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력천재 미대생-127화 (127/203)

■ 127. 1년 전 □

드디어 우리에게 주어진 7일이 끝났다.

영 아트 진행 스태프들이 작업실에 들어와 사진을 찍고, 우리의 인터뷰도 땄다.

우리는 유화를 그렸다.

그래서 그림이 마르는 것에만 다시 며칠이 소요된다.

그림이 덜 말라서 아직 그림의 이동은 보류.

그래서 전시는 5일 후로 잡혔다.

'아무튼 이제 우리가 힘든 일은 거의 다 끝났다고 봐도 되겠지.'

남은 것은 전시와 관객들의 반응.

그리고 심사위원들의 평가.

하지만 우리로서는 이미 충분했다.

이미 최선을 다했고 나름 보상도 챙겼다.

우승까지 하면 더 좋겠지만, 그건 나중의 일.

'이런 만족감은 최선을 다 한 사람들만의 특권일지도.'

후련했다.

"리플릿에 들어갈 글만 적어주면 진짜 끝이에요. 촬영이랑 인쇄는 우리가 할게요."

전시에는 보통 관객들을 위한 작은 인쇄물도 같이 만들곤 한다.

거기에 들어갈 각자의 그림 설명을 적어야했다.

뭐, 그 정도쯤이야 일도 아니지.

김수희 작가가 웃으며 물었다.

"다음 촬영까지 뭐 하실 거예요?"

"글쎄요. 모두 뜨거운 물에 푹 씻고 며칠씩 잠들지 않을까요?"

물론 나야 사무실로 돌아가 다시 일을 시작할 것이다.

"그럼 최종 전시장에서 다시 봬요."

이번 결승은 그림의 완성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시가 아직 남아있다.

그림의 완성은 전시일 수도 있었다.

물론 그림 자체도 완결된 작품이다.

하지만 벽에 걸려서 관객들이 봐줄 때 비로소 작품의 의미가 완성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컬처온은 이번 결승에 3일간의 전시를 포함시켰다.

그 기간 동안 관객들은 그림만 감상할 뿐,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참가자들도 다른 추가적인 작업은 더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영 아트가 3일간의 전시를 포함시킨 것이 무척 합당한 일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영 아트를 기획한 컬처온이 나름 미술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도······"

그렇게 우린 일주일간의 정든 작업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겨우 일주일.

하지만 우리의 작업실은 온통 물감과 기름얼룩, 물감 걸레와 쓰레기들로 지저분했다.

물감 자국 하나하나마다 지난 일주일간의 고생과 추억이 담긴 것 같았다.

'겨우 일주일이긴 하지만······'

친구들과 이렇게 함께 웃고 떠들며, 지칠 때까지 함께 그림 그릴 시간이 또 있을까?

또 있기를.

가능하다면 평생 이렇게 지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내겐 무척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노력한 시간은 언제나 보석처럼 기억된다.

* * *

그리고 전시 전날.

우리 6명은 전시를 최종 점검하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우리의 그림 외에도 최성진의 작품도 같이 걸렸다.

영상 부스가 두 개 따로 마련되어 최성진과 팀 수진 두 팀의 작품 설명이 각각 상영되었다.

영상엔 작품에 관한 인터뷰 외에도, 지난 일주일간의 작업 과정도 간략히 편집되어 같이 상영되었다.

나는 우리의 그림들과 친구들의 인터뷰를 꼼꼼히 비교하며 살펴봤다.

전시를 점검하는 것보다는 남들보다 먼저 전시를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먼저 김태민의 그림부터.

"아······"

김태민의 그림 앞에 서면 일단 감탄사가 나온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유나도 수진 선배도, 그림을 따로 배우지 않은 형원 선배도 똑같았다.

"아······"

심지어 김수희 작가와 황재국 PD, 다른 VJ들까지도 반응이 똑같았다.

일단 김태민의 그림 앞에 서면 다 똑같이 감탄사를 뱉었다.

'참 예쁘게도 그렸다.'

그림의 묘사가 정교하진 않았다.

수진 선배의 예쁜 이목구비를 큰 붓질로 거칠게 표현했다.

그런데도 그림 속 수진 선배가 굉장히 예쁘게 느껴졌다.

