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화
“그만해 이 녀석아!”
빅터의 고함 소리에 휘두르던 해머가 움직임을 멈췄다.
“아주 쑥대밭을 만들고 있네.”
“…….”
그제야 보이기 시작하는 폭주의 흔적들.
주위는 온통 뒤집히고 갈라져 전장을 방불케 했다.
“묘 자리 파냐? 우물 파? 그냥 자세만 잡아도 되잖아. 이놈아.”
“아하! 그렇군요!”
“그게 뭐라고 감탄하고 있어! 상식 아니냐. 멈추는 것도 기술이고, 그걸 일컬어 제어력이라고 하는 게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가르침을 얻었다면 실체화시키는 것이야 말로 배움의 자세!
부아악―
손에 쥔 해머는 완벽한 곡선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허리 높이에서 깔끔하게 정지.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관성에 부담을 느꼈지만 상관없다.
숙련도는 쑥쑥 올라 20이 되었으니 노력할 가치는 충분했던 것이다.
“네 녀석 때문에 오늘은 그른 것 같구나. 기왕 이렇게 된 거, 저 개울가 근처에서 야영하고 내일 일찍 출발하도록 하자.”
“네, 스승님!”
흐느적거리며 죽어가던 게 불과 10여분 전이다.
한데 이런 쌩쌩한 목소리라니.
발전한다는 것.
그 깊이와 폭이 미약하다고 한들, 어제와 다른 나에게 느끼는 만족감은 이렇게나 컸다.
‘재미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성취감이었다.
특히나 눈앞의 숫자.
행동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반응해 주니 할 맛이 난다는 거다.
‘10,000번을 다 채우면.’
어떻게 될까.
내 몸의 변화는?
내가 내려찍는 해머는 어떤 결과를 불러오게 될까.
상상이 주는 즐거움을 이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저쪽 평지에 천막을 치고 저녁 준비를 하자꾸나.”
“네, 스승님!”
“거 말끝마다 스승님 소리 안 붙여도 된다.”
“네, 스승님!”
어지간히 신났나 보다.
빅터의 말에 크게 답한 나는 천막을 꺼내 평지 위에 펼쳤다.
“이 녀석아 뒤집어졌잖느냐.”
“뭐가요? 여기가요?”
빅터의 잔소리와 함께 야영지는 완성되었고, 어느새 어둠은 내려와 슬그머니 주위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뭐 하는 게냐?”
“빵 나누고 있잖아요.”
저녁 식사를 위해 호밀 빵을 자르고 있었다.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빵만 나누고 있으니 문제 아니냐.”
“그게 왜요?”
빅터는 대답대신 턱짓으로 계곡을 가리켰다.
잔잔히 흐르는 맑은 개울.
수심은 얕고 폭이 넓은 것이 한 눈에 봐도 고기가 많아 보인다.
많아 보이는데…….
‘뭐야.’
빵만 먹기 싫으니 물고기라도 잡아와라 이건가?
쯧, 노인네 식성하고는.
“기다려 봐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해머를 손에 쥐었다.
어딘가 철딱서니 없어 보이지만 어쩌겠나, 스승으로 모시기로 했으니 이 정도 대접은 못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기분이 좋으니까.
‘기왕이면 뭐…….’
딱딱한 빵만 먹느니 조금 번거롭더라도 이편이 나을 것 같다.
물고길 잡는 게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생선을 잡는데 해머는 뭐에 쓰려고?”
“보시면 알아요.”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어 개울가로 내려갔다.
그러곤 수면 위로 올라온 적당한 바위를 골라 가볍게 해머를 내리쳤다.
쩡―!
나름 조절한다고 신경 썼건만 바위는 부서지기 직전이다.
어쨌든 기절한 물고기가 수면 위로 둥실 떠올랐고.
“오호라?”
지켜보던 빅터는 턱 끝을 쓰다듬으며 작은 감탄사를 뱉어냈다.
쩡―!
같은 과정을 반복하길 수차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허연 배를 드러낸 물고기들로 강둑은 이미 너저분한 상태였다.
* * *
탁― 타닥― 탁탁―
장작불 튀는 소리와 함께 생선은 노릇하게 익어 갔다.
고소한 냄새가 사방으로 진동했고, 그사이 빅터는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 왔다.
“네놈의 힘은 유전인 게냐.”
“글쎄요.”
달리 대답할 말이 없었다.
“기억이 없거든요.”
남은 것은 몸뚱어리 하나뿐.
