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력천재 미대생-187화 (187/203)

■ 187. 다행 □

늦은 밤.

김용철 작가의 작업실.

밤 11시가 넘었지만, 김용철 작가부터 조수들까지 모두 나와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나는 이제까지 사람들마다 예술적 영감의 용량이 정해져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하루치 자신의 용량을 다 쓰면 다시 채워질 때까지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닌 것 같기도 해.'

김용철 작가는 매일 매일 제품을 찍어내는 공장의 기계처럼 새로운 것들을 찾아냈다.

하긴 여러 명의 조수들에게 계속 일감을 주려면 계속 새로운 것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조수들도 마찬가지.

김용철 작가의 조수가 되기 전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치열하게 토론하고, 또 서로 경쟁하게 되니까 조수들도 모두들 최대한 역량을 끌어내게 되었다.

결국 영감은 쥐어짜면 계속 나오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이런 비교를 하면 유치하겠지만, 여기가 한국대 학생들보다도 훨씬 더 나을 지도.'

하긴 뭐.

한국대가 아무리 훌륭한 학생들만 뽑았다 해도, 거긴 학부생이고 여긴 예술을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당연할 지도.

의사나 판검사.

아니면 과학자나 사업가.

다른 사람들에겐 우리가 하는 일이 의미가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미묘한 색깔.

작은 형태.

그 작은 차이를 완성하기 위해, 이 곳의 젊은 사람들은 매일 치열하게 싸웠다.

그렇게 하루치의 내 할당량을 끝내면.

작업실의 내 자리에 커다란 캔버스 앞에 앉았다.

젯소가 잘 발라진 하얀 캔버스를 보면 자동으로 한숨이 나왔다.

'아, 이것 참 진짜 난감하네.'

난 원래 유나의 초상화를 계속 실패해 왔다.

기계적으로 눈, 코, 입을 그릴 순 있어도 그렇게 하면 꼭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그리고 싶었던 그런 그림이 아니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윤성례 교수의 반대까지······'

윤성례 교수가 마녀이긴 하지만, 눈은 정확하다.

한국 최고의 눈.

틀린 말을 한 적도 없었다.

수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윤성례의 한 마디 조언을 듣기 위해 매일 몰려온다.

그런데 그 윤성례 교수의 의견을 반대하고 고집을 부리려니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쯤 되니까 서춘일 교수도 악마로 보인다.'

자기가 어떻게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마음대로 하라고 옆에서 부추기다니.

뭐, 나쁜 뜻은 아니었겠지만.

어휴우······

난 원래 즉각즉각 실천에 옮기는 타입.

하지만 며칠 째 하얀 캔버스만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숨만 쉬고 있었다.

째깍째깍.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6월 평가를 향한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어이, 뭐가 잘 안 돼?"

그때였다.

늦은 밤이었지만, 여전히 활기찬 김용철 작가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작가님, 윤성례 교수님 아세요?"

"아, 그 양반."

절레절레.

김용철 작가는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실은 꼭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었거든요. 여자 친구 얼굴이긴 하지만, 단순히 여자 친구 얼굴이라서가 아니라 저한테는 꼭 극복하고 싶었던 숙제였거든요. 그래서 졸전에 그리고 싶다고 했는데. 윤성례 교수님이 반대하셨어요. 도전은 혼자 하라고."

"음. 도전은 혼자 하라······그럴 만 하지. 현실적인 조언이었군. 졸업 전시는 중요한 자리니까, 극복의 과제보다는 네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검증된 작품을 해야지. 그 양반이 정은 안 가도 틀린 말은 안 해."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김용철 작가의 말을 들으니 윤성례 교수가 또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초상화를 포기하려니 개운하지가 않았다.

"작가님은 어떻게 하셨죠?"

"뭐가?"

"졸업 전시 때 교수님들의 현실적인 조언을 수용하셨습니까?"

흐흐흐흐.

내 질문을 받고 김용철 작가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김용철이 괜히 김용철일까.

그런데 설령 김용철 작가가 졸전 때 마음대로 고집을 부렸다고 또 내가 그걸 따라할 순 없었다.

왜냐하면 김용철은 김용철이니까.

"그래서 지금, 시작도 못하고 캔버스만 바라보고 있는 건가?"

"네. 스케치는 여러 번 했는데, 막상 그리려면 머릿속이 하얗게 됩니다."

"지금 자네는 두 개의 강한 적을 마주하고 있는 상태군. 자네의 예쁜 여자 친구와 윤성례 교수."

"네, 둘 다 너무 무섭고 강력한 상대입니다."

"그럴 땐 말이야.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게. 너무 흔하고 평범한 조언일 순 있지만 사실이라네. 답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어. 예술가들은 약간 수도승이나 신비주의자들과도 비슷해. 늘 삶의 본질적인 부분을 탐구하지. 그러니까 단순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이 항상 옆에서 일어나곤 해. 어쨌든 결국 답은 항상 가까이에 있지. 때론 그렇게 찾은 답이 너무 쉬워서 스스로 놀랄 때도 있다네. 어쩌면 자네가 이미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몰라."