또렷한 이목구비나 순두부 같은 얼굴 살결.

수진 선배의 이미지가 그림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완성된다.

'이건 내가 수진 선배를 잘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림이 가진 힘 때문일까?'

정답은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림 자체의 분위기가 너무 예쁘다고 해야 할까.

수진 선배는 거울 앞에서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를 만져주는 전소혜.

화장을 돕는 유나와 정화 선배까지 같이 그렸다.

'김태민에게는 수진 선배가 평소에 이렇게 보인다는 말이지······'

예쁘고 활기차면서도, 고개를 숙인 수진 선배는 살짝 쓸쓸해 보였다.

'수진 선배 보다는 오히려 살짝 김태민의 느낌이 나기도 해'

그림이라는 게 다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모델을 그린다는 핑계로 사실은 화가 자신을 그리는 게 아닐까?

아니면 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

어쩌면 김태민은 수진 선배에게서 자신을 닮은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에 수진 선배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잘 모르겠다.

회귀자라고 해봤자 그림 앞에서는 초보일 뿐이었다.

'이런!'

떠오르는 생각들에 몰입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김태민의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런데 나뿐만이 아니었다.

형원 선배부터 VJ들까지 전시장을 서성이던 사람들은 전부 김태민의 그림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정말 마법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림은 정말 멋진데···'

하지만 김태민을 마음대로 나의 경쟁자로 삼은 나로서는 또 한 번 살짝 패배감을 맛봤다.

다만 단순한 좌절이 아니라, 기분 좋은 패배감이었다.

'그래, 김태민. 내가 한 번 더 졌다. 하지만 넌 현역이지. 네가 군대에서 보초 서는 동안, 난 칼퇴근해서 그림 연습할 거다. 2년 후에 두고 보자.'

그렇게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수진 선배의 그림.

앞서 말했듯 수진 선배는 종이를 오리는 정화 선배를 그렸다.

흰색 종이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는지, 수진 선배는 색을 연하게 썼다.

약간 수묵 담채화 같은 느낌?

수진 선배의 그림도 수진 선배처럼 그런 청순한 이미지였다.

'결국 그림은 어떻게든 화가를 닮는 구나.'

"정화랑은 사실 입시 때부터 같은 학원에 다녔어요. 고등학교는 달랐지만요. 그리고 대학에 와서는 항상 같이 붙어 다녔고요. 엄마 같기도 하고, 언니 같기도 한 소중한 친구예요. 그 고마움을 담아 정화를 실물보다 훨씬 예쁘게 그려 보았습니다."

수진 선배는 그렇게 장난스럽게 인터뷰했다.

정화 선배는 형원 선배를 그렸다.

꽤 근사한 그림.

"엉뚱하고 웃긴 오빠인데, 가끔 자기 일에 집중할 땐 사람이 달라 보여요."

정화 선배는 그렇게 인터뷰했다.

가끔 멋있는 형원 선배.

'가끔 멋있는 걸로는 여자를 사귈 수 없구나.'

정화 선배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런 소소한 깨달음도 얻었다.

새해에는 글도 대박 나고, 여자 친구도 꼭 생기길.

나는 형원 선배의 초상화 앞에서 잠시 진심으로 기원했다.

그리고 드디어, 유나가 그린 내 그림 앞에 섰다.

그림 앞에 서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그림은······'

내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시절의 모습이었다.

겨우 1년도 안 된 시간이지만, 그림 속 나는 지금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나는 카운터에 서서 커피를 내려, 우유 거품으로 라떼 아트를 연습하고 있었다.

카페는 통유리 창문으로 오후의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카페 구석에는 책을 펼치고 과제를 하는 유나 자신도 흐릿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래, 맞아. 이런 적도 있었지.'

미대생의 머릿속에는 다들 카메라가 한 대 씩 들어있는 모양이었다.

사진을 찍어둔 것도 아닌데, 유나는 용케 참 잘도 그려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은근히 나를 기쁘게 했다.

'내게는 그저 지나가던 일상일 뿐이었는데······'

내가 무심코 흘려버린 하루를 누군가 대신 기억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유나라는 사실이 행복했다.

내가 처음 유나를 본 건.

미대에 들어가고 첫 대면식 술자리였다.

