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4학년 □
한국대 서양화과 교수 회의실.
아직 방학 중이지만, 오늘 모처럼 서양화과 교수들이 다 모였다.
이준성 교수는 강사지만, 나이도 많고 짬밥도 많아서 같이 모였다.
교수 중에 제일 나이가 많은 서춘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회의라고 모이긴 했지만, 사실 별로 의논할 것도 없습니다. 늘 하던 대로 하면 되겠지요. 그래도 오랜만에 모였으니, 회의 끝나고 다 같이 식사나 하시죠. 오늘은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한국대 서양화과 정교수면 한국 미술계에서는 정점에 오른 자리.
하지만 서춘일의 외모는 평범한 동네 할아버지 딱 그 정도였다.
머리숱은 별로 안 남았지만, 단정하게 빗은 흰머리.
눈웃음이 문신처럼 눈가에 새겨져 있어서 그가 무척 잘 웃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서춘일 교수님이 점심을 사겠다고 하셨으니 오랜만에 비싼 걸 먹어야겠군요."
두 번째로 말한 사람은 윤성례 교수.
한국 최고의 큐레이터를 꼽으라면, 근 20년 동안 언제나 제일 먼저 이름이 언급되는 사람이었다.
짧은 머리에 날카로운 눈매.
흔한 깡마른 신경질적인 아줌마 같은 느낌.
하지만 사실상 한국 미술계 최고의 권력자였다.
한국대에서는 주로 4학년 수업만을 맡았는데, 무섭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매년 남학생, 여학생 가리지 않고 졸전을 앞둔 학생들을 울려버리기로 유명했다.
나름 미대 4학년이면 머리도 굵고 성격도 닳고 닳았다.
하지만 마녀 윤성례에게 걸리면 4년간 쌓아온 예술관이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올해는 과연 누가 울게 될 것인가?
오늘도 마찬가지.
윤성례 교수는 나름 농담이라고 '비싼 걸 먹어야겠네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냉혹함이 습관이 된 그녀의 목소리.
교수들 아무도 웃지 않았다.
다시 서춘일 교수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리고 올해 졸전은 강영 교수님이 맡기로 했죠. 작년부터 우리 학교에 계시긴 했었지만, 3월부터 1년을 시작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네요. 특히 졸전을 지도하려면 조금 떨리시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국대 서양화과 졸전은 보는 눈이 많다.
'와, 한국 최고의 미대, 한국대 졸전이다!' 가 아니다.
'그래, 한국대 놈들, 올해는 얼마나 하나 한 번 보자.' 이런 느낌이었다.
미술계 전체가 벼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대 출신들은 미술계 요직을 차지하고 기득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래서 반감도 상당하다.
그리고 한국대 출신 중에 제일 만만한 것이 바로 갓 졸업하는 대학생들일 것이다.
그래서 잘 해야 본전.
잘못하면 욕을 두 배로 먹는다.
'한국대는 너무 아카데믹해서 실기는 형편없어.'
'잘하는 애들만 뽑아놓고는 결국 바보로 만들어 졸업시키네.'
이런 소문들이 괜히 퍼지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교수 입장에서도.
학생들을 앞세우고 대신 평가받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올해는 바로 강영 교수의 차례인 것이다.
열심히 하겠다는 강영 교수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윤성례 교수가 말했다.
"강영 교수님. 올해는 더 긴장하셔야 할 겁니다."
"네?"
"올해는 평소보다 더 시선이 쏠릴 겁니다. 그 영화배우 하는 애도 있고, 김용철 작가 아들도 있고. 거기다 예전에 그 영 아트, 방송에 나온 애들도 있고······졸전을 보러 사람들이 많이 올 겁니다. 그러니 강영 교수님이 3월부터 학생들을 꽉 잡도록 하세요."
영 아트란 말이 나오자, 자리에 모인 교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요. 올해는 더 보는 눈이 많겠군요. 더 긴장해야겠습니다."
"왜 열심히 하겠다는 사람 겁을 주고 그러세요."
서춘일 교수가 온화하게 웃었다.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될 겁니다."
이건 이준성.
이준성도 끼어들었다.
"제가 1학년 때부터 놈들을 가르쳐왔습니다. 나름 실력이 있는 놈들입니다. 영 아트 우승도 우연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잘생, 아니 용철 선배님 아들도 정말 잘 합니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학생들이 알아서 잘 하도록 믿고 맡기시면 될 겁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배님."
강영 교수와 이준성 교수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헛소문이었다.
물론 딱히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사실 교수 채용은 학위나 수상 경력 등으로 마치 신분제도처럼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둘이 접전을 벌인 적도 없었고, 그걸로 이준성이 강영을 원망한 적도 없었다.
물론 질투는 조금 했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번에도 서춘일 교수가 사람 좋게 웃었다.
"허허허, 준성 교수가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기대가 되네요."
윤성례 교수가 생각난 듯 끼어들었다.
