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 승자와 패자 □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서양화과 실력파 윤상미.
떠오르는 크리틱 신예 이정원.
대성병지 김대성.
서양화과 훈남 2인조 이주원.
그리고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온 조소과 에이스 임진만.
강영 교수는 오늘도 평범히 출근했을 뿐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눈에서 빛을 뿜고 있었다.
"요즘 미대생들이 열정이 없다는 건 전부 헛소문이었어. 모두 눈빛이 살아있군."
강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 그럼 누구부터 시작하지?"
"저요!"
강의실을 흔드는 낭랑한 목소리.
"제가 제일 어리니까 저부터 하겠습니다!"
굳이 꼭 말끝마다 나이를 덧붙이는 이정원.
이정원이 작품을 가지고 강의실 앞으로 나섰다.
"시작하도록."
이정원은 그림을 걸고, 발표를 시작했다.
"저는 지난 번 과제에 시간의 음악성을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음악을 이용해 표현할 수 없을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보이지 않는 음악을 이용해서 '시간의 소거'를 묘사할 수 있을까?"
으음.
이정원의 말을 듣고 나도 잠시 생각해보았다.
음악과 시간.
둘 다 그림으로 묘사하기엔 쉽지 않은 소재일 것이다.
"그래서 저는 악기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악기는 악기인데, 연주할 수 없는 악기라면? 그것으로 음악의 소거, 혹은 확대해석해서 시간의 소거를 묘사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정원이 그린 그림은 기타였다.
다만 기타 줄이 전부 끊어져 있었다.
낡은 벽에 기대어 서있는 줄이 끊어진 기타였다.
그럭저럭 볼만한 그림이었다.
"물론 제 그림을 보고, 관객이 곧바로 '시간의 소거'를 떠올릴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절대 연주할 수 없는 기타를 보며, 소리가 부재한 상황은 연상할 것입니다. 거기엔 분명 '시간의 소거'도 함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요!"
의리상 내가 손을 들고 지원 사격을 했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음악, 다시 악기로 치환해서 표현한 거군요."
"네, 맞습니다!"
내가 요약해주자 이정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음, 그래서 넌 네 치환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나?"
강영 교수가 질문하자 이정원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네, 저는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린 그림도 맘에 들고요. 하지만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확신이 없습니다."
"나도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자기가 맘에 들면 그걸로 된 거야. 나는 '시간의 소거'라는 제안을 했을 뿐이다. 학생들에게 정해진 답을 찾아오라고 할 거면 수학 교수가 되었어야지."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교수님이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셔서 무척 다행입니다!"
이정원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저마다 칭찬이나 질문을 던지자, 이정원은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은 윤상미.
이정원이 들어가고 윤상미가 자기 그림을 앞에 걸었다.
"저 역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시간의 소거란 대체 무슨 뜻일까. 그 뜻이 머리에 막연히 떠오르긴 했지만, 또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있는 사물과 시간이 영영 정지해버린 두 사물을 동시에 그린다면? 그럼 그 둘 사이에서, 관객들은 시간이 차지하는 공간을 발견하지 않을까?"
윤상미가 그린 그림은 드라이플라워였다.
그리고 드라이플라워 위에는 민들레 꽃씨가 뿌려져 있었다.
오오······
'일단 발상보다는 드라이플라워를 그린 그림이 상당히 예쁘군.'
상당한 실력.
물론 이런 장식적 표현력이 굳이 모든 화가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분명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화가의 능력이니까.
그리고 하늘하늘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민들레 씨앗도 정말 민들레 씨앗처럼 잘 그렸다.
상당한 표현력.
"처음엔 '시간이 소거된 사물'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드라이플라워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기척에도 날아가 버리는 민들레 씨앗을 같이 그렸습니다. 민들레 씨앗은 언제나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그러니 민들레 꽃씨가 정지해 있다면 분명 시간이 멈춘 상황일 것입니다."
"재밌군요!"
임진만이 번쩍 손을 들고 말했다.
"생명 그 자체인 씨앗과 죽어서 말라버린 꽃의 대비가 무척 강렬합니다. 시간은 곧 생명이라고도 볼 수 있으니, 장식성과 의미 모두 잘 잡은 훌륭한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상미와 친한 임진만의 지원 사격이었다.
