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목숨 99개-5화 (5/203)

05화

이럴 수가.

사람이 마차를 끌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심지어 나는.

― 오, 무척 잘 어울리는구나. 이반.

제키에게 칭찬까지 받았다.

그 와중에 ‘그래요?’라고 답한 나는 뭐하는 놈일까.

간간히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지나갔다.

― 어라? 저건 무슨 짐승이지?

염병하고, 어떤 눈먼 인간은 저런 개소리도 지껄였다.

‘미쳤어.’

이런 짓은 전쟁 포로에게도 안 시킬 것이다.

“어떠냐. 이제 몸 쓰는 기분이 나는 것 같으냐.”

몸을 쓰는 정도가 아니라, 영혼이 갈려 나가기 직전이다.

이게 아무리 소형 짐마차라고는 해도 300㎏는 넘을 테니까.

그것도 모자라 지금 내 몸 상태는.

“이 고삐 좀 어떻게 해 봐요!”

몸을 칭칭 감은 고삐가 사람을 두 번 죽이고 있었다.

사람에게 고삐라니.

누가 봐도 이 모습은 영락없는 짐말이었다.

“이 녀석아, 나도 손맛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노인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더욱 힘차게 고삐를 당겼다.

“인간의 몸이란 참으로 간사하거든.”

“그게 뭔 소리에요?!”

“근육이란 게 말이다. 살 만하다 싶으면 성장을 하지 않아.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야 덩치를 불리기 시작하지.”

내 말이 그 말이다.

나야말로 이러다 죽겠다 싶으니까.

처음엔 끌고 걸을 만했다.

마차가 무겁다 한들, 바퀴가 있으니까.

하나 문제는 언덕, 혹은 내리막길.

― 크아아아악!

나는 얼굴이 터지도록 전신에 힘을 쥐어짜야 했고.

― 어어어어어!

깔려 죽지 않기 위해, 기를 쓰며 버텨야했다.

그 결과 지금 내 상태는.

“조금만 쉬었다 가요!”

죽음의 강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왜? 고작 그 거릴 걷고 벌써 지친 게냐?”

고작이라니!

이 꼴을 하고 걸어온 시간이 장장 두 시간이다.

“아니, 시작부터 이러는 법이 어디 있어요. 뭘 할 거면 최소한 귀띔이라도 해 줘야 준비를 할 거 아니에요.”

“몸뚱어리 멀쩡한데 무슨 준비가 필요하단 말이냐? 수련이라는 건 날 잡아서 따로 하고 그러는 게 아니다.”

“수련이고 뭐고, 더 이상은 못 걷겠어요.”

“쯧쯧, 그러면 저 앞에 보이는 큰 나무에서 쉬자꾸나.”

“그게 벌써 몇 번째에요!”

그렇게 지나친 큰 나무만 벌써 네그루에, 거대한 바위가 세 개다.

부들거리는 팔다리를 잡아끌며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

“죽겠냐?”

더 이상은 무리였다.

“말 걸지 마요. 진짜 죽을 것 같으니까…….”

“큭큭큭, 이제야 사점(死點)이 온 모양이구나. 이번엔 진짜로 쉴 터이니 멈추지 말거라. 여기서 포기하면 지금까지 고생한 것이 물거품 되느니라.”

“크으윽.”

“이제껏 살아온 세상은 네놈에겐 너무 가벼웠을 게다. 뭘 해도 힘에 부치는 일이 없었을 테니 늘 제자리걸음이던 게지.”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사람의 노동력을 줄이기 위해 발전해 온 것이 문명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 이런 힘을 쏟아 부을 일이 뭐 그리 많았겠나.

“바꿔 말하자면, 네 녀석의 힘은 일체 단련되지 않았단 얘기다.”

앞으로 스무 발자국.

덜덜 떨리는 두 다리는 이제 경련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 버텨라. 이 고비를 넘기는 것이 네놈의 첫 번째 수련 과제다.”

“끄아아아아!”

팔뚝을 휘감으며 부풀어지는 굵은 혈관들.

남아 있는 모든 기력을 쥐어짜 천근같은 걸음을 내딛었다.

어느덧 주위는 고요해 헐떡이는 나의 숨소리만 가득해졌고.

나의 시야는 좁아져 한 점으로 변해 갔다.

‘하아… 하아…….’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버티는 걸까.

저 노인이 시켜서?

왜?

나의 빚을 정리해 줬으니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럴지도 모른다.

