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력천재 미대생-76화 (76/203)

■ 76. 오프닝 □

과제는 늘 친구를 데려온다.

기초 도예 과제가 주어졌으니, 이제는 기초 서양화.

쿵. 쿵. 쿵.

오늘도 시끄럽게 문을 열고 이준성 교수가 들어왔다.

그리고 뭐가 그리 급한지, 이준성 교수는 새로운 과제를 외쳤다.

"이번엔 가면이다!"

이준성 교수는 피피티 비슷한 것도 준비했다.

곧 화면에는 사진이 떠올랐다.

"자. 지금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가면은 프랑스에서 발견된 돌가면이다. 약 70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돌가면은 말 그대로 돌을 갈아서 만든 가면이었다.

특별한 장식 없이 동그란 모양에 눈, 코, 입 모양으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7000년 전 가면이지만, 장식 없이 깔끔했기에 지금에 봐도 전혀 디자인적으로 손색이 없었다.

신비롭고 오묘한 느낌.

"7000년 전이면 신석기 시대다. 그 때 기술로 돌을 갈아서 만들었다면, 당시 최첨단 기술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 가면의 목적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어이, 반장. 뭐라고 생각하나?"

"제사용 가면이 아닐까요?"

아는 문제라 그런지 김대성이 자신있게 대답했다.

가끔 잊게 되지만, 김대성 역시 똑똑한 한국대 학생이었다.

"맞다. 공들여 만든 만큼, 초월적인 존재를 위한 가면이겠지."

찰칵.

다시 사진이 바뀌었다.

"이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가면. 조개껍데기 가면이다."

말 그대로 커다란 조개껍데기에 얼굴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가면이었다.

이건 돌을 갈아 만든 것보다 쉽게 만들어졌으니 더 다양한 용도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유희용이나, 장식용, 기타 등등.

"가면은 이렇게 오래전부터 인간과 함께 있어왔다. 그리고 지금도 인간과 함께 있다. 놀이공원 인형바가지부터, 할로윈 파티, 파워레인저, 방구대장 뿡뿡이, 헐리우드 영화까지. 인간이 있는 곳에는 늘 가면이 있다. 가면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준성은 몇 가지 더 다양한 가면 사진들을 보여줬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이국적인 가면들부터.

일본의 가면, 중국의 가면.

그리고 마지막엔 한국의 탈도 보여줬다.

"한국의 탈은 꽤 훌륭한 가면 예술이다. 특히 풍부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점이 우수하지."

너무 흔해서 종종 쉽게 대하는데, 다른 나라 가면과 비교해보니, 한국의 탈도 참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번 과제에 유의할 게 있다. 역사가 긴 만큼, 너희들이 생각하는 대부분의 가면들은 이미 어디선가 한 번 쯤 시도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생각을 자유롭게 해라. 예술가의 유일한 의무는 늘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주제만 있을 뿐, 어떤 식으로 과제를 제출해도 상관없다. 특히 직접 가면을 만들어오면 가산점을 주겠다. 화가라고 늘 그림만 그릴 필요는 없지."

가면이라.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러고 보면 나도 가면을 쓰고 있었어.'

나는 스무 살 대학생 연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중년의 아재였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정말 스무 살 대학생처럼 여겨져.'

한 때는 분명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가면과 섞여버렸다.

뜬금없이 배트맨이 생각났다.

부잣집 상속자 브루스 웨인은 박쥐 가면을 쓰고 배트맨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면을 쓴 배트맨이 진짜 자신이고, 브루스 웨인이 가면이 된다.

'배트맨과 내가 공통점이 있었다니. 실은 나도 대단한 사람이었던 거야.'

가면은 내게 무척 잘 맞는 주제였다.

그러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게 맞는 주제에 더 용감하게 자신을 드러낸다면, 더 직관적인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잠시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데, 이준성 교수의 얼굴이 시선에 잡혔다.

"흐흐흐흐."

이준성 교수가 나를 보며 징그럽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너희 둘. 이번 전시에 그림도 걸게 되었는데, 인간적으로 나한테 술 한 잔 사야 하는 거 아니냐?"

끄응.

제자에게 술을 뺏어먹는 교수라니.

그런데 분명 여러 기회를 주긴 했다.

하지만 이준성 교수의 술자리가 워낙 악명이 높았다.

'지금 솔직히 이준성 교수가 싫지는 않은데······'

괜히 같이 술 마셨다가 실망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림이 팔리면 한 잔 사겠습니다."

"흐흐. 그래. 알겠다. 이제 5일 후에 내 전시가 열린다. 이 두 놈의 그림도 걸리고, 다른 학교 학생과 교수들의 그림도 있으니까 시간이 되는 놈들은 와서 봐도 된다. 내가 그동안 너희들을 욕했으니까, 너희들도 내 그림을 보고 욕해도 된다. 물론 그럴 용기가 있는 놈은 없겠지만."

