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포섭 □
그렇게 짧은 제주도 여행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제주도는 정말 아름다웠다.
마음 같아서는 한 달 정도 느긋하게 머물고 싶었다.
유나의 할머니도 친절하셨고.
하지만 나는 바쁜 사람.
게다가 곧 훈련소 입대다.
마음 편히 훈련을 받으려면 미리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유나의 집도 계약했다.
학교 근처의 서른 평 빌라를 전세로 얻었다.
방이 세 개라서 촬영이 늦어지는 날에는 수진 선배는 물론, 정화 선배도 유나의 집에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옷방도 따로 둘 수 있을 테고, 유미가 같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새 건물은 아니지만, 깔끔하고 가깝고, 안전한 곳이었다.
"더 좋은 집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야. 이 집만 해도 충분히 좋아. 더 좋은 집을 얻으면 내가 학생인 걸 잊어버릴 것 같아."
우리 쇼핑몰은 정신없이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나와 유나의 배당금이 많지 않은 것은 내가 넉넉히 쇼핑몰의 현금을 비축했기 때문이었다.
집을 얻는데 필요하다면 거의 얼마든지 현금을 동원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유나 명의로 전셋집까지 구했으니까······'
내 예상이 맞다면 유미의 대학 발표가 난 후에, 아마도 유나의 부모님이 서울에 오실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전셋집 자금의 출처를 궁금해하실테고, 유나의 쇼핑몰도 자세히 알고 싶어 하실 것이다.
'철저히 준비해야겠군.'
나는 언제나 한 수 앞을 내다보는 회귀자다.
그리고 유나의 집에 들어갈 가구와 살림살이도 같이 쇼핑했다.
데이트 같기도 하고 은근히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사 며칠 전.
집이 넓어서 이사갈 집을 미리 청소하는 것에만 며칠이 걸렸다.
"유나야. 우리 이렇게 새 집 청소하니까 약간 신혼부부 느낌 나지 않아?"
"응?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내 말은 오늘 진짜 신혼부부처럼······"
우린 거실에 쪼그려 앉아 바닥을 물걸레질 중이었다.
나는 들고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유나에게 다가가 얼굴을 내밀었다.
하지만 유나는 가볍게 나를 피하고, 내 어깨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으윽.
"하여튼, 으이그."
그렇게 유나에게 한 대 맞고 깨달았다.
사귀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을.
본격적인 진도를 뽑으려면 이제부터 다시 시작인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끈질긴 회귀자.
언제나 그랬듯 답을 찾을 것이다.
* * *
그리고 며칠 후.
유미의 대학 발표가 났다.
아쉽게 한국대는 떨어졌지만, 유미는 K대 수의학과에 합격했다.
제주대 수의학과에도 합격했지만, 유미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싶어하는 모양이었다.
유미의 부모님도 그걸 응원하는 듯 했고.
그래서 내 예상대로 유나의 어머님이 유나를 만나러 서울로 오시기로 했다.
'입대 전 내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겠군.'
피하지 못한다면 즐겨야 한다.
'어쩌면 어머님만 오시는 게 내게는 기회일지도 모르겠군.'
나는 유나의 어머님을 맞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그리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유나의 같은 과 친구 이주원이라고 합니다."
유나의 어머니가 올라오시는 날.
나는 내 카니발을 끌고 유나와 함께 공항으로 어머님을 모시러갔다.
그리고 어머님을 뵙자마자 짐을 받아들며, 씩씩하게 큰소리로 인사했다.
처음 뵙는 유나의 어머니.
우리 어머니보다 조금 어리신 것으로 아는데, 외모만으로는 한참 어려 보이셨다.
그리고 역시, 나를 약간 경계하는 느낌도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조금 수상하긴 하셨을 것이다.
유나와 동갑인데, 유나를 꾀어 같이 쇼핑몰을 한다니.
하지만 일단은 내게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셨다.
"아, 반가워요. 유현이랑 유미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서울 갈 때마다 신세 졌다고. 고마워요. 이제야 만나는 군요."
"엄마, 서울 올라오느라 힘들었지?"
"힘들긴. 금방인데. 그나저나 유나야. 전셋집을 구했다는 게 무슨 말이야?"
"응. 영 아트 상금이랑 쇼핑몰로 번 돈을 합쳐서 집을 얻었어. 엄마 올 때까지 기다리면 늦을 것 같아서."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큰돈을 네가 마음대로 결정하면 어떡해."
