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력천재 미대생-63화 (63/203)

■ 63. 바다 친구들 □

"웹툰으로 영화를 홍보하자고요?"

전화기 너머 들린 안수정 대표의 목소리.

"천재세요?"

많이 찔렸다.

천재는 무슨.

나는 그저 평범한 회귀자일 뿐이었다.

"진행하죠. 안 그래도 업계에서 저희 회사의 이번 영화의 성적을 주시하고 있거든요. 아마 크리스털 시네마가 이번에는 실패하길 바라는 사람도 많을 거예요. 그래서 저도 가능한 모든 수단을 찾는 중이었어요. 멋진 아이디어를 주셔서 고마워요!"

크리스털 시네마의 안수정 대표는 나를 거의 광신도처럼 믿었다.

그래서 일이 무척 쉬웠다.

나는 안수정 대표와 몇 가지 실무적인 이야기를 나눴고, 이소영이 중간에서 의욕적으로 일을 진행시켰다.

덕분에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사실 영화 개봉 일정이 잡혔기 때문에 일을 늦출 수도 없었다.

홈페이지에 싣기로 한 공포 웹툰은 세 편.

웹툰의 내용은 만화가와 안수정 대표, 그리고 내가 함께 정하기로 결정했다.

플래시는 역시 한철이 담당.

홈페이지는 웹툰에 맞춰 최대한 직관적이고 간단히 꾸미기로 했다.

사실 단순한 디자인이 더 내공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뜻밖에도 신인 작가 뿐 아니라, 중견 웹툰 작가도 단편 섭외 비용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리고 크리스털 시네마의 자금도 넉넉한 편이라 웹툰의 퀄리티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요. 웹툰의 끝에 이렇게 적는 겁니다. '더 강력한 공포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극장으로 오세요'."

내 제안을 듣고 안수정 대표도 같이 고민했다.

"그것도 괜찮군요. 나도 같이 끈적한 문구를 고민해볼게요."

일에 있어서는 자신감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았다.

미래의 성공을 보고 왔기 때문에 나는 더 강력히 추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확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전해져서 안수정 대표나 이소영도 확고하게 일하게 되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회귀자일 뿐, 유능한 사업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 매일매일 일을 하며 새롭게 배우고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 * *

"자, 여러분이 만든 자소상은 어제 가마에 들어갔습니다. 아마 다음 주에는 다 같이 결과를 확인할 수 있겠죠. 그럼 이제 새 과제를 시작해야겠죠?"

기초도예 시간.

김미숙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미대 교수는 정말 편한 직업 같았다.

매주 새로운 과제를 내고, 학생들의 작품을 평가하기만 하면 되니까.

고생은 언제나 학생들의 몫이다.

"첫 테라코타는 초벌구이에서 끝납니다. 하지만 모두 상식적으로 알고 있죠?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도자기는 재벌구이까지 하게 됩니다. 초벌 후, 유약을 바르고 다시 한 번 가마에 굽는 거죠. 그럼 우리가 알고 있는 도자기가 됩니다."

청자와 백자가 달라지는 것은 흙의 차이였다.

그리고 같은 청자나 백자라 하더라도 유약의 종류에 따라, 반짝임이나 색이 다시 달라지기도 했다.

거기에 무늬나 그림을 넣는 방법도 가지각색.

도자기의 세계도 무궁무진했다.

'도예과를 가지 않기를 정말 잘했군.'

도자기에 대해 짧은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 벌써 영혼이 지칠 지경이었다.

덕분에 그림 그리는 일이 무척 소중하게 여겨졌다.

"자, 여러분은 초보 중의 초보. 그러니까, 이번에는 청자토를 이용해 작업할 겁니다. 초보자에겐 백자토보다 청자토가 더 편합니다. 흙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여러분이 두 번째 과제를 위한 스케치를 하고, 그 스케치를 제게 검사 맡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알아둬야 할 게 있습니다."

도예에서는 알아둬야 할 사실이 너무 많았다.