이준성 교수는 마지막으로 괜히 한 번 김대성을 노려보고는 수업을 끝냈다.

* * *

원 디자인팀이 빠져나가고, 하이 유나팀은 사무실을 청소하고 정리했다.

하이 유나도 점점 제대로 된 회사가 되어가는 느낌.

우린 탁자에 둘러앉아서 회의를 했다.

일단 좋은 소식부터.

"은성사 레깅스가 벌써 400장이나 팔렸어요. 이제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년 봄까지 판다고 생각할 때, 어쩌면 5000장이 모자랄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운을 띄우자 정화 선배가 진지하게 말했다.

"은성사 레깅스는 잘 나가. 후기도 좋고. 문제는 히트 상품이 나갈 때 다른 신상도 같이 업데이트 해줘야 한다는 사실이야. 두 사람이 전시 때문에 바빠서 최근 신상 업뎃이 늦어지고 있어. 당분간 무리해서라도 촬영해야 할 것 같아."

역시 정화 선배.

이 쇼핑몰의 사장은 나와 유나였지만, 가끔 정화 선배의 분석이 제일 냉철할 때도 있었다.

든든했다.

"전에 가져온 신상 중에 캔디의 옷 일부가 생산 중단될 거라고 전화가 왔어. 그래서 코디 계획을 다시 짜야 해. 가능한 빨리 동대문에 다시 가 봐야 할 것 같아."

이건 수진 선배.

수진 선배가 일상에 맹하고, 학점에 초연해서 그렇지 옷에 관해서는 철저한 부분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이라 그런 것 같았다.

모델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고.

"헨델에서 가져온 옷이 불량이 많은 것 같아. 포장할 때 실밥이랑 먼지도 많이 나오고. 헨델 옷이 반품이 많으니까, 신상 사입할 때 참고해주세요."

이건 김태민.

김태민은 쪽가위의 달인이었다.

얼마 전에는 옷 포장 아르바이트 아주머니들과 속도 내기를 해서 이기기도 했다.

김태민은 영혼은 자유롭지만 일은 잘했다.

"그리고 유나야. 자체 생산은? 진행 상황이 어때?"

이제 우리는 자체 생산에 관해 방향성을 세웠다.

동대문 도매상가의 매력은 끝없는 다양성과 경쟁이었다.

노련한 상인들에 의해, 온갖 종류의 옷이 계속 시도되고 있었다.

'그러니 예쁜 옷을 위해서라면.'

예쁜 옷을 원한다면 자체 생산 보다는 동대문 사입이 합리적일 것이다.

내가 생각한 자체 생산의 이점은 좋은 옷을 저렴한 가격에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체 생산은 기본 스타일에 충실하기로 결정했다.

자체 생산은 광고를 대신하는 효과도 있었고, 기존 회원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었다.

우린 이미 가을과 초겨울 시즌에 맞춰서 몇 개의 코트 디자인을 계획하고 있었다.

"우리의 고객 연령대가 낮으니까, 롱코트 보다는 하프 코트 쪽이 낫지 않을까 싶어. 가격 경쟁력도 있고, 일상에서 입기도 편해. 아마 다음 주에 샘플들이 나올 테니까 샘플을 보고 결정하면 될 것 같아."

요건 유나의 대답.

이제 자체 생산도 능숙하다.

"지난 번 재킷은 유나 재킷이라고 했으니까, 이번 코트는 꼭 수진 코트라고 해줘."

"그럼 패딩은 정화 패딩이다."

일을 잘 한다 싶었더니, 또 학생들 티를 낸다.

우린 코트와 동시에 겨울철 패딩까지 알아보고 있었다.

패딩은 생산 수량이 크기 때문에 그만큼 준비 기간도 필요했다.

대신 마진도 크고 폭발력도 큰 아이템이라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우린 이미 C마켓 파워 셀러도 따냈고, 하이 유나 홈페이지 회원도 크게 늘고 있었다.

특별한 광고도 없이 이 정도 규모를 만든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었다.

하이 유나는 지금처럼 계속 굴러만 가도 어느 순간 큰 이익을 뱉어낼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친한 사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 *

드디어 전시 당일이 되었다.

전생에서도 전시는 자주 갔었지만, 전시 오프닝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 그림이 걸리는 것도, 졸전 외에는 처음이었다.

나는 청바지에 셔츠를 입고, 그 위에 캐주얼 정장 재킷을 걸쳤다.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재킷은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어제 저녁.

"야, 이주원. 그런데 너 전시에 입고 갈 옷은 있냐?"

"응? 나 옷 많은데?"

"그런 옷 말고 바보야.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인데."

유나가 말해주지 않았으면 놓칠 뻔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어제 저녁에 동대문 가는 길에 한 벌 사 입은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시간을 맞춰서 유나와 태민, 수진 정화를 카니발에 태우고 전시장으로 갔다.