김용철 작가가 인정한대로 너무 평범한 조언이긴 했다.

하지만 김용철 작가가 말하니까 뭔가 힘이 실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말을 했으면 흘려 들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용철 작가는 자기가 직접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이 자리에 이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내가 현실적인 팁을 하나 주지."

"현실적인 팁이요?"

"그래. 졸전에서 자네 마음대로 해도 괜찮은 방법."

엇? 그런 기적 같은 방법이 있단 말입니까?

"이번에 졸전 하는 학생이 한 스무 명은 되나?"

"아마 그쯤 될 겁니다. 조금 넘으려나."

"그래. 그럼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면 돼."

너무 쉬우면서도 당연한 꿀팁.

우리는 서양화과니까 졸업 전시에서 모든 학생들이 일제히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리고 그 중 절반은 입체도 하나씩 제출할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 누가 새로운 장르를 시도한다면?

작품의 수준이 조금 떨어지거나, 교수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한 자리는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전시 전체의 내용이 풍성해지니까.

물론 그렇게 확보한 자리에 수준 이하의 작품을 걸면, 안하느니만 못하겠지만.

"아, 그렇겠군요.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수고하게."

음.

답은 내 가까이에 있다?

그리고 내가 이미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강하고 어려운 상대.

나는 잠시 생각했다.

지금은 이미 4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리고 여름 방학도 남아있다.

그러니 일단 유나의 초상화는 여름 방학에 재도전하고, 지금은 내가 6월 평가까지 완성할 수 있는 작품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게 현실적인 선택이겠지.'

하지만 역시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답은 내 가까이에 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하려면 남들이 하지 않는 작품을 해야 한다.

'에이, 모르겠다. 이렇게 멍하니 있느니 차라리 김용철 작가님 판화 작업이라도 하자.'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날 때.

'잠깐?'

머리에 뭔가 스쳐지나갔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 중 내가 제일 잘하는 것?

'목판화?'

한국대 서양화과는 판화를 1~2년간 배운다.

판화는 결과물은 근사하지만 과정은 힘든 작업.

제대로 찍어내려면 꽤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졸전에 내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나의 판화 실력은 상당했다.

거의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나를 뽑아준 김용철 작가에게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목판을 연구했다.

'지금 내 목판 기술력은 전문 판화가들에게도 그렇게 밀리지 않을 거야.'

물론 수십 년 한 작가들에겐 밀리겠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작품을 찍을 정도는 되었다.

'나는 지금 너무 강적들을 만나서 겁을 먹고 시작도 못하고 있었지.'

하지만 판화라면?

나는 판화가 비겁해서 좋다고 말했다.

기술적 제약으로 모든 걸 표현할 수 없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유롭다고 말했었다.

'나는 그동안 고정관념에 잡혀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유나를 꼭 유화로 그려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김용철 작가는 비겁한 게 항상 나쁜 건 아니라고 말하셨지.'

판화라면 할 수 있다.

그동안 나는 내 실력 이상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내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서 겁을 먹고, 그림 그리는 것을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겁한 판화라면?

나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윤성례 교수도······'

내가 판화를 내겠다고 하면, 그 판화 안에 유나를 새기든, 어떤 것을 새기든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면 판화를 하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아니지. 지금 내 판화 기술력이라면, 윤성례 교수한테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어.'

내가 답을 알고 있을 거라고?

그리고 가끔은 설명되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어쩌면 정말 그럴 지도 모르겠다.

난 어쩌면 알고 있었지 않았을까?

내가 판화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김용철 작가의 조수로 지원한 것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는 가지고 있던 유나의 사진들.

내가 그려둔 도안들을 꺼내서 다시 살펴봤다.

목판화로 찍을 만한 몇 가지들이 보였다.

나는 색연필과 파스텔로 스케치를 고치고 색도 입혀 보았다.

점점 더 가능성이 뚜렷해 졌다.

'할 수 있어. 좋아. 판화로 간다.'

윤성례 교수는 나한테 도전은 혼자 하라고 했다.

'혼자 그려서 내 방에 걸어두라고 했지.'

그리고 서춘일 교수는 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좋다.

결정했다.

'6월 평가장에 판화의 폭탄을 펑하고 터뜨려주마.'

최고의 작품을 촤촤좍.

모두의 앞에 걸어두고 그 자리에서 윤성례 교수의 인정을 받아내겠다.

내 안에서 오랜만에 뜨거운 의욕이 솟구쳤다.

그때였다.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군!"

"엇?"

김태민이었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내가 사진과 도안을 뒤지고, 나무판을 만지는 것을 모두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무, 무슨 방법?"

"윤성례 교수가 유나 그림을 못 그리게 하니까 판화로 찍으려는 생각이지?"

"어. 어떻게 알았어?"