"일단 우리가 만드는 것은 도자기입니다. 도자기는 도자기만의 특성이 있죠. 그래서 일반적인 조소 작품과는 달라야 합니다. 도자기만의 특성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반짝 거립니다. 그리고 도자기의 특성상 모양을 만드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김대성이 손을 들고 대답했다.

사실 모두가 아는 이야기.

그래도 김대성은 발표 후, 무척 뿌듯해 했다.

"네. 맞습니다. 유약을 바르고 구우니까, 반짝거리겠죠. 도자기로 조형 작품을 만들 땐 그런 표면의 특성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특히 이번 과제의 경우엔 모두 청자토를 이용하니까, 색도 중요한 부분이겠죠. 그리고 학생이 말한 것처럼, 도자기의 특성상, 만들 수 있는 모양과 만들 수 없는 모양이 있습니다. 물론 전문가들은 어떤 모양이든 만들어 내겠죠. 그래도 여러분 같은 초보라면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유나가 손을 들었다.

"실용성이요. 도자기는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만큼, 실용적인 측면을 고려해 모양과 무늬가 정해져왔습니다."

유나의 대답을 듣고 김미숙 교수가 환하게 웃었다.

"네. 맞아요. 도자기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죠. 좋은 점을 지적해줬네요. 물론 실용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도자기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도자기의 모양과 무늬들, 많은 부분이 도자기의 실용성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런 실용성을 이미 전제하고 작품을 감상하겠죠. 그러니 도자기의 실용성은 작품을 만들기 전 미리 염두에 둬야 할 중요한 부분입니다."

김미숙 교수가 새로운 작가를 소개했다.

"이수경 작가라는 분이 있습니다. 깨진 도자기 파편을 재조합해서 작품을 만드는 작가입니다. 참, 이 분도 서양화를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도예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죠. 도자기는 보통 '쉽게 깨어지는 것'. '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 그리고 '깨어지면 그 수명이 다한 것'. 등등의 흔한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수경 작가는 그런 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해서 반대로 깨진 도자기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김미숙 교수는 깨진 도자기를 붙여서 만든 이수경 작가의 작품을 스크린에 띄웠다.

"나는 앞서 도예 작품은 도자기의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도자기의 특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 역시 도자기의 특성을 존중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예술가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아, 물론 이 수업은 기초 시간. 그래서 여러분은 작품은 깨지면 감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두 번째 과제를 위한 스케치를 시작했다.

포스터는 시작도 못했는데, 이제 도예 과제까지 새로 구상해야 했다.

과제가 끝도 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뭐,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유나는 스케치 노트를 펼치더니 뚝딱뚝딱 뭔가를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불가사리였다.

유나는 다양한 모양의 불가사리를 스케치하고 도자기 식으로 변형했다.

김태민이 그걸 보고 말했다.

"어? 뚱이를 만드네. 그럼 나는 퐁퐁 아줌마 만들어야지."

그렇게 김태민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뱉더니 스케치북을 펼치고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복어였다.

"뚱이는 뭐고? 퐁퐁은 뭐야?"

내가 묻자 김태민이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유나도 같이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김태민에게 가르쳐주지 말라는 눈신호를 보냈다.

"뭐야, 너희들."

하지만 둘은 끝까지 가르쳐주지 않고, 둘이서만 키득거렸다.

수업시간에 따돌림 당하는 건 지난 생에 질리도록 겪었다.

그래서 장난인 건 알면서도, 조금 서럽기도 했다.

"아, 두 사람은 벌써 스케치를 시작했네요? 빠르기도 하지."

김미숙 교수가 지나가다 유나의 스케치북을 보고 말했다.

그러자 유나가 자신의 스케치를 설명했다.