고작 그림 한 점 거는 전시에 더 많은 사람들을 데려가기는 좀 그랬다.

전시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이미 붐볐다.

그리고 세 명의 교수들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전시회 구석엔 다과도 차려져 있고, 그림을 둘러보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사람들 틈에 서 있는 것 보다는 그림들이 더 궁금했다.

그래서 일행에서 떨어져 교수들의 그림을 감상했다.

'이런 게 교수의 그림인가.'

일관되고 틈이 없는 느낌.

학생들의 그림과는 달랐다.

'아마도 많은 고민과 경험의 산물이겠지.'

이준성 교수의 '여름 풀꽃'은 제목만 풀꽃이고 실은 여름 풍경과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었다.

막말 이미지와는 달리 차분히 정돈된 그림이었다.

그런데 그림들 앞에 아는 얼굴이 하나 보였다.

1학기 때 사진의 이해를 강의한 김진기 교수였다.

30대 중반의 젊은 여자와 함께 그림을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쳐버려서 나는 다가가 인사를 했다.

"어, 너도 왔구나, 청강생. 이준성 작가님 수업 듣나 보구나."

그리고 옆의 여자에게 나를 소개했다.

"내 제자야. 여긴 내 후배."

"오빠 제자면 한국대생? 무슨 과예요?"

"서양화과입니다. 1학년이고요."

내 전공을 듣자 젊은 여자의 얼굴이 복잡한 표정을 띄었다.

그러자 김진기 교수가 옆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 친구도 미대생이었거든. 나랑 같이 미국에서 공부했고. 귀국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그래서 한국의 미대생들한테 관심이 많아."

아주 어렴풋이 수업 시간에 김진기 교수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뉴욕에서 방송을 공부한 돈 많은 친구가 있다고 했어······'

내가 얼굴을 찡그리고 아는 체 했다.

"혹시 미술계가 다이나믹하지 않다고 비판하셨다는 친구 분?"

"어? 맞아. 그걸 다 기억하네."

"뭐야, 오빠. 그런 이야기도 한 거야? 그때는 내가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국이 다 낯설었어요."

김진기 교수의 후배는 웃으며 대답했다.

김진기 교수는 한 번 더 여자 후배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이 친구는 지금 TJ E&M에서 실장으로 일하고 있어. 혹시 방송 쪽에 관심이 많으면 오늘 잘 보이도록 해."

"알겠습니다."

대답하긴 했지만, 내가 방송 쪽과 엮일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우린 몇 가지 이야기를 하다, 이 전시에 내 그림이 걸려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래요?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요즘 한국 미대생들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알고 싶네요."

"내 후배한테 그림 잘 보여드려. 은근히 큰손이니까."

그때 옆에서 아는 목소리가 다가왔다.

"아이고, 이사님. 와주셨군요. 반갑습니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 중 하나이자, 이준성 교수의 친구인 서명길 교수였다.

서명길 교수는 김진기 교수를 놔두고는 젊은 여자에게 꾸벅 인사했다.

'이사라고? 아까는 실장이라며?'

호칭이 헷갈리긴 했지만, 그게 중요하진 않았다.

어쨌든 서명길 교수가 또 다른 사람에게 불려가자 우리는 구석진 자리의 내 그림으로 향했다.

슬픈 일이긴 하지만, 앞쪽 자리는 전부 교수들의 그림이 걸렸다.

내 그림 앞에 다가가자, 마침 그곳에 이준성 교수와 유나가 서 있었다.

"오, 김작가 와주었군. 오랜만이야. 옆의 아름다우신 분은 누구신가."

이준성 교수가 아재티를 풀풀 내며 김진기 교수를 아는 체 했다.

"이 쪽은 제 후배······"

김진기 교수는 후배를 소개 하려했지만, 이준성 교수가 한마디 더 뱉었다.

"하하하. 이런 아름다운 후배가 있는 줄 알았다면, 김작가와 더 자주 연락할걸 그랬어. 으하하하."

너무 아재스러운 멘트라서 옆에 있는 내가 다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때 이준성 교수의 친구인 오선우 교수가 달려왔다.

그리고 김진기 교수의 후배에게 꾸벅 인사했다.

"이사님, 오셨으면 말씀해주시지, 왜 여기 숨어계십니까?"

"이사?"

이준성 교수가 알 수 없단 표정을 짓자, 오선우 교수가 그녀를 소개했다.

"TJ 대준문화재단 이사님이셔."

대준문화재단은 나도 알 정도로 큰 재단이었다.

김진기 교수가 '큰손'이라고 말한 게 허풍이 아니었다.

대준문화재단은 정기적으로 한국 화가들의 그림을 사들이곤 했다.

이준성 교수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항상 당당한 이준성이지만, 대준문화재단은 이준성도 땀 흘리게 했다.

그때 대준문화재단의 젊은 이사가 이준성 교수의 뒤를 쳐다봤다.

"태민아."

"미연이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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