유나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충분히 어머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리게만 여기던 딸이 억 단위의 돈으로 서울에 전셋집을 얻었으니, 충분히 걱정되실 것이다.
이제 내가 그 걱정을 덜어드려야지.
"어머니. 그럼 제가 유나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셋은 곧 유나의 집에 도착했다.
"뭐, 장소는 괜찮네. 학교도 가깝고. 그런데 여기 비싸지 않아?"
어머님은 집안을 꼼꼼히 둘러보셨다.
"가구도 예쁘고 잘 골랐네. 냉장고랑 세탁기도 네가 산 거야?"
"응. 주원이랑 같이 골랐어."
집을 직접 확인하셨지만, 어머님의 얼굴에 의혹은 더 짙게 드리웠다.
가구부터 가전제품들까지 전부 꽤 고가의 상품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여기까지 오신 김에 직접 쇼핑몰도 살펴보시죠. 유나의 집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립니다."
"그렇게 가까워요?"
"네, 유나가 학교 다니면서 일할 수 있도록 일부러 가까운 곳으로 골랐습니다."
"그래요. 지금 가보죠."
"그리고 어머니, 말씀은 편하게 하시죠."
잠시 후.
딸랑.
하이 유나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우리 세 사람이 들어갔다.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그리고 사무실 안에서 분주하게 일하던 스물 몇 명의 직원이 우리를 향해 인사했다.
어머님은 약간 얼떨떨하신 표정이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많이 크네?"
유나가 어머님을 향해 빙긋 웃었다.
"엄마."
"응?"
"이게 다가 아니야. 이 건물 바로 위층도 우리가 쓰고 있어. 3층과 4층을 통째로 하이 유나가 쓰고 있어."
"그, 그래?"
"그럼 위층도 가보실까요?"
"그, 그러죠."
4층은 촬영 세트와 재고 창고로 쓰고 있었다.
4층 문을 열자 십여 명의 직원들이 옷을 포장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씩 드러나는 쇼핑몰의 규모에 어머니는 점점 더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이, 이게 정말 두 사람이 함께 시작한 쇼핑몰이라고?"
"응, 맞아."
"이리 오시죠. 제가 좀 더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나는 어머님과 유나를 회의실에 앉히고 미리 준비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원래 쇼핑몰은 세금에 민감하기 때문에 쇼핑몰의 매출과 비용, 재고, 자산 등등은 투명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하이 유나의 자산은 물론, 하이 유나의 전략과 성장 과정까지 모두 자세히 어머님께 설명 드렸다.
"그러니까······회사 통장에 정말 저 금액이 들어있다고요?"
"네, 어머님. 그리고 저한테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그런데 옆에 있던 유나까지 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유나는 이제까지 일부러 자기의 재산을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대강 짐작은 했겠지만, 생각보다 훨씬 큰 자기 재산을 오늘 알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게 가능하죠? 주원이, 주원씨도 겨우 학생인데······"
"운이 좋았습니다. 유나가 예뻐서 손님들에게 인기도 좋았고요. 그리고 방송에 출연한 점이 상당히 컸습니다."
"하지만 회사를 단기간에 이렇게 키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내 상세한 보고에 어머님은 조금 경계를 풀고,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어머니의 표정을 확인한 유나가 옆에서 분위기를 띄웠다.
"엄마, 사실 주원이 회사 하나 더 있어."
"응? 뭐라고?"
"말 나온 김에 거기도 같이 보러 가시죠. 바로 길 건너 저기, 맞은 편 건물입니다."
어머님은 창밖으로 내가 가리킨 건물을 바라보셨다.
역시 꽤 큰 건물이라 또 한 번 당황하신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딸랑.
원디자인의 문을 열자 이번에도 직원들이 우리를 향해 일제히 인사를 건넸다.
시끌벅적했던 하이 유나와는 달리 원 디자인은 열다섯 명의 직원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집중하고 있었다.
"어, 대표님. 오셨어요?"
사장실에서 승희씨가 웃으며 걸어 나왔다.
난 이제 원 디자인의 실무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아서, 승희씨가 사장실을 쓰고 있었다.
"유나의 어머니세요. 서울에 오신 김에 여길 보여드리려고요."
"아, 어서 오세요. 유나씨가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예쁜가 했더니, 어머님이 너무 미인이시네요."
