침에 따라 움직여 보지만 횡 베기는 영 부자연스러웠다.

특히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 때는 나조차도 떠올리기 싫은 이상한 움직임이었다.

“아주 발광을 하는구나.”

‘미치겠네.’

익숙지 않은 몸놀림이다.

대장간에서 보낸 지난 10년.

나의 망치는 수직으로만 움직였다.

좌우로 휘두를 일도 없었고, 굳이 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색할 수밖에.

‘한 번만 성공하면 감을 잡겠는데.’

그게 영 쉽지 않다.

내려치기와는 다르게 팔만 휘두른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상체와 하체의 조화로운 움직임.

균형감 있는 횡 베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실망하지 마라, 될 때까지 반복하는 게다.”

40㎏가 넘는 해머를 롱 소드 휘두르듯 잡아 돌렸다.

참고로 롱 소드의 무게는 고작해야 2㎏ 내외다.

한데 나는 지금 롱 소드의 스무 배가 넘는 무게로 검술을 흉내 내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될 때까지 계속해서 말이다.

‘젠장.’

이쯤 되면 떠오를 만하지 않나?

이젠 자세도 제법 나오고 어색한 느낌도 많이 사라졌다.

하나 여전히 문자는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없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꽤나 아쉽겠지만 상관은 없다.

숙련도가 없더라도 기술적 성취는 내 몸에 남아 있을 터.

“저기 나무 그늘에서 조금 쉬었다 가자꾸나.”

“아니요! 이제 곧 될 것 같아요!”

“그놈 참.”

나는 휴식도 마다한 채 계속해서 해머를 휘둘렀다.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며 마주한 어느 한적한 오솔길.

크르르르르…….

그늘진 나무숲 사이를 해치며 거대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이 각화되어 검으로 베기 어렵다는 중대형 몬스터.

이름하야 바위 곰이다.

“저놈이 제 죽을 자릴 찾아 스스로 기어들어 왔구나.”

빅터는 몬스터를 보며 반색했다.

누차 말하지만 이 영감, 광기가 철철 흘러넘친다.

그리고 그 광기는 언제나 내게 향한다.

“가라, 이반. 저놈에겐 네가 천적이다.”

이렇게 말이다.

빅터는 나의 등을 떠밀며 기대에 찬 시선을 보냈다.

“에효……”

이렇게 될 거라 예상했기에 딱히 놀랄 것도 없다.

차라리 잘됐다 싶은 마음?

허공에 휘두르던 해머질도 슬슬 지루하던 참이니까.

나는 해머를 쥔 손에 힘을 실으며 놈을 향해 다가섰다.

‘생긴 거 하곤.’

생김새가 저러하니 칼날이 들어갈 리 없다. 오죽하면 과부 제조기라고 했겠나.

돌처럼 각화된 바위곰은 날붙이를 사용하는 창병이나 검사에겐 악몽 같은 존재로 회자되는 놈이었다.

파훼 법은 오러 뿐.

오러를 실어서 베면 놈의 목숨을 거둘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좀 더 원초적인 방법이 필요한데…….

‘부셔 버리면 되지.’

벨 수 없으면 박살내면 그만이다.

그러니 빅터가 그렇게 말한 것이다.

― 네가 천적이다.

내가 이긴 다고.

무얼 망설이겠는가.

저 영감이 광기는 있어도 헛소리는 안 한다.

크워어어어!

달려오는 나를 보며 바위 곰은 몸을 추켜세웠다.

급격히 높아지는 놈의 신장.

내려 꼽히는 녀석의 앞발을 피하며 한 발짝 크게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부우우욱―

묵색의 해머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린다.

공기를 찢을 듯 날아간 해머는 놈의 머리를 향해 사납게 들이쳤다.

그렇게 해머는 작렬했고.

콰지직―

흉흉한 소리를 내며 녀석의 두개골을 보기 좋게 갈라 버렸다.

쿠웨웨엑!

커다란 놈의 앞발은 움찔거리며 경련했다.

이내 쓰러질 듯 휘청거리더니, 네발로 지면을 밟으며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크르르르…….

갈라진 두개골 사이로 뇌수가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턱을 쩍쩍 벌리며 위협을 가해왔다.

부아아아악―

참으로 놀라운 생명력.

하나 재차 날아간 해머가 수평을 그리며 녀석의 측두부를 강타했다.

뭔가 부족하다.

다시 한 번 집중해 온몸을 세밀하게 통제했다.

내딛는 발부터 회전하는 골반과 상체의 부드러운 움직임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하나의 동작으로 이어 갔다.

크워워워웍!

비로소 마주한 생사결의 순간.

살의 가득한 놈의 앞발이 얼굴을 노리며 다가왔다.

거대한 발이 크기를 키워 간다.

살짝 숙인 머리 위로 날카로운 발톱이 스쳐갔고, 정의할 수 없는 완벽한 일체감이 뇌리를 스치며 섬광처럼 지나갔다.

‘느낌 왔어!’

쩌어억―

한 번 더 들러붙은 묵색의 해머.

[조건이 충족되어 휘두르기 수련이 활성화됩니다.]

[휘두르기 숙련도 1/10,000]

새로운 기술의 이름은 휘두르기였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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