'나는 이정원을 칭찬하고, 임진만은 윤상미를 칭찬하고······이 작은 강의실에서도 편 가르기와 정치질이 판을 치는 구나. 대한민국 미술계가 타락했다고 마냥 욕할 수가 없는 거구나.'
그렇게 나는 오늘도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다음은 드디어 김대성.
이번엔 또 어떤 작품을 가져왔을까.
지난 번 담배꽁초로 강영 교수의 칭찬을 들은 이후, 김대성은 자신감을 찾았다.
덕분에 이번에는 혼자서 작품을 준비했는데, 그래서 좀 불안했다.
김대성은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컴퓨터에 가져온 USB를 꽂아 넣었다.
그리고 김대성은 강의실을 향해 피식 웃음 지었다.
'저 과도한 자신감은?'
대체 어떤 작품을 가져 왔길래?
김대성의 미소를 보자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김대성은 가만히 있으면 불쌍해 보이고, 자신 있게 나서면 얄미워 보이는 중간이 없는 존재였다.
아무튼 김대성은 강의실을 향해 발표를 시작했다.
"교수님의 '시간의 소거'에 관해 작품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시간의 소거라고 해서 모두 시간이 정지한 상황만을 가정했더군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보았습니다."
대체 뭘 생각했길래?
시시한 생각이기만 해봐라.
동맹을 끊고 가차 없이 공격해버릴 테다.
"세상에서 시간을 전부 소거해버리면 물론 시간은 정지할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일부, 혹은 절반만 소거해버린다면? 그렇다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어라?
내가 알던 그 김대성이 맞나?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었다.
시간을 일부만 소거한다는 것은 나 역시 생각 못한 부분이었다.
"하하하. 재밌군. 내 과제를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었군."
이번엔 심지어 강영 교수마저 김대성의 기발함을 칭찬했다.
그렇다면 대체 느린 시간은 어떻게 표현할 건데?
김대성이 발표를 이어갔다.
"그래서 저는 시간이 느려진 상황을 고민해보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재미있고, 기발하게 느려진 시간을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저는 지난 3주간 시간의 속도에 관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제 결론은······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어이, 김대성.
시간의 상대성?
물리학이냐?
뜸 그만 들이고 빨리 말하라고.
정말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내가 김대성의 발표를 궁금해 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런데 나뿐만이 아니었다.
강의실 전체가 초롱초롱 김대성의 발표에 집중하고 있었다.
살다 살다 이런 날이 오다니.
"모든 사람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흐르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곳의 시간은 평소와 똑같이 흐르지만, 오직 나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그 순간! 그것은 바로 스케일링입니다!"
응?
스케······ 뭐라고?
그리고 김대성이 자기가 가져온 영상 파일을 재생했다.
[ 으아아악! ]
영상을 재생하자마자 김대성의 비명이 들렸다.
"이 작품을 위해 저는 직접 치과에 찾아가 스케일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미대생이란 사실을 밝히고, 그 순간을 촬영했습니다. 제가 스케일링을 받은 시간은 15분 남짓! 하지만 당시 저의 체감 시간은 30분도 넘습니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시간이었죠. 저는 이렇게 느려진 시간을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 으아악! 으아악! ]
영상에서는 계속해서 김대성의 비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음.
'뭔가 기발하긴 한데······'
썩 개운하진 않은 김대성스런 작품이었다.
그래도 칭찬해주고 싶었다.
확실히 김대성 역시 한명의 예술가로 성장하는 모습이 분명히 느껴졌다.
"하하하하. 기발하군. 잘했다. 정말 잘했다."
그리고 들리는 강영 교수의 칭찬.
그 칭찬에 김대성은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시간에도 생각 못한 작품을 가져오더니, 이번에도 그렇군. 시간의 소거란 주제를 내면서, 학생이 자기가 스케일링 받는 영상을 가져올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다. 물론 스케일링 받는 과정을 더 다듬어진 영상으로 만들어 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도만큼은 칭찬해주고 싶다. 김대성이라고 했지? 기억해두마."
김대성이 칭찬을 받으니 내 마음 속에 대견함 95%, 살짝 허탈함 5%가 피어났다.
