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력천재 미대생-167화 (167/203)

■ 167. 전략적 접근 □

회귀자의 연애 특강이라 쓰고 팩트 폭행이라 읽는······

아무튼 특강은 계속 되고 있었다.

"자, 이제 실전 팁을 전수하겠습니다. 어떻게든 이번 기회를 꼭 잡으시고, 꿈에 그리던 미대 여학생들과 꼭 사귀길 바라겠습니다."

초롱초롱.

이 사람들이······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한국대에 갔지.

'아, 한국대 와서 졸업까지 한 사람들이구나.'

아무튼!

"먼저 두 사람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 두 사람은 지나친 외로움에 빠져서 냉정함을 잃었습니다. 특히 형원이형!"

"어? 응?"

"형은 골방에 스스로 가두고 몇 달 동안 노트북만 쳐다봤습니다. 여자와의 대화라곤 모니터를 향해 혼잣말을 한 게 전부겠죠!"

크윽.

형원 선배와 기숙사에서 4달을 같이 살았다.

그래서 형원 선배의 취향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한철이도 마찬가지. 배불뚝이 아저씨들과 하루 종일 둘러싸여 있죠. 지금 두 사람의 눈에 예쁘지 않은 여자는 없을 겁니다. 특히 꿈에 그리던 미대생이라면? 여러분들은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릴지도 모릅니다."

"으윽, 부정할 수 없군.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야."

"지금 두 사람이라면, 태민이한테 치마를 입혀서 내보내도 반해 버릴 지도 모릅니다."

"으윽······"

"냉정해 지십시오. 그리고 상대에게 반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알겠습니까? 여자 친구를 사귀러 가는 자리가 아니라, 정말 사람 친구를 만나러 가는 자리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럼 긴장도 덜 되고, 상대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 그럴게."

"그리고 한철이!"

"응."

"넌 너무 친절하고, 매사에 열심이야. 그게 문제지."

"응. 나도 알아. 친해지고 싶은 사람한테는 조금이라도 더 퍼주고 싶어져. 그래서 여자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아. 하지만 알면서도 그게 고쳐지지 않아."

토닥토닥.

나는 한철이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건 단점인 동시에 한철이의 장점이기도 했다.

한철이가 아낌없이 퍼주고 나를 도와준 덕에 원 디자인 창업 초창기에 큰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돈을 벌지 않았으면 지금의 하이 유나도 없고, 다섯 채의 빌딩, 아니 여섯 채의 빌딩도 없었을 것이다.

내게는 정말 고마운 친구였다.

"그래, 안 되는 걸 억지로 바꾸진 말자. 다만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법을 연구해보자."

"그런 방법이 있을까?"

"일단 상미 누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상미 씨의 입장?"

"음. 한철이 너는 대기업 직원이지. 그리고 학교 다니는 동안 부지런히 고액 아르바이트도 뛰어서 모아둔 돈도 많아. 거기에 몸짱이야. 상미 누나에게 넌 어떻게 보일까? 덩치 큰 고릴라? 아니. 일도 잘하고, 돈도 많은 능력남이야. 그런데 고맙게도 자기에게 운동을 가르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내준 왕자님으로 보일 거야."

"왕자까진 아닐 거야······"

옆에서 듣던 형원 선배가 작게 중얼거렸다.

"음, 왕자까진 아니더라도······그래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상미 누나는 운동을 배우려고 네가 하는 말에는 무조건 귀를 기울일 거야. 그리고 퇴근하고 온 네가 피곤할까봐 걱정되고, 미안하고, 고맙겠지. 그 말은!"

"그 말은?"

"네가 오버만 하지 않고, 중간만 지켜도 유리한 게임이라는 것! 다만 한철이는 다 퍼주는 성격! 중간을 못 지키지."

크윽.

나의 예리한 지적에 한철이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한철아. 상미 누나를 만나는 날, 점심을 굶어. 그리고 사내 헬스장에서 점심시간 1시간 동안 런닝머신을 달려. 전력으로."

"점심을 굶으라고?"

"응. 아침까지 굶고, 새벽에도 조깅하면 더 좋아. 그럼 너도 분명 지치고 피곤해질 거야. 그럼 아무리 한철이라도 정상인의 모습을 하겠지. 너도 인간이니까."

"상미 씨를 만나러 가기 전에 미리 힘을 빼 놓으라고?"

"그게 전략이야. 네가 피곤하면 상미 누나에게 과하게 친절하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피곤한 네 모습을 보고 상미 누나는 고마움도 두 배로 느낄 거야."

"그런 묘안이!"

"요점은 오버하지 않는 것! 너무 잘해주려고 애쓰지 말고, 자연스럽게 네 진짜 모습을 보여주도록 해."

