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가족과 함께 □
[ 유나's 다이어리 게시판 개설 기념 특급 대공개! 수진과 유나 섹시댄스 현장 ]
[ 지난 주 갑자기 속초로 엠티를 떠났습니다. 현장에서 섹시댄스 내기 마피아 게임을 했는데요, 두 사람이 그만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그 벌칙의 현장을 공개합니다. ]
너무 웃겨서 반사적으로 촬영한 동영상.
영상도 음질도 좋지 않았지만 충분히 웃긴 동영상이었다.
"이건 올려야 해!"
정화 선배의 강력한 주장.
가끔 쇼핑몰의 매출을 생각하는 정화 선배는 무서울 때가 있다.
수진 선배와 유나는 처음에는 강력히 반대했지만, 나중에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쇼핑몰을 위해 희생했다.
그 결과······
유나's 다이어리 게시판은 개설하자마자 댓글이 폭주했다.
[ 대체 섹시댄스는 언제 시작하는 거죠? 한참 봤는데 통아저씨 춤만 계속 나오는데. ]
[ 두 사람 분명 술 마신 거 맞죠? 맨 정신에 저런 만행을 할 리가 없잖아요. ]
[ 아니라고 말해줘요. 나의 수진씨가 이럴 리가 없어! 믿기지 않아서 무한 반복 재생 중입니다. ]
그래도 반응이 좋으니 수진 선배와 유나도 나름 뿌듯한 모양이었다.
[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불꽃놀이 사진도 올립니다. ]
두 번째 사진들도 반응이 괜찮았다.
[ 귀 막은 태민오빠 너무 귀여워요! ]
[ 너무 재밌겠다. 나도 하이 유나에 취직하고 싶어요. ㅠㅠ ]
등등등.
유나's 다이어리 게시판의 폭발적인 호응 때문에 우린 더 자신감을 가지고 신상들을 올릴 수 있었다.
* * *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왔다.
오붓하고 설레는 연인들의 날.
하지만 내게 그런 것은 없다.
연말인 동시에 월말.
나는 원디자인과 하이 유나의 밀린 일들을 처리했다.
먼저 원디자인.
이쪽은 승희씨가 워낙 잘해줘서 별 걱정이 없다.
단골도 꾸준히 생기고 있고, 쇼핑몰 판매, 부동산 디자인 판매도 순항 중이었다.
나는 노력 상점의 [잡생각 제거]를 사용한 후, 승희씨가 처리한 문서들을 검토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딱히 내가 지적할 곳이 없군.'
참고로 아이가 있는 직원들에게는 미리 케이크를 선물했다.
소소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던 나의 전생과 비교하면, 크진 않지만 기분 좋은 사치였다.
그리고 하이 유나의 사무실로 들어오자 팀 수진이 모여 신상 촬영 중이었다.
방송 촬영 때문에 일을 거의 못해서, 크리스마스인데도 자발적으로 출근해준 것이었다.
'고마운 사람들.'
신상 업뎃이 끝나면 또 한 번 두둑하게 보너스를 지급할 생각이다.
수진, 정화, 태민이 자기 일처럼 나서준 것도 고맙고, 또 겨울이면 옷장사의 이익이 크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원래 한 벌의 옷을 촬영하는 것은 시간이 꽤 걸린다.
다른 상품들과 다양한 코디도 보여줘야 하고, 옷의 부분 핏과 박음질 등도 상세히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이제 그런 길고 힘든 작업들은 다른 피팅 모델들이 맡는다.
팀 수진은 그냥 한 두장, 쇼핑몰의 얼굴 노릇만 해주면 충분하다.
그래서 촬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띵동.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두 사람이 들어왔다.
"언니!"
"형!"
바로 유나의 동생 유미와 유현이었다.
유미는 이번에 수능을 봤다.
유미는 공부를 꽤 잘해서 수의대 지망이었다.
