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호흡의 채색 □
임진만은 부들거리며 자리에 들어갔다.
임진만의 작품이 완전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이정원이 실컷 김을 빼 버려서, 마치 시시한 작품처럼 취급당했다.
물론, 최종 평가는 강영 교수가 내리니까 작품에 대한 점수는 어느 정도는 객관적일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어이, 임진만. 이번 학기 빡세게 달려 보자고.'
우리는 단지 예술을 공부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공부는 열심히 해야 한다.
다음 차례는 이정원.
이정원은 화판 가방을 가지고 앞으로 나갔다.
"저는 시간에 관해 이것저것 고민해보았습니다. 그러다 시간은 음악과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술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은 매순간 생성되고 소멸합니다. 음악은 시간과 함께 존재하고, 시간을 매개합니다. 그래서 저는 음악을 닮은 그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정원은 화판 가방을 열고 열 몇 장의 그림을 꺼냈다.
'마블링이군.'
마블링이란 물 위에 유성 물감을 뿌리고 그것 위에 종이를 덮어 찍어내는 기법을 말한다.
물 위에 뿌려진 유성 물감은 완전히 통제되지 않고, 물의 흐름을 따라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래서 마블링은 순간적이고, 즉흥적이며 우연적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특수한 물감을 쓰고, 또 훈련을 통해 마블링을 공예의 수준까지 끌어올린 전문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이정원의 마블링은 순수한 보통의 마블링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물 위의 물감을 찍어내는 것만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나서부터는 음악을 틀어두고, 그 음악의 이미지와 율동성을 마블링으로 담아내려 했습니다. 순서대로 비발디, 라벨, 드뷔시입니다."
이정원은 몇몇 음악가의 이름도 나열했다.
마블링들을 자기가 만든 시간 순서대로 배치했는지, 뒤로 갈수록 복잡하고 정교해졌다.
다만 그 정도.
우연에 의존하는 작품이고, 음악에 관한 개인적인 인상을 담은 작품이라 크리틱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몇 마디 칭찬 비슷한 것이 등장했고, 임진만도 그냥 혼자 씩씩거리다 넘어갔다.
다음 차례는 윤상미.
윤상미는 작은 유화를 걸었다.
"저는 교수님이 '시간'이란 주제를 내주신 후, 며칠 간 제 일상을 관찰했습니다. 저는 가능한 흔하고, 일상적이며, 제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시간이 은유된 그런 순간을 발견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찾아낸 것은······"
윤상미가 그린 그림은 끓고 있는 라면이었다.
투명 냄비 속에 물이 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라면과 스프와 파를 막 투하한 직후.
계란도 하나 아직 딱딱한 면 위에 올라가 있었다.
"아시다시피 라면을 끓이는 순간은 긴박합니다. 그리고 끓는 물은 매순간 움직입니다. 또한 라면은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접해온 흔한 소재입니다. 우린 모두 이 그림을 보고 몇 분 후에 라면이 익어서 모양이 변한 모습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아주 극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분야가 바로 요리인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라면은 가장 다이나믹한 요리고요."
재미있었다.
유쾌하면서도 감각적인 발견이었다.
게다가 그림실력까지.
가끔 윤상미처럼 첫 과제에 일부러 자기 그림 솜씨를 한껏 뽐내는 학생이 있다.
[ 나 이렇게 잘 그리니까 한 학기 동안 주목해주세요. ]
마치 교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그런데 윤상미는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 것 같았다.
'김대성이 주눅들만 하군.'
과연 강영 교수는 윤상미의 그림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라면 그림 그 자체로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긴 힘들지도 몰라. 하지만 '시간'이라는 주제에는 가장 충실한 작품 같아. 그림의 기교도 훌륭하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손을 들고 외쳤다.
"저요!"
임진만이었다.
"재미있는 그림 잘 봤습니다. 라면이란 소재를 찾은 것도 참신했고요. 하지만 굳이 그림으로 그릴 필요가 있었나? 예를 들어, 영상으로 찍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앞서 다른 학생이 말한 것처럼 소리까지 포함시킨다면 현장감도 있었을 테고요. 물론 그림 실력이 훌륭해 그림도 좋은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조소과다 보니, 그림 외의 수단을 써도 재미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그럴 수도 있었겠네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임진만을 향해 윤상미가 대답했다.
