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숨 99개
01화
부아아악―
귀를 찢는 우악스런 파공음.
믿기 힘들겠지만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콰앙―!
폭발하는 소리는 더더욱 아니고.
쾅! 쾅! 쾅! 쾅!
심장을 파고드는 이 흉악한 소리의 정체는…….
“야, 이 미친놈아 살살 좀 해!”
모루를 두들기는 나의 단조 망치질 소리다.
“누굴 때려죽이려고 그렇게 힘껏 휘두르는 거야? 어! 이게 그렇게까지 세게 휘두를 일이야?”
“죽이긴 뭘 죽여요. 그냥 적당히 한 거라구요.”
나는 영감의 핀잔을 한 귀로 날리며 입술을 삐쭉거렸다.
살살치면 어루만진다고 지랄.
세게 치면 살살해라 지랄이다.
‘젠장.’
나름 억울한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이 대장간의 잡부.
그나마 잘할 수 있는 일은 이 망치질뿐이고, 이곳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그러니 적당히 눈치 맞춰 주며 실실거리는 게 여러모로 편해진다.
“내 생각했지?”
“아니요.”
“욕했잖아. 월급도 안 주고 일만 부려 먹는 악덕 고용주라고.”
“…아니라고요.”
“아니긴 시부럴 놈. 눈깔 돌아가는 거 내가 다 봤거든.”
눈치 빠른 영감탱이.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 용돈이나 좀 챙겨 주던가.
능글맞고 뻔뻔한 거라면 따라갈 사람 없는 늙은 여우다.
“어쩐지 망치질에 살기가 가득하더라니. 너 그러다 실수인 척 던지려고?!”
“아씨… 걸렸네.”
“뭐 인마?!”
그저 웃자고 하는 소리다.
해코지할 마음 따위 손톱만큼도 없으니까.
하지만 가끔 그러고 싶게 만드는 괴팍한 영감이다.
그렇지만 미워할 수 없는 기묘한 관계.
단 세 글자로 우리의 입장은 완전히 달라진다.
저 사람은 나의 고용주.
나는 고용인.
먹고 자는 걸로 모든 임금 관계가 사라지는 괴상망측한 사이였다.
“하던 일 놔두고 배달 좀 다녀와라. 어제 만들어 둔 기구들 있지? 그거 전부 챙겨서 성 앞마을 제키에게 가져다주면 된다.”
“네.”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이 대장간의 객식구.
다섯 살 어린나이부터 이곳에 맡겨진 신세였다.
― 데릭 할아부지!
― 네 할아버지 아니야 이놈아.
그렇게 자란 나와 데릭은 가족도 아니고 직원도 아닌, 요상한 관계가 되었다.
하나 살아온 정은 켜켜이 쌓여 있으니 굳이 따지자면 가족과 다름없다.
이른바 미운 정이라는 거다.
어쨌거나 내 나이 올해로 스물여덟 살.
벌써 23년이나 지난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다.
“이거 다 가져가면 되는 거죠?”
“그래.”
각종 농기구를 시작으로 잡다한 철제 부속품이 한가득 쌓인 공간.
“흐음…….”
배달해야 할 물건들을 바라보며 나는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이러기도 저러기도 애매한 그런 것 있잖은가.
이 어정쩡한 물량이라니.
나로 하여금 불필요한 선택을 강요하게 한다.
‘수레를 끌고 다녀올까?’
아니다. 괜히 돌아오는 길에 덜그럭거리기만 하고 귀찮을 게 빤하다.
“…….”
사실 쓸데없는 생각이다.
보통 이런 일로 고민 같은 걸 하진 않을 테니까.
100㎏이 넘는 짐을 굳이 이고 지고 다닐 사람은 없지 않겠나.
하지만 나는…….
“하여간 힘 하나는 타고났네, 타고났어. 무슨 사람의 힘이 저 모양이냐고.”
