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력천재 미대생-115화 (115/203)

■ 115. 번 아웃 □

그리고 우리에 이어 유인호가 마이크를 잡고, City-A의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아이들에겐 아이들만의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한 옷이 아니라, 더 많이 뛰어 놀고, 풀밭에서 뒹굴기 위한 옷이요."

그렇게 유인호가 설명을 마치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나왔다.

과연 스튜디오의 스크린으로 보여지는 유인호의 패션쇼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자, 심사위원들은 작품에 대해 어떻게 보셨는지요. 네, 하종호 평론가님."

정경아의 진행에 따라 하종호 평론가가 마이크를 잡았다.

하종호는 전문 미술 비평가는 아니지만, 날카로운 독설로 점점 분량이 늘어나고 있었다.

하종호가 잘생겼다고 하는 사람도 가끔 있긴 했지만, 내 눈에는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싶은 얼굴로 보였다.

어쩌면 내가 화가 지망생이라 비평가는 그냥 본능적으로 싫은 건지도 모르겠다.

"먼저 유인호씨에게 묻겠습니다."

어쨌든 하종호가 발언을 시작했다.

"일단 패션쇼를 잘 봤습니다. 볼거리가 풍성하더군요.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닐까요?"

"무슨 말씀이신지?"

"패션쇼의 주제가 어른들 위주로 재편된 아동의류산업의 비판, 그런 비슷한 것이죠?"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패션쇼의 모델로 이미 예능에서 유명한 연예인 2세나, 김송아 같은 유명 아역 배우가 등장했습니다. 김송아 같은 경우에는 이른바 '예쁘게 생긴 걸로 유명한' 아역 배우인데요."

김송아는 인형 같은 외모로 현재 영화나 광고 섭외 1순위인 아역 배우였다.

하종호가 계속 질문을 이었다.

"김송아는 어리지만, 팔다리가 늘씬하고 비율이 좋죠. 눈코입도 예쁘고요. 어른들의 시각을 비판하는 패션쇼에서 어른들의 기준으로 예쁜 유명 배우를 모델로 쓰는 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패션쇼에 김송아가 등장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혹시 일부러 예술적 아이러니를 연출하신 겁니까? 아니면 단순히 작가의 판단 실수로 작품의 내적 모순이 발생한 건가요?"

하종호의 지적에 자신만만하던 유인호가 잠시 망설였다.

유인호보다 하종호가 예리하다기 보다는 원래 미술에 있어서는 공격하는 쪽이 더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송아는 어리지만 방송 경험이 많고, 무대를 해석하고 장악할 줄 압니다. 그래서 패션쇼의 완성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송아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그리고 송아 역시 제 쇼의 의도를 충분히 수긍했기 때문에 참석해준 것이고요."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이런 패션쇼가 부적합하다. 아이들을 위한 패션쇼에는 패션쇼에 적합하도록 어른들에게 잘 훈련된 아동 모델들이 필요했다, 이렇게 받아들여도 될까요?"

"네에? 그건 훈련이라기보다는······"

유인호는 하종호의 과격한 단어 선택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어차피 하종호는 유인호의 답변에는 별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단어와 논리로 공격하고 자기가 이기는 것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종호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이제 우리가 공격당할 차례.

"그럼 이번에는 팀 수진에게 묻고 싶습니다. 일단 가족과 어린이라는 주제에서 해피밀이란 키워드를 발견한 점은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칭찬에 감사해서는 안 된다.

원래 평론가들은 한 번 칭찬해주고 공격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팀 수진의 어린이 세트가 무척 인기라서 중간에 한 번 판매를 멈췄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심사를 받기 전 먼저 일반 손님들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했었다.

하지만 인형을 끼워주는 어린이 세트가 너무 잘 팔려서 도중에 어린이 세트는 판매를 중단했다.

가족 평가단에게 심사를 받기 위해 인형들을 남겨둘 필요가 있어서였다.

"그래서 말인데요. 팀 수진의 영상을 봤더니 직접 배워서 패티를 만들고, 감자까지 튀기더군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있었습니까? 어린이 세트를 만들고 싶었으면 인형과 엽서에 더 집중하는 게 옳지 않았나요? 그랬다면 더 많은 인형을 더 좋은 퀄리티로 뽑아낼 수 있지 않았습니까? 과연 팀 수진의 선택이 이 작품을 완성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혹시 햄버거를 직접 만드는 시도는 인기나 이미지를 위한 일종의 보여주기 식 과정이 아니었습니까?"