"척하면 척이지. 좋아, 그럼 나도 판화로 간다!"

물론 동판화일 것이다.

아마도 에칭?

그런데 정말 괜찮은 생각 같았다.

김태민은 작년에 펜 드로잉으로, 믿어지지 않는 훌륭한 그림들을 그려냈다.

평소 김태민이 그리던 유화 못지 않게 멋진 실력이었다.

날카로운 펜 드로잉은 에칭과 무척 닮은꼴이다.

그 훌륭한 드로잉을 동판화로 찍으면, 더욱 깊이가 생기고 작품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목판화와 동판화니까 우리두 사람의 작품이 겹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쌍을 이뤄서 졸업 전시의 재미를 높여 주겠지.'

그러니 우리 둘 다 더욱 강력하게 졸업 전시의 한 자리를 확보하는 셈이 된다.

"괜찮은 생각인데?"

"그치? 윤성례 교수님이 수진 누나도 고양이도 둘 다 하지 말라고 하셨거든. 나도 아예 고양이와 수진 누나 폭격을 퍼부어 버릴 테다."

"그래, 우리 둘이서 6월 평가장을 날려 버리자.'

그렇게 우리 둘은 뜨거운 결의를 맺었다.

* * *

시간이 슝, 슝 지나갔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회사에 출근해 여러 보고를 받고, 서류를 확인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간단히 수업을 듣고는 곧바로 김용철 작가의 작업실로 갔다.

거기서 김용철 작가의 작업들을 하나씩 돕고 있으면 어느새 교생 실습을 갔던 김태민이 도착했다.

가끔은 학교에 갔던 양복을 갈아입지도 않고 소매만 걷고 곧바로 오기도 했다.

그리고 우린 정말 열심히 작업을 했다.

목판화의 작업 과정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도장을 새기는 것과 비슷하다.

도장을 새겨서 찍는 것과 똑같은 원리.

다만 목판은 넓은 판을 쓰고, 또 여러 색을 쓴다는 점이 다를 뿐.

작업의 순서는 이렇다.

먼저 판화로 찍을 도안을 그린다.

물론 도안은 나중에 찍으면 좌우가 바뀌어 나온다.

그래서 글자나 숫자는 조심해서 그려야 한다.

그리고 도안을 나무판에 옮긴다.

나뭇결의 무늬나 나이테도 그대로 찍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정말 고급 목판은 꽤 비싸다.

하지만 나는 그냥 합판을 쓴다.

나무판 위에 도안을 다 그리면 스케치 보존제를 바르고, 사포질을 한다.

'여기서 나의 비결 한 가지.'

눈으로만 보면 말끔해보여도 보이지 않는 울퉁불퉁함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손가락으로 나무판을 꼼꼼히 만져본다.

'회귀 장인의 육감적인 터치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린 그림을 조각도로 새기고, 잉크를 바르고 찍어낸다.

여러 색으로 찍으려면 여러 판을 조각하기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정말 손이 퉁퉁 붓도록 아팠다.

하지만 작품이 완성되면 손이 아픈 것과 비례해서 뿌듯해진다.

'아프다는 자체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죽은 사람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까.'

한 번 죽고 다시 태어났더니 아프다는 사실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새기고, 찍고.

테라핀 기름으로 잉크를 닦아내고.

유나의 섬세한 얼굴을 목판에 어울리도록 단순화 시켜서 도안을 그린다.

그리고 판화로 찍어낸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도안을 고치고 다시 그려야 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반복.

낮부터 새벽까지.

목판 부스러기와 기름방울들을 뒤집어쓰며 열심히 판화를 찍었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가 고개를 들면 옆에 김태민도 있었다.

김태민은 동판에 그림을 새겨서 산성 용액에 담그고 시간을 재고 있었다.

'이때 내가 계속 말 걸면 시간을 넘기고 작업을 망치겠지.'

가끔씩 사악한 이주원이 내 안에서 솟구치기도 했다.

"예전엔 판화가 참 싫었어. 너무 힘드니까. 그런데 지금은 신기해. 내가 그림을 그린 동판을 염산에 담그고 있으면, 나 자신이 염산에 담겨진 기분이야. 그리고 내가 그린 그림이 내 안에 새겨지는 느낌이 들어."

사악한 이주원의 존재를 모르는지, 김태민이 조용히 말했다.

"나도 그래. 조각도를 가지고 목판에 유나를 새기고 있으면, 유나를 나한테 새기는 기분이 들어."

우린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잠깐 같이 웃었다.

새벽까지 작업을 하다 고개를 들었을 때, 옆에 김태민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했다.

그날, 자기도 조수를 하겠다고 김용철 작가의 사무실을 찾아와 준 사실이 고맙게 느껴졌다.

'한국대 서양화과에 김태민이 있어서 무척 다행이었어.'

그렇게 오늘도, 힘들고 보람차게 하루가 지나갔다.

아니, 다음 날이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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