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화
콰지직―
방패를 비집고 들어간 해머는 사납게 녀석의 가슴을 두들겼다.
“끄어어!”
이어지는 놈의 비명을 한 귀로 흘리며, 괴한의 정수리를 향해 검은 선을 수직으로 그어 내렸다.
부아아악―!
이 또한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궤적.
[내려찍기 숙련도 2/10,000]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머리는 터져 버렸고, 숙련도의 등장으로 풍차 안의 상황은 종료되었다.
‘이건 또 뭐야.’
환각에 환청…….
다시 환각이라니.
머리를 몇 번 처 맞았더니 이제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하아―!”
쏟아 내듯 긴 한숨을 쉬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손끝에 남은 오묘한 감각.
타인의 생명을 끊어 낸 살인의 잔재에 저도 모르게 몸서리가 처졌다.
‘젠장…….’
얼결에 두 명이나 죽여 버렸다.
물론 내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니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 있겠지만.
역시나…….
이런 기분은 더럽다.
‘살인이라…….’
익숙해지면 그만둘 수 없다는 그것은 확실히 나에겐 버거운 경험이었다.
‘뭐… 서로 주고받은 거니까.’
마음 쓰지 말자.
어차피 내 머리통도 두 번이나 터져 나갔으니 피차일반이다.
지금은 이런 감정에 휘둘릴 게 아니라 다른 걸 봐야 한다.
제키에게 손짓을 한 뒤 문밖을 살폈다.
“…….”
정체가 뭘까.
어떤 놈들이기에 영주의 관내에 들어와 백주 대낮부터 사람들을 도륙하고 다닌단 말인가.
그것도 영주의 성 앞마당에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도적 때 같지는 않은데.”
곁으로 다가온 제키는 낮은 소리로 읊조렸다.
“복장도 그렇고… 무력 수준도 도적 따위하고는 비교가 안 된단 말이지.”
하기야 오러를 쓰는 도적 같은 건 들어 본 적도 없다.
4성급 오러 유저만 돼도 영주 근위대의 간부급이 아닌가.
굳이 험하게 살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눈에 들어오는 인원은 대략 여덟 명.
놈들의 실력을 가늠할 수도 없거니와, 저 많은 사람들과 싸운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다.
‘꼬리라도 밟히게 되면.’
그야말로 난장판이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성내에까지 피해가 번질 수 있다.
최선의 방법은 접촉을 피해 성으로 돌아가는 것.
이후는 외성 경비대에게 넘기면 될 일이다.
“아저씨, 저기 뒤로 가요.”
제키와 나는 뒷문을 빠져나와 낮은 관목 아래로 기어갔다.
“생각보다 많이 들어와 있네.”
“그러게요.”
정체불명의 괴한들은 골목뿐 아니라 마을 이곳저곳으로 넓게 퍼져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빠져나갈 틈이 없네요.”
“조금만 기다려 보자. 어차피 놈들이 찾는 건 죽은 그 남자가 아니겠냐. 조만간에 풍차로 다들 몰려갈 게다.”
바짝 엎드린 제키와 나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마을 입구를 향해 이동했다.
“그런데 이반, 아까 그 녀석들이 뭘 내놓으라고 한 거야? 네가 뭘 가져갔어?”
“미친놈들이죠.”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시간을 되돌리니 마니, 죽었다 살았다, 환각에 환청에…….
이런 얘길 누가 믿어 주겠나.
‘개소리 하지 마!’
이런 욕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어떤 반응이 올 때가 됐는데…….
“발견한 것 같구나.”
역시나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놈들이 풍차로 향하는 것을 확인하며, 우리는 마을 어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 왔다.’
이제 저 모퉁이만 돌면 성으로 이어지는 가도가 나온다.
20보, 10보…….
이제 도착 직전!
그대로 모퉁이를 돌아선 나는.
“시발 깜짝이야!”
경기를 일으키는 괴한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말았다.
“뭐, 뭐야, 이 새끼는? 오우거냐?”
미친놈.
그딴 헛소리는 다섯 살까지만 봐준다.
그러니까 네놈은.
부아아악―
콰직!
여기서 사라져 줘야겠다.
[내려치기 숙련도 3/10,000]
피륙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의문의 숫자는 또다시 증가했다.
‘뭐냐고?’
내 몸에 생긴 이상한 변화들.
덕분에 나는 생명을 거뒀다는 죄책감에서 한걸음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저 글자들은 거슬렸다.
그중에도 내려찍기.
이것은 반복 행위를 암시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표기 자체가 숙련도 아닌가.
‘혹시…….’
이런 걸 말하는 건가?
실마리를 잡은 나는 손에 쥔 해머를 들어 수직으로 내려찍었다.
쾅!
뭐지?
아무 일도 없는데?
쾅! 쾅! 쾅! 쾅!
몇 차례 더 내려쳐봤지만 숙련도는 변하지 않았다.
대신 돌아온 것은.
“지, 진정해라, 이반. 다 끝났어.”