그냥 들고 가는 걸 선택했다.
뭐랄까… 돌아오는 길에 느끼게 될 빈손의 홀가분함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녀올게요.”
커다란 포대 자루를 어깨에 이고 대장간을 나서던 찰나.
“후우…….”
나는 길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나름의 준비다.
이제부터 나는 엄청난 시선을 받으며 사람들 사이를 지나게 될 것이다.
“우와아! 이반이다!”
그 처음은 성내의 꼬맹이들.
녀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성문으로 향했다.
“오우거다!”
“트롤이다!”
하여간 크다는 것들의 이름은 죄다 갖다 붙이며 쪼르르 뒤를 따라붙는다.
“나무 수염족이다!”
“아냐! 거인족이야!”
그도 그럴 것이, 나의 키는 190㎝.
어지간한 성인 남성들조차 대부분 내 어깨 근처를 오가는 실정이니, 아이들의 눈높이에선 괴물처럼 보일 법도 하다.
“이반! 이반! 여기 좀 봐!”
옷자락을 흔들며 내 이름을 불러대는 작은 여자아이.
이름이 엘리스였나? 동그랗고 푸른 눈이 꽤나 귀여운 꼬마다.
“이반의 아빠는 허크야?”
그럴 리가 있나.
저 여아가 말한 허크는 거력의 신 허큘레스. 산을 뒤집는 괴력으로 마신을 무찔렀다는 신화 속 영웅을 칭하는 이름이다.
“아니, 내 아빠가 누구인지는 나도 잘 몰라.”
“그래? 엘리스도 아빠가 누군지 몰라. 그러면 이반이 우리 아빠 해 주면 안 돼?”
“글쎄… 그건 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런 건 너의 엄마가…….”
“엘리스 엄마는 이반만 보면 ‘하아, 하아’ 그래. 왜 그러는 거야? 이반은 알아?”
“…….”
뭔가 엄청난 비밀을 들어 버린 것 같아서 대답하기가… 아니, 애초에 아이한테 설명해 줄 말이 아니잖은가.
“울 엄마만 그러는 게 아니라 안드레 엄마도 그렇고, 바란의 엄마도 그렇대.”
“응! 우리 엄마는 아빠가 꼴도 보기 싫대. 어제는 낮잠 자다가 ‘이반, 아흐응’ 이랬어!”
“맞아!”
아이들은 맞장구를 치며 알사탕 같은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그 와중에 바란이라는 꼬마 녀석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이건 무서운 얘기지만 특별히 말해 줄게. 우리 엄마는 이반에게 죽고 싶다고 말했어.”
“뭐라고?!”
“이반의 가슴에 코를 박고 죽고 싶대. 그런데 코를 박으면 죽는 거야?”
“우아! 우리 엄마도 그랬어! 울 엄마는 깔려 죽고 싶대! 우람한…….”
“그만!”
야, 이 미친놈들아!
누구 거꾸로 매달려 죽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래?
오늘 따라 왜들 이러는 거야?
이놈들이 사람을 난봉꾼으로 만들고 있네!
“이반! 그래서 우리 엄마가…….”
“이반! 우리 엄마 죽여 줄 거야?”
“으앙∼ 나는 엄마 죽는 거 시러!”
나도 죽일 생각 없어 이 자식들아!
이 망나니 같은 녀석들이 뭐라고 떠들어대건 나는 결백하다.
음탕한 짓은 물론이요. 여인들을 향해 천박한 눈길 한 번 보낸 적도 없다.
그저 마주치면 반갑게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을 뿐이고, 하루하루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 어맛, 이반! 놀랐잖니. 그렇게 막 웃어 버리면 이 누난 밤에 잠을 못 잔다니까!
인사만 해도 자지러지고.
― 어머, 어머… 저 근육 좀 봐…….
― 그러게 말이야. 얼굴은 왜 저렇게 잘생기고 난리야!