윤상미와 임진만은 친구 사이.
크리틱을 하다보면 일부러 띄워주기를 할 때도 많다.
그럴 땐 무조건 칭찬하는 것보다, 지금 임진만처럼 적당히 의견이나 비판을 섞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과연 폼으로 3학년을 단 것은 아니라는 말이군.'
임진만 역시 나름 크리틱력을 갖춘 상대였다.
자기 작품인 옹기토 촛불도 나쁘지 않았고.
'다행이군. 그래야 밟아주는 맛이 더 좋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도 손을 들었다.
"저요!"
"네. 이주원씨."
내가 손을 들자, 윤상미가 무척 반가워하며 지목했다.
"전 임진만씨의 의견에 반대로 생각합니다. 물론 영상을 찍고 소리를 포함시키는 것도 라면에 담긴 시간을 드러내는 괜찮은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 한해서는 영상보다 그림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영상을 대체할 만큼 충분히 표현력이 있습니다. 끓는 물과 라면을 생동감 있게 잘 그렸습니다. 그리고 윤상미씨가 다른 소재가 아니라 라면을 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일상에서 마주한 시간'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관객의 머릿속에 라면을 끓이던 순간을 떠올리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림에 비해 영상은 여백이 적다고 할까요? 영상은 관객에게 회상보다는 눈앞의 장면을 강요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도 동의한다."
내 발표가 끝나자마자, 강영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설치작가다. 그래서 영상과 소리가 내 무기지. 영상이 본격적으로 예술 작품으로 사용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림은 확실히 영상보다 오래된 매체다. 하지만 여전히 그림이 더 위력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그림은 단순히 순간의 재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물론 임진만의 의견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 역시 좋은 생각이었다. 다만 그저 내가 이주원의 의견에 공감하는 것일 뿐이다."
교수까지 내 편을 들자 의기양양하던 임진만은 무안한 표정으로 앉았다.
"재미있는 작품 잘 봤다. 다음!"
그렇게 윤상미의 발표도 끝나고, 드디어 김대성의 차례가 되었다.
'원래 항상 처음으로 발표하는 인간인데······'
오늘따라 김대성은 고개도 푹 숙이고, 마지막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그래서 더 불쌍해 보였다.
'힘내쇼, 대성병지.'
끼이익.
김대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가방을 열고 투명한 아크릴 상자를 꺼냈다.
강의실의 시선이 자연스레 김대성의 아크릴 상자를 향했다.
그리고 가볍게 웅성였다.
"뭐야, 저게."
임진만이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크게 소리 내어 말했다.
하지만 김대성은 꿋꿋하게 아크릴 상자를 들고 앞으로 나가 교탁에 얹었다.
"제가 가져온 것은 담배꽁초입니다."
정말 담배꽁초였다.
어항을 닮은 투명하고 뚜껑이 달린 직육면체의 아크릴 상자.
그 안에 담배꽁초가 가득 있었다.
담배꽁초만 있는 게 아니라, 찌그러진 캔과 종이컵도 있었고, 그 안에서 담뱃재가 녹은 검은 물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담배꽁초의 종류도 제각각.
작지 않은 아크릴 상자에 가득 담배꽁초와 몇 가지 쓰레기가 같이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시간을 표현하기 위해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작업실에서 고민하다가 후배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후배가 작업실서 고민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서 직접 돌아다니며 찾으라고 하더군요. 작품은 발로 만드는 거라고."
물론 그 후배는 나다.
김대성에게 몇 번 잘 해줬더니, 이젠 너무 달라붙어서 조금 귀찮을 때도 있었다.
다만 이번 학기는 임진만이라는 공동의 적과 함께 싸워야 하니까 최대한 도울 생각이다.
아무튼.
김대성의 발표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저는 밤이고 낮이고 계속 학교 주위를 걸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한 길가의 공사 현장을 지나쳤습니다. 2, 3층 쯤으로 보이는 작은 건물을 올리는 현장이었습니다. 그때가 본격적으로 하루 일을 시작하기 전이었는지, 인부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종이컵 커피도 마시면서요.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담배를 다 피우면, 하루의 본격적인 힘든 노동이 시작되겠구나. 그렇다면 저 사람들은, 담배가 최대한 천천히 타들어가기를 바라고 있겠구나."