이런 트집을 잡다니.

형원 선배가 대답을 위해 눈을 찡그렸다.

아마 선배의 머릿속에서 두뇌가 광속 회전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팀 수진에 형원 선배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형원 선배에게서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저희가 직접 햄버거를 만들었던 것은······"

나는 카메라를 향해 여유로운 미소도 잊지 않았다.

시청자 여러분, 팀 수진에는 이주원도 있습니다.

현재 인기 순위 6위.

이제 5위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제가 있었다는 사실만 기억해주십시오.

아무튼.

"저희가 직접 햄버거를 만들었던 것은 단지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완성된 작품을 마주한 평론가에게는 만약의 방법이 생각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작품을 시작해야 하는 작가에게는 언제나 작가가 끌리는 방식이 가장 완벽하고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효율이나 합리성을 논하려면 예술보다는 사업을 해야 합니다. 미묘한 충동이나 사소한 감정도 작가에겐 소중한 동력원입니다. 저희는 즐거운 마음으로 햄버거를 만들었고, 지금 그 선택에 있어서 조금의 후회도 없습니다."

"그런 가요?"

하종호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설령 우리가 햄버거를 직접 배우고, 만들었던 과정이 단지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더라도 그게 문제가 될 이유가 있습니까? 미술은 언제나 어떻게 보여질 지를 고민하는 예술이 아닌가요? 평론가님도 글을 쓰실 때, 더 자극적인 단어와 튀는 논리들을 위해 항상 고민하지 않으십니까?"

"그, 그건······"

"오, 역시 팀 수진. 한국대 학생들답게 화려한 답변을 들려주시네요."

하종호가 잠시 머뭇거리자 진행자인 정경아가 단호하게 끊어버렸다.

마치 내가 이긴 것 같은 모양새.

소소한 쾌감이 몰려왔다.

"자, 그럼 City-A 대 팀 수진. 두 팀의 작품에 대한 가족 심사위원들의 투표를 공개하겠습니다. 열 팀의 가족이 평가에 참여해주셨고요, 팀 당 두 개의 공을 드렸습니다. 그 점수는!"

또르르.

스튜디오의 전광판에 숫자들이 굴러갔다.

그리고 12 : 8 에서 멈췄다.

"뜻밖의 결과군요. 가족 심사위원들은 팀 수진을 선택했습니다! 단, 이 결과로 승패가 결정되진 않습니다."

이겼다.

이기긴 했지만 미묘한 차이.

스크린에는 가족 평가단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저는 진짜 유인호씨의 패션쇼를 즐겁게 봤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물개 인형을 너무 좋아해서 팀 수진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City-A를 선택했습니다. 볼거리도 많고, 음악도 좋아서 진짜 좋았습니다."

가족 평가단의 투표에서는 우리가 이겼다.

하지만 6명의 심사위원의 평가가 더 중요했다.

"그럼 위원님들, 결과 공개에 앞서 먼저 심사평을 들려주시겠습니까?"

먼저 유예철 교수가 스타트를 끊었다.

"일단 유인호씨의 City-A의 무대. 열흘 만에 준비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풍성한 무대였습니다.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팀 수진의 어린이 세트.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즐거운 작품이었습니다. 방금 하종호 심사위원님이 지적하신 부분에 저는 전적으로 반대합니다. 직접 햄버거를 배우고 만드는 과정이 팀 수진의 진정성을 보여줬다고 믿습니다. 두 팀 다 수고했습니다."

그리고 큐레이터 박경원.

"저도 유예철 교수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두 팀 모두 완성도 있는 작품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이 정도 완성도를 보이는 작품들에 순위를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주목한 점은 바로 이 쇼의 제목인 '영 아트'입니다. 과연 어느 팀의 작품이 더 젊은지, 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과연 승자는?

우리 중 누가 더 젊은데?

결정의 순간이 점점 다가왔다.

내 가슴도 조용히 콩닥거렸다.

진행자인 정경아가 큰 소리로 외쳤다.

"두 팀 중 다음 대결로 진출할 팀은? 먼저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5:1. 뜻밖이군요. 팽팽한 접전일 줄 알았는데······"

아오, 진짜.

그냥 말하라고.

"심사위원들이 선택한 팀은 바로! 팀 수진입니다!"

정경아가 수진 선배의 이름을 외쳤다.

후우.

또 한 번 이겼다.

