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목숨 99개-7화 (7/203)

07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말 그대로다. 네놈의 코어는 사용할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의 중심엔 홀이라는 공간이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성 초기에는 너무도 작아 확인할 길이 없지만, 이후 마나수련 방법에 따라 마법을 다루는 서클과 오러를 사용하는 코어로 변형된다.

그러니 이상한 거다.

“저는 코어를 만든 적이 없는데요?”

무예에 대한 그 어떤 수련도 받아 본 적 없다.

한데 코어라니.

이 말은 기지도 못하는 게 달려왔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얘기다.

“뭐라고?”

빅터 영감은 화들짝 놀라며 다시 내 몸을 살폈다.

“이런 멍청한 녀석. 여기 부서진 코어가 그대로 들어차 있는데 무슨 헛소릴 하는 게야.”

“헛소리가 아니고요, 제가 대장간에 맡겨진 게 다섯 살이에요. 그 뒤로 대장간 잡일만 하면서 살았는데 코어를 어떻게 만들어요?”

그게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거라면 앞집에 사는 찰스, 뒷집에 사는 로버트도 죄다 기사가 됐을 것이다.

“흐음… 그런데 어째서 코어가…….”

낸들 알겠나.

설령 진짜로 있었다면 미쳤다고 쇳덩일 두드리며 살았겠는가.

“해괴한 일이로구나. 정녕 너는 모르는 일이란 게냐?”

“네. 그야 당연히 모르…….”

잠깐, 그러고 보니 집히는 게 하나 있다.

― 그래. 온몸이 새파래져서는 아주 볼 만했지. 홉고블린 같았으니까.

데릭 영감은 그렇게 말했었다.

대장간에 맡겨지기 직전에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설마 그게?

“가만 있자… 네 녀석이 어릴 때.”

“…죽을 뻔한 적이 있죠.”

역시 사람의 생각은 다른 듯 같은가 보다.

대장간의 대화를 떠올린 건 빅터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 사건과 너의 코어가 연관이 있다면,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다 망가뜨렸다는 얘긴데.”

그건 그것대로 끔찍한 소리다.

실패작이란 뜻이 아닌가.

“코어라는 게 대신 만들어 줄 수도 있는 건가요?”

“영 불가능한 소리는 아니지. 다만, 시전하는 사람의 실력이 확실한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떠오르는 용의자는 그 사람뿐이다.

“너를 맡기고 갔다는 그 남자. 그 사람이 연관된 것 같구나.”

아리안 왕국에 있다는 아이작이라는 남자.

여러모로 불편하게 엮이고 있다.

나를 버리고 간 사람일 수도 있고, 돌아오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다.

또한 나를 죽음에서 구하려 했을 수도 있었으며,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복잡하네.’

어느 쪽이든 쉽지 않은 인연인 건 확실하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던 모양인데, 어쨌든 이 상태로 오러 수련은 불가능하겠구나.”

“…….”

시작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

두 주먹으로 세상을 쥐어 보겠다고 나섰는데 오러를 못 쓰다니.

그럼 어따 써먹어?

“이놈아, 벌써부터 나라 잃은 표정이냐.”

상심한 제자를 바라보며 빅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몇 년을 수련해도 쥐똥만큼 커지는 게 코어다. 네놈의 코어가 멀쩡했다고 한들 그것을 다루는 것은 나중의 일이 될 터, 지금은 육체 강화에 집중하면 되느니라.”

“그래도 망가졌다는 건 달라지지 않잖아요.”

관건은 이것이다.

치료가 될지 안 될지도 모르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하나.

‘반푼이가 되는 건가…….’

힘만 센 어중이떠중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망가졌으면 또 어떠냐.”

“그게 무슨 말 장난이에요. 무기를 다룬다면 결국 오러의 유무가 경지를 가르는 것 아닙니까.”

“너는 네가 가진 힘을 우습게 생각하는구나.”

빅터는 때 쓰는 아이를 바라보듯 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잔잔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해 왔다.

“지니고 있는 힘이 오러를 능가하면, 그 또한 새로운 경지가 아니더냐.”

“……”

“이미 오러 유저를 때려잡아 놓고는 뭘 그리 풀이 죽은 게야.”

생각해 보니.

나의 첫 실전은 4성급 오러 유저였다.

“리베가 자유도시로서 견고히 버틸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글쎄요.”

“정치 놀음에 질려 버린 괴물들이 그곳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다 부질없고 의미가 퇴색되어가던 그 순간, 빅터는 희망이 될법한 미끼를 내게 던져 주었다.

“조각나 버린 서클을 치유했다는 치료사가 거기 있었지. 리베로 가게 되면 수소문부터 해 봐야겠구나.”