나는 부모의 이름조차 모르고 살아왔다.
“딱하게 되었구나.”
한때는 그랬던 것 같다.
늘 우울하고 어둡던 커다란 덩치의 아이.
나의 아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처럼 크고, 힘이 센 남자였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늘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옛날 얘기지.’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옅은 기억의 파편일 뿐.
“스승님은 어디로 가시던 길이었습니까?”
나는 화제를 바꿔 불편한 기억을 치워 버렸다.
떠올리면 늘 씁쓸했으니까.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는지, 빅터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대신.
“리베로 가던 참이었다.”
돌아온 대답은 리베라는 도시였다.
자유도시 리베.
그 어떤 국가와도 척을 지지 않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정착할 수 있는 모험가와 상인들의 도시다.
하나 문제가 있다.
“거기로 가는 길은…….”
일전에 언급한바 있지만 사실상 길은 없다고 봐도 된다.
돌아갈 수 있는 국경은 폐쇄되어 있고, 남아 있는 유일한 통로는 마물의 천국이다.
하지만 나의 스승이란 사람은.
“대수림(大樹林)이 있잖느냐.”
“마경(魔境)이요?”
“마경은 개뿔, 조금 험한 길이지.”
그곳을 지나갈 생각인 것 같다.
“방법이 없지 않느냐. 정치가라는 놈들이 외정(外政)을 개판으로 해대니, 사방이 다 막힌 게지.”
정치는 모르지만 사방이 막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북쪽으론 사라센 제국과 40년이 넘도록 전시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남쪽으론 카잔 왕국과의 긴장 상태가 몇 년째 지속되는 중이다.
하니 남은 길은 마경이라 불리는 대수림 하나뿐이었다.
“보통은 불가능하겠지만, 나 정도 되면 못갈 것도 없지. 크흐흠.”
그리고 이 양반은 진심으로 지나갈 생각인 것이다.
“빠져나올 때쯤이면, 네 녀석도 크게 달라져 있을 게다.”
뭐가 됐든 변해 있기야 하겠지.
팔 다리가 하나씩 절단됐다던가, 눈알이 뽑혀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제기랄.
저 양반을 만난 지 하루도 안 지났건만, 나의 인생은 벼랑 끝을 향해 치닫는 기분이었다.
“살아서 나오는 건 맞죠?”
“네놈하기 나름이지. 크하하핫.”
내 생각이 틀렸다.
벼랑 끝이 아니라 이미 뛰어내린 것 같다.
“에휴…….”
더 말해 봐야 내 속만 새카매질 뿐.
“식으면 맛없어요. 어여 잡숫기나 하세요.”
잘 구워진 생선을 뜯으며 먹는 즐거움에 모든 걸 잊기로 했다.
* * *
투박한 암회색 석조 건물의 내부.
“로이드 님 들어가겠습니다.”
단풍나무를 깎아 만든 둔중한 문이 열리며, 감색 로브를 걸친 젊은 남자가 미끄러지듯 걸어 들어왔다.
로이드라 불린 금발의 중년 남자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짧게 물었다.
“여전히 소식이 없는가?”
“그러합니다. 달아난 리의 생사는 물론이고, 뒤를 쫒던 돌프의 추적대도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입니다.”
보고를 받은 로이드는 긴 한숨을 내쉬며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일그러지는 남자의 표정.
가지런히 빗은 금발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느낌이 좋지 않다.
이런 식의 불안함은 늘 적중했다.
“카이 형제는?”
“전서구를 날렸으니 내일이면 세비앙 영지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래, 수고했다.”
“편히 쉬시길.”
로브를 걸친 젊은 남자는 들어온 문을 통해 되돌아 나갔다.
로이드는 홀로 남아 먼 창밖을 바라봤다.
한껏 예민해진 그의 신경은, 며칠 전 도주한 남자를 향해 과할만큼 집중되고 있었다.
‘변수가 생겼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답답한 마음을 추스르며 상황을 유추했다.
도망친 남자.
‘리’라고 불리는 그 남자에겐 남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그것은 회귀의 능력.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일주일 전으로 되돌아가는 신비한 이능이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로이드 역시 회귀 전의 시간을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재주는 리가 부리지만, 효과는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인연이 아닌가.
원통함을 품에 안고 살아온 지난 28년.
하늘은 중년이 되어 버린 로이드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로이드는 리에게 충성의 서약을 받았고, 리의 회귀를 통해 원하는 바를 하나씩 이룰 수 있었다.