아무튼 오늘 김대성은 멋있었다.
김대성까지 자기 몫을 잘 해내자 강의실의 분위기는 더 뜨거워졌다.
"자, 오늘 과제가 모두 흥미진진하군. 다음은 누구지?"
"저요! 제가 하겠습니다!"
과연 나는 이 좋은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앞으로 걸어가 내 그림을 걸었다.
"시간의 소거란 주제를 고민하다보니, 정말 세상 모든 것에 시간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어떤 사물을 선택해야 시간을 더 극적으로 시각화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제가 찾은 소재는 바로 자전거였습니다."
내 그림은 비틀거리며 자전거를 타는 유나였다.
그런데 유나보다는 넘어질 듯 위태로운 자전거가 주제였다.
그래서 유나보다는 자전거를 더 중점적으로 그렸다.
"세워둔 자전거 말고, 움직이는 자전거를 가정해보겠습니다. 자전거는 시간의 진행과 더불어 계속 앞으로 달려야합니다.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넘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자전거의 시간이 멈추게 된다면? 자전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비틀거리는 순간, 시간이 흐르는 상황과 시간이 소거된 상황이 계속해 교차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발표를 하며 내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림 속에는 자전거를 타려고 낑낑대는 유나가 있었다.
물론 본인도 즐거워하긴 했지만, 살짝 미안한 맘이 들기도 했다.
그림을 발표하는 자리인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음, 그렇군. 자네도 고민을 많이 했군. 앞서서 이정원이 시간을 음악으로 치환해 표현했지. 그럼 자네는 시간을 운동으로 치환한 건가?"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전거가 그 운동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윤상미가 손을 들었다.
"시간의 소거라는 주제도 주제지만, 그림 자체도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적당히 생략되었지만, 감춰지지 않은 인물의 표정과 특히 자전거의 율동성이 잘 느껴집니다. 하얀 모래땅을 배경으로 한 색감도 마음에 들고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윤상미한테 그림으로 칭찬을 받으니 두 배로 기뻤다.
그렇게 훈훈하게 무사히 내 발표도 끝났다.
"다음은 제가 하겠습니다!"
드디어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
바로 임진만이었다.
오, 그래.
우리 진만이, 뭘 그렸나 한 번 보자.
임진만은 오늘 과제 발표 내내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대체 얼마나 근사한 작품을 가져 왔길래?
그리고 임진만은 당당하게 자기 그림을 걸고, 영상도 같이 틀었다.
'음, 정말 괜찮군.'
꽤 잘 그린 그림.
간단하면서도 재미있는 소재.
굳이 설명을 안 들어도 뭘 노렸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임진만의 실력과 노력이 함께 느껴졌다.
끄덕끄덕.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확실히 임진만은 실력파였다.
게다가 오늘은 평소보다 더 열심히 준비한 것 같았다.
그림과 영상까지 남들보다 두 배로!
난 원래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게다가 오늘은 방금 전 발표에서 그림 속 유나를 보고 내 마음이 순수해졌다.
굳이 유나를 떠올린 직후, 열 내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유나가 주말 피크닉에 도시락 싸오겠다고 했지. 미안하니까 간단한 걸로 준비하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는 근사한 식당에 데려가야지.'
나는 임진만의 그림은 잊어버리고 혼자 딴 생각을 했다.
* * *
드디어 찾아온 크리틱의 날.
임진만은 조소과 동생들을 들들 볶아 모의 크리틱도 가졌다.
"자, 모두 내 그림을 보고 의무적으로 세 개씩 질문을 던져라! 공부라고 생각하고, 가능한 기발한 질문을 던져라!"
"세 개씩이나요?"
"시끄러! 어서 시작해!"
그렇게 모든 질문들을 미리 예상하고 철저히 우주 방어, 반격 카운터를 준비했다.
만만한 김대성.
능구렁이 이주원!
자기 할 말만 하고 앉아버리는 싸가지 이정원!
'이 서양화과 양아치 놈들, 모두 덤벼라, 얼마든지 상대해주마!'
됐다.
이제 준비는 완벽하다!
임진만은 당당하게 걸어 나가 자기 그림을 걸고, 영상도 틀었다.