"저는 바닷가에서 자랐거든요. 불가사리를 보면 가끔은 생물 같기도 하고, 가끔은 무생물 같기도 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딱하고, 기하학적인 모양을 가지고 있고, 색깔도 다양하고. 그래서 도자기로 표현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미숙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불가사리는 도자기로 만들기에 적당한 모양이죠. 좋은 소재를 잘 찾았네요. 아쉽네요. 다양한 색으로 만들 수 있었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대신 다양한 모양과 무늬로 여러 작품을 구상해 보세요."

"네, 교수님."

유나는 시작과 동시에 벌써 합격을 받았다.

그리고 옆의 김태민.

"복어네요. 복어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이유는 무슨.

유나가 불가사리 만드는 것보고 같이 해산물을 선택한 것이었다.

'뚱이, 퐁퐁이 어쩌고 하면서.'

하지만 김태민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복어는 적에게 공격당하면 몸 안에 공기를 넣어 몸을 부풀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어를 보면 반사적으로 속이 텅 비어 있는 모양을 떠올립니다. 도자기 역시 굽기 위해서는 안이 비어있어야 합니다. 그런 형태의 유사성에서 도자기와 복어 사이의 필연성이 있진 않을까. 그래서 복어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 사기꾼 녀석.'

김태민의 재빠른 대답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복어는 바다의 고양이 같은 거구나.'

어쨌든 순간적으로 이유를 만들어 붙인 김태민의 반사 신경은 대단한 것이었다.

"흥미롭네요. 복어의 형태에서 도자기의 특성을 떠올리다니. 복어의 내부를 효율적으로 비우는 것이 작품의 의미를 살리는 방법이 되겠군요. 여러 방법이 있을 테니, 같이 고민해보도록 하죠. 김태민씨와 한유나씨는 두 사람다 도자기의 특성과 조형 작품의 예술성을 고려해 기발한 작품을 구상했네요."

김미숙 교수는 내 텅 빈 스케치북을 한 번 훑어보고는 자리를 떠났다.

유나와 김태민이 너무 빨라서 내가 뒤쳐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것저것 소재를 구상하면서 혼자 김미숙 교수가 했던 말을 생각했다.

'도예 작품은 도자기의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야. 그런데 그런 특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 역시 도자기의 특성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아리송했지만 맞는 말 같기도 했다.

어쨌든 예술의 세계는 무궁무진한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포스터 그리기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 포스터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난 이제까지 포스터의 특성을 존중하려고만 했어. 사람을 모으고, 흥미를 유발하고, 구매를 제안하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포스터에 관해 고민할 때에는 일에 관해서 떠오르고, 도자기에 관해서 스케치할 때에는 포스터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거 공부 못하는 사람들 특징 아닌가?'

아무튼.

나는 스케치북을 펼치고, 도자기에 관해서도 스케치했다.

내가 스케치한 것은 커다란 소라 껍질이었다.

"뭐야? 너희들 해물탕 끓이냐?"

그때 옆에서 기웃거리던 김대성이 비아냥대듯 말했다.

적당한 소재가 생각나지 않아서 강의실을 돌아다니다 우리 스케치북을 본 모양이었다.

그때 김미숙 교수가 또 다시 다가왔다.

"재밌네요. 이주원 학생이라고 했죠? 이건 소라인가요?"

"소라 껍질은 안이 텅 비어 있습니다. 그리고 텅 빈 안이 밖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도예 작품을 만들 때, 밖의 모양을 먼저 만들고 굽기 위해서 안을 비우는 게 아니라, 텅 빈 내부까지 작품의 일부로 드러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라 껍질을 구상해 보았습니다."

"역시."

내 대답을 들은 김미숙 교수가 환하게 웃었다.

"이번 서양화과 학생들은 상당히 우수하군요. 셋 다 발상이 재미있고, 자유로와요. 끝까지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도록 노력해 보세요. 기대할게요."

김미숙 교수가 우리 셋을 칭찬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괜히 기웃거리며 비아냥대던 김대성이 머쓱해졌다.

어쨌든 도예 과제라도 해결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포스터에 대해서도 살짝 단서를 잡은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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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맥주 광고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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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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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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