제키의 뜨악한 표정뿐이었다.
‘흠…….’
이름부터가 내려치기라 했으니 이렇게 내리찍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거한을 때려잡았을 땐 아무 일도 없었다.
같은 동작에 어떤 차이가 있었다는 걸까?
그렇다면.
“후…….”
“아니, 이반. 놈들도 다 죽었는데 이제 진정해도 되잖아아아악!”
콰아아앙―
[내려치기 숙련도 4/10,000]
콰앙!
[내려치기 숙련도 5/10,000]
콰앙!
[내려치기 숙련도 6/10,000]
역시,
정확한 동작이 핵심이었다.
하나 이 사실을 모르는 제키의 입장에서는 격렬한 싸움에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나 보다.
“아이고, 정신 차려 이놈아!”
“아…….”
그제야 나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반… 진정해라. 사람을 해친다는 게 분명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만… 그래도 너 아니었으면 우린 다 죽었을 게다. 그러니 죄책감 같은 건 접어 두고 마음을 좀 추스르는 게 어떻겠냐.”
하기야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누가 봐도 미친놈처럼 보일 터다.
머리가 터져 버린 시체 한 구.
그 앞에 서서 바닥에 해머를 때려 박는 거대한 덩치.
아무리 좋게 봐도 정신 나간 살인마였다.
“죄송해요, 아저씨. 전 괜찮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래그래, 훌훌 털어 버려라.”
마치 기다렸다는 듯 눈앞의 문자는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걸 믿어 줄 사람이 있을까.
지금 내가 보고 듣는 걸 말한다면 누구나 미쳤다고 말할 것이다.
특히나 이것.
숫자 97에 얽힌 의문을 말한다면 반응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확실히 이건.’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하나 이쯤 되면 눈치 챌 만하다.
죽었다 살아나는 것.
아니, 되돌아가는 게 맞는 건가?
내 추측이 맞는다면.
저 숫자의 비밀은 횟수다.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반복 횟수.
‘그렇다는 건… 남은 목숨이 97개?’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그런 것이, 이미 나는 두 번이나 죽었다 되돌아왔다.
거기에 숙련도니 뭐니.
심지어 언뜻 지나간 말로는 둔기 마스터리가 어쩌고 하지 않았었나.
‘의심의 여지가 없지.’
나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물론 본의 아니게 흑발의 남자에게서 강탈한 것이 되었지만, 그 또한 내가 원해서 한 일은 아니니까.
하필 내 앞으로 달려온 그 남자의 잘못이다.
‘어쨌거나.’
뭔가 시작돼 버린 것이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말이다.
“이제 없는 것 같죠?”
하여간 위기의 상황은 일단락된 것 같았다.
“그런 것 같구나. 그런데 이반, 그 흉물을 들고 돌아갈 셈이냐?”
“아, 이거요…….”
시뻘건 육편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거대한 해머.
생긴 건 이래 보여도, 만듦새와 재료는 일류급이다.
“흠… 괜스레 들고 다니다 시선을 끌까 두렵구나.”
“…….”
제키의 말이 맞다.
아쉽지만 골칫거리가 될 확률이 무지하게 높은 녀석이다.
애초에 나 같은 놈이 들고 다닐 무기가 아니었다.
“이반.”
“알겠어요. 버릴게요.”
근처 풀숲을 향해 해머를 집어던진 나는, 그대로 발을 놀려 성문을 향해 달려갔다.
* * *
“거참, 희한한 놈일세.”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남자가 피 묻은 해머를 노려보았다.
“오러를 쓰는 것도 아닌데.”
초로의 남자는 느긋한 동작으로 허리를 숙였다.
술통만 한 거대한 해머를 가볍게 주워 들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이걸 순전히 힘만 가지고 휘둘렀다 이거지…….”
족히 40㎏는 돼 보일 해머가 남자의 손에서 회초리처럼 팔랑거렸다.
“재미있는 녀석일세.”
남자의 안광이 이채롭게 빛났다.
해머를 쥔 채 마을 한복판으로 나온 노년의 남자는 주춤거리는 한 무리를 향해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콰지지직―
마을 주민을 학살하던 정체불명의 괴한들.
놈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마른 짚단처럼 힘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 * *
“우아∼ 이반이다!”
“뭐하다 왔어, 이반?”
“업어 줘, 이반!”
아이들의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나는 다시 대장간으로 돌아왔다.
“꺄하하하하.”
눈만 마주치면 좋다고 웃어 대는 꼬맹이들.
“울 엄마 안 죽일 거지?”
“그치만 이반에게 죽고 싶다고 했잖아?”
“아빠한테 물어볼까?”
저, 저 녀석들이 큰일 날 소리를!
“이놈들! 여기서 놀면 안 된다고 했지!”
“우와아 늙은 오크다!”
데릭의 등장과 함께 몰려든 아이들은 어디론가 우르르 사라졌다.
“앞마을 때문에 경비대가 발칵 뒤집혔더라, 너는 뭐 아는 것 없냐?”