서울의 학교에도 두 군데 원서를 냈는데, 미리 서울에 올라와 논술 고사 특강을 들을 계획이라고 했다.
그래서 유나가 며칠 전, 내게 미리 물어봤었다.
"유현이도 같이 올라올 모양이던데, 네 집에서 재워도 돼?"
당연히 괜찮지.
유현이는 서글서글하고 성격도 좋다.
이제 해가 바뀌면 고등학생이 되는데 키도 크고, 유나를 닮아 얼굴도 잘생겼다.
특히 나와 태민, 유현이는 PC방 동맹.
그리고 유현이는 나와 유나를 지지해주는 든든한 후원군이다.
유현이는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런데 네 자취방에서 수진 선배랑 유미랑 셋이 지낼 수 있어?"
"전에도 같이 지냈잖아. 어차피 우리 집에서는 잠만 자니까 괜찮아."
아무튼 그렇게 유미와 유현이가 또 한 번 서울에 올라왔다.
붙임성이 좋은 두 동생은 촬영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반갑게 인사했다.
"저, 주원 오빠."
이번에는 틀리지 않고 곧바로 나를 찾아왔다.
"응?"
"저, 저도 모델 알바 시켜주시면 안 돼요?"
역시 여자들은 모두 모델 본능이 있다.
유미가 모델을 한다면 환영이긴 한데······
"그런데 너 논술고사 준비해야 하잖아."
"논술은 갑자기 실력이 오르는 것도 아니니까요. 알바비 받아서 시험 끝나고 용돈 하려고요."
용돈이 필요하면 그냥 나한테 말하면 될 텐데.
원래 처제의 용돈은 형부의 숙제이자 로망이다.
'물론 지금처럼 계속 거절당하면 불가능하겠지만.'
아무튼 뭐, 나는 유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
"그래. 유나가 허락하면 해도 돼."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유현이와 김태민의 반가운 재회가 이뤄지고 있었다.
"형. 너무 보고 싶었어요. 제주도의 친구들로는 그날의 3:3, 그 맛이 살지 않아요."
"나도 마찬가지야. 네가 없이는 주원이가 나랑 잘 놀아주지도 않아."
"형, 제가 업그레이드된 전략을 알아왔어요. 패스트 드라군이라고."
"드라군? 나 촬영 끝나면 시범 좀 보여줘."
유나의 동생들도 왔고, 휴일 중 특근까지 해줬으니까 이따 저녁은 한철이도 불러서 맛있는 걸로 먹여야겠다.
요즘 유난히 자주 먹고 놀긴 하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일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
물주는 부지런히 사야 한다.
유나가 오랜만에 형제들을 보니까 무척 신난 것 같았다.
유나는 유미가 까탈스럽다고 자주 투덜댔지만, 역시 살림밑천인 큰딸이었다.
하나하나 동생들을 살피는 모양이 의젓하고 어른스러웠다.
'확실히 내가 아재의 영혼이 맞나보다.'
난 유나의 예쁘고 귀여운 모습도 좋았지만, 동생들을 챙기는 이런 듬직한 모습도 꽤 좋은 것 같다.
유나의 동생들을 보자 나도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래서 사무실을 빠져나가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잘 지내죠? 크리스마스인데 내려가 보지도 못해서 미안해요."
"괜찮아. 우리가 언제부터 크리스마스 챙겼다고."
하긴.
바쁘게 살았으니까.
"이제부터는 우리도 챙기면서 살아요. 연말에는 못 내려가도 1월에는 꼭 한 번 내려갈게요."
"그래, 방송에서 항상 말조심하고. 그리고 친구들한테 항상 잘 하고."
"네, 잘 하고 있어요."
"친구들한테 자주 고맙다고 말하고."
"벌써 여러 번 말했어요."
"또 말해. 고맙다는 말은 많이 해도 괜찮으니까."
"그럴게요. 맞다. 엄마."
"응?"