승희씨는 역시 고객상담의 달인이었다.
눈치도 빠른 승희씨는 친절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어머님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지금 사무실엔 열다섯 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지만, 재택근무로 일하는 직원도 아홉 분 더 계세요. 그분들은 보통 학생이거나, 아이를 키우는 분이세요. 대표님이 직원들의 사정을 배려해주셔서, 사정이 있는 분들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거죠."
"그, 그렇군요."
"저도 아이를 키우느라 경력이 단절될 뻔 했어요. 대표님 덕분에 지금은 이렇게 무사히, 아니 결혼 전보다 훨씬 더 책임 있는 자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표님께는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그래요? 저도 애를 셋이나 키워서 그 심정 잘 알죠."
어머님은 옛 생각이 나시는지 승희씨의 손을 꼭 붙잡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저희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설명 드릴게요. 영화사부터 건축사무소까지 이렇게 큰 회사들이 저희 원 디자인에게 일을 맡기고 있습니다. 저희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이트 관리까지 하며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이게 정말 전부 주원이, 주원씨가······"
"네, 맞습니다. 저희 대표님은 정말 웹 디자인의 천재세요. 남들은 생각도 못한 디자인을 만들어서 업계에 돌풍을 일으키셨죠. 저희들은 그 디자인을 다양하게 변주시켜서 지금의 강력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했습니다. 덕분에 원 디자인은 앞으로 3개월 치 주문까지 예약되어 있습니다."
"3개월이나요? 대, 대단하군요."
승희씨의 설명에 어머님은 이제 나를 경계하기는커녕 깊이 감탄하시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다른 사람에게는 내가 천재로 보이는구나.'
김태민이나 유나에게 치이다보니 나 자신에 대해 상당히 겸손해졌다.
그런데 나는 웹 에이젼시를 만들면서 미래에 유행하는 웹 디자인 스타일들을 가져왔다.
그랬으니 웹디자이너들에게는 내가 천재로 보였던 것이다.
나도 천재라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엄마, 주원이 진짜 대단하지?"
"아이구.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구나. 주원 학생은 대체 정체가 뭐예요?"
이제 나를 향한 어머님의 말투가 많이 편해지셨다.
"말씀 놓으세요, 어머니. 유나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전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리고 원 디자인의 사무실에서 빠져나와 길옆의 카페로 어머님을 안내했다.
이곳은 바로 내가 예전에 일했던 카페 '구름 커피'였다.
마침 사장님이 계신 시간이었다.
"어머님,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시죠."
"어머, 주원이, 유나도 왔구나. 어서 들어와요. 내가 커피 내려줄게."
"안녕하세요. 사장님. 이 분은 유나의 어머니세요."
"아, 안녕하세요. 제가 유나랑 주원이한테 얼마나 신세를 졌는지 모른답니다."
"네? 신세를 지셨다고요?"
사장님은 얼떨떨해 하시는 어머님께 우리의 활약상을 전부 보고하셨다.
"제가 초등학교 선생이었거든요. 퇴직금으로 이 카페를 차렸는데, 장사가 너무 안 돼서 거의 포기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주원이랑 유나가 나타나서······"
"어머, 저도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셨군요. 안 그래도 유나가 너무 똑똑하고 참해서 부모님은 어떤 분이실지 궁금했거든요. 선생님이면 잘 아시겠네요. 우리들한테는 퇴직금이 단순한 돈이 아니잖아요. 젊은 날의 결실 같은 거잖아요."
"그, 그렇죠."
두 분은 둘 다 선생님 출신이라 말이 잘 통하시는 것 같았다.
사장님은 내 덕분에 카페가 번창하고, 요즘은 살맛이 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셨다.
"주원이랑 유나가 원두를 바꿨다고요?"
"그렇다니까요. 둘이서 아예 카페 전부를 바꿔놨어요. 손님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주원이랑 유나는 나한테 은인이나 마찬가지예요."
유나의 어머님은 이제 나에 대한 여러 의혹들은 전부 걷어버리시고,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어머님.'
저녁에는 유나의 어머니를 동대문에 모시고 갔다.
"어머니, 동대문은 옷이 반값입니다."
"오호, 그 말은 들었어."
"그러니 오늘은 마음껏 쇼핑하시죠."
"으음. 그래볼까?"
이제 어머님은 내게 편하게 말을 놓으셨다.