결국 자유도시 리베는 나에게 숙명 같은 도시가 되어 버렸다.

“그럼 아침 든든히 먹고 출발하자. 오늘은 어제보다 더욱 힘들 테니 각오하는 게 좋을 게다.”

하여 빅터는 적당한 아침을 깨작거렸고, 나는 저녁에 먹다 남은 생선과 머리통만 한 호밀 빵을 꾸역꾸역 뱃속에 밀어 넣었다.

‘살아야 돼!’

본능이 말하고 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더욱 처넣지 않으면 진짜로 죽는다고.

* * *

빅터의 오러 운용덕분에 몸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하나 여전히 삭신은 구석구석 쑤셔 대고 있었고, 나는 마차에 짐을 실은 뒤 커다란 후드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쪽팔리잖아.’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눈알을 솔방울처럼 키워 대니 영 불편하다.

“안 덥냐?”

“짐승 취급을 당하느니 이게 낫죠.”

“내 눈엔 그게 더 이상하다만.”

어쨌건 나만 안 보이면 그만이니 상관없다.

“후우…….”

마차 앞으로 다가가 튀어나온 차대에 손을 올렸다.

“끄아아아합!”

진정되었던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요동쳤다.

“처음에만 힘들뿐, 일단 시작되면 고통은 금방 가라앉을 게다.”

스승의 말이 사실이길 바라며, 나는 힘겹게 첫걸음을 내딛었다.

“크아아아아아아!”

역시 아프다.

아프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갔다.

‘젠장…….’

정점에 다다른 고통이 이성이란 놈에게 포기를 종용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얻는 게 무엇이냐고 끊임없이 묻는다.

‘후우……’

하지만 이성은 대답할 말이 없다.

어차피 이 길은 나의 머리로 따라나선 길이 아니니까.

시작은 10골드에서 비롯되었지만, 땅을 박차는 두 다리는 가슴이 시켜 움직인다.

나는 나가고 싶다.

더 넓고, 더 높은 세상으로.

“흐아아아압!”

쭉쭉 뻗어 나가는 두 다리.

육체의 고통은 거짓말처럼 지워지기 시작했다.

* * *

“거기서 뭐하는 거요?”

성 앞마을 풍차의 주인 제키는 낮선 이방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 주인장 되십니까?”

“예. 제가 이 풍차의 주인입니다. 한데 여서 뭘 찾으시는 겁니까?”

작고 왜소한 체격의 남자는 앞섶을 정리하며 자신의 소개를 했다.

“저와 이 친구는 영지에서 나온 조사관입니다. 어제 이곳에서 발생한 사건을 확인 중이니 잠시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영주님께서 보내셨다고요? 어제도 사람들이 왔다갔는데.”

“그 사람들은 경비대일 겁니다. 저희는 영주님 직속 조사단이고요.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그만 자리 좀 피해 주시죠.”

“크흠……”

제키는 헛기침을 하며 물러서야 했다.

조곤조곤 설명하는 왜소한 남자의 뒤로, 차가운 표정의 사내가 살벌한 눈길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그, 그럼 살펴보고 가십시오.”

제키는 그 말을 끝으로 슬쩍 꼬리를 말고 사라졌다.

남겨진 두 사내는 한 지점을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 갔다.

“여기 맞아?”

“그런 것 같아. 리는 이쪽에서 죽었네.”

“죽인 사람은?”

“흠…….”

왜소한 남자는 텅 빈 공간을 바라보며 엄지손톱을 물어뜯었다.

“리를 죽인 건 돌프인데, 그 돌프를 죽인 남자가 또 하나 있어.”

“돌프를 죽였다고?”

“응. 이 녀석도 체격이 만만치 않아. 이런… 쯧쯧, 쉐인도 이놈에게 죽었구나.”

왜소한 체격의 남자는 그대로 풍차를 빠져나갔다.

“이쪽으로 나가서, 저 모퉁이로 갔나 봐.”

두 남자는 다음 장소를 향해 잰걸음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왜소한 남자는 다시 중얼거렸다.

“여기서 또 한 명이 죽었는데… 죽은 녀석은 헉스인 것 같군.”

“흐릿하게 보인다면서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알아?”

지켜보던 또 다른 남자는 눈썹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듯 내뱉었다.

“감이지!”

“퉷!”

왜소한 남자는 자랑하듯 답했고, 차가운 표정의 남자는 침을 뱉으며 무시했다.

“이 자식이, 형이 말하는데 침이나 찍찍 내뱉고 말이야. 이거 영 못쓰겠네?”

“닥쳐.”