그리고 형원 선배.

"형원이 형."

"으,응."

"이정원은 예리한 녀석입니다. 작은 빈틈도 찾아내고 공격하죠. 그리고 방어는 철저할 겁니다."

"크윽."

"형도 화려한 말발과 예측 불가능의 잔머리를 가지고 있죠. 저도 인정합니다. 분명 평소의 이형원이라면 이정원 따위, 가지고 놀았을 겁니다. 하지만 형은 분명, 이정원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질 테고, 허점 투성이 무방비 상태의 샌드백이 될 겁니다."

"크윽, 나의 패턴을 고려할 때 부정할 수 없군."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방법이 있다고? 대체 뭐지? 주원아, 제발. 어서!"

후후훗.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형원 선배를 애타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음료수를 마시며 잠시 여유를 즐겼다.

"이정원은 형을 인터뷰하기 위해 질문 목록을 작성할 겁니다. 형한테 꼭 묻고 싶은 리스트들."

"그렇겠지?"

"반대로 생각해보죠. 이정원의 질문 리스트는 이정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의 리스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정원의 내면을 볼 수 있는 답안지라는 거죠."

"그, 그렇겠군!"

"보통은 인터뷰에서 질문을 받으면 아마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최고의 대답을 하려 애쓸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가는 겁니다. 이정원이 형한테 하는 질문을 그대로 이정원한테 물어보는 거죠. 정원이가 말하게 하고, 형은 그저 듣고 공감해주세요. 형은 최대한 말을 아끼는 겁니다."

"인터뷰인데 말을 하지 말라고?"

"그거죠. 인터뷰가 끝나도 이정원은 얻은 게 없으니 형을 또 만나야 할 겁니다. 그러나 인터뷰가 거듭될수록 이정원은 자기 이야기만 하게 될 겁니다. 결국 형원이 형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라,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따뜻한 오빠가 될 겁니다."

"크읏. 오빠! 오빠가 되고 싶다! 그것도 따뜻한 오빠라니! 주원아, 네가 시키는 대로 할게! 입 다물고 있을게!"

내 조언을 듣고 고마워하는 형원 선배와 한철이.

'한유나, 보고 있나?'

지나간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매일매일 유나에게 고백을 거절당하며, 놀림 당하고, 외롭고 쓸쓸한 밤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았지.'

길고 긴 인내의 시간.

유나를 이해하기 위해 분석하고 더 좋은 고백을 위해 반성했다.

마치 7년을 땅속에서 견디고 날아오르는 매미처럼.

나는 연애전문가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얻은 지식으로, 내 친한 친구들을 수렁에서 건지려 하고 있다.

주원아.

또 한 번 어른이 되었구나.

"형원이 형. 한철아."

"응, 주원아."

"직접 사귀어보니까, 세상에 여자 친구보다 좋은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매일매일 짜릿한 재미와 행복이 무궁무진해요. 그러니 두 사람 모두, 이번에 꼭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주원아, 고마워! 최선을 다할게!"

우리 셋은 손을 모으고 다 같이 파이팅을 외쳤다.

* * *

사직동의 건물을 찾았다.

내가 사들인 이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1층의 액자 집에는 '점포 정리', '반액 세일'이라는 종이가 붙었다.

1층의 사장님과도 이야기를 해 봤는데, 이 기회에 가게를 정리하고 은퇴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어차피 몇 년 전부터 돈벌이는 되지 않았어. 월세나 겨우 내는 정도였지. 이 참에 나도 쉬어야겠지. 별 수 있나. 내가 배운 기술이 여기까지 인데."

수십 년을 보낸 가게를 정리하는 기분은 어떨까?

그래서 재촉하진 않았다.

그리고 건물과 건물 주위를 다시 꼼꼼히 살폈다.

'2층 서점의 매출은 한계가 있을 거야. 그러니 이 건물을 활용하려면 대부분의 이익을 1층에서 거둬야 해. 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1층의 매출로 10층짜리 모텔의 수익을 넘기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나는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10층 모텔을 이기려면 10층 모텔보다 큰 사업을 벌여야 한다는 뜻. 생각보다 일이 커질지도 모르겠군.'

다행히 사직동의 여러 미술관과 가까운 곳이었다.

그래서 이미지가 좋은, 깨끗하고 예쁜 거리의 일부였다.

'이 건물 자체로는 큰돈이 안 될 지도 몰라. 하지만 이 건물은 새 사업의 좋은 얼굴이 될 수는 있겠지.'

검토는 충분히 했다.

오랜 만에 노력 상점의 [ 압축 잠] ,[ 숲속 산책], [ 잡생각 제거]를 원 없이 사용해 자료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결정되면 망설이지 않는다!