나는 요즘 꾀가 늘어 동대문에 도착하면 유나와 따로 다녔다.
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사입 가방을 매고, 어머님의 짐꾼을 자처했다.
"아이고, 이사장! 정말 오랜만이네. 이사장이 이 시간에 웬일로 직접!"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셨어요! 오늘 유나 사장이랑 같이 오셨네. 방송 잘 보고 있어요!"
원래 동대문은 바쁘고, 도매 사장들은 정신없이 일한다.
하지만 하이 유나는 최근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쇼핑몰.
하이 유나에 입점한 옷은 수천 벌 씩 팔린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하이 유나에 옷이 몇 벌만 들어가도 도매상 사장에게는 차가 한 대씩 생기는 셈이었다.
그러니 유나와 나는 동대문의 VIP였다.
그래서 나와 유나가 같이 등장하자 사장들이 몰려들어 아는 체를 했다.
"이 분은 유나의 어머니세요. 오랜만에 서울에 오셔서 제가 모시고 나왔습니다."
"어이구, 언닌 줄 알았어요. 어쩜 이렇게 젊으세요. 비결이 뭐죠?"
"어머님도 쇼핑몰 하셔도 되겠다. 유나 사장이 어머니 판박이네."
동대문 상인들은 눈치와 아첨의 달인.
상인들은 화려한 말발로 어머님을 향해 나와 유나의 찬양을 퍼부었다.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쇼핑몰이 하이 유나에요! 젊은 사람들이 어찌 그리 일을 잘하는지."
"유나씨가 좀 예뻐요? 난 하이 유나가 대박날 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니까!"
자식 칭찬을 싫어하는 부모는 없는 법.
어머님도 결국 입이 귀에 걸리셨다.
"너희들 대체 서울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사람들이 너무 붙잡아서 내가 정신이 하나도 없네."
"응. 우리가 여기서 좀 잘나가는 편이야."
어머니 앞이라 유나도 마음껏 으스댔다.
그렇게 간신히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 전.
나는 아동복 매장에 들러, 미리 주문한 옷들을 차에 실었다.
"아동복도 팔아?"
"아니. 우리가 공부방이랑, 보육원도 후원하고 있거든. 우리는 옷을 도매가로 살 수 있으니까, 이렇게 가끔 옷을 보내기도 해."
유나가 내대신 설명했다.
그렇게 어머님께 이주원이 사실은 마음도 따뜻한 사람이라는 점도 강력하게 어필했다.
* * *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유나의 집으로 점심시간에 초대를 받았다.
식탁에는 한 상 가득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우리 집이 아니라서, 손에 안 익어서 음식이 맛있을지 모르겠네."
어머님께서 손수 직접 요리를 하신 것이었다.
"아닙니다. 냄새가 너무 좋습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어요.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느라 집밥도 못 먹을 텐데."
"넵, 어머님."
그리고 나의 필살 세 그릇 먹기.
"바보야. 천천히 먹어. 체할라."
"아니, 너무 맛있어서 천천히 먹을 수가 없어."
좀 오글거리는 대사였지만, 다행히 어머님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사이다 줄까?"
유나가 냉장고로 가자, 어머님이 외치셨다.
"사이다는 무슨! 탄산음료는 몸에 안 좋아. 내가 숭늉도 끓여놨어. 주원아. 탄산음료 같은 거 너무 마시면 안 돼. 알겠지?"
"넵, 어머님. 앞으로 탄산음료는 절대 마시지 않겠습니다."
이제 어머님은 내 건강까지 염려해주셨다.
"제주도 왔을 때, 우리 식당일도 도왔다며?"
"넵. 저희 어머니도 식당에서 일하시거든요. 그래서 꼭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 어머님께서 고생 많이 하셨겠다. 그래도 주원이가 이렇게 훌륭하게 컸으니까, 정말 뿌듯하실 거야."
어머님께 점수를 따려고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어머님의 다정한 위로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컥했다.
"네. 돈을 많이 벌어서 어머니께 꼭 효도하고 싶습니다."
"그래. 그런데 돈도 돈이지만, 건강이 제일 큰 효도야. 알겠지?"
"네, 어머님."
내가 어머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한 건데, 결국 어머님도 내 마음에 들어오셨다.
역시 한씨 집안 사람들이 사람 홀리는 것에는 소질이 있는 듯 했다.
아무튼 그렇게 또 한 명의 유나 가족을 포섭하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