“글쎄요. 제가 마을을 나온 이후에 벌어진 일이라 잘 모르겠어요.”
내 신분을 염려한 제키의 배려였다.
― 경비대에 신고는 내가 할 테니까,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 걸로 해라.
고아인 내가 연류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불편해질 테니까.
사전에 말을 맞춘 대로 나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람들이 떼로 죽었나 보던데…….”
“그래요?”
“마을 사람들 말고도 외지인 열댓 명이 같이 죽었다더라.”
“외지인이요?”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처리한 건 괴한 세 명에 놈들이 죽인 흑발의 남자 하나다.
한데 열댓 명이라니.
“마을 한복판에서 떼죽음을 당했다더라. 영주 성 앞에서 이 무슨 해괴한 일인지 모르겠구나.”
나야말로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제키와 내가 나온 뒤 누군가가 그곳에 들어갔다는 건데.
‘그놈들을 다 쓸어버렸다고?’
아… 그만.
이제 그만 생각하자.
이미 벌어진 일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찬 하루다.
떼로 죽었다면 차라리 잘된 일이 아닌가.
생각을 갈무리한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장간 정리를 시작했다.
“…….”
그런데 말이다.
거푸집을 만들던 모래와 잡다한 물건들을 치우자니 문득 아쉬움이 몰려왔다.
손에 착 감기던 거대한 해머가 눈에 밟히는 것이다.
‘괜히 버리고 왔나?’
너무 거대해 눈에 띄기도 했고, 여러모로 찝찝해 버리고 왔다.
하나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아쉬웠다.
그 정도 크기라면 재료 가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터.
‘묵철로 만든 것 같았는데.’
더군다나 강철이 아닌 묵철이었다.
모르는 사람의 눈엔 그저 시커먼 철로 보이겠지만, 내 능력으론 구할 수 없는 희귀한 물건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아쉬울 수밖에.
‘흠…….’
다시 가서 주워 와?
아니다… 그런 걸 들고 다니다간 소동에 휘말릴 게 빤했다.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 건가.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은 화를 불러오는 법이다.
그러니 버리고 온 것은 백 번 생각해도 잘한 짓이었다.
하지만…….
‘…아깝네.’
아까운 건 아까운 거다.
얼마나 아까운지, 보일 리 없는 해머가 여전히 눈앞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하…….”
어지간히 욕심나는가 보다.
헛것이 다 보일 정도라니…….
잠깐만.
오락가락한다고?
해머가?
“어억?!”
이게 왜 여기 있지?!
버리고 온 그거 맞는대?
“왜? 이놈 손맛이 그립더냐.”
“뜨어어어!”
난데없는 목소리에 나는 괴상한 소릴 대며 뒤로 자빠졌다.
잇따라 들려오는 칼칼한 저음.
“허허 그놈 참 요란하구나.”
목소리의 주인은 실없이 웃으며 해머를 내려놓았다.
“누, 누구세요?!”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남자의 정체를 물어보았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노인이다.
한데 뭐 하는 사람이기에 저 무거운 걸 한손으로 휘두르는 걸까.
“할 얘기가 있으니 거기 잠시 앉아 보게나.”
“얘기요? 저하고요?”
“그래, 자네 말일세.”
“주문이라면 여기 주인아저씨가…….”
하지만 데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젠장.’
이 양반은 또 어디로 사라진 걸까.
필요할 때 안 보이는 걸 찾으라면 개똥과 데릭이 단연 최고일 것이다.
“주문이 아니라, 물건을 돌려주러 왔다네.”
“돌려준다고요?”
“이것 말일세.”
백발의 남자가 내민 건 묵철의 해머였다.
망치 머리가 술통만 한 해머.
묵색의 무광이 매력적인 야수 같던 그 놈이었다.
“자네의 전리품이 아니던가. 이렇게 귀한 걸 아무 데나 버리고 다니면 쓰나.”
이런 젠장!
꼬리를 밟힌 건가?
“누구십니까?”
태연하게 상대하려 했건만, 얼굴에 감도는 긴장을 어쩌진 못했다.
이 남자, 백발이 성성하니 중후한 노인처럼 보이지만…….
‘그 자식보다 몇 배는 위험해.’
해머의 주인보다 월등히 높은 경지를 가지고 있었다.
“오호라? 지금 내 투기를 읽은 겐가? 이거 볼수록 탐나는구만, 하하하하!”
“…….”
웃음소리마저 쩍쩍 귀에 박히는 게 이 노인은 진짜 괴물이다.
“네놈, 빚이 꽤 많다는 소문이 있더구나. 하여 무보수로 일한다던데. 사실이냐?
“맞습니다. 그런데 그게 노인장과 무슨 상관입니까?”
“상관있다마다.”
“예?”
“네놈 빚을 갚아 줄 생각이거든.”
지랄하고… 오늘 무슨 날인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대로 손잡이를 부여잡았고.
“나가시는 문은 이쪽입니다.”
대장간 문을 열어젖힌 나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