나는 강릉으로 차를 몰았다.

내가 도착한 곳은 강릉의 커피 거리.

몇 년 후 이곳은 더 확장되고 강릉의 명물이 된다.

지금은 이제 막 피어나는 시기.

아담한 카페들이 옹기종기 모여 좋은 커피 냄새를 내뿜고 있었다.

나는 그 중 카페로사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로 들어갔다.

그리 넓진 않았지만, 아기자기 예쁘고 수수한 인테리어.

카페를 가득 채운 강렬하고 짜릿한 커피 향이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뇌를 강타했다.

나는 자리에 앉고, 곧바로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참고로 두 잔 다 내 꺼.'

이 곳의 커피를 제대로 맛보고 싶었다.

주문을 받자 잘 훈련된 직원이 능숙하게 커피를 내렸다.

'나도 카페에서 일한 적 있지만, 여기 직원들에 비하면 한참 애송이였군.'

잠시 후, 그윽한 향기를 뿜으며 내 탁자 위에 커피가 놓였다.

후루룩.

'맛있어.'

좋은 커피는 굳이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단번에 알아봐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카페 안을 둘러봤다.

머리가 벗겨진 40대의 남자가 카페 안을 다니며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남자는 지쳐보였지만, 친절했고, 노련하게 손님들에게 커피의 맛을 물어봤다.

'김덕진 사장, 드디어 만나는 군.'

김덕진.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아는 것은 아니고, 텔레비전, 신문, 유튜브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지금 카페로사는 강릉에 위치한 작은 커피 공방일 뿐이었다.

하지만 십년 쯤 지나면, 카페로사는 전국에 여러 개의 체인을 지닌 대형 카페가 된다.

그리고 각 지역의 카페 로사들은 각각, 맛있는 커피와 훌륭한 공간을 제공하는 지역의 명소가 된다.

'김덕진. 은행에서 일하다 IMF로 은퇴하고 세계를 다니며 커피를 공부했지. 그리고 철저한 노력과 근성으로 강릉 커피 거리와 명품 카페 체인 카페로사를 일궜지.'

그래서 그는 카페에 로망을 가진 모든 샐러리맨들의 우상이 되었다.

나 역시 한 때 카페에 로망이 있었고, 그래서 언론에 소개되는 김덕진 사장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김덕진 사장은 지금 아마, 경제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일 거야.'

김덕진 사장이 카페로사를 만들고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평범한 은행원이었고, 가진 재주라곤 커피에 대한 열정과 노력뿐이었다.

지금 김덕진 사장은 청담동에 고급 레스토랑을 열었다가, 큰 손해를 보고 20억이 넘는 빚을 진 상태였다.

김덕진 사장은 나의 영웅이었고, 그의 성공담은 수없이 방송에서 봤기 때문에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돈이 있지. 만약 내가 김덕진 사장을 살 수 있다면?'

카페로사를 더 빠르게, 더 크게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카페로사는 나의 것이 될 것이다.

그것과 더불어 사직동의 빨간 벽돌 건물도 제대로 본전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커피 맛이 어떠세요?"

내 테이블 쪽으로 김덕진 사장이 다가와 친절하게 물었다.

지쳐 보이는 얼굴.

김덕진 사장은 지금 아침, 저녁으로 빚 독촉을 받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커피에 관해서는 철저한 프로.

카페에서는 역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었다.

"맛있군요. 정말 맛있습니다."

나는 상냥하게 대답했다.

"혼자서 오셨나요? 그런데 커피를 두 잔이나 드세요? 커피를 좋아하시나 보군요."

"네, 그런데 몇 잔 더 맛을 볼 생각입니다."

"저희 커피가 맛있는 건 알지만, 너무 많이 드시면 밤에 주무시질 못 할 텐데요."

재밌고 대단한 사람.

내가 만약 무일푼에 20억 빚을 진다면?

일은커녕 숨 쉬기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김덕진은 눈앞의 손님에게 최선을 다해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이 사람, 더 마음에 드는군.'

나는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며 이야기했다.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햄버거 대신 커피를 팔면 어떨까?"

"네?"

"맥도날드는 햄버거를 팔아서 사람을 불러 모으죠. 그래서 맥도날드가 소유한 부동산의 가치를 최대한 끌어냅니다. 맥도날드가 햄버거 체인을 가장한 부동산 기업이란 사실은 모두가 아는 이야기죠."

뜬금없는 나의 말에, 김덕진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살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햄버거 대신 커피를 팔면 어떨까? 이 정도 커피라면 충분히 사람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맥도날드 못지않은 부동산 사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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