하나 며칠 전.
그 중요한 리가 도주를 감행했고, 로이드는 추격대를 보내 그의 뒤를 쫒기 시작했다.
― 반항하면 죽여라.
로이드는 추격대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를 죽이면 일주일 전으로 되돌아가니까.
그리고 오늘 오후.
‘잡았구나.’
드디어 시간이 되돌아갔다.
그것은 리가 죽었다는 얘기.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되돌려진 시간은 두 번, 그러나 리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되돌아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고작 5분?’
되돌려진 시간은 고작해야 5분 내외.
죽음을 맞이한 곳을 벗어나지 못한 채 반복해 회귀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리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의 신변에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답답하구나.’
어찌됐건 내일이면 사건의 내막을 알아볼 수 있을 터.
금발의 중년 남자는 마른세수를 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 * *
새벽이슬에 촉촉이 젖은 커다란 가죽 천막.
가려진 입구가 슬며시 열리며 거구의 사내가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끄으으으…….”
바짝 마른 입술 사이로 낮은 비명을 흘리는 젊은 남자.
그 처절한 모습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였다.
“사람 살려…….”
어찌나 고통스럽던지, 아무도 없는 개울가를 향해 저도 모르게 살려 달라 애원했다.
이 끔찍한 고통의 이유는 무엇이며, 치유할 방법은 무엇일까.
“뜨어어어…….”
작은 몸짓 하나에도 이런 얼빠진 소리가 튀어나오니, 지금 상태를 말하자면 영락없는 산송장이었다.
“큭… 끄으으윽.”
고통에 몸부림치는 전신을 달래며 나는 반쯤 젓은 장작에 불을 붙이고 앉았다.
젖은 표면이 마르며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콜록! 끄아아아…….”
나는 기침과 비명을 동시에 지르며 눈물과 콧물을 쏟아 냈다.
누가 볼까 두려운 광경.
“아주 지랄 발광을 하는구나.”
때마침 천막을 나온 빅터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 녀석아, 근육통이 왔으면 이완을 시켜줘야지 뭐하고 있는 게야?”
“근육통이요?”
겪어 봤어야 알 거 아닌가.
살면서 기합 한 번 질러본 적 없는 몸이다.
인간이 다루는 대부분의 물건은 나의 근육을 혹사시키지 못했으니, 지금과 같은 근육통은 내겐 너무 생소한 현상이었다.
“자, 이렇게 몸을 쭉쭉 잡아 늘려 줘야 뭉친 근육이 풀리며 통증이 줄어드는 게다.”
“으으으으…….”
끙끙거리는 내 모습이 답답했는지, 빅터는 다짜고짜 달려들어 나의 팔다리를 잡아 늘렸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노랗게 변해가는 하늘.
사지에서 시작된 통증은 척추를 타고 올라가 정수리를 관통했다.
“쯧쯧…….”
발작하듯 널브러지는 나를 보며 빅터는 얼굴을 구겼다.
“오러를 운용해 근육을 달래 볼 테니 거기 앉아 보거라.”
그래도 제자라고 어찌해 줄 생각은 있는 모양이다.
“크흐윽…….”
가부좌를 틀고 앉은 나의 등 뒤로 빅터의 두툼한 손이 지긋이 눌려 왔다.
“힘을 빼고 호흡은 규칙적으로, 배꼽으로 숨을 쉬듯 가능한 깊게 들이마시면 된다.”
일러 준 요령에 따라 깊은 호흡을 이어 가길 몇 차례.
정체를 알 수 없는 따듯한 기운이 스며들 듯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
고통은 여전했으나 그 세기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이제 조금 살 것 같다?
이쯤 되니 어제 저녁의 일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 힘들어 죽겠다더니 살만한가 보구나. 흐흐흐… 뭐, 오늘 밤은 푹 쉬거라. 지옥도 쉬어 가며 맛봐야 깊은 맛을 알 테니까.
잠들기 전 빅터는 실실 웃으며 이런 얘기를 했었다.
그 지옥이 이런 지옥일 줄이야…….
마차를 끌던 괴로움은 이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흐음…….”
수상한 한숨을 내쉬며 빅터는 손을 내렸다.
지난밤의 상념은 어딘가로 사라졌고.
“이상하군.”
오러 운용을 멈춘 빅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잠시 움쩍거리던 빅터는.
“네놈… 코어가 박살나 있구나.”
써 본 적도 없는 뭔가를 이미 망가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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