난 그때 아직 중년 아재의 영혼과 시골 고등학생의 영혼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지금은 약간 타협점을 찾은 느낌이야.'

지금은 중년 아재의 엉큼함과 스물한 살 대학생의 건강한 육체가 나름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엔 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대학 생활도 긴장되었고.

그래서 내가 유나를 좋아하게 될 줄은 미처 예상 못하고 있었다.

일단 내 영혼이 대학 생활에 적응해 평온을 되찾는다 하더라도······

'유나는 얼핏 봐도 내게는 과분한 사람이지.'

피로와 패배에 찌든 회귀자가 감히 좋아하기엔, 유나는 너무 예쁘고 어리고 귀여운 여학생이었다.

하지만 내가 일하던 카페는 우연히 유나의 자취방 앞이었다.

그리고 유나는 내가 귀찮을 만큼 자주 카페를 찾아왔다.

그렇게 우린 친해졌고, 어느새 나는 카페에 출근하면, 유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유나와 함께 정신없이 보낸 1년.

그런데 유나가 그 1년 전 나를 기억해주고 있었다.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차올랐다.

그래서 유나가 그린 그림을 평가하자면······

'아마 죽을 때까지 이 그림을 평가하진 못하겠지. 무조건 만점입니다.'

그래도 억지로 그림을 평가해보자면······

역시 못하겠다.

유나니까 잘 그렸을 것이다.

남들 눈에도 근사하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내 그림.

벽에 걸린 내 그림 앞에 서 보았다.

'이젤에 걸어두고 그릴 때와 이렇게 전시장 벽에 걸어두고 보니까 느낌이 또 달라지는구나.'

전시가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느낌이 새로웠다.

나는 버스 창밖을 바라보는 유나의 옆모습을 그렸다.

심야 버스의 어두운 조명, 까만 창밖.

유나의 귀와 볼, 머리카락.

내가 원하던 느낌대로 잘 그렸다.

내게는 만족스러운 그림.

화가는 한 장면을 머리에 떠올리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긴다.

그 과정은 쉽다면 쉬운 일이지만, 때론 아주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걸 이번에도 잘 해냈다.

나는 또 그만큼 성장했을 것이다.

'다만······'

김태민은 수진 선배를 천사처럼 그렸다.

그리고 유나는 오후의 느긋하고 환한 풍경으로 나를 그렸다.

그런데 나만 유독······

어두운 밤 버스 안의 살짝 흐트러진 유나의 옆모습을 그렸다.

영 아트가 끝나면, 잠시 스스로를 돌아보며 영혼을 점검해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타박타박.

옆에서 걸음소리가 나서 봤더니 유나였다.

유나가 다가와 내 옆에 섰다.

유나는 내 그림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게 나야?"

"어? 응."

"잘 그렸네. 예쁘게 그려줘서 고마워. 수고했다."

다행히 유나는 내 그림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나는 내 욕망이 너무 투영된 것 같아 창피했는데, 유나는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어쩌면 그건, 아직 내 솜씨가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뭐, 어차피 그림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니까.'

당사자가 만족했으니, 일단은 넘어가도록 하자.

형원 선배는 여러 장의 실크 스크린을 같이 걸었다.

한 장, 한 장은 완성된 작품으로 부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장으로 연출했더니 왁자지껄한 느낌도 나고, 나름 괜찮은 것 같았다.

형원 선배가 실크스크린으로 찍은 것은 지난 일주일간의 작업실 풍경이었다.

초보 치고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다 함께 완성한 작품인 만큼 우리에게는 의미 있는 실크스크린이었다.

당연히 전시장엔 최성진과 윤상희 작가의 작품도 걸려 있었다.

나는 그들의 작품도 같이 살펴봤다.

먼저 작품 설명 인터뷰부터 확인했다.

"상희씨는 인물 사진을 찍습니다. 마치 렌즈가 없는 것처럼, 눈앞에서 만난 사람처럼 생생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것은 기술을 넘어서는 관심과 애정의 영역이죠. 상희씨의 작품의 가치는 그 대상에 대한 애정에서 발생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최성진이 말했다.

'말은 참 잘한다.'

영 아트 내내 최성진에게만 포커스가 주어졌고, 윤상희 사진작가는 들러리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렇게 띄워주다니.

