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화
“이거 놔! 내 능력은 저 새끼가 다 가져갔다고! 이제 난 쓸모없으니까 저놈을 잡아 이 멍청한 자식아!”
검은 머리의 남자는 쉴 새 없이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요점은 자신의 능력을 나에게 빼앗겼다는 것.
‘뭔 개소리야…….’
저리도 펄쩍 뛰고 있으니 오히려 내가 가서 묻고 싶은 심정이다.
뺏겼다는 능력이 도대체 무엇인지 말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건 그것이 아니었다.
‘이건 또 뭔데.’
의미를 알 수 없는 두 자리의 숫자가 덩그러니 눈앞에 떠있기 때문이었다.
[99]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아무리 살펴봐도 이것은 명백하게 숫자 99였다.
눈을 깜박이고 도리질을 처도 사라지지 않았고, 손을 휘젓고 발광을 해도 변함없이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환장하겠네.’
의미 불명의 두 자리 숫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존재를 드러냈다.
손댈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
나의 이해는 물론이요, 그 어떤 물리적 영향도 거부하고 있었다.
‘어쩌라고!’
말 그대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애초에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한 걸까?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복잡한 심경과는 별개로, 두 남자의 실랑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능력을 뺏겼다는 말인가?”
“그래! 저 녀석에게 옮겨 갔어.”
“흠… 확인해 보면 알겠지.”
거한은 쥐고 있던 해머를 머리 위로 높게 치켜들었다.
느껴지는 무게는 대략 40㎏ 내외.
저것을 자루 끝만 잡고 들어 올린다는 것은, 녀석도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까마득히 넘어섰다는 얘기다.
“뭐, 뭐하는 거야!”
검은 머리의 남자는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하나 거한은 대답 대신 커다란 해머를 무심히 내질렀다.
퍼억―
그렇게 남자의 머리는 사라졌다.
으깨진 뇌수와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눈을 어지럽혔다.
“이래도 되는 거야?”
“몰라. 말 안 들으면 그냥 죽여 버리라고 했어.”
“아…….”
시신을 앞에 둔 거한과 또 다른 괴한은, 뜻 모를 대화를 나누며 몸에 달라붙은 육편을 털어 냈다.
그러고는 시선을 돌려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젠 네 차례네?”
거한은 나의 눈을 바라보며 비릿한 표정을 지었다.
섬뜩하게 빛나는 회색빛 안광과 번들거리는 해머.
다가오는 남자의 모습에 나는.
꿀꺽…….
절로 마른침을 삼키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네가 가져갔냐?”
“뭘 가져가?”
“그거.”
“그게 뭐냐고.”
거한의 눈썹이 미묘하게 움찔거렸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해 헛웃음을 흘렸다.
올려다보는 느낌이 이런 건가?
늘 타인의 정수리를 바라보던 나의 시선은 고작 남자의 어깨에 머물러 갈 곳을 찾고 있었다.
“너 그러다 죽는다.”
흑발의 머릴 으깬 해머는 이제 내 얼굴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까짓 거.’
막으면 그만이다.
힘이라면 나도 부족하진 않으니까.
나는 두 손을 뻗어 녀석의 해머를 가로 막았다.
하나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고.
콰지직―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나의 세상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억?!’
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벼락이 꽂히듯 눈앞이 번쩍이더니, 단단하던 나의 두 다리는 힘없이 무너지며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다.
나는 이제 죽는 것이다.
살면서 처음 겪어 보는 이 무력감은 황당하게도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죽는다고 경고 했지?”
녀석은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해머를 들어 올렸다.
그제야 보이는 옅은 기운.
어깨위로 올라온 희미한 아지랑이에 나는 허탈한 숨을 내 뱉었다.
녀석은 오러 사용자…….
애초에 이것은 시작해선 안 되는 싸움이었다.
“젠장.”
씁쓸한 푸념이 저도 모르게 흘러 나왔다.
나도 고아가 아닌 번듯한 집에서 자랐더라면.
그래서 정식으로 검술을 배웠더라면.
부아악―
이토록 허망하게 죽진 않았을 테니까…….
비루한 나의 28년은 그렇게 마지막을 고했다.
* * *
얼굴 앞으로 들이닥치는 거대한 두 자리의 숫자.
[98]
눈앞을 가득 메운 두 글자는 어느덧 사라져 왼쪽 눈가에 자리 잡았다.
정신이든 내가 처음으로 한 행동은.
“끄어어어어!”
주변 공기를 모조리 집어삼키며 거칠게 호흡을 이어 가는 것이었다.
‘뭐, 뭐야?’
새카맣게 물들어 가던 세상이 다시 밝아지며, 내가 아는 익숙한 사물들이 하나둘 시야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남자.
“이거 놔! 내 능력은 저 새끼가 다 가져갔다고! 이제 난 쓸모없으니까 저놈을 잡아 이 멍청한 자식아!”