나의 의식 어딘가에, 나도 모를 노예근성이 단단히 뿌리내렸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런 존재니까.

주어진 삶을 의심하지 않는 순간, 사람은 길들여지는 법이다.

“정 못 견디겠으면 여기서 멈춰도 상관없다. 하지만 말이다. 고통이 지나가는 순간, 너는 네 자신을 미워하게 될 게다.”

망할 노인네… 주절주절 말은.

누가 못 견딘데?

고작 몇 발자국만 더 가면 되는데 이제 와서 포기한다고?

장난 하나.

사람을 우습게보지 말라고…….

쿠웅―

나는 뒤집히는 세상을 느끼며 빨려들 듯 바닥으로 쓰러졌다.

* * *

‘…….’

기절한 건가.

흩어 진 정신이 돌아오며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향했다.

숫자는 여전히 97.

다행스럽게도 죽다 살아난 건 아닌 듯싶다.

“이제 정신이 드는 게냐.”

낮게 울리는 걸걸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노인을 바라보았다.

“제법 근성이 있더구나.”

쌓아 올린 장작에 불을 붙이며, 백발의 노인은 덤덤하게 말해 왔다.

‘근성이라…….’

나는 대답 대신 시선을 넓혀 주위를 살폈다.

아직 바뀌지 않은 낮과 밤.

들판은 오렌지색 노을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난건가.’

보아하니, 흘러간 시간은 대강 그 정도인 듯하다.

“소감이 어떠냐.”

“저승 문턱을 살짝 밟은 것 같네요.”

“크하하하, 첫 경험치곤 아주 제대로 들어갔다 왔구나.”

그렇다.

살면서 마주한 첫 번째 한계였다.

농담처럼 시작된 이 말도 안 되는 경험은, 나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끌어 새로운 눈을 뜨게 했다.

그것은 오기와 집념.

반드시 해내고 싶다는 정체불명의 호승심이었다.

“무예란 그런 것이다.”

웃음을 거둔 노인은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목전의 죽음을 경험할 때마다 자신의 한계는 다음의 영역으로 진화하지.”

“…….”

“그것이 무인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한계에 끝없이 도전하는 자. 그리고 넘어서는 자… 네놈은 오늘, 그 첫걸음을 땐 것이다.”

생각해 보니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탐한 적도 없고, 뺏으려 애쓴 적도 없었다.

그저 주어진 대로, 시키는 대로.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 발버둥친 기억이 없었다.

“궁극의 무인이라 칭송받던 자. 그들 중 명문 귀족의 혈통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왜 그런지 아느냐?”

그야 당연히 모른다.

그런 것에 관심을 두고 살아온 인생이 아니었으니까.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었다.

“그것은 절실함의 차이지. 가진 것 없는 이가 세상을 쥘 수 있는 유일한 활로였기 때문이다.”

“세상을 쥔다…….”

“그래. 잘나신 귀족마저 발아래로 둘 수 있는 유일한 길이지.”

홀린 듯 따라나선 여정이지만 그 정도를 바란 건 아니었다.

그저 지겹고, 지치고,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어딘가로 데려다 준다면, 그래서 좁은 대장간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겨우 그 정도.

손바닥만 한 하늘에 갇혀 살던 나의 꿈이란 고작 그 정도였다.

한데 그 이상의 길이라니.

내가 탐해도 되는 걸까?

“아무튼 인상적이었다.”

상념에 잠긴 나의 귓가로, 걸걸한 노인의 목소리가 다독이듯 들려왔다.

“기절할 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다니. 네놈… 가르치는 맛이 꽤나 쏠쏠할 것 같구나.”

노인은 코웃음을 치며 장작을 뒤적거렸다.

“빅터 크로제.”

“네?”

“네놈을 가르칠 스승의 이름이다.”

노인은 자신의 이름을 빅터라고 소개했다.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이름이 주는 느낌과 생김새가 묘하게 어울렸다.

“1000명에 홀로 대적한 자.”

“누가요?”

“닥치고 그냥 들어라.”

빅터는 고개를 치켜들며 말을 이어 나갔다.

“검의 달인, 고고한 아케른의 별, 헤모니아의 야수 카르간을 쓰러뜨린 자…….”

참으로 쉽지 않은 무인의 길이다.

이것저것 넘어야 할 것도 많고, 들어야 할 것도 많은 것 같다.

“외웠냐?”

“외워야 해요?”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 빅터.

“나의 이명이니 외워 두어라.”

“그걸 왜…….”