거친 대화를 주고받는 두 남자는 마을 입구로 걸어갔다.

닮은 듯 닮지 않은 묘한 생김새.

스스로를 형이라 칭한 남자는 마을 한복판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생각보다 거물이 꼬여든 것 같다.”

“또 헛소리하면 죽인다.”

“아니야, 이건 좀 심각하다고.”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을 구기는 작은 체격의 남자.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던 남자는 고개를 돌려 동생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빅터가 끼어든 것 같다.”

“빅터 크로제?”

“응, 우리가 아는 그 빅터.”

“하∼ 이거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네.”

“그러게 말이야. 일단 아까 그 풍차부터 다시 가 봐야겠다.”

“거긴 왜?”

“물어볼게 많아졌거든.”

* * *

인간의 몸이 그런 건지, 내가 특별한 건지 모르겠지만.

“후우… 후우…….”

일단 풀리기 시작한 몸은 생각보다 빠르게 고통에 적응했다.

“잠깐 멈춰 보거라.”

멈추라는 저 소리가 살짝 섭섭할 만큼, 이젠 꽤 편한 감각으로 마차를 끌게 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네요?”

걷다가 마주친 한 무리의 사람들. 그런데 구성원이 뭔가 이상했다.

여자와 아이들과 할매, 그리고 그 옆에 할매와 또 다른 할매까지.

남자라곤 허리 구부정한 노인네들뿐인데 선 채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고령자들뿐이다.

“무슨 일입니까?”

멈춰선 빅터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구부정한 노파가 허리를 펴며 앞으로 나섰다.

“고블린이 마을을 습격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피난을 나온 참입니다.”

행색을 보아하니 급하게 나온 흔적이 역력했다.

심지어 곁에 있는 어린 꼬마는 좌우가 다른 짝짝이 신발이다.

“무리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그건 저희도 잘…….”

빅터의 말에 노파는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목숨이 경각인 상황에 무리의 규모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터.

이미 예상한 답이었는지 빅터는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애먼 턱 끝을 괴롭히며 생각에 잠기는가 싶었는데.

“저 알아요!”

곁에 있던 꼬마가 손을 번쩍 들며 앞으로 나섰다.

“손가락 열 개를 다섯 번 접을 만큼 왔어요!”

대략 50마리란 뜻일 거다.

“흐음…….”

낮게 침음하는 빅터.

마을에 들이닥친 게 50마리라면, 바깥쪽에는 그 이상이 있을 것이다.

운이 없다면 두 배 이상?

이 정도는 상식, 아니, 필수적으로 알아 둬야 할 생존 지식이다.

특히나 이런 영지 외곽이라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고블린은 그만큼 자주 접하는 몬스터이고 피해 사례도 많은 놈들이다.

“마을을 지키는 사람은 있습니까?”

놈들의 체구가 작다곤 해도 그 힘은 체격과 비례하지 않는다.

거기에 개체수가 50마리나 된다면 결과는 뻔히 예측되는 상황이었다.

“남자들과 여기사 한 분이 남아서 싸우고 있습니다.”

노파의 대답에 빅터는 얼굴을 찡그렸다.

“쯧쯧, 그냥 도망치면 알아서 사라질 놈들인데 왜 굳이 남아서 목숨을 버리는지.”

본능이 아니겠나.

자신의 터전을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결연한 의지.

하나 능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객기가 되고, 그 객기는 죽음을 부른다.

“이것 참 곤란하게 됐구나.”

빅터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순간 들려오는 어린아이의 외침.

“할아버지! 우리 아빠 좀 구해 주세요!”

노파의 곁에 있던 꼬마가 빅터를 향해 소리쳤다.

“아이고, 이 녀석이… 죄송합니다. 이놈의 애비가 마을에 남아 있어서 그만…….”

황급히 아이를 잡아채며 노파는 고개를 숙였다.

보아하니 다섯 살 정도 됐을까.

“아가야, 너의 아빠가 아직 마을에 있느냐?”

“네! 마을 사람들이 피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괴물이 너무 많아서…….”

아이는 말끝을 흐리며 울먹였다.

빅터는 말없이 아이를 지켜보다 이내 깊은 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봤다.

“어쩔 테냐, 이반.”

그렇게 결정은 나의 몫이 되었고.

“뭘 고민합니까.”

나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결정을 넘겼다는 건 모든 경우의 수를 허락한다는 뜻.

“저 녀석을 고아로 만들고 싶진 않네요.

빅터를 바라보던 나의 두 눈은 어린 꼬마에게로 향했다.

눈물에 얼룩진 작은 얼굴.

기억조차 사라진 다섯 살의 내가 녀석을 통해 투영되고 있었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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