"저는 영상과 그림 두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시간의 소거! 일부러 단순하게 발상했습니다. 시계의 바늘을 잘라버린 거죠. 시계는 계속 째깍이지만, 시간은 멈춰 있습니다. 그리고 유리잔 속의 홍차! 차가운 물속에서 천천히 홍차가 번집니다. 시계는 멈춰 있지만 시간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영상과 그림으로 동시에······"
임진만은 장황하게 자기 작품을 설명했다.
응?
그런데 저 자식이?
야! 너, 뭐하는 거야?
어서 내 그림을 관찰하고 공격하라고!
하지만 이주원은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끔 혼자 피식피식 웃곤 했다.
야, 너 뭐하는 거야!
이주원은 임진만의 발표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진만은 점점 초조해졌다.
그렇게 임진만의 거창한 자기 작품 설명이 끝나고, 강의실은 잠시 조용했다.
"저요!"
윤상미가 손을 들고, 몇 마디 작품 칭찬을 던졌다.
하지만 그것은 예의상 해주는 편들기 칭찬.
임진만은 칭찬을 듣고도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야! 이주원! 뭐해!
어서 공격하라고!
내 그림을 헐뜯고 비난해!
빈틈을 찾아서 물어뜯고 욕하라고!
일어나! 이주원! 야, 임마!
임진만은 무려 열여덟 개의 답변을 미리 외워왔다.
임진만의 간절한 마음의 소리가 들린 걸까?
이주원이 가볍게 손을 들었다.
"네! 말씀하시죠!"
임진만의 얼굴이 순간 밝아지고, 환영하듯 이주원을 지목했다.
이주원의 질문이 오히려 반갑다니!
"그림이 무척 예쁘네요. 단순한 발상이지만, 그래서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림도 훌륭하지만 영상도 재밌네요. 천천히 번지는 홍차와 천천히 어두워지는 창밖이 잘 어울립니다. 잘 봤습니다."
그리고 이주원은 자리에 앉았다.
야?
야, 임마.
이게 아니잖아.
"저기, 그게 다 인가요?"
"네?"
"다른 질문은 없습니까?"
"네. 좋은 그림 잘 봤습니다."
이주원은 산뜻하게 대답하고, 친절한 미소마저 날렸다.
이게 끝이라고?
내가 돈을 얼마나 썼는데?
조소과 동생들, 우영이까지 여섯 명을 불러서 짜장면만 스무 그릇 넘게 샀는데, 이게 끝이라고?
곧이어 다른 학생들도 손을 들고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다들 비슷비슷한 칭찬들.
'칭찬은 그만하라고! 내가 그림 잘 그리는 거 아니까! 얼마나 열심히 그렸는데, 당연히 잘 그렸겠지! 칭찬은 그만하고 욕을 하라고! 내 그림을 비난하고 공격하라고!'
하지만 전부 칭찬뿐이었다.
야, 김대성? 너는 뭐해?
강영 교수에게 화려한 칭찬을 들은 김대성은 아직 그 기분을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임진만의 그림에 관심이 없었다.
그때였다.
"저요!"
이정원이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래, 싸가지. 꿩 대신 닭이다. 너라도 나를 공격해라!'
임진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정원을 지목했다.
"일단 그림실력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표현력과 묘사가 서양화과인 저보다 대단한 것 같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칭찬은 그만하고 날 물고 뜯으라고!
"그리고 정물화의 탁자 위에 깐 담요가 참 예쁜 것 같습니다. 린넨 소재인가요? 묘사력이 너무 대단해서 소재가 그대로 느껴지네요. 무늬도 예쁘고요. 저도 지난 여름, 비슷한 담요를 찾고 있었는데, 저렇게 예쁜 담요는 못 봤네요."
크윽.
임진만은 입술을 깨물고 마른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에스닉 린넨 블랭킷. C마켓에서 58000원에 샀습니다."
"그렇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이정원은 감사 인사까지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모두들 칭찬만 하는 화기애애한 크리틱.
하지만 임진만의 마음속에선 오늘도 뜨거운 분노가 피어올랐다.
'서양화과 양아치 놈들! 두고 보자! 반드시,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