김대성은 처음에는 약간 긴장한 듯 보였다.
하지만 원래 말하기를 좋아하는 성격.
발표가 길어지며 자연스럽게 자기 패턴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 별로 떨지 않고 차분하게 발표를 이어갔다.
"또 이런 생각도 해 봤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인간의 투명한 호흡이 눈에 보이도록 공기에 흰색 물감을 칠하는 과정이 아닐까? 힘든 육체노동이 시작되면 사람은 사라지고, 오직 일만 남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인부들은 틈틈이 휴식 시간에 담배를 피우면서 자기가 여전히 숨 쉬고 있음을, 자기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게 아닐까? 담배는 단순한 담배가 아니라, 지친 육체노동자의 5분간의 생명이 아닐까? 그래서 저는 그날 이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담배꽁초를 주웠습니다. 전부 400개니까······"
그리고 김대성은 손으로 계산하는 시늉을 했다.
"400곱하기 5분이면 전부 2000분. 약 서른 시간이 넘는 누군가들의 생명의 흔적을 주워 왔습니다."
미리 계산해왔으면서 저렇게 빤히 보이는 연기를 하다니.
김대성도 가끔 귀여운 구석이 있다.
어쨌든 김대성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임진만이 번쩍 손을 들었다.
그리고 지목도 받지 않고 곧바로 자기 의견을 말했다.
"담배를 너무 멋지게 포장한 것 아닙니까? 담배는 삶의 흔적이 아니라 생명을 소진시키는 독극물이 아닌가요? 그리고 담배꽁초를 선택했더라도 너무 지저분하고 1차원적인 표현 방식 같습니다. 단순히 꽁초를 주워 온 것뿐이잖아요? 그리고 캔에서 담배꽁초 말고도 뭔가가 흘러나오는 것 같은데,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찌푸려집니다. 단순히 담배꽁초를 줍는 것 이상의, 보다 정제된 표현 방식의 연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닙니까?"
"그, 그건······"
몰아치듯 쏟아지는 임진만의 공세 에 김대성은 곧바로 답변하지 못했다.
'어이, 쫄지 말고 대답해. 김대성!'
하지만 답변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하는 수 없군.
또 한 번 흑기사 출격이다.
"저요. 그 점에 대해서도 저는 임진만씨와 생각이 다릅니다."
나 역시 따로 지목도 받지 않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너냐?
임진만은 그런 표정을 지으며 나를 돌아봤다.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물론 저 역시 저 아크릴 상자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힘듭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이 작품의 매력이자 위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과제는 '시간'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시간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난 강의실 전부를 한 번 돌아봤다.
"그런데 지금 이 강의실에서 김대성씨의 작품을 제외한 모든 작품은 전부 다듬어지고 깨끗하고, 규칙적이고 예쁩니다. 이정원씨의 작품은 음악을 담았고, 윤상미씨의 작품은 라면이라는 선택된 한 순간을 담았습니다. 저 역시 진지한 표정을 그렸고, 임진만씨 역시 예쁜 모양으로 녹아내리는 양초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김대성의 작품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 강의실에서 오직 이 작품만이 깨끗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세상에 존재하는 시간의 본질과 더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원래 예쁜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육체노동자들의 힘들고 고된, 흙먼지를 뒤집어쓴 시간 역시 공평하게 시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김대성씨의 깨끗하지 않은 작품이 있어서 비로소, 이 강의실의 모든 작품들의 시간의 의미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조금 과장된 생각도 들었습니다."
말하다보니 너무 노골적인 편들기라서 조금 오글거리긴 했다.
그렇게 말하고 앉으려는데, 옆에서 누군가 불쑥 손을 들었다.
"저요! 저도 의견이 있습니다!"
이정원이었다.
역시 우리의 꿈나무.
기대하고 있었다고!
이정원도 따로 지목받지 않고 곧바로 일어나 자기 의견을 말했다.
그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맞아. 크리틱은 타이밍이지.'