늦진 않았을까.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하면 어떨까? 관객들에게 이것이 사진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면 어떨까? 상희씨가 촬영한 대상은 사진 속으로 관객을 끌어당깁니다. 관객은 어느새 그게 사진이라는 것을 잊게 됩니다. 하지만 사진이 관객에게 그만 다가오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관객에게 여기엔 분명 렌즈라는 가로막힌 벽이 있다고 말해주는 겁니다."

나는 영상 부스를 나와서 최성진과 윤상희 작가의 작품 쪽으로 갔다.

두 사람은 이번에 모두 열 점의 작품을 걸었다.

적지 않은 작품 수.

부스를 나와서도 최성진의 마지막 말이 귀에 맴돌았다.

"관객은 유리의 존재를 자각하고, 사진과 자신의 거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의 의미와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시도를 해 보았습니다."

윤상희 작가의 인물 사진들은 두꺼운 액자에 담겨 있었다.

사진과 액자유리 사이에 충분히 공간이 있는 맞춤 액자였다.

그리고 최성진 작가는 그 유리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여러 종류였다.

때로는 윤상희 사진작가의 모습을.

때로는 주변의 풍경을.

어떤 그림은 사진들을 살짝 씩만 가렸다.

또 어떤 그림들은 거의 사진들을 덮을 만큼 빼곡했다.

최성진 작가는 액자 유리 위에 그림을 그려서 관객과 작품 사이에 그림의 벽을 만들고 있었다.

'기발하네.'

최성진 작가는 원래 탁월한 표현력으로 유명한 유화 화가였다.

언뜻 남동민이 생각날만큼 기교파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스로 기존의 작품들을 내려놓고,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했다.

유리 위에 그려진 화려한 그림들.

그것도 같은 팀원인 윤상희 작가의 사진과 상당히 잘 버무려졌다.

무척 기발하고 재미있는 시도였다.

액자 유리 위에 그려진 그림들도 아주 훌륭했다.

유리 위에 그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화가의 기교와 실력이 충분히 느껴졌다.

그림들은 때론 익살스럽고, 때론 서정적이고, 흠 잡을 곳이 없었다.

'흥미롭군.'

최성진 자체는 별로 정이 안 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이번 작품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때 전시장의 입구가 소란스러웠다.

새로운 사람들이 온 것이었다.

바로 최성진과 윤상희 작가.

우리보다 조금 더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만이 아니었다.

평론가인 하종호와 다른 출연자인 유인호도 같이 왔다.

네 사람이 같이 오자 PD와 스태프들이 다가가 인사하며 전시장 안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어떠세요, 하종호 심사위원님. 물론 전시는 내일부터입니다. 하지만 미리 두 팀의 작품들을 둘러보셨는데, 간단한 소감을 말씀해주시죠."

PD가 질문하고 동시에 VJ가 하종호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하종호는 잠시 옷을 다듬고는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일단 급히 둘러보느라 모든 작품을 제대로 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대하는 두 팀의 태도는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팀 수진은 자기들이 제일 자신 있는 방식을 선택 했습니다. 서양화과 학생들답게 늘 그려오던 그림을 선택했죠. 그림도 무척 대학생다웠습니다."

대학생다운 그림이란 무슨 뜻일까?

마냥 좋은 뜻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하종호는 최성진 작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또 한 팀은 달랐습니다. 프로 화가답게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완전히 새롭고 기발한 시도를 해냈습니다. 어떻게 보면 최성진 작가가 챔피언, 팀 수진이 도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최성진 작가 쪽이 도전자처럼 더욱 열정적으로 임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정하듯 말하는 하종호의 말투에 짜증이 치밀었다.

분명 최성진 작가의 시도도 훌륭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최선을 다 했다.

잠깐 훑어본 것만으로 우리의 일주일간의 노력을 폄훼하다니.

'하긴 뭐, 그래봤자.'

하종호 한 사람의 의견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우린 열심히 그렸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라서 별로 긴장되지도 않았다.

김태민도 있고, 유나도 있고.

나도 열심히 그렸고.

우리의 그림은 나쁘지 않다.

그러니 우린 당당히 내일의 전시를 맞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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