검은 머리의 남자는 똑같은 모습으로 발버둥을 치며 고함을 질러 대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꿈을 꾼 건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낯설지가 않다.
심지어 두 남자의 이어질 대화도 이미 알 것 같았으니.
‘능력을 뺏겼다는 말인가?’
“능력을 뺏겼다는 말인가?”
이들은 내가 아는 미래를 너무도 똑같이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래! 저 녀석에게 옮겨 갔어.”
“흠… 확인해 보면 알겠지.”
거한은 쥐고 있던 해머를 머리 위로 높게 치켜들었다.
젠장.
다음 장면이 너무 빤해 전신에 소름이 돋아날 지경이다.
“뭐, 뭐 하는 거야!”
사색이 된 검은 머리의 남자.
설마, 내리치는 것까지 똑같진 않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부아악!
해머는 크게 호를 그었고.
퍼억―
으깨진 뇌수와 검붉은 피는 또다시 비산하며 나의 눈을 어지럽혔다.
“이래도 되는 거야?”
“몰라. 말 안 들으면 그냥 죽여 버리라고 했어.”
“아…….”
거한과 또 다른 괴한은 몸에 붙은 육편을 덤덤히 털어냈다.
다시 마주하게 된 거한의 눈동자.
“이젠 네 차례네?”
녀석은 둥그런 눈을 뒤룩 거리며.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시부럴……
이거 그거다.
예지몽 그런 거.
내가 몇 분 뒤의 미래를 본 거고, 그 미래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네가 가져갔냐?”
이미 겪었던 일을 다시 겪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만약 그마저도 아니라면.
“뭘 가져가?”
“그거.”
나는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 그러다 죽는다.”
“뭔지 알아야 대답이라도 해 줄 거 아니야?!”
부아악―
하… 이 타협 없는 돼지 새끼.
사납게 들이닥친 녀석의 해머는 이번에도 무심히 나의 머리를 두들겼다.
* * *
얼굴로 날아드는 두 자리 숫자.
이번에는 97이다.
“끄어어어어어…….”
밝아지는 세상을 느끼며, 나는 또 다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예지몽은 지랄.’
무슨 꿈을 꾸다 죽고, 다시 또 꾼단 말인가.
이것은 꿈 따위가 아니다.
미래를 보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이거 놔! 내 능력은 저 새끼가 다 가져갔다고! 이제 난 쓸모없으니까 저놈을 잡아 이 멍청한 자식아!”
나는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눈앞의 이 숫자.
[97]
‘줄어들었어.’
의미 불명의 숫자는 반복된 횟수만큼 차감되어 있었다.
나름의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복잡한 고민은 일단 뒤로 미뤄 버렸다.
이유는 하나.
어쨌건 나는 살아 있고, 내 앞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남아야 한다.
만약 넘어서지 못한다면…….
콰직―!
저 흑발의 남자처럼, 바닥을 기며 허연 뇌수를 흩뿌리게 될 것이다.
“네가 가져갔냐?”
해머를 쥔 거한이 다가오며 물었다.
“뭘 가져가?”
“그거.”
“이 병신 새끼가 아까부터 주어를 자꾸 빼먹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그러다 죽는다?”
이 자식은 오러 유저.
최소 4성급 기사이며, 평범한 인간의 범주에선 상대할 방법이 없다.
하나 나는 알고 있다.
“죽여 봐, 돼지 새끼야.”
놈의 공격이 어디로 향하고, 어떤 궤적을 그리는지.
부아악―
그러니 이렇게 가볍게 피해 놈의 품으로 파고드는 데 성공하면.
“흐읍!”
녀석의 발뒤축을 잡아 허공으로 뽑아 올릴 수 있다.
“어라……?”
두 팔을 휘적거리던 거한은 얼빵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처박혔다.
그에 놈의 해머를 빼앗았을 수 있었으니. 나의 두 손은 놈의 머리위로 묵색의 쇳덩일 높게 치켜들었다.
“느낌 오지?”
나는 전력을 다해 해머를 휘둘렀다.
녀석의 오러가 어디까지 보호해 줄지는 모르겠다만.
콰지직―
이 한 방에 놈의 얼굴은 피떡이 되어 버렸고.
부아아아악― 쾅!
두 번째 공격에 녀석의 얼굴은 형체를 잃어버렸다.
남은 녀석은 이제 한 놈.
“다음은 너네?
남아 있는 괴한과 나는 서로의 눈을 마주했다.
작은 방패와 칼을 들고 있는 후리후리 한 녀석.
“이 새끼가 사람을 뭐로 보고.”
놈은 인상을 긁으며 칼끝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나 나는 알 수 있었다.
‘긴장했네.’
송장이 돼 버린 거한의 죽음 앞에 놈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내딛는 발은 자신감이 없어 주춤거리는 모습이 보였고.
“덤벼 새끼야!”