"고마워요."
"싱겁기는."
그날 저녁.
우리는 배부르게 먹고, 유현이와 김태민을 데리고 내 빌라로 갔다.
"어?"
집에 들어서자마자 유현이가 내게 물었다.
"형, 왜 형의 방에서 누나의 취향이 느껴지죠?"
가구며 커튼, 살림살이 전부 유나가 골랐으니까.
유현이도 미술 집안의 아들이라 눈썰미가 좋은 모양이었다.
"그래? 아마 학교도 같이 다니고 일도 같이 해서 취향이 비슷해진 게 아닐까? 짐 내려놓고, 편하게 지내."
"어? 형. 왜 형 집 냉장고에 우리 엄마 반찬이 있죠?"
"그, 그래? 기분 탓이 아닐까?"
"괜찮아요. 형. 전 원래 형 편이잖아요. 그보다 태민이형."
"어, 다 됐어."
김태민은 어느새 세 대의 노트북 세팅을 마쳤다.
"PC방 느낌은 안 나겠지만, 손 풀기에는 적당할 거야. 슬슬 호흡을 맞춰봐야지."
"주원이 형, 앉으시죠."
그렇게 우리 세 남자는 뜨거운 크리스마스 밤을 보냈다.
'역시 크리스마스 저녁엔 게임이지!'
내가 원했던 크리스마스는 이런 게 아니었지만, 나도 나름 즐거웠다.
* * *
드디어 찾아온 녹화 날.
우리는 TJ 컬처온 방송국으로 향했다.
들어보니 방송국은 크리스마스도 없이 계속 일했고, 1월 1일에도 계속 일할 모양이었다.
스튜디오에 오르기 전, 김수희 작가가 먼저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제 진짜 시작이에요. 다들 아시죠?"
그동안 아마추어 팀들과 겨뤄왔다.
하지만 이제는 시드를 배정받은 젊은 예술가들과 겨룬다.
그들은 이미 시장에서 검증되었고, 쌓아둔 커리어도 있다.
게다가 그들 입장에서는 아마추어들에게 질 수 없으니 각오도 남다를 것이다.
김수희 작가는 주위를 한 번 살펴보고는 우리에게 작게 소곤거렸다.
"실은 이따가 스튜디오에서 발표될 건데 미리 가르쳐드릴게요. 팀 수진의 상대는 배우 유인호와 City-A예요."
"끼약."
유인호라는 이름을 듣고 수진 선배가 감탄사를 뱉다가 입을 다물었다.
유인호는 아트테이너 중에서도 특이한 케이스.
아역 배우로 시작해 성인 배우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유인호는 직접 미술관을 세우고 예술가 모임인 City-A를 창설했다.
보통 아트테이너는 유명세를 이용해, 실력에 비해 과도한 대우를 누리기 때문에 비판 받는다.
하지만 유인호는 달랐다.
그는 영리하게 자신을 City-A라는 팀의 일원으로 만들었다.
City-A는 전문 예술가 집단.
그래서 유인호의 유명세도 톡톡히 누리면서, 동시에 다른 아트테이너보다 훨씬 수준 높은 작업을 꾸준히 완성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젊은 예술가들의 경연이라는 영 아트 코리아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인물이 바로 유인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유인호가 영 아트 기획 단계부터 캐스팅되고, 늘 같이 거론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유인호는 많이 준비했겠지. 초반부터 너무 강적을 만났어.'
"너무 긴장하진 마시고요. 팀 수진은 지금 충분히 잘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김수희 작가는 별 도움도 되지 않는 격려를 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방송국 대기실에서 가서 메이크업도 받았다.
남학생 메이크업은 비교적 간단히.
유나, 수진, 정화는 셋이 나란히 앉아서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에게 제대로 화장을 받았다.
"언니, 방금 볼 터치, 몇 번이랑 몇 번이예요?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저는 아이라이너 다시 설명해주세요."