대장간 잡부인 나의 생김새에 묘하게 집착하고 있었다.
하여 나는 결백하다.
저 아이들 엄마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건 간에,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얘기인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 엄마 안 죽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으로 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꼬마를 달래며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후…….”
이런 하루를 반복해 살아가는 나의 이름은 이반.
분에 넘치게도, 이곳 세비앙 영지 성내에서 꽤나 유명한 몸으로 살고 있다.
이유는 앞서 얘기한 두 가지.
고아에 엄청난 체격과 수려한 용모를 가진 이상한 놈이자.
“하나둘∼ 우랏차!”
“흐윽!”
“올라간다! 조금 더 힘 좀 써 봐! 그렇지 그래… 어엉?”
성인 몇 사람을 합친 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반이구나. 역시 괴물 같은 녀석이라니까.”
남자 넷이 쩔쩔매던 마차 귀퉁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괜찮으니까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하세요.”
덕분에 난 고아치고는 꽤나 평판 좋은 삶을 누리며 살았다.
그래 봤자 밑바닥 인생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으차, 고마워 이반. 덕분에 한숨 돌렸네. 이거 가는 길에 쉬엄쉬엄 먹으면서 가.”
중년의 남자는 말린 고기를 천에 돌돌 말아 내 앞에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따로 사양하지 않았다.
이런 대접이라도 받지 않는다면, 나 같은 밑바닥 인생의 삶은 아무런 보상 없는 비참한 하루로 가득해진다.
그런 삶이란…….
생각보다 인내하기 쉽지 않다.
“이반, 저녁에 밥 먹으러 올래? 집사람이 맛있는 거 만든다는데.”
“아니요. 오늘은 저녁 늦게까지 일이 있어서 힘들 것 같습니다.”
거짓말이다.
아마 내 예상이 맞는다면, 이 배달을 끝으로 오늘 대장간엔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다.
“저런, 아쉽게 됐네. 우리 마누라가 음식 솜씨 하난 끝내주는데 말이야.”
“그러게요.”
이렇게 나는 또 한 쌍의 가정을 구했다.
낮잠을 자며 ‘이반, 아흐응’을 외쳤다는 여인은 저 남자의 부인이었으니까.
가볍게 인사를 건넨 나는 성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도착한 성 외곽 마을의 커다란 풍차 입구.
“제키 아저씨, 이반이에요!”
“어, 그래. 들어와서 잠깐만 기다려라.”
멀리서 들려오는 대답에 들쳐 매고 있던 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뭐 좀 도와드려요?”
“다 됐다. 이제 내려가마.”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톱니 기관에서 돌아 나오는 제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읏차!”
사다리를 타고 땅으로 내려온 그는 손을 툭툭 털며 톱니바퀴를 바라보았다.
“오래 돼서 그런가, 여기저기 상태 안 좋은 곳이 많아졌네.”
그러고 보니 물어본 적이 없었다.
이 풍차는 얼마나 됐을까?
이곳에 온 다섯 살에 처음 봤으니, 내가 아는 것만 해도 23년이 훌쩍 넘는다.
“오래간만이구나, 이반. 그사이 덩치가 더욱 커진 것 같은데?”
나는 으쓱이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얼굴도 훨씬 보기 좋아진 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긴 게냐?”
제키는 나의 어깨를 두드린 뒤 가져온 포대로 걸음을 옮겼다.
“어이구… 이 무거운 걸 맨손으로 짊어지고 온 거야?”
“돌아갈 때 귀찮아서요.”
“그렇다고 이런 걸 그냥 들고 오다니, 이런 무식한 짓이 가능한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다.”
물론 우리 같은 일반인으로 대상을 좁혔을 때 얘기다. 오러 수련자로 넘어간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
“영주 근위대장은 몬스터던데요.”
“그 인간이야 오러 컨트롤러가 아니더냐. 6성급 기사인데 당연하지.”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괴물이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또 다른 종족인 것이다.