촐랑거리는 녀석에게선 오러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돼지 새끼가 대장인가 보네.’
아니, 대장이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문밖에 있는 놈들과 몇 번의 죽음을 나눠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은.
쉬이익―
내 머릿속 망상에 불과했다.
놈이 내지른 쾌속의 검이 옆구리를 스치며 지나가던 그 순간.
‘크으윽…….’
나는 깨달았다.
거한을 이긴 게 나의 실력이 아니었다는 것을.
‘제기랄.’
그 싸움은 예측이 가능했기에 허를 찔렀을 뿐, 내 실력이 그를 능가한 것이 아니었음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왜? 이제 정신이 번쩍 들어?”
놈에겐 있으나 나에겐 없는 것.
“내가 아무리 오러가 없어도 말이야… 그래도 해쳐 온 전장이 얼마인데 사람을 우습게보고 그러냐.”
녀석에게 있는 기술과 경험이 나에겐 전무하다는 것이다.
“후…….”
치켜뜬 왼쪽 눈 위로 보이는 97이라는 숫자.
분명히 나는 죽었다 다시 돌아왔고, 그때마다 저 숫자는 하나씩 줄어들었다.
꺼림칙하지만, 혹시나 기대한다면 믿을 구석은 저것 하나뿐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던 그것이 아니라면…….
“쯧.”
부질없다.
저것과는 상관없이 이미 답은 나와 있지 않은가.
놈은 우릴 곱게 보내 줄 리 없으니 이러나저러나 선택지는 하나다.
내가 죽거나, 놈이 죽는 것뿐.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한숨을 쉬고, 혀를 차고… 아주 가지가지 하네. 아까는 무슨 수를 쓴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거 다 운이거든. 나는 그런 실수 같은 거 안 하니까 기대하고 그러지 마. 알겠지?”
목숨을 걸고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97이 96으로 변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 이반!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싸움은 선빵이 제일 중요하대!
― 빵? 나두 줘!
― 나두! 나두 먹을래!
― 바란은 돼지!
비록 다섯 살 꼬마의 말이지만, 아이의 아빠는 용병 출신이니까.
일단 작전은 선빵이다!
부아아악―
40㎏의 해머가 무서운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어이쿠!”
물론 적중하진 않았다.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지만.
“이야… 돌프의 해머를 그렇게 손쉽게 휘두르다니, 네놈도 보통은 아니네. 오러도 없이 말이야.”
놈은 싱글벙글 웃으며 날렵하게 몸을 놀렸다.
덕분에 나의 해머는 계속해 허공을 가를 뿐.
‘다가설 수조차 없다니.’
무슨 술수를 부리는 건지, 도통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왜일까?
녀석과 나의 움직임에 어떤 차이가 있기에 따라잡는 것조차 버거운 걸까.
부아아악―
공세를 놓지 않기 위해 나는 계속해 해머를 휘둘렀다.
그리고 지켜보았다.
놈이 움직이는 전신의 모든 걸.
피식거리며 웃어 대는 비릿한 입 꼬리부터 시작해, 상체를 비틀며 공격을 흘리는 유연한 움직임까지.
수십 번의 휘두름과 회피를 반복하며 놈의 작은 움직임을 모조리 두 눈에 담았다.
“아이고, 이거 스치기만 해도 골로 가겠는데? 소리만 들으면 오러 마스터라고 착각하겠어.”
그래. 골로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해법을 찾은 것 같으니까.
‘저거였구나!’
미꾸라지 같은 녀석의 비밀은, 지면에 붙어 스치듯 움직이는 가벼운 발놀림이었다.
부우웅―
한 걸음 물러섰을 뿐인데 놈과 나의 거리는 두 배로 멀어진다.
나는 여기 있고, 녀석은 이동했기 때문이다.
‘딱 걸렸어’
이제 잡으러 간다.
방법을 알았으니 남은 건 사냥뿐이다.
등 뒤로 해머를 넘겨 같은 동작으로 크게 휘둘렀다.
역시나 피식 웃으며 한 걸음 물러서는 후리후리한 놈.
녀석은 지금 방심하는 중이고, 나는 그 기회를 잡았다.
‘한 걸음 더!’
나는 걸음을 크게 내딛으며 놈에게 바짝 다가갔다.
빛살처럼 쇄도하는 묵색의 해머.
“어억?!”
녀석은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부랴부랴 방패를 들어 올렸다.
들어 올렸지만…….
이미 늦었다.
수직으로 휘둘러지는 해머의 궤적은 완벽했고, 내리꽂히는 타격감은 짜릿했다.
콰지직―
방패를 감싼 판금이 허무하게 우그러지던 그 순간.
[내려치기 수련이 활성화되어, 둔기 마스터리가 열립니다.]
“잡았다, 이 새끼.”
머릿속 가득 울리는 새로운 소리와 함께 놈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 갔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