"맞다. 서춘일 교수님 올해 정년이시죠? 축하드립니다. 강영 교수님 못지않게 서춘일 교수님도 느낌이 남다르시겠어요."
"그냥 못나게 자리만 지킨 건데 무슨 남다른 느낌이 있겠어요."
서춘일 교수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홀짝 차를 한 잔 마시고는 다시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정년은 채우자 생각하고 당연히 기다렸어요. 그런데 요즘 좀 반성을 많이 해요. 교수를 일찍 관둘 용기가 없었다면, 체력 관리라도 꾸준히 해둘 걸. 교수한다고 어설프게 작업도 못하고, 작업한다고 어설프게 학생들한테도 소홀하고. 그런데 이제 어설프게 정년이네요."
"어설프시긴요. 한국대 서양화과의 상징이신데요."
"허허, 이 사람이 교수 되자마자 아첨부터 배우셨네."
서춘일 교수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곤 조용히 말했다.
"그러고 보면 용철이가 참 대단해요. 작업에 집중하고 싶다고 제안들 다 거절하고. 그렇게 또 성과를 만들어가는 걸 보면. 확실히 용철이가 난 놈은 난 놈이에요."
김용철 작가를 '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위엄.
과연 서춘일은 평범한 동네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찔끔.
김용철 작가의 이름이 나오자 반사적으로 놀라는 이준성이었다.
"어쨌거나 올해도 한 번 잘 해봅시다. 그럼 점심 메뉴는 막내 강영 교수님이 정하도록 하세요."
그렇게 개강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사무실.
나는 오늘도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디디디디.
드디어 내 전화가 울렸다.
내 핸드폰 화면에는 저장된 번호가 떠올랐다.
두근.
"네, 이주원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용철 작가님 사무실인데요."
알고 있다.
과연 결과는?
"축하드려요. 작가님께서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첫 출근은 2월 24일부터고요. 저녁 5시까지 오시면 되세요. 그리고 저희가 개인 작업 공간도 넉넉하니까 작업실 필요하면 그 전부터 나오셔도 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너무 좋아했는지 전화기 너머 비서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 그런데······"
"네, 말씀하세요."
"저 혼자 뽑힌 건가요?"
"최미향씨와 이주원씨. 두 분이 뽑혔습니다."
그렇군.
이윤재는 아첨을 너무 많이 해서 좀 불안했었다.
'애송이 녀석. 아첨도 전략적으로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이번에도 역시 노력한 회귀자의 승리였다.
하긴.
어쩌면 나도 김태민 찬스가 적용된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정말 기뻤다.
솔직히 조수 월급은 내게 의미가 없는 돈이다.
그리고 난 작업실도 필요 없었다.
하지만 김용철 작가가 작업하는 모습을 꼭 옆에서 직접 보고 싶었다.
회사를 몇 개나 가진 내가, 일개 조수로 채용되는 일이 이렇게 기쁘다니.
만세를 부르며 전화를 끊었다.
"치이. 김용철 작가님 조수 구하는 줄 알았으면 나도 지원해 볼 걸. 치사하게 좋은 정보를 혼자만 알다니. 그리고 몰래 지원하다니."
옆에 있던 유나가 툴툴 거렸다.
훗. 그건 안 될 말.
왜냐면 유나는 노력상점이 없기 때문이다.
판화는 정말 고된 일.
유나가 힘든 건 보기 싫었다.
미우나 고우나 한유나는 내 공주님이다.
그래서 일부러 비밀로 했다.
어쨌거나 이렇게, 졸전 준비가 착착 이뤄지고 있었다.
'일류 작가와 같이 일해 보면 분명 졸전에 엄청나게 도움 될 거야.'
몇 번 말한 적 있는 것 같은데, 난 내가 화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단지 미대를 꼭 다녀보고 싶었던 것이다.
평범하고 하찮았던 나.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게 2번째 기회가 주어진 것은 나름 이유가 있어서라고 믿는다.
'훌륭한 화가가 탄생하는 걸 보고 싶었다면 아마 김태민이나 유나에게 두 번 째 기회를 줬겠지.'
요즘 나는 졸업 후에는 내가 사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점점 생각이 굳어지고 있었다.
'내가 더 많이 벌수록 세상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으니까.'
나는 내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여러 사람과 나눠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이번 4학년이 끝나면, 지금처럼 오직 나만을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한동안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 최선을 다할 거야.'
김용철 작가의 조수로 일해 보는 것은 그 치열한 1년을 위한 첫 번째 준비였다.
"유나야."
"뭐."
"나 작가님 사무실 들어가면 당분간 바쁠 거잖아. 그러니 오늘 단 둘이 한 잔 하자. 나 합격 축하파티 해야지."
"치. 혼자 신나셨구만. 런던에 있는 동안 매일 단 둘이 마셔놓고 또 무슨 축하 파티야."