“네놈이 신분만 좋았어도…….”
제키는 말끝을 흐리며 얼굴을 구겼다.
“미안하다, 이반. 볼 때마다 안타까워서 그만.”
“하루 이틀 얘기도 아니잖아요. 마음 쓰지 마세요.”
제키의 본심이야 말해 주지 않아도 이미 잘 알고 있다. 늘 내 걱정을 하며 안부를 물어 오는 사람이니까.
“그래… 분명히 좋은 날이 올 게다.”
그의 덕담을 끝으로 어색한 대화는 훈훈하게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벌컥―
묵직한 나무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풍차 내부로 뛰어들었다.
“으앗! 안에 사람이 있었네.”
나와 같은 흑발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남자.
급하게 문을 닫은 남자는 허우적거리며 바쁘게 손을 놀려 댔다.
잠금장치를 찾는 것이다.
“누구세요?”
불청객을 향한 나의 첫마디에 남자는 등을 돌리며 문짝에 몸을 기댔다.
“지나가는 여행자인데, 불한당 같은 놈들에게 쫓기게 돼서 그만……. 잠시만 있다 나갈 테니 사정 좀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남자는 정중한 말투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차분하고 침착한 분위기가 흘러넘쳤으나 문밖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였다.
그 증거로 지금 문밖에서는.
― 크아악!
고통에 찬 누군가의 비명이 처절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비명? 저리 비켜 봐요.”
남자를 밀쳐낸 나는 문틈을 통해 바깥 상황을 살폈다.
한눈에 들어오는 황당한 모습.
평화롭던 작은 마을은 정체불명의 괴한들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뭐야… 저 미친 새끼들은?”
당황한 주민들은 여기저기로 도망쳤고, 뒤를 쫓는 놈들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도륙했다.
“당신 뭐야?!”
고개를 돌린 나는 숨어든 남자를 붙잡아 거칠게 멱살을 거머쥐었다.
“컥컥! 잠, 잠깐만 내 말을 좀!”
“저게 불한당이라고? 어느 미친놈들이 영주의 성 앞에서 저런 살육을 벌이는데?”
한층 높아진 나의 고함에 남자는 눈을 질끈 감으며 이빨을 깨물었다.
“도대체 무슨 괴물을 끌고 온 거냐고!”
짧게 이이진 정적.
눈을 뜬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미안합니다. 역시 이 마을로 들어서면 안 되는 거였는데… 저 때문에 다른 죄 없는 분들이…….”
빌어먹을.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으나, 덕분에 마을은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저렇게까지 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흑발의 남자.
“어쩔 수 없네요.”
말을 마친 남자는 마른세수를 한 뒤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힘없이 내린 손이 허리춤으로 향했고.
“…….”
멈칫하던 남자의 손은 단도를 뽑아 얼굴 앞으로 들어올렸다.
“제가 벌인 일이니 제가 수습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목을 향해 단도를 가져다 댔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어이없어 하는 나의 질문에 흑발의 남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수습을 저따위로 하는지 모르겠지만.
콰앙!
박살 나는 문짝과 함께 남자의 자살은 실패로 돌아갔다.
부서진 문틈으로 들어오는 거체의 남자.
“쥐새끼, 여기 있었네?”
목소리의 주인은 커다란 손을 내밀어 남자의 흑발을 움켜잡았다.
“끄으으윽!”
저러다 뽑히는 건 아닐까…….
허공을 맴돌던 남자의 두 눈이 지켜보던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 순간.
[더 나은 적성자를 발견하여 능력이 이전됩니다.]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리며 선명히 들려왔다.
그에 나는 얼빵한 소릴 내고 말았고.
“으잉?”
“엥?”
마주한 남자역시 멍청한 소리를 내며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주마등같이 흘러가는 찰나의 시간.
“시발… 망했네.”
남자의 검은 눈이 파리하게 떨리며 격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