“왜는 이 녀석아. 위대한 스승을 소개할 때 달랑 빅터입니다! 하고 만단 말이냐!”

요는 그거다.

어디 가서 자신을 말할 때 방방 띄워달라는 것.

이를테면.

“그러니까… ‘1000명에 홀로 대적한 검의 달인, 고고한 아케른의 별이자 헤모니아의 야수 카르간을 쓰러뜨린 저의 스승, 빅터 크로제입니다.’라고 말하라는 건가요?”

“그렇지! 고놈 뇌까지 근육으로 들어찬 건 아니로구나. 하는 짓이 마음에 드니, 내 특별히 한 수 지도해 주마.”

말을 마친 빅터는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는 해머를 꺼내 나의 발 앞으로 집어던졌다.

“네놈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보여 봐라.”

그래 봤자 내려치기 하나다.

손에 쥐고 휘두른 무기라곤 해머가 전부이고, 할 줄 아는 망치질도 죄다 내려치는 것뿐이다.

하여 긴 고민 없이 해머를 주워들었다.

“흠…….”

하지만 나의 손은 해머를 바로잡지 못했다. 고갈된 체력이 아직 회복되지 못한 탓이었다.

“뭐하는 게냐. 어서 휘둘러 보거라.”

마음이야 그러고 싶다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나 아예 불가능 하냐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기에.

“끄으읍!”

나는 기합과 함께 해머를 번쩍 들어 크게 휘둘러 내려쳤다.

콰앙!

한데 이상하다.

“…….”

뭐야, 왜 아무 반응이 없지?

응당 떠올랐어야 할 숙련도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다시.

부아아악― 쾅!

“……”

역시나 숙련도는 답이 없었다.

그 대신 돌아온 반응은.

“이런 미련한 녀석을 봤나. 기껏 힘을 빼놨더니 죽어라 용을 쓰고 있네.”

빅터의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이놈아, 힘만 잔뜩 쓴다고 능사가 아닌 법이다. 자고로 무거운 무기일수록 휘두르는 요령은……”

말을 멈춘 빅터는 내게서 해머를 가져갔다.

그렇게 자루를 쥔 손목을 가볍게 놀려 빙글빙글 해머를 돌리더니.

부아아악―

벼락같이 휘둘러 바닥을 내리쳤다.

쩌어어어억!

해머는 채찍처럼 날아가 지면을 강타했고.

“헐……”

발아래 있던 암반은 마른 진흙처럼 힘없이 갈라졌다.

“힘이 아닌, 무게를 이용하는 것이다. 힘을 더할수록 이용할 무게가 사라지니, 속도는 느려지고 파괴력은 반감되느니라.”

꿀꺽……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같은 동작, 다른 느낌.

달리 물어볼 것도 없다.

그것은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극강의 단단함이었다.

“힘은 해머를 쥔 손에만. 팔은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몸과 어깨를 따라가는 것이다.”

빅터가 보여 준 이미지를 떠올렸다.

부드러운 회초리 같던 그의 일격.

느슨히 뒤를 따르던 해머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본색을 드러냈다.

느린 듯했으나 휘몰아쳤고, 타격 직전에 폭발하는 응축된 힘이었다.

“후우…….”

나는 손목에 힘을 빼고, 손끝과 바닥으로만 자루를 움켜쥐었다.

서서히 올라가는 거대한 해머.

어깨 위에 걸치진 놈의 무게를 느끼며 하체부터 시작해 몸통과 두 팔로 가속을 이어 나갔다.

‘아…….’

해머의 무게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고점을 지난 놈을 당겨, 잡아채듯 바닥에 때려 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

쩌어어어억―

해머는 빨려 들어가듯 지면에 들이박혔고.

[완벽한 동작으로 인해 숙련도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8/10,000]

기다렸던 숙련도는 두 배의 결과로 돌아왔다.

“이놈, 제법이구나!”

지켜보던 빅터는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잔뜩 상기된 표정이라니.

거미줄처럼 갈라진 암반을 보며 빅터는 아이처럼 활짝 웃어 재꼈다.

“크하하하하하! 네놈,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던 게야!”

다시 위로 향하는 묵색의 해머.

콰아아앙!

거대한 녀석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나는 생각했다.

[완벽한 동작으로 인해 숙련도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10/10,000]

이거…….

[완벽한 동작으로 인해 숙련도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뭔데 이렇게.

[완벽한 동작으로 인해 숙련도가……]

재미있는 거냐고.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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