"그래서 싫다고?"
"아니. 집에 들러서 엄마가 챙겨준 나물이랑 북어조림 가져갈게."
"그래, 소주는 집에 있고, 안주는 내가 순두부찌개 끓일게."
"매콤하게. 아, 엄마가 오분자기도 챙겨주셨어. 그거 넣으면 되겠다!"
"오케이. 세팅해둘게."
이것이 4년차 커플의 위엄.
척하면 척.
술부터 안주까지 일사불란!
어쩌면 미대 4년을 다니며 최고의 수확은 바로 유나인지도 모르겠다.
* * *
그리고 드디어 김용철 작가의 작업실에 첫 출근을 했다.
혹시 몰라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도 챙겨서 차에 가득 실어뒀다.
이렇게 긴장되다니.
두 시간이나 일찍 갔더니 아직 김용철 작가는 없었고, 최미향도 오지 않았다.
사무실 직원들과 작업실의 다른 조수들만 있었다.
모두 웃고 떠들며 작업도 하는 모습이 마치 대학교 작업실 같았다.
물론 시설은 한국대보다 훨씬 좋았다.
솔직히 한국대 시설은 좀······
많이 안 좋았다.
그런데 조수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새로 오신 분이죠? 전 여기 2년 째 있었어요. 제가 여기 안내해 드릴게요. 임영태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같이 일할 건데 말 편하게 해도 되죠?"
자기가 31살이라고 밝힌 임영태는 아주 친절했고, 또 다른 조수들한테도 나를 소개했다.
그리고 작업실 시설이나 규칙들도 꼼꼼히 가르쳐줬다.
"학부생이 온다길래 솔직히 조금 놀랐어. 그것도 한국대 생이라길래."
"학부생이 오는 경우가 드문가요?"
"드물지. 그리고 보통 서울 쪽 출신들은 잘 안 뽑아."
"그래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한 번 조수로 채용되면 작가님이 정말 살뜰히 챙겨주시거든. 3개월 단기로 채용되었지?"
"네."
"여기 다들 비슷해. 그런데 3개월만 하고 끝내는 사람은 거의 없어. 어차피 작가님은 계속 새 작업 들어가시니까 조수는 계속 필요하거든. 여긴 월급도 많이 주는 편이고, 또 전시 주선도 해주시고. 가끔은 해외에 데려가실 때도 있고. 혹시 나중에 필요할 땐 추천서도 잘 써주셔. 그래서 조수 뽑을 때도 지원이 엄청 들어 와."
"그렇군요."
"그리고 작가님 철학이 이왕이면 실력 있는 지방대 출신한테 기회를 주자는 주의시거든. 그래서 인서울 출신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아, 몰랐습니다."
들을수록 김용철 작가가 멋있기도 하고.
또 왠지 점점 더 내가 정말 김태민 찬스로 들어온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왕 들어온 것 포기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더 열심히 해야지.
그럼 될 것이다.
그리고 곧 최미향도 도착했고, 김용철 작가도 도착했다.
"그래, 이제부터는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네, 물론입니다."
"잘 부탁하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면접 볼 때는 우리한테 존댓말을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프리카 물소 본래의 카리스마를 되찾았다.
"자, 그럼 다들 각자 일 보도록 하고, 미향씨랑 주원이만 이리 오도록. 앞으로의 작업 일정을······"
그때였다.
쿵, 쿵, 쿵.
계단이 울리며 누군가 작업실 밖에서 다급히 달려왔다 .
대체 누가 감히!
아프리카 물소의 작업실에서 이토록 난폭하게 뛰어다닐 수 있단 말인가?
드르륵.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등장했다.
"태민아······"
김용철 작가가 뜻밖이란 표정을 지었다.
"아빠. 저도 조수로 일할래요."
억.
나와 김용철 작가 둘 다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안 돼. 여기 다들 열심히 작업하는 곳이야."
하지만 단호한 김용철 작가.
"아빠. 저도 열심히 할게요. 꼭 하고 싶어요."
김태민의 어설픈 애원.
"안 돼. 여기 다들 실력 있는 사람만 가려서 뽑은 거야."
"아빠, 저도 판화 잘 해요!"
그런데 뭔가, 김용철 작가의 거절도 조금 어설퍼 보였다.
왠지 살짝 흔들리는 느낌?
역시 아들한테는 이길 수 없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좋다. 그 대신 월급은 없는 거다. 그리고 남들이랑 똑같이 열심히 해야 한다. 출근 시간도 지키고."
"월급은 주셔야죠."
엇? 뜻밖의 반격.
후우.
김용철 작가는 짧은 한숨을 뱉었다.
내가 알던 아프리카 물소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그럼 월급은 절반만 줄게."
"아버지!"
"그럼 70%. 그 이상은 안 돼."
다행히 70%는 만족스러웠던 모양.
"아빠! 진짜 열심히 할게요!"
그렇게 김태민도 채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