우리의 지난 1주일간의 고생이 기분 좋게 보상받은 것이었다.

우리 여섯 명은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그런데 다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모두 힘이 빠진 표정이었다.

메인 심사위원 중 하나인 국선정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먼저 팀 수진, 축하합니다. 저 역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팀 수진의 작품을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심사위원의 몫으로 제공된 어린이 세트를 받았는데요, 제가 받은 인형은 공룡이었습니다. 전 하프 물범을 갖고 싶었지만, 다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햄버거를 먹는 도중에 옆의 꼬마가 빤히 쳐다봐서 하는 수없이 그 인형마저 건네야만 했습니다."

그랬군.

내 공룡.

역시 내 공룡을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국선정 교수는 계속 심사평을 이어갔다.

"소유욕. 갖고 싶은 욕망을 얼마냐 자극하느냐가 완성된 예술 작품이 갖는 여러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다른 상품들도 마찬가지겠죠. 어쨌든 팀 수진의 어린이 세트가 무척 유쾌한 방식으로 그 소유욕을 성공적으로 자극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우리를 칭찬하는 말 같은데, 긴장이 풀려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City-A의 무대 역시 볼거리가 풍부했습니다. 좋은 작품이었지만, 다만 팀 수진의 어린이 세트 쪽이 조금 더 영리한 화법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같은 말을 하게 되네요. 팀 수진,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팀입니다. 다음 무대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칭찬과 함께 또 한 번의 승리를 쟁취했다.

그것은 또 한 번의 2주간의 쇼핑몰 버프를 의미했고, 수천만 원의 현금을 의미하기도 했다.

"자, 열흘 동안 고생한 여덟 팀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더 기발하고, 놀라운 작품으로 시청자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영 아트, 예술은 계속 됩니다."

우리의 다음 경연 상대 역시 시드를 배정받은 전문 아티스트 팀이었다.

우리를 제외한 아마추어 팀들은 이번에 모두 탈락해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걱정은 며칠 후에 하기로 하고, 일단 오늘은 푹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촬영이 끝나고, 유인호가 다가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희도 열심히 했는데, 져버렸네요. 우리 팀을 이겼으니, 우승까지 하셔야 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해주다니.

유인호도 잘생겼지만 착한 사람 쪽에 넣어줘야 할 것 같다.

김태민, 한유현, 유인호, 나.

그렇게 우린 방송국을 빠져나왔다.

"우리가 또 이기다니. 질 거라고 생각은 안했는데, 그래도 얼떨떨해."

수진 선배가 방송국을 나서며 말했다.

방송국의 커다란 카메라들.

환한 조명.

그리고 뭔가 하이톤의 진행자들.

스튜디오 촬영은 사람을 질리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스튜디오 촬영을 한 번 하고 나면, 진짜 하루 종일 공사판에서 일한 것만큼 피곤했다.

게다가 오늘은 결과 발표까지 있어서 팀 수진 여섯 명은 모두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다.

"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소설 공모전 마감이 다가와서, 빨리 마무리해야 해."

"형 고생 많았어요."

형원 선배는 먼저 자취방으로 출발.

정화 선배도 함께 갔다.

"나도 오늘은 집에 가야 해."

김태민은 집에서 세 마리의 고양이를 기른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세 번 고양이를 충전하러 자기 집에서 지내곤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양이라도 없었으면 내 빌라에서 계속 지냈을지도 모른다.

"그럼 나도 가 볼게."

수진 선배는 김태민과 집이 같은 방향.

그래서 김태민이 집에 가는 날에는 수진 선배도 같이 집에 가곤 한다.

그 말은?

하지만 오늘은 웃을 수 없다.

원래 한 번의 경연이 끝나면 내가 유나의 자취방에 놀러가거나, 유나가 내 집에 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유미와 유현이 올라와 있다.

좋은 동생들이지만, 오늘 만큼은 얄미웠다.

아무튼 네 사람이 떠나고 길 위에는 나와 유나만 남아있었다.

녹화가 끝난 지금은 늦은 오후.

아직 환했지만, 겨울이라서 주위는 춥고 황량했다.

그리고 유나는 무척 지친 표정.

나는 유나의 손을 붙잡고 내 쪽으로 당겼다.

그리고 길옆의 한 건물을 가리키면서 유나에게 말했다.

"우리 저기서 몇 시간만 쉬었다 가자."

"응?"

내가 가리킨 곳은 찜질방이었다.

우린 힐링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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