원래는 크리틱은 순서를 지목 받아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이 예의다.
하지만 크리틱에선 예의보다 이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니 가끔 이렇게 멋대로 일어나 말하는 것도 필요하다.
"임진만씨는 이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 얼굴이 찌푸려졌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발언 자체가 이 작품의 가치를 단적으로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임진만씨는 더욱 정제된 표현방식이 필요하지 않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대상 그 자체를 직접 가져오는 것보다 더 순수하고 정제된 방식이 과연 존재할까요? 트레이시 에민은 자기 침대를 그대로 가져와 전시했습니다. 만약 침대 그 자체가 아니라, 침대의 그림이나 사진이었다면 트레이시 에민은 결코 주목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잘한다, 이정원.
이 오빠가 서양화과의 인재를 너무 늦게 알아봤구나.
하지만 임진만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반박했다.
"지금 대성이의 과제를 유명 작가 에민의 작품에 비교하는 겁니까?"
"자, 자. 그만. 재밌군. 그나저나 두 사람은 이 작품이 단단히 마음에 든 모양이군."
강영 교수가 끼어들어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강영 교수는 재미있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나도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트레이시 에민이나 데미안 허스트도 한때는 역시 학생일 뿐이었다. 너희들과 비교를 못 할 것도 없지. 야망을 갖고, 욕심을 부리는 것은 예술가의 특권이자 의무다."
강영 교수마저 김대성을 편들자 임진만의 얼굴이 한 번 더 찌그러졌다.
"그리고 작가의 입장에서 나 역시 김대성의 작품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요즘은 세상에 예술작품이 너무 많다. 그래서 예술로 존재하려면 작품들은 때로 강렬하고 잊혀 지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불쾌감은 예술의 좋은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여기, 단순히 꽁초들만 있었다면 심심했을 것이다. 더러운 액체가 흘러나오는 찌그러진 캔을 여기에 같이 담은 것이 아마 이 친구의 재능이자 감각이겠지."
강영 교수에게 재능이란 말마저 듣자, 김대성의 표정이 일시에 밝아졌다.
"예! 맞습니다! 저 역시 그 점을 노리고! 다른 쓰레기도 같이 넣어서 더러움의 다양한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으이그, 이 인간아.
그래서 코 푼 휴지를 벗어나겠냐.
며칠 전만 하더라도 다 죽어가더니.
그래도 역시 김대성은 까불어야 제 맛이다.
강영 교수의 칭찬은 계속 이어졌다.
"남들이 버리는 담배꽁초에서 시간을 찾은 발상도 맘에 든다. 그렇지. 시간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꽁초를 직접 가져온 방식도 나는 마음에 들었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었겠지. 하지만 오늘 본 모든 작품 중에서 확실히 이 작품이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선명한 작품이었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강영 교수의 거듭된 칭찬에 김대성은 미소를 되찾고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김대성.
마음껏 기뻐해도 된다.
오늘 작품은 분명 나쁘지 않았다.
완전 별로인 작품이었다면 아무리 돕고 싶어도, 내가 편들어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강영 교수는 강의를 마무리했다.
"오늘 수업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꽤 잘 그린 그림들부터, 재미있는 오브제까지. 첫 과제부터 이 정도니까 다음부터는 더 기대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열한 크리틱도 마음에 든다. 크리틱은 원래 싸우면서 배우는 것이다. 외국의 대학생들은 더 열심히 싸운다. 그러니 다음 크리틱도 기대하겠다. 더 치열하게 싸울 준비를 해 오도록."
강영 교수가 크리틱을 칭찬하자, 이정원이 나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역시 오빠 말이 맞았어요! 교수님께 잘 보이려면 크리틱이 최고인 것 같아요!]
아마도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나도 고개를 끄덕여줬다.
[ 당연하지, 정원아. 그럼 다음 시간에도 잘 해 보자고.]
그리고 슬쩍 임진만을 쳐다봤다.
마침 임진만도 부글거리는 눈빛으로 우리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임진만.
그런데 이제 시작일 뿐이야.
한 학기는 제법 길다고.
'김대성을 괴롭힌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우리 유나를 귀찮게 하는 것은 용서 못해.'
그렇게 우리는 산뜻한 스타트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