여자는 화장을 하면 마음이 진정되는 모양이다.
세 사람은 다시 직업병이 도져서, 꼼꼼히 화장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그때 똑똑.
문이 열리고 방송에서 자주 보던 얼굴이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바로 유인호였다.
유인호가 상냥하게 인사하며 등장했다.
주먹만한 머리에 잘생긴 얼굴.
확실히 연예인은 달랐다.
다행히 평소에 김태민에게 단련이 돼서 생각만큼 충격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남학생 한정인 모양.
"끼약!"
"안녕하세요!"
"으악. 지금은 들어오시면 안 돼요!"
여학생 세 명은 괴성 비슷한 함성을 질러댔다.
"아, 죄송해요. 녹화 전에 인사드리려고 찾아왔더니. 그런데 세 분다 지금도 너무 예쁘세요. 안심하셔도 될 것 같아요."
유인호의 손에는 커피 여러 잔과 쿠키도 들려 있었다.
그리고 잠시 즉석 팬미팅이 이뤄졌다.
유나, 수진, 정화 이 세 사람이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이었다니.
절대 우리들에게는 베풀지 않는 친절과 상냥함으로 유인호를 대했다.
'어이, 모두 정신 차리라고! 유인호는 우리가 물리쳐야 할 적이야!'
나는 맘속으로 안타깝게 외쳤지만, 유나 등등은 내 마음의 소리를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진짜 직접 보니까 세 분다 너무 미인이시네요. 세 분이 연예인을 하셨어야 했는데. 아니 지금이라도······"
"아이참, 놀리지 마세요. 호호."
"아, 그리고 김태민씨. 김용철 작가님의 팬입니다. 저도, 저희 City-A 모두 다요."
"감사합니다. 아버지께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시끌벅적 한바탕 덕담을 나누고는 유인호는 대기실을 나갔다.
* * *
"자! 이제 본격적으로 진짜 영 아트가 시작됩니다. 저희가 초빙한 4팀의 아티스트. 한국과 세계에서 활약하는 젊은 천재들. 그들이 바로 한국 미술의 미래입니다."
그렇게 김경아의 거창한 멘트와 함께 유인호와 교포 화가 최성진 등등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방식은 8팀의 토너먼트.
물론 시드 네 팀은 떨어져서 배치된다.
그리고 우린 김수희 작가의 귀띔대로 유인호와 겨루도록 배정받았다.
"유인호씨와 City-A는 최근 가장 핫하게 떠오르는 젊은 예술가 팀입니다. 정기적인 전시는 물론, 여러 기업과 콜라보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팀 수진은 이번 영 아트에서 가장 주목받는 참가자인데요. 이번 승부에 대한 두 팀의 각오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팀 수진의 공식 인터뷰 담당 형원 선배가 먼저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일단 유인호씨가 출연한 영화들을 모두 좋아합니다. 저희 멤버들도 모두 유인호씨의 팬이고요. 그래서 유인호씨에게 가능한 오래 기억되고 싶습니다. 잊혀 지지 않을 패배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형원 선배 나이스!
형원 선배도 나만큼 유인호가 얄미웠던 모양이다.
잘 생긴 사람들은 김태민 빼고 다 나쁜 사람들이다.
물론 나도 못 생긴 것은 아니다.
유현이도 잘생겼지만, 아직 어리니까 예외다.
아무튼 그렇다.
"네, 팀 수진의 패기 넘치는 발언, 멋있네요."
"유인호씨는 어떤가요?"
"좋습니다. 그렇게 나오신다면 저희도 한 수 가르쳐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농담이고요. 저희 팀 모두 사실 김용철 작가님의 팬입니다. 그런데 태민씨가 속한 팀과 겨루게 되어 무척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해 좋은 경쟁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그렇게 유인호는 끝까지 멋있는 척을 했다.
"그럼 이제 경